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금초의 신작시조 감상
봄, 뒷담화 외 9편
윤 금 초
봄도 봄답지 않은 봄날
때 아닌 꽃멀미 난다.
우르르 우르르 왔다 우르르 떠나는 그 봄.
잉 잉 잉
꿀벌군단이
사가독서賜暇讀書 차린갑다.
산너울, 강너울 31
어머니 쌍봉 젖가슴 붕긋 솟은 경주 고분
젖내 도는 요람 속에 한 천 년 눕고 싶다.
그렇듯 적요를 베고 실카장이 눕고 싶다.
아뿔싸!
눈도 코도 뜰 새 없이 몰아치는 쿠데타다.
무가내 서울 점령한 게릴라 같은 눈보라,
발 동동 해토머리에 넉장거리 아찔하다.
해거름 콧바람
해거름 한갓진 데 헌책 같은 낙장落張 볕뉘 물려 놓고 花들짝 열린 강안江岸 콧바
람 쐬고 있다.
우린 참 늙는 게 아니라 싸목, 싸목 익어간다.
해토머리 까치녀
생살 찢는 해토머리, 부푼 땅이 일떠선다.
맨발 벗은 명지바람 산울림 길들여 오고
찬 하늘 천둥소리에 잔설 털고 잠 깨는 산.
성마른 까치녀가 연두 분필 물고 와서 잠든 숲 뒤흔들고 풀물 칠할 낌새로다.
살포시
해토머리에
빗장 푸는
아침 내전內殿.
발기勃起 2
잠복했던 잎눈들이 하나 둘씩 발기합니다.
‘내부수리’ 물관부가 마중물을 퍼 올리고
잠든 땅 각질 벗기는 울력 소리 들렙니다.
난거지 든부자가 따로 없는 오방 난전. 고개 죄 빠지도록 벼락 맞을 꽃을 이고
하늘 밑 꺼지든 말든 쉿! 입 바람 불고 있습니다.
다산 하피첩茶山 霞帔帖
#1. 홍 씨 부인
보고자퍼, 보고자퍼, 눈물 꺽 꺽 보고자퍼
첫날밤 피 묻은 치마, 노을빛 검붉은 치마, 십년 세월 간직해오다
강진 땅 외오 갇힌 당신
내 분신分身을 보냅니다.
#2. 정약용
보고지고, 보고지고, 뼈끝 꺽 꺽 보고지고
귀양살이 애옥살이, 하 세월 눈에 밟히는, 그대 분신 간직해오다
먹물로 꾹꾹 누른 혈서血書
낱낱 엮어 보냅니다.
영산도 미역귀
귀가 굵어, 잘 컸구만. 꽃보담 몇 배 이삐제.
이파리 너풀너풀 떡미역 아니 아니고 파도 센 곳 야무지게 줄기 뻗은 가새미역(일명 쫄쫄이), 바위 벼랑 게우 붙잡고 한 치 한 치 몸뗑이 불린 가새미역, 고걸 한 옹콤 거머쥐면 겁나게 오지고 이뻐, 아먼. 난바다 물살 사납고, 물안개 저리 아득허고. 미역 베는 일 파도를 이기는 일이여. 엥간히 놀 헐 때는 나와야제. 물때 따라서, 볕 따라서 헌께 떼배라야 암암 절벽 미역밭에 대놓고 그걸 따가지고 오제. 쪼깨 더 키워갖고 빌라고 애낀 것인디 금매, 금매 어짜끄나. 우리 자석들 먹이고 갈친 미역인께 이삐고 말고. 아먼, 아먼…. 부모네는 어쩔 수 없제만 자석네들 모른 자리 앙거서 붓 때래잡고 고실고실 살그라 했제. 그 땜새 목숨 내걸고 미역밭에 나오지라.
이 세상 이뿐 것 가운데 미역귀가 제일이제.
남인희·남신희「영산도의 여름」참고.
뜬금없는 소리 47
담 너머 손 내민 건
남의 살, 남의 몫이제.
