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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주산성[德周山城] 월악산 충북 제천
위 치 충북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산1-1
높 이 (9,800㎡)
1983년 3월 30일 충청북도기념물 제35호로 지정되었으며 제천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월악산국립공원 남쪽에 있으며 면적 9,800㎡의 석성이다. 성의 유구는 윗 덕주사를 에워싼 내성(內城), 그 바깥의 하성(下城)과 조선시대에 쌓은 남문, 동문, 북문 등 아치형의 성문 3개소만 남아 있다.
남문은 경상북도 문경에서 하늘재[寒暄嶺]를 넘어 미륵리에서 발원하여 월악산 남쪽 기슭의 월천을 막는 차단성 역할을 하는 문이다. 동창에서 문경으로 통하는 도로에 홍예문으로 되어 있고 좌우를 막는 석축은 내외겹축으로 길이가 100간이다. 축성법은 선단석을 3개씩 쌓아올린 뒤 종석(宗石) 1개와 12개의 기석(基石)을 쓰는 방식을 사용하였다. 동문은 덕주골 입구에 있는데 좌우를 가로막은 축성법을 사용하였고 문의 홍예 양식은 남문과 비슷하다.
북문은 송계리 1구 새터말 민가 가운데 있는데, 당초 계곡을 막았을 차단성의 성벽과 수구(水口)는 남아 있지 않다. 내외홍예를 갖춘 성문으로 초루(성 위에 세운 누각)와 여장(女墻:성 위에 활과 조총을 쏘는 구멍이나 사이를 띄어 쌓은 작은 성벽) 등 대부분의 석재가 유실되었으나 1997년 복원되었다. 홍예마루돌에는 태극모형이 조각되어 있다. 이 성은 안팎으로 5겹의 성벽이 남아 있는데 그 축조연대가 각각 달라, 성을 축조하는 방법에 관한 귀중한 자료이다.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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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산행기[사네드레]
월악의 하얀 영봉에 숨어있는 역사의 타임머신...월악산 덕주산성
* 덕주골~영봉(1093m)~중봉~하봉~보덕암
거대한 화강암을 머리에 이고 가슴 곳곳에 바윗덩이를 품은 월악산. 월악이 누운 머리맡에는 충주호가 푸른빛을 뽐낼 것이고, 발 아래는 만수봉 주흘산 조령산이 날개없는 우릴 날도록 유혹할 것이다. 또한 송계계곡을 중심으로 미륵리 절터, 덕주산성, 덕주사와 마애불 등 많은 유적이 남아 있으니 여정은 바쁘나 마음은 즐겁다. 충주에서 수안보를 거쳐 송게계곡 초입의 미륵리를 찾았다.
월악산과 송계계곡을 중심으로 자리잡은 유적을 둘러볼 때는 미륵리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미륵리는 문경읍 평지에서 시작한 하늘재 길이 남한강과 충주의 평지로 갈라지는 길목으로 주변의 유적이 형성된 배경은 이러한 지리적 위치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하늘재는 영남에서 서울로 가는 길목으로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사람들이 왕래하고 물자를 유통하는 이 두 가지 기능을 동시에 수행했다. 조선이 개창되고 태조 때 문경새재가 개척되자 하늘재는 쇠퇴하기 시작했지만 새재는 사람의 왕래라는 기능만 가져갔을 뿐, 물자의 유통은 여전히 하늘재가 맡고 있었다.
하늘재길이 둘로 갈라지는 미륵리는 중원문화권의 중심에 위치해 미륵대원도 그 크기와 세력이 대단했던 사찰이었다. 미륵불은 기가 허한 북쪽의 비보(裨補)를 위해 북쪽을 바라보고 있다고 풀이되기도 하며, 신라의 마의태자가 망국의 한을 품고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석굴을 짓고 불상을 세웠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등에 새끼거북을 업고있는 커다란 돌거북, 오층석탑과 석등, 석축으로 둘린 미륵불상과 건물 주춧돌들, 온달장군이 가지고 놀았다는 커다란 공기돌, 부서지고 쓰러졌으나 연화무늬가 아름다운 당간지주 등 한때 정교함과 웅장함의 극치를 다했을 유물들이 부서진 채 널부러져 있다. 당시의 영화를 떠올리기엔 미륵리 절터는 너무 조용하고 평화롭기만 하다. 미륵리에서 빠져나와 송계계곡을 따라 달리다 왼쪽 빈신사터를 찾았다.
