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왕따 신세’ 느낌에 모든 책임 놓아버리고 훌훌 날아가고 싶지만^^
-최보식의 언론-
2019년 11월 JTBC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골프 라운딩을 하는 장면을 보도했다.
한 구의원(당시 정의당 소속)이 골프장에 잠입해
다짜고짜 전두환에게 말을 걸면서 몰래 촬영한 것이다.
JTBC는 스튜디오로 그 촬영자를 초대해
‘전씨가 골프를 칠 수 있을 만큼 건강한데
광주 법정에 출석하지 않는다’는 비방과 조롱 일색으로 보도했다.
그즈음 이순자(83) 여사가 인편을 통해 자신의 심경을 담은 서신을 보내왔다.
내가 조선일보에 재직하던 시절이었다.
어디 하소연할 데가 없고 누구라도 좀들어줬으면 해서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서신을 전달해온 분에게
“지금은 이런 글을 싣거나 반영해줄 언론이 없다”며 양해를 구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언론 보도들은 객관성과 균형 감각을 잃은 지 한참 됐다.
한쪽 얘기가 옳다고 확신해도 반드시 반대쪽 얘기도 들어보는 게 사건 취재의 불문율이다.
설령 그쪽이 파렴치한 악당이고 살인자라도 그렇다.
전두환과 5공(共)에 관한 보도는 이런 원칙이 깨진 대표적인 사례다.
진보 성향 매체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보수 성향 매체들도 똑같다.
일방적으로 매도·조롱하는 것말고는 아예 그쪽 주장을 들어보려거나 취재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렇게 저널리즘의 원칙이 무너진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기자라면 마땅히 ‘악당’ 전두환을 비판해야 정의로운 기자답다는 허위의식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언론사들이 사실관계를 가리는 쪽보다 호남을 염두에 두는 정무적·상업적 판단을 하기 때문이다.
저널리즘 원칙으로 전두환 사안을 접근하면 호남의 집단반발을 불러올지 모른다는 ‘사전 검열’을 해왔다.
언제부터인가 마치 호남 사람들을 객관적 사실관계 보도에도 참지 못하는 수준으로 여겨온 것이다.
호남에 대한 무례를 언론이 범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모든 언론사들이 전두환을 일방 매도하는 데는 덩달아 가담하지만,
그의 반론을 게재하거나 사실관계를 따져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도 안전한 것은 전두환에게는 현실적으로 아무런 지지·공감 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순자 여사가 내게 보내온 서신을 지금껏 보관해왔다.
그저께 전두환 전 대통령의 광주 법정 출두 장면을 보고는 서신을 다시 꺼내 읽어봤다.
부인으로서 남편에 대한 느낌과 바깥세상에서 바라보는
전두환에 대한 시각이 크게 다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독자들은 치매 남편을 돌보는 늙은 부인이 쓰는 글이라는 점도 잊지 말기를 바란다.
지금 전 전 대통령의 치매 증세는 이 편지를 보내온 시점과는 비교할 수없을 정도로 악화됐다.
원문에서 불필요한 부분은 빼고 발췌 소개한다. <편집자 주>
존경하는 최보식 수석기자님께
조국 사태라는 늪에 빠져 오도 가도 못하는
현 시국을 타개하기 위해 5·18을 다시 꺼내 들 모양입니다.
16년 전에 시작한 골프 모임(이순자씨 친구들 모임)에 각하를 가끔 모시고 나간 것을
JTBC에서 문제 삼더니 어제(11월12일 오후)는
광주 단체에서 연희동 사저까지 사람들을 버스로 태워 보내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요구는 한결같이 ‘발포 명령’에 대한 자백입니다.
정의당 부대변인이라는 자가 사유지인 골프장에
마구잡이로 난입해 소려쳐 외친 것도 ‘살인마 전두환은 사죄하라’ 였고,
연희동 사저를 둘러싸고 마이크까지 동원해가며
동네가 떠나갈 듯 외쳐댄 것도 ‘살인마 전두환은 사죄하라’ 였습니다. (...)
퇴임 후 하루라도 편한 날이 없었기도 했지만
저들의 요구가 하도 집요하기도 해서 웬만하면 저들과 타협해서
하루 한나절이라도 마음 편한 날을 살다 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곤혹스러웠습니다.
하지만 한때 나라의 진운을 책임졌던 사람이
압력과 겁박이 무서워서 거짓 자백을 해서는 안 되는 일 아니겠습니까.