하도나 애 썼는디 딸 거이 그닥 없어. 삐둘기가 와서 찍고 심심소일 꿩이 찍고, 찍어서 싹 빼묵었어. 어쩌끄나, 갸들은 짓는 농사 없는디. 묵어야제, 묵어야제. 따 자셔, 맘대로 따 자셔. 많아야 나누는감? 쪼깐해도 나누는 거이 공생이제. 하먼, 하먼…. 주고자운 맘이 있단 거이 좋고, 줄 수 있단 거이 오지제. 안 그러요? 이날 평상 순 흙몬지 흙구덕에 살아왔어. 우리는 먹글자 안 든 사람이라 말건 자리는 공부 높은 사람한테 비켜 주제. 대명천지 깨벗고 나와설랑 시방까지 묵고 입고 살았은께 진 빚이 얼매나 많것어? 부릴 수 있는 데까지 다 부리고 인자 사그랑이 다 된 몸뚱이여. 똥장군은 거적으로 덮어야 허고, 밥상은 비단 보자기로 덮어야 제격이제. 욕심 없는 우리네가 시상 좋아하는 냄새가 나무새밭 나무새 냄새여. 바람일랑 밥으로 먹고 구름 호청 등을 감싸고 물결일랑 집을 삼고 엄벙덤벙 살아왔제. 내 손이 아퀴손이여. 젊어서는 물엣 것 갱변 것 막 긁어왔어. 바우를 단단히 붙든 홍합도 지 살라고 요로코롬 안간힘 써. 요 털〔足絲〕로 바우 끌안고 죽자사자 버투고 있어. 즈그들도 우리들도 다 안간힘쓰고 사는 거이제.
이 시상
안간힘쓰는 건
부끄런 일 아니제, 하먼.
*《전라도닷컴》2015년 12월호「전라도 죽·비·소·리」참고.
성담론 시편
- 거시기 & 머시기 45
절로 터진 음일淫佚 소리 못 말려, 하 못 말려.
방사 때 여자 그만 절정에 다다르면 뛰고 미치고 환장을 하는 게야. 무릇, 요분질 행태 유별하면 줄잡아 너덧 갈래 되나 본데. 첫째가 지게꾼 형이야. 여자가 청무 토막 뻣뻣하게 누워 있다 차츰 꼭짓점 이르면 나무꾼 등짐 지는 소리 끙끙 용을 쓰지. 무말랭이 뒤틀리고 꽈배기 사대육신 꼬인 듯이 끙끙 겨운 등짐 지는 소릴 내지. 두 번째는 상주형喪主型이야. 꽃이 울고 달이 숨을 요조숙녀 귀부인처럼 우아한 자태 보이다가도 한 고비 넘어들면 끝내 아이고, 아이고, 꺼이꺼이 곡소리 지르는 거야. 있는 청승 없는 청승 좁쌀방정 떨다 말고 선불 맞은 암호랑이 길길이 날뛰듯이 아이고, 아이고… 하느님, 하느님 곡소리 지르는 거야. 셋째는 물 귀신형이지. 이리 뒤틀 저리 뒤틀 요분질해대다가 클라이맥스 접어들면 어푸! 어푸! 물귀신 생사람 잡듯 사내 머리 쥐어뜯고 거친 숨 몰아쉬다 자지러지지, 자지러져. 이 방아 저 방아 해도 가죽 방아 젤이라고, 과부 처녀막 터지는 소리 육보시肉布施 허기진 날 조자룡 헌 칼 쓰듯, 망나니 작두 휘두르듯 맷돌거리 운우지정雲雨之情 가누지 못해 어푸! 어푸! 허우적대지. 넷째는 등산가형이야. 처음엔 샐쭉하니 담담한 척 하다가도 마침내 봇물 터지기 시작하면 여보! 여보! 소리치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야호! 야호! 거품 물지. 착착 감기는 낙지 띠인가, 엉덩이 맷돌 짝 돌리다 살꽃에 힘 받으면 칼 물고 뜀뛰기는 저리 가라, 저리 가라. 글쎄, 화냥질 솜씨 어우동 찜쪄먹을 낌새로 농탕질 흥농興濃에 이르러 야호! 야호! 경黥 치게도 잘 굴리지. 다섯째는 콧구멍 후비기형이야. 남정네 허발 들려 헐레벌떡 오르내리고 가쁜 숨 몰아쉬건만 그것도 아랑곳없이 밑에 깔린 여자 오도 방정 떨다 말고 째작째작 껌이나 씹으며 지금 뭐하고 있어 빨리빨리 내려오지 않고! 열두 가지 요분질에 뼛골 다 녹았는지, 밑방아 못 찧는 주제 입방아만 성한 건지, 귀뚜라미 풍류하듯 능청이 열두 발이나 늘어진 건지 원…. 여자란 젖을 데 마르고, 마를 데 젖으면 볼장 다본 나바론 건포도*라는데, 차돌도 바람 들면 푸석돌만 못하다는데, 눈비음 그럴 듯하게 콧구멍만 후비는 게야.