구례화엄사 사사자석탑을 닮은 석탑 한기가 빈 절터를 지키고 섰다. 이 탑은 상층 기단부에 네 마리의 사자가 사방을 호위하고 있고, 중앙엔 두건을 쓴 비로자나불이 앉아 있다. 탑 뒤로 돌아가보니 비로자나불의 뒤로 묶은 리본이 앙증맞다. 탑 하단기단 정면에 새겨진 명문은 건립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어 다른 석탑의 연대를 추정하는 데 기준이 되고 있다.
명문은 고려 현종 13년(1022년)에 '몹쓸 적들이 아주 물러갈(恐敵永消)것을 기원하며 월악산 사자빈신사에 구층석탑을 세운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종 당시는 거란족이 빈번히 고려로 침입하던 때였으므로 불력으로 거란족의 침탈을 막아 태평안민을 기원하고자 이 탑을 조성했을 것이다. 고려 당시 한바도를 단결시키는 힘이 불교였다면 현재의 한민족의 구심점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가고...
빈신사터 계곡 건너에 노부부가 작은 밭을 일구고 있다. 지난 가을의 억새가 아직 바람에 몸을 맡긴 채 흔들리고 뒤쪽 산비탈에 푸른 고깔을 쓴 '목청' 두기가 나란히 서있다. 개울가 흐름이 느린 곳에서 개구리알 무더기를 발견했다. 반투명의 작은 원안에 새까만 누들이 박혀있다. 5월이면 올챙이들이 송사리와 함께 이 계곡을 휘젓고 다닐 것이다.
우리 일행은 송계계곡을 따라 덕주공쥬를 만나러 나선다. 얼마 달리지 않아 계곡 왼쪽으로 덕주산성의 외성인 남문과 산꼭대기까지 쌓아 올라간 성벽이 눈에 들어온다. 마의태자의 누이인 덕주공주는 이곳에 피난하여 머물며 덕주사와 마애불을 조성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일찍이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와 고려, 조선 각 시대에 걸쳐 축조 보수된 덕주산성은 도요도로의 목을 쥐는 차단성 기능을 했고 성문은 그 관문의 역할을 맡았다.
한때 명성황후가 별궁을 짓기도 했던 송계계곡 길가엔 본격적인 농사철을 앞두고 갈아엎은 논이 많고, 산비탈까지 일구어진 작은 밭뙤기는 비료인지 허연 가루를 뒤짚어썼다.
암릉 걸으며 남한강의 역사를 읽는다(덕주골~덕주산성~덕주사와마애불~960고지~영봉(1093m)~중봉~하봉~보덕암) 주변 유적을 둘러 보았으니 이제 월악을 올라야 하지 않겠는가. 덕주골에서 영봉으로 올라 보덕암으로 하산하는 완주코스를 택했다. 지도의 등고선은 부드럽기만 했고, 아래로 충주호를 바라보며 하산하고픈 욕심이 컸다.
덕주골에 들어서 이내 홍예만 남은 덕주산성의 동문을 만난다. 내성의 정문 구실을 했던 것으로 자연석을 쌓은 성벽이 능선을 기어올라 산꼭대기로 연결되어 있다. 바위 위쪽의 하덕주사는 불사가 한창으로 새로지은 대웅보전이 공사 마무리 단계. 하덕주사 앞의 남근석은 월악산이 음기가 강해서 음양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세워졌다 하는데, 어찌해 음기가 강한지는 읽어낼 재간이 없다.
40분 정도 올랐을까 약수터 위 상덕주사 자리 높다란 암벽에 마애불이 오전의 봄빛을 쪼이고 있다. 얼굴부분만 약간의 양감이 느껴질 뿐 아래의 몸통은 간략한 선으로 표현된 것이 고려시대 불상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덕주공주의 얼굴을 닮았다는 마애불은 오빠 마의태자가 세운 미룩대원의 미륵불과 마주보고 있다고 한다. 나라의 임금과 공주가 되었을 두사람의 운명이 애잔하다.
마지막 약수터라며 수통에 물을 채운다. 고개를 들어 보이는 기암이 영봉(1,093m)이란다. 망원경으로 보니 붉은 계단과 사람들이 왔다갔다하는 모습이 희미하게 잡힌다. 가파른 바윗길과 나무 계단이 이어지고,한참을 오른 후 땀을 식히려 너럭바위에 앉았다. 왼쪽으로 덕주봉이 나서고 주흘산과 부봉이 육식하는 호랑이의 송곳니처럼 날카롭다. 천재예술가는 이런 장관을 창조할 수 있을 것인가? 대자연 앞에 인간의 상상력은 참으로 빈곤하다.
