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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해인사 소리길 2018. 8. 8. - 芝山
무덥다 무덥다 하지만 이렇게 무더운 해가 또 있을까 싶다. 밤 온도가 25도씨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면 '열대야'라 하고 30도가 넘으면 '초열대야'라 부른다고 한다. 그런데 7월 중순 이후 2주일이 넘게 초열대야가 계속되고 있다. 이에 대구는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로 이름이 바뀐 지 오래다. 잠을 자고도 잔 것 같지 않고 책상에 앉아있어도 머릿속은 ‘멍때리기 삼매경’이다. 노약자와 어린이는 밖에 나가지 말고 집안에서 지내라고 연일 스마트폰 메시지가 날아 온다. 그러나 방안에만 틀어 박혀있어도 정신이 맑아질 것 같지는 않다.
지난 7월 11일~12일 서천에 있는 국립 생태원을 1박2일로 다녀오고 7월 27일 번개팅으로 고산골 모래밭길을 맨발로 걸었다. 엄청 무더운 날인데 10명이 참석하였다. 그래도 오랫동안 만나지 않은 것 같은 아쉬움이 있어서 이번 8월 만남을 계획하고 칠곡에 있는 ‘체험의 숲’으로 가기로 했으나 주 반장 얘기가 “햇볕이 너무 강렬한데 그늘도 별로 없는 칠곡 ‘체험의 숲‘으로 가는 대신 계곡의 물과 소나무 숲길이 잘 갖추어져 있는 해인사 소리길로 정하자”고 했다.
전인원이 17명이 참석하였다. 해인사 입구 홍류문을 지나 바로 오른쪽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여기에서부터 걸어 올라가 치인계곡 까지 가는 길 약 3km쯤을 올라가기로 했다.
해인사 소리길은 팔만대장경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2011년 세계경판대회가 열린 홍류동 계곡 입구에서부터 치인계곡까지 7.3km에 달하며 홍류동 계곡과 해인사의 소나무숲,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를 상징하는 소리길로 이름을 붙여 만들어 놓은 산보길이다. 오늘은 홍류문에서 위쪽으로 약 3km 길을 따라 올라갔다가 내려오기로 했다. 아래쪽 길은 5년 전 우리 ‘숲과문화반’에서 8회(2013. 9. 11.) 답사한 적이 있었고 그때는 세계경판대회장에서부터 홍류문까지 올레길을 걸어와 자동차를 타고 치인계곡 식당에서 식사를 하여서 이 길을 걷지 못했으나 이제 소리길을 모두 둘러보게 되었다.
이곳에는 가야 19경이 있는데 제1경 覓桃源 제2경 逐花川, 제3경 武陵橋, 제4경 七星臺, 제5경 紅流洞. 제6경 籠山亭, 제7경 翠積峯, 제8경 訿筆嵓 , 제9경 吟風瀨. 제10경 光風瀨, 제11경 宛在嵓, 제12 噴玉瀑, 제13경 霽月潭, 제14경 落花潭, 제15경 疊石臺, 제16경 會仙臺, 제17경 學士臺, 제18 奉天臺, 제19 牛鼻井이 있다. 이중 제17경은 해인사 경내에 있고 제18경은 기우제를 지냈던 가야산 중턱에 그리고 제19경은 가야산 정상 석굴 안에 있는 샘을 말한다. 왼쪽 계곡으로 난 다리를 지나 산속으로 들어가지만 바람기 없는 숲속도 무덥기는 마찬가지였으나 깊은 계곡의 물소리는 시원한 바람을 마음으로나마 느끼게 하였다.