아무렴. 음일도 멱이 꽉 차면 비파 뜯는 소릴 내지.
* 2차 대전 때 독일이 연합군을 격퇴하고자 만든 절벽. 건포도는 젖멍울을 빗댄 말.
윤금초 노트
따로 떼어내면 별 의미 없는 이미지들
다른 자리에서 얘기한 바 있지만, 문득 ‘홍어 삼합’을 떠올린다.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미지와 이미지가 서로 버무려져 기막힌 어울림을 연출하는 ‘홍어 삼합’의 경지. 강한 충돌 끝에 화해를 이루는 아이러니한 음식 맛의 한 극치가 ‘홍어 삼합’이 아니던가. ‘홍어 삼합’은 세계적으로도 그 유래를 찾을 수 없을 만큼 강한 맛이 세차게 충돌하여 깊은 맛을 자아내는 묘한 미학을 지닌 우리 토속 음식이다. 먼저 잘 익은 묵은 김치를 접시에 깔고, 그 위에 홍어를 양념 초장에 살짝 찍어 올려놓는다. 다시 그 위에 껍질까지 잘 붙은, 삶은 돼지고기를 얹은 다음 한 젓가락 집어 입을 크게 벌리고 가득 먹는 게 ‘홍어 삼합’이다. 곰삭은 홍어의 톡 쏘는 맛과, 오래 묵은 김치의 시큼 달큼한 맛, 삶은 돼지고기의 오도독 씹히는 맛, 게다가 다진 마늘‧잘게 썬 청양고추‧참기름‧갖은 고명 곁들여진 양념 초장이 어우러진 그 절묘한 조합이라니! 이렇듯 강한 맛이 세차게 충돌하여 깊은 맛을 자아내는 묘한 미학을 창출하는 음식 같은 시조를 꿈꾼다. 따로 떼어내면 별 의미 없는 이미지들이지만 제 짝을 찾아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재료들이 어우러져 기막힌 어울림을 연출하는 그런 시조를 꿈꾼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뒤섞여 어쿠스틱acoustic한 음색과 일렉트로닉electronic한 음색, 발랄한 감성과 비판적 시각이 한데 뒤섞여 서로 하모니를 이루는 시조를 갈구한다.
어느덧 칠순七旬의 연치年齒도 반나마 휘어드는, 저무는 해에 이르게 되었다. 가끔 무슨 문학행사에 얼굴을 내밀게 되면 ‘원로시조시인 윤 아무개’라고 소개 받을 때면 그만 꼭뒤가 간지럽기만 하다.
좋은 문학은 자기가 살아온 그만큼 삶의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빙동삼척 비일일지한氷凍三尺 非一日之寒이라는 말이 있다. 얼음 석자는 하루아침 추위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늙은 생강이 더 맵다’고 했지 않는가? 이 나이에 성장을 멈춘다면 그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시 쓰는 일이 내 피를 끓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녹슬어 없어지기보다 닳아서 없어지기를 희망하고 희망한다. 이제 눈은 좀 아슴아슴하지만 머리는 차갑고, 가슴은 뜨거운 시간을 더 갖고 싶다. 저녁노을은 저물수록 더 붉게 타는 것이다.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미지와 이미지가 세차게 충돌하여 깊은 맛을 우려내는 ‘홍어 삼합’의 경지 같은 정형시를 찾고 싶다. 이 또한 몹쓸 ‘병마’가 아니겠는가!*
윤금초 약력
전남 해남 화산에서 태어남.
1966년 공보부 신인예술상, 196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어초문답』『땅끝』『해남 나들이』『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무슨 말 꿍쳐두었니?』 한국대표 명시선 100『질라래비훨훨』, 단시조집『앉은뱅이꽃 한나절』, 사설시조집『주몽의 하늘』,『다섯 빛깔의 언어풍경』『갈잎 흔드는 여섯 악장 칸타타』, 4인 시조선집『네 사람의 얼굴』『네 사람의 노래』등. 시조창작 실기론『현대시조 쓰기』『시조 짓는 마을』등.
문학사상사 가람시조문학대상, 중앙일보 중앙시조대상, 고산문학대상, 현대불교문학상, 한국시조대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 대산문화재단 창작기금, 조선일보 방일영문화재단 저술·출판 지원금 받음.
현재 (사)민족시사관학교 대표,《정형시학》발행인.
《좋은시조》2016년 여름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