발길을 재촉해 920고지에 오르니 일행 앞에 충주호가 펼쳐진다. 삼각형의 중봉과 기암의 영봉이 충주호 푸른 물에 비친다. 산은 물을, 물은 산을 만났을 때 서로가 가장 빛을 발한다고 했던가? 아름다움에 취하는 것도 잠깐 저 푸른 물과 함께 해온 남한강의 역사와 그 물에 잠겨버린 삶들을 생각하자 마음이 숙연해진다. 저 남한강가에 장회나루와 가흥창이 있던 목계나루가 있었다.
가흥은 충북,경북,강원의 세곡이 모이는 강상의 중심지로 한때는 짐배와 뗏목이 강을 메우고 베꾼들의 노래소리와 웃음소리로 왁자지껄하던 강마을이었다. 하늘재 혹은 문경새재를 넘어 영남에서 올라온 세곡들을 한양으로 실어나르고, 다시 한양에서 소금과 새우젓, 농기구, 해산물 등을 실은 배가 들어오는 날이면 겟벌장이 여러 날 열렸다. 그런데 지금은 지방도시의 작은 동리로 전락하고 말아 옛자취를 찾아볼 수 없으니 세월이 참으로 덧없다.
"여름에 월악산을 오르면 구름이 중봉에서 영봉으로 건너가는 것을 볼 수 있어요"라는 설명에 한여름의 월악을 보고싶은 마음이 동한다. 960고지부터는 모처럼 산책로 같은 쉽고도 다정한 길이 계속되고 길가엔 노란 들꽃이 작은 얼굴을 초롬히 들고 있었다.
덕주골서 오르는 길과 송계리서 오르는 길이 만나는 월악삼거리 '영봉탐방 안내소'에서 점심을 마치고, 이내 월악산의 동쪽 월악리에서 올라온 사람들과 합류했다. 힘겹게 오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또랑또랑 울린다.
영봉으로 오르는 북사면은 지난 겨울의 눈과 그 눈이 녹아 내린 물로 바닥이 질퍽이고 미끄럽다. 넘어지지 않으려 난간을 부여잡고 혹은 쇠사슬을 잡고 올라선다. 내려오는 사람들 중에는 등산화는 물론 바지와 소매 자락이 흙으로 범벅이 된이도 있다.
마지막 쇠사슬 관문을 통과하고 드디어 정상. 동남쪽 신륵사, 문수봉, 남쪽엔 설악산 공룡능선의 이름을 따 지은 '월악공룡' 등 바위꾼들을 자극하는 암릉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간다. "산 아래 있으면 산이 잘 안 보이는데 산에 오르면 산만 보여요" 생활에 묻혀 자신을 잊어버린 사람들이 산에 올랐을 때 새삼 자신과 대면하게 되기에 산에 오르는 것이 아닐까?
장쾌한 경관을 잔뜩 눈 안에, 또 마음 안에 넘치도록 담고 하산하는 길. 이인숙씨는 결국 내리막에서 엉덩방아를 찌고 말았다. 마주 오던 남자가 꼬마를 칭찬하는 목소리가 너무 괜찮아 쳐다보려다 그렇게 되었단다.
우리를 취하게 한 것이 애잔한 역사인가, 월악 혹은 충주호 푸른물인가, 봄기운인가. 꿈길처럼 바위길을 걷는다. 다시 오른쪽에선 덕산면이 우리를 부르고 앞쪽엔 충주호가 변함없이 봄하늘을 가득 담고 있다. 봄빛에 빛나는 월악은 그 이름만큼이나 아름답고, 가파른 경사로 우뚝 솟은 거친 화강암벽은 부드럽게 안아줄 것 같다.
6월이면 진홍색의 솔나리가 아르다울 하봉과 인사하고 보덕암을 지나 모주나무 군락의 흙길을 밟는다. 숲 속 어디선가 딱다구리가 나무를 쪼고 있다.딱따구리가 만들어내는 공명은 하산하는 일행의 마음과 숲을 함께 울린다. 삶은 이렇듯 묵묵히 산처럼 그렇게 살아내는 거라고. 자신을 단련시키는 것이라고...
