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의 유래
예수의 12사도 중의 한명인 성 야곱Saint James은 예수 생전에 하느님의 복음을 더 넓은 지역으로 전파한다는 사명을 띠고 스페인 북부 갈리시아Galicia지방으로 전도 여행을 떠난다. 약 7년 여의 전도를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성 야곱은 헤롯왕에게 참수를 당하여 예수의 12사도 중 첫 번째 순교자가 되었으며, 제자들은 그의 유골을 생전에 그가 전도하던 스페인 북부지방으로 가져와서 묻게 된다.
오랜 세월이 지난 813년 한 은둔 수도사가 별빛의 인도에 따라 이 유골과 부장물을 우연히 발견하고, 그것이 성 야곱과 그의 두 제자 라는 주교의 인증을 받게 된다. 발견한 그 자리, 산티아고 콤포스텔라(Santiago는 성 야곱, Compostela는 별들의 들판 이라는 뜻의 스페인어)에 세워져 성 야곱의 유골을 안치한 성당은 예루살렘과 로마에 뒤이어 가톨릭 세계 3대 성지가 되었고, 이때부터 유럽의 각 지역으로부터 수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를 향한 순례길에 나서게 되었다. 이때의 산티아고 순례길이 지나던 스페인 북부지역은 이베리아 반도를 거의 점령한 이슬람 세력과 현지의 아스투리아스 등 가톨릭 왕국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곳으로서 당시의 정치적 상황이 순례길의 탄생과 관련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이 길을 걷는 사람들
중세에는 신앙과 정신적인 수양을 목적으로 이 길을 걷는 사람도 있었고, 정치적 목적으로 걷는 사람도 있었다. 또는 많은 사람이 이 길에서 순례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여 부를 얻기 위해서 걷기도 했다. 일부 죄수들은 감옥에 가는 대신에 이 길을 걷는 형벌을 받기도 하였다. 12~13세기에는 가톨릭을 국교로 삼는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로부터 한해에 50만 명이 넘는 순례객들이 이 길을 걸어서 산티아고에 도착하였다.
교황청에서도 가톨릭의 성스러운 해에 이 순례길을 걸어 산티아고에 도착한 순례객들에게는 평생 지은 죄의 전부를 사면해주고, 다른 해에 도착한 순례객도 지은 죄의 삼 분의 일을 사면해 주는 등 순례를 장려하였다. 번창하던 이 길은 16세기 들어서 비대해지고 부패한 종교권력에 반발한 개혁운동이 시작되면서부터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차 잊혀갔으나 1982년 로마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산타아고 콤포스텔라를 방문하면서 다시 많은 사람들이 찾기 시작하였다. 특히 우리시대 가장 사랑받는 작가의 한 사람인 파울로 코엘료(Paulo Coelho)가 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경험을 바탕으로 쓴 『순례자』는 수많은 독자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진정한 나를 찾고 자신의 삶을 변화 시키고 싶다는 꿈을 심어 주었다.
최근에는 제주 올레길이나 둘레길 등 우리 나라에서도 걷기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제주 올레길의 모델이 된 이 산티아고 순레길을 찾는 한국인 여행자들도 많이 늘어났다.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순례자 숙소이용 등 가벼운 비용으로 본인의 삶에 대한 진지한 생각도 하면서 유럽의 역사를 배우고 다양한 문화도 즐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길은 어떻게 걸을까
걷기를 시작하는 지역의 순례자 사무소에서 순례자여권(Credential)을 발급받은 후 길을 시작한다. 길을 따라서 마을마다 있는 순례자 숙소(Albergue)에서는 순례자 여권을 확인 후 스탬프를 찍어주고 침대를 배정해주며, 샤워장 등 공동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길의 곳곳에는 노란 화살표 또는 순례자의 상징인 가리비 조개껍질의 빗살 표시로 길의 방향을 알려주고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으며, 길 전체 구간의 치안 또한 양호한 편이다. 길을 다 걷고 나서 산티아고 대성당 옆에 있는 순례자 사무소로 가서 순례자 여권을 제시하면 일정구간 이상 걸었다는 사실을 확인 후 중세에는 면죄부가 되었을 순례자 증서를 발급받는 재미도 있다.
