갑진년 용띠를 맞으며/靑石 전성훈
2024 갑진년 용띠, 새해를 맞으며 나이 한 살 더 먹는 게 썩 반갑지만은 않다. 이제 갓 칠십 고개를 넘은 주제에 별소리 다 한다고 하실지 모르지만 조금 착잡하고 씁쓸한 기분이 든다. 이런 기분이 나 혼자만의 느낌은 아닐 것 같다. 내 또래 아니 나보다 연세가 드신 선배님들도 이런 생각을 가끔 하실 것 같아서다. 한때는 나이를 빨리 먹고 싶어 안달하였던 적도 있다. 중고교생 시절 10대까지는 어서 나이를 먹었으면 하던 기억이 난다. 세상 물정 모르고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마음대로 영화관 갈 수 있는 어른 흉내 내고 싶어 하던 철모르는 사춘기 헛바람이 가득했던 꿈같은 옛날이다. 운 좋게도 용띠해를 여섯 번이나 맞이하니 나이가 일흔둘이다. 또다시 용띠해를 맞이할 수 있을지는 도저히 가름이 안된다. 팔십, 구십을 넘기신 외가와 친가 어른도 계셨지만,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바란다고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서 그냥 홀연히 떠나면 그만일 텐데. 태어날 때부터 먹을 양식과 목숨은 정해져 있다는 오래된 전설처럼 창조주의 자비에 맡길 뿐이다. 끝모르는 인간의 욕망과 욕심은 신의 영역을 뛰어넘으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찾는다. 조물주의 고유한 영역에 속하는 일에 이 세상의 순례자이자 나그네인 인간이 군침을 흘리며 넘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새해를 맞이하면 누구나 이런저런 희망이나 소망을 가지기 마련이다. 개인적으로 원하는 것도 있고, 가정과 공동체 그리고 사회와 국가에 원하고 바라는 것도 있다. 나이가 들수록 젊었을 때 비하여 특별히 꼭 이루고자 하는 뜨거운 열정이 점점 사라지고 옅어져 가는 느낌이 든다. 나이 칠십이 넘어 몸 여기저기 망가지지 않은 곳이 없어 조금씩 아프면서 지냈으면 좋겠다. 중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때때로 하늘을 쳐다보며 호흡을 하고 따사로운 햇살을 만끽하며 지냈으면 좋겠다. 입을 활짝 벌리고 큰 소리로 웃지 않고 살짝 미소를 지으며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지내는 것도 괜찮다. 젊은이처럼 백 미터 달리기나 원대한 꿈을 좇아 마라톤을 할 수 있는 정도의 건강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근린공원이나 동네 야트막한 뒷산인 초안산에 가고 싶을 때는 언제라도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어쩌다가 친구나 지인을 따라 둘레길을 걷기도 하고, 1년에 한 번 북한산, 도봉산, 불암산, 수락산에 올라갈 수 있는 건강이 허락된다면 더는 바랄 것이 없겠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몸이 부담 없이 따라주면 마음도 나날이 밝은 기운을 차릴 수 있을 것이다. 맑은 정신으로 손가락이 움직이는 대로 글을 쓰고, 시집 한 권 낼 기회와 여건이 마련되기를 바란다. 매년 즐기는 놀이처럼 사랑하는 손녀와 손자를 데리고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다. 친구들과 맛집을 찾아서 수다를 떨며 술 한잔 나누는 여행도 하고 싶다. 10년 이상 참가한 도봉문화원 인문학기행에도 무리하지 않고 철 따라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
개인적인 소망 이외, 새해에 우리나라 국운이 빛나기를 기원한다. 생각이나 가치관이 다르다고 해도, 서로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빈다. 올해 4월 초에 이루어지는 총선에서 우리나라가 나아갈 길이 정해질 것이다. 국운이 활짝 꽃피는 길로 갈지, 반목과 분열로 서로에게 삿대질하고 손가락질하며 정신이 피폐해지고 삶의 의욕이 가라앉는 길로 갈지, 모든 것의 선택은 우리 국민의 몫이다. 국민 각자의 현명한 판단을 믿고 싶다.
새해맞이 글을 보낼 즈음에는 우리나라를 떠나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새해를 맞이한다. 낯선 고장에서 맞이하는 새해 아침의 태양은, 나라와 국적, 종교와 언어 그리고 피부 색깔을 떠나 모든 사람에게 따스한 손길을 베풀어 주는 것 같다. 여러분 가정에 하느님의 은총이 충만하고, 부처님의 가피가 풍성하기를 기원합니다. (갑진년 새해를 맞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