*산행길잡이
월악산은 주변의 유적지와 함께 가족 나들이 장소로 좋으며 시간은 1박2일 정도가 필요하다. 유적지답사는 송계계곡 초입의 미륵리 절터부터 시작한다. 미륵리에서 송계계곡을 따라 난 597번 지방도를 달리다가 송계교를 끼고 왼쪽으로 난 길가에 빈신사터가 있다. 다시 597번 지방도를 따라 400m쯤 가면 망폭교를 앞두고 오른쪽에는 망폭대, 왼쪽에는 덕주산성 남문이 남아있다.
덕주산성 남문에서 망폭교를 건너가던 길로 300m 더 가면 길 왼쪽에 덕주사 표지석이 있고 오른쪽에는 덕주사로 가는 길이 나 있다. 그 길을 따라 약 750m 가면 덕주산성 동문이 나오고 동문을 지나 약 250m 더 가면 하덕주사가 나온다.
하덕주사에서 마애불이 있는 상덕주사까지는 1.6km로 걸어서 30분쯤 걸린다. 덕주사에서 다시 덕주골 입구로 나와 오른쪽 한수,충주 방향의 597번 지방도를 따라 3.4km 가면 길 오른쪽에 덕주산성 북문이 나온다.
월악산 산행코스 중 덕주골~영봉~보덕암 코스는 남에서 북으로 완주하는 코스로 7시간 정도 소요되며 겨울산행은 초보자에겐 위험한 요소가 많다. 영봉에서 보덕암까지는 산화경방기간으로 5월30일까지 입산이 통제된다. 가족 단위의 산행은 덕주골로 올라가 송계리로 내려오는 코스를 권하고 싶다. 월악산 국립공원 사문리매표소 0441-846-0572.
*교통
승용차편/ 중부고속도로~일죽I.C~38번 국도~장호원~3번 국도~주덕~충주~수안보~597번 지방도~미륵리 순으로 간다. 미륵리에서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은 송계계곡이고 직진하면 미륵리 절터에 닿게 된다.
고속버스편/ 서울~충주는 동서울터미널(02-446-8000)에서 06:20~21:40까지 2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버스(요금 일반 5,500원, 우등 6,500원, 2시간 소요)를 이용하거나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영동선(02-536-5297)에서 06:00~21:00까지 3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일반 5,600원, 우등 6,500원.
충주~내송계 행은 충주시내버스터미널(0441-845-0550)에서 05:40~19:35까지 하루 12회 운행하며 요금은 2,000원. 1시간 소요. 충주~수안보 경유~덕주골 행은 06:25~17:55까지 하루 12회 운행하며 요금은 2,650원.
*주변 볼거리
자연학습 탐방로/ 만수봉(983m) 오르는 들머리 계곡에 위치하며 식물뿐 아니라 수목과 어류 동물 조류 등을 관찰할 수 있어 초등학생들에게 좋은 자연학습장이 될 것이다. 탐방로는 총길이 1.8km이며 다 돌아보는데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방학과 휴일엔 생물학을 전공한 대학생이 직접 안내를 해준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월악산관리사무소 0443-653-3250.
충주시내/ 조선시대 남한강 수운의 중심지였던 목계나루와 가흥창터(가금면 가흥리),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유일한 고구려비인 중원고구려비, 통일신라 때 이곳이 나라의 중앙임을 나타내기 위해 세웠다는 탑평리 칠층석탑(가금면 탑평리), 우륵이 가야금을 탔다는 탄금대와 임진왜란 때 신립장군이 배수진을 쳤던 달래강(충주 칠금동) 등이 역사상 충주기 차지했던 의미를 증언하고 있다.
*잘 데와 먹을 데
들머리/ 덕주골의 월악산 월송 손두부집(0443-651-6478)은 20년 된 월악산 토박이로 1년에 콩 스무가마의 두부를 만들만큼 인기가 좋다. 토종닭(2~3인분 25,000원), 손두부(5,000원), 도토리묵(5,000원)이 일품이다.민박은 평일엔 15,000원, 주말엔 30,000원.
날머리/ 보덕암 아래 수산리의 통나무집(0443-651-1150)은 민박이 2인1실에 3만원. 산흑염소불고기, 산닭도리탕, 버섯전골요리가 전공이다.
미륵리/ 미륵가든(0441-848-6612)은 미륵사지 주차장 앞에 있으며 산채정식(8,000원)과 돌솥산채비빔(5,000원), 메기매운탕(중 30,000원), 닭도리탕(25,000원)을 잘한다. 민박은 4인 기준으로 2~3만원선.
승용차로 왔다면 모텔 호텔급 숙소가 많이 있는 수안보에 묵으며 온천을 겸해도 좋다.
참조: 월악산 참고: 월간<사람과산> 2000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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