길 위의 다양한 문화유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순례자들이 늘어나면서 길을 따라서 생겨난 마을과 도시들에는 현재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종교와 민간 건축물이 18,000개 이상 남아있다. 스페인 북부지방은 기원전 2세기부터 5세기 서로마제국의 멸망 시까지 로마제국의 속주로 지배를 받았으며, 그 이후로는 게르만의 침입으로 서고트 왕국이 통치하였고, 8세기 이슬람 우마이야 왕조의 이베리아 반도 점령 시부터 1492년 이슬람이 완전히 철수할 때까지는 이슬람 문명의 영향을 받아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지역이다.
따라서 산티아고 순례길이 지나는 지역의 성당, 수도원 등 주요한 건축물들도 이러한 다양한 문명의 영향을 받았다. 건축 시기에 따라 서고트족의 특성에 아랍의 양식이 가미된 아스투리아스 양식, 높은 반원 아치로 장엄함을 표현한 로마네스크 양식, 날씬한 탑과 넓은 창문에 색채가 풍부한 스테인드글라스를 사용한 고딕 양식, 그리고 가톨릭 지역에 사는 아랍인들의 아랍적 요소를 결합한 무데하르 양식의 건축물 들을 볼 수가 있다. 거기에다 레온이나 아스토르가에서는 근대 스페인의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멋진 작품까지 들어서 있다.
순례길의 주요 도시
·팜플로나 - 피레네산맥을 넘어서 스페인 지역으로 들어가서 처음으로 만나는 인구 20만의 도시로서 기원전 1세기 로마의 장군 폼페이우스가 건설하였으며 주위 여러 민족의 잦은 침략으로부터 방어를 위해 높은 성채로 둘러싸인 요새형 도시이다. 대성당과 팜플로나 시청사 등 많은 역사 유적이 있으며, 매년 7월에는 수백 명의 주민이 소떼와 뒤엉켜 거리를 질주하는 산 페르민 축제로 유명하다.
·부르고스 - 인구 18만의 부르고스주 주도로 11세기에는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였던 아름다운 고도이다. 스페인에서 첫 번째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이 된 부르고스 대성당과 시를 둘러싼 성벽의 산타마리아 문, 우엘가스 왕립 수도원, 산 에스테반 성당 등 주요한 유적이 있다. 부르고스 대성당은 13세기에 착공해 16세기에 완공된 완벽한 고딕 양식의 성당으로 여러 시대에 걸쳐 건축과 조형예술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웅장한 건축물이다.
·레온 - 기원전 1세기에 로마 7군단의 주둔지로 개발되었으며, 10세기에서 14세기에 걸쳐서 레온 왕국의 수도로서 번성하였다. 2011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고딕양식의 걸작 레온 대성당, 11세기 알폰소5세 국왕이 건립한 전형적인 로마네스크 양식의 산 이시도로 바실리카, 산마르코 수도원 등 많은 역사적 건축물과 관광 명소가 자리 잡고 있으며, 1892년 천재 건축가 가우디가 설계한 보티네스 저택도 볼 수 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 사도 성 야곱의 유골이 안치된, 12세기에 지어진 찬탄할 만하게 장엄하고 아름다운 대성당을 중심으로 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 양식으로 지은 건물들이 모여 있는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의 구 시가지는 세계에서 가장 완전하게 보존된 아름다운 중세 도시로 손꼽히고 있다. 또한 11세기부터 기독교에서 가장 위대한 순례지로 가는 모든 길의 최종 목적지이자 스페인의 기독교가 이슬람교와 벌인 국토회복운동의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이 도시는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 가슴 뛰는 도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 도착한 순례자는 긴 여행에 지친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자신의 순례 여행을 마지막으로 정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