85년 행해진5·18 재판에서 남편은 이미‘발포 명령’과 무관하다고 밝혀졌고
대법원에서도 이미 확인된 일인데 사면복권 된 지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학살에 대한 사과를 하라며
윽박지르고 일상생활 자체마저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치매에 걸린 사람이 어떻게 회고록을 썼느냐’며 의심하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치매에 걸린 사람이 어떻게 골프를 치느냐며 인격 모독까지 합니다.
다리를 절단한 사람이 스키를 탔다거나 골프를 쳤다는 소식을 접했다면
아마 모두들 감탄하면서 함께 기뻐했을 것입니다.
정상적인 예우를 받고 있는 전직 대통령의 경우였다면
90이 다 된 노인이 그것도 치매를 앓고 있는 상태에서 골프를 쳤다면 미담이 되었을 겁니다.
그것은 앞을 잘 보지 못 하는 시각장애인이
알프스 산을 등정한 일 만큼이나 해내기 어려운 일이니까요.
하지만 동네북 신세가 된 제 남편은 그런 장한 일을 해내고도
광주에 내려가기 싫어 꾀병을 부렸던 것 아니냐는 질타부터 받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확실하게 알려드리고 싶은 일은 알츠하이머의 증상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제 남편의 경우는 컴퓨터로 비유하자면
저장장치에 해당되는 부분(측두엽)에 고장이 나
자신이 행하고 있는 일이 전혀 기억에 저장되지 않아
방금 한 일도 잘 기억해내지 못하는 형편이지만,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해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거나,
감정에 기복이 심해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만든다거나,
의사 소통에 지장을 초래한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워낙 치료를 증상이 나타나자마자 시작한 덕분이겠지만
의사가 처방한 대로 매일 30분간 워킹머신 위에서 걷기,
이틀에 한번 스크린 골프장에서 골프 연습하기, 매일 1시간 이상 붓글씨 쓰기,
매일30분간 큰 소리로 노래부르기 등을 꾸준히 한 덕분에 육체적으로는 정상인보다 더 건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남편을 광주로 모셔가기 싫어했던 이유는
2016년까지도 멀쩡했던 남편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구속당하는 것을 지켜보며 충격을 받아서인지
한 시간 전에 한 일도 기억해내지 못할 정도로 기억력이 악화됐기 때문입니다.
그런 노인을 재판정에 모셔가 봐야 진실 규명에 무슨 도움이 되겠나 싶기도 하고
90 노인을 하필이면 10시간이나 걸리는 광주까지 모셔가 재판을 받게 하는 대신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곳으로 모셔가 재판을 받게 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싶기도 해서
재판장 앞으로 선처를 부탁드리는 손편지와 함께 진료기록, 진단서 등을 첨부해서 보내게 되었던 것인데
그 과정에서 남편이 알츠하이머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만 부각되게 되었던 것입니다. (,,,)
저는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뇌 속 미세한 부분이 고장 나 멀쩡하게 행동해놓고도
기억을 못하지만 그곳만 고쳐드리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는 것입니다.
검찰이 우리 일가친척에 대한 무차별적인 재산 몰수 소동을 벌인 이후
끊었던 골프 모임을 남편의 병이 악화된 후 다시 시작한 것도 바로 그런 나의 염원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매달 첫째 목요일을 손꼽아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남편이 풀밭에 나가 소풍나온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있기 때문입니다.
고령임을 감안해 너무 추운 날은 안 되고 또 너무 더운 날도 안 되다 보니
날씨 선선한 봄가을에 한번 정도 모시고 나갈 수있어 더욱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금년에는 입원을 한 차례 했을 정도로 건강이 안 좋아
가을이 되어서야 겨우 모실 수 있게 되었는데
그것이 뭇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일이 될 줄을 몰랐습니다.
81세 노인(이순자)의 몸으로 치매 환자를 돌보는 일도 감내하기 어려운데
국민 왕따 신세가 되고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면
모든 책임 놓아버리고 훌훌 날아가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기억력이 날로 나빠져 방금 들었던 일을
기억 못 하는 그분 때문에 나는 그럴 수도 없습니다.
나는 오늘도 힘을 내어 그분에게 말합니다.
“모든 것 다 잊어버려도 나만 잊지 않으시면 돼요.
눈이 잘 안 보이면 안경을 쓰면 되고 귀가 잘 안 들리면 보청기를 끼면 되듯,
기억이 잘 안 나시면 제가 대신 기억해드리면 되잖아요.”
그러면 그분은 내게 말합니다. “나를 잊으면 잊었지 내가 어떻게 당신을 잊어”라고.
나는 지금 그런 남편 때문에 아플 수도 죽을 수도 없답니다(후략)
^^대한민국 7대 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