울창한 아름드리 소나무가 들어선 산속에 농산정(籠山亭)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이곳은 고운 선생이 책을 읽고 시를 짓던 곳이라고 한다. 농산이란 고운이 이곳에서 지은 시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농산정>
<내려오다가 농산정앞에서 단체사진>
<홍류폭포> <홍류동 계곡>
<제가야산독서당(題伽耶山讀書堂)>
狂噴疊石吼重巒 겹겹이 쌓인 돌 사이로 광분한 물줄기는 봉우리를 거듭 울리니
人語難分咫尺間 사람의 말소리는 가까이서도 알아듣기 어렵구나
常恐是非聲到耳 옳고 그름을 다투는 소리 귀에 들릴까 늘 두려워서
故敎流水盡籠山 짐짓 흐르는 물로 하여금 온 산을 둘러싸게 하였다네
최치원은 신라 말 3최 중의 한사람으로 중국에 가서 19세의 어린 나이로 과거에 급제하여 양주자사를 지낼 때 황소의 난이 일어나 ‘황소격문’으로 문장을 떨친 신라의 천재였다. 그는 기울어져가는 신라를 다시 세우려는 큰 뜻을 품고 29세에 귀국하였으나 신라에서는 그의 큰 뜻을 살리지 못하고 함양 군수로 발령이 났다. 함양에서 지리산 홍수를 대비하여 상림(上林)을 조성하였는데 이는 우리나라 사방사업의 시초기 되었다. 최치원은 벼슬을 버리고 홍류동 이곳으로 들어와 정자를 짓고 산수와 벗하고 살았으며 제17경인 학사대에 어느날 가지고 다니던 전나무 지팡이를 꽂아 놓고 한 켤레의 신발만 남겨놓고 홀연히 사라지니 사람들은 그가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랐다고 했다. 그가 꽂아 놓은 지팡이는 다시 살다가 죽어서 1757년에 후계목을 다시 심은 것이 지금의 천연기념물 541호로 지정되었다(百弗庵集).
신라 말기 3최라고 부르던 유명한 천재 세사람의 최씨가 있었는데 최치원(崔致遠), 최승우(崔承祐), 최언위(崔彦撝)를 말한다. 이들은 당나라에 가서 과거에 급제하고 신라로 돌아와 최치원은 신라에 남았고 최승우는 후백제 견훤 밑에 들어갔으며 최언위는 고려 왕건에게로 들어갔다. 그중에 자기의 가진 뜻을 펴게 된 것은 왕건의 신하가 된 최치원의 종제인 최언위 뿐이다. 그러니 사람은 줄을 잘 서야 된다는 말이 나왔는지도 모른다.
농산정을 구경하고 조금 올라가니 취적봉이 나온다. 이곳에 취적봉과 음풍뢰가 시판에 적혀있다.
제 7경 최적봉(翠積峯) 선인이 내려와 피리를 불었던 바위 가야 19명소
春山春雨染靑螺(춘산춘우염청라) 산봉우리에 봄비 내리니 푸른빛 물들고
石氣涳濛樹影多(석기공몽수영다) 돌에는 서기가 가득하고 나무 그림자 짙어지네
옥적수성운하권(玉笛數聲雲不捲) 옥피리 몇 가닥으로도 구름은 걷히지 않으니
也知峯月浴銀河(야지복은용은하) 봉우리의 달이 또 은하수에 목욕함을 알겠도다
제 9경 음풍뢰(吟風瀨) 풍월을 읊은 여울
溪聲山色朅來中(계성산색궐래중) 물소리와 산 빛 사이로 오가는 가운데
如羾寒門累始輕(여공한문누시경) 한문에 오르니 세속 누가 비로소 가벼워지는구나
陶令臨流何足較(도령임류하족교) 도연명이 시냇물에 곁함에 어찌 감이 비기겠는가
浪吟明月與淸風(랑음명월여청풍) 나도 명월과 청풍을 낭랑하게 읊조리네
바로 곁에 광풍뢰의 시판이 나온다.
제 10경 광풍뢰(光風瀨) 선경의 풍광이 빛나는 여울
明月三分水二分(명월삼분수이분) 밝은 달은 세 조각이요 물은 두 갈레로 갈라지니
松篁瑟瑟饗飛雲(송황슬슬향비운) 송죽의 바람은 메아리 되어 구름 위로 오르는구나
箇中淸意誰知否(개중청의수지부) 이 속의 고요함을 뉘라서 알겠는가
我向山中一問君(아향산중일문군) 내가 산을 향하여 그대에게 한번 묻노라
출발하여 30여분 지나니 무더운 날씨에 땀범벅이다. 휴식할 수 있는 벤치에 앉아 쉬면서 지난 이야기들로 꽃을 피웠다. 주변에 2, 3미터가 된 전나무들이 심어져 있었다. 위에는 소나무 상층림이 가득 덮혀있다. 전나무나 잣나무는 어릴 때 음수의 성질을 띠지만 키가 커서 상층목이 되면 양수가 된다는 것과 그렇게 상층림을 뚫고 올라가는 나무만 살아남을 수 있는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 송무백열(松茂栢悅)이라는 말도 여기에서 나왔다고 했다. 그리고 산불에 강한 굴참나무 수피에 대해서 이야길 나누었고 현재 포르투갈에 산불이 많이 나고 있는데 이는 유럽굴참나무를 베어내고 생장이 빠른 호주에서 수입한 유카리를 많이 심어서 토양수분의 유지가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유카리나무는 수분흡수량이 대단히 많아서 임지가 건조해지기 쉬워 산불이 자주 일어난다) 여기서 작년 여름인가 가산산성 큰 바위 위에서 들었던 박두흥 교장선생님의 노래를 생각해내면서 다시 신청하였다. 준비도 못했다는데 무리하게 밀어붙인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들었으나 ‘세월’이라는 노래 가사와 조용한 숲속에 퍼지는 잔잔한 멜로디는 우리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 되었다.
<박두흥교장선생님의 가곡 ‘세월’을 감상하고 있다.>
세 월(歲月) 김주형 작시, 이요섭 작곡
꿈이 있니 물어 보면은,
나는 그만 하늘을 본다
구름하나 떠 돌아가고,
세상 가득 바람만 불어,
돌아보면 아득한 먼 길,
꿈을 꾸던 어린 날들이
연줄 따라 흔들려 오면,
내 눈가엔 눈물이 고여
아-아 나는 연을 날렸지 -
저 하늘 높이 꿈을 키웠지
이 세상 가득, 이 세상 가득,
난 꿈이 있었어
사-랑도 생의 의미도,
꿈을 키운 생의 의미도
세월 따라 흔들려오면,
내 눈가엔 눈물이 고여.
https://youtu.be/NP5MXgsVJK4 (노래 바리톤 김승철 )
https://youtu.be/--k8WmC29FY (노래 바리톤 오병세 )
땀이 마르고 다시 일어나 걷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약간 경사가 진 길을 오르니 숨이 차기도 했다. 그곳에 정금나무라 이름표를 단 키 작은 나무가 서있다. 작은 열매의 시큼한 맛을 생각하니 입안에서 군침이 돌았다. 계단을 내려오니 ‘길상암’이라는 표지판과 아주 큰 석불이 있고 그 뒤에는 ‘적멸보궁’이라는 표시가 있다. 원래 적멸보궁은 석가모니 사리를 모신 곳인데 우리나라에는 통도사를 비롯해 5군데라고 하지만 두 군데가 더 첨가되어 7군데에 있다고 하는데 이 길상사도 ‘적멸보궁’이라고 하니 의아한 감이 든다. 다리를 건너 큰길가로 나와 올라가니 낙화담이라는 시판이 나온다.
제 14경 낙화담(洛花潭) 꽃이 떨어지는 소
風雨前宵鬪澗阿(풍우전소투간아) 어젯밤 풍우에 골짜기가 요란하더니
滿潭流水落花多(만담류수낙화다) 소 가득이 흐르는 물에 낙화가 많구나
道人猶有情根在(도인유유정근재) 도인도 오히려 정의 뿌리가 남아있어
雙淚涓涓添綠波(쌍루연연첨록파) 두 눈에 흐르는 눈물이 푸른 물결에 더해지네
이 시에 마지막 구절에 나오는 것이 고려 정지상의 송별 시에 나오는 것과 비슷하다고 장세후박사가 보내주었다. 別淚年年添綠波(별루년년첨록파)와 雙淚涓涓添綠波(쌍루연연첨록파)을 같이 적어 놓고 보니 느낌이 매우 비슷하다.
송인(送人)- 정지상(鄭知常)
雨歇長堤草色多 비 갠 긴 둑엔 풀빛이 짙어 가는데
送君南浦動悲歌 남포에서 임 보내며 슬픈 노래 부르네
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 물은 어느 때 마르려는지
別淚年年添綠波 해마다 이별 눈물 푸른 강물에 더해지네
<낙화담 푸른 물결 보고 돌아나오니> <첩석대>
제 15경 첩석대(疊石臺) 암석이 쌓여있는 대
重重石級似堆盤(중중석급사퇴반) 거듭 포갠 돌더미 쟁반처럼 쌓였으니
造物緣何巧削來(조물연하교삭래) 조물주가 무슨 까닭에 그 솜씨로 다듬었나
正眼開時方始見(정안개시방시견) 바른 눈이 열릴 때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니
縹箱金笈錯雲罍(표상금급착운뢰) 옥빛 금빛상자에 구름무늬 잔이 섞여있네
이곳을 지나자 전기발전기를 돌리고 잇는 물레방아가 나온다.
그리고 나온 시판이
제 16경 회선대(會仙臺) 선인이 모여서 노든 바위
鸞生瓊珮二千年(란생경패이천년) 난생과 경패의 이천년에
猶見層臺纈紫煙(유견층대힐자연) 층대에는 보랏빛 연기가 맺혀 있네
休道仙人消息斷(휴도선인소식단) 선인의 소식 끊어졌다고 말하지 마라
一雙靑鶴下芝田(일쌍청학하지전) 한쌍의 청학이 지전에 앉는구나
회선대를 마지막으로 시판은 없고 이제는 치인계곡 식당가로 향해 간다. 이곳에서 600미터라고 하는데 경사가 심한 산길이 나와서 다시 한번 땀을 흘렸다. 치인 식당가 중간쯤에 박명희선생이 소개했다는 ‘산사의 아침’이라는 식당이 있었는데 스님들이 드는 선식으로 나온다고 한다. 거의 식물성이고 딱 한 가지 동태포가 나왔다. 다들 산뜻하고 맛있게 먹었다고 한다. 막걸리를 한잔씩 시켜 먹었다. 내 입맛에는 맛이 너무 신 것 같았는데 주인 아줌마 그럴 리가 없다고 하면서 삼성 김치냉장고에 넣어 놓은 막걸리를 국자로 떠서 먹어보라고 한다. 어제 아침에 가져왔기 때문에 아직 신선하다고 확신한다고 말한다.
식당에서 점심을 마치고 식당가 위쪽 계곡으로 갔다. 물이 맑고 사람들이 많지 않아 좋았다. 다리 건너 물속에 있는 바위에 걸터앉아 발을 담그니 하늘을 덮은 푸른 녹음이 더욱 싱그러웠다.
권대장의 물속에서의 동심이 재미있었다. 한 시간여 재미있게 놀다가 올라갔던 길을 되돌아 홍류문까지 돌아와 오늘 피서를 마치고 다시 무섭게 더운 대구로 들어왔다.
오늘 홍류동에 와서 천 몇 십 년 전의 최치원 선생을 만난 것도 의미가 있었고 모두 더위를 씻어내어 마음속의 스트레스를 날려 보내고 가쁜 한 마음으로 다시 속세로 돌아오신 기분이 어떠하셨는지? 아직도 여전히 더운 날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 모두 이 무더위를 슬기롭게 잘 보내시고 가을바람 부는 시원한 9월에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시원한 바람 같은 글 고맙습니다.
선생님께서 보시는 관점은 늘 새로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또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무심하게 지나온길
다시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소리길 숲속 계곡잋그립습니다.
언제 더위가 끝이 날지?
동유럽은 시원하다 못해 밤에는 추울지도모릅니다. 좋은 여행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