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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6일(화) 고린도후서 1:23~2:17 '그리스도의 향기' 찬송가 357장 주 믿는 사람 일어나
오늘은 고린도후서 1:23~2:17 말씀을 중심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이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않은 것은 고린도 교인들을 아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그들에게 근심하게 한 자를 이제 용서하고 위로하라고 권면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비롯한 복음의 증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함으로 전한다고 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서는 사도 바울은 구원받은 성도들을 향하여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말합니다.
3차 전도여행 중에 바울이 드로아라고 하는 곳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복음을 전하면서도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와 성도들에 대한 염려를 떨쳐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자신의 제자인 디도를 대신 고린도 교회에 보내어 자신의 편지를 전하게 하고 소식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조급한 마음으로 디도를 빨리 만나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듣기 위하여 긴급하게 마게도냐로 갔고 거기서 디도를 만날 수 있었고, 디도를 통해 고린도 교회의 사정을 전해 듣고는 안심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디도의 소식을 듣고 먼저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어려운 문제 중에서도 믿음으로 극복하는 고린도 교회를 인해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바울이 다시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지 않은 것은 고린도 교인을 아꼈기 때문입니다. 23절 “내가 내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불러 증언하시게 하노니 내가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 지금 가면 오히려 근심을 얻을까 염려하여 오직 그들의 기쁨을 돕고자 방문을 연기한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 대한 자신의 기쁨이 그들 모두의 기쁨이 될 때까지 기다렸고, 대신 눈물의 편지를 써서 디도 편에 보냈습니다. 그들을 향한 넘치는 사랑으로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쓴 눈물의 편지는 고린도 교인들의 영을 깨웠습니다. 교회의 권징과 징벌을 받은 자들이 이 편지를 읽고 회개했고 이 소식을 접한 바울은 그들을 용서하고 위로하라고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바울은 고된 사역을 하면서도 하나님은 바울로 말미암아 복음의 냄새를 나타내어 각처에서 구원의 열매를 맺게 하셨습니다. 14절 말씀입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에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예로부터 향은 사람들에게 유용하게 사용되어 왔는데요. 사람들이 선호하는 향은 주로 꽃에서 나는 냄새 즉 ‘꽃향기’일 것입니다. 향기가 나는 꽃 곁에는 항상 벌과 나비 등 곤충들이 모여듭니다. 그래서 꽃은 향수의 주원료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에게도 각자 풍기는 냄새가 있습니다. 인품이 훌륭한 사람에게는 좋은 향기가 있습니다. 좋은 향기가 나는 사람이라면 더 가까이하고 싶고 자주 만나서 얘기하고 싶어지게 합니다. 14절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말합니다. 즉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사는 성도들에게는 그리스도는 아는 냄새가 난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풍기는 냄새는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여야 하고, 그 냄새가 사람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향기여야 합니다. 이 향기를 세상에 나타내는 것이 성도의 사명이요, 전도자의 사명이요, 복음의 승리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15절과 16절에도 비슷한 말씀을 합니다.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라고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낼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이 말은 결국 오늘 우리도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진정한 그리스도의 향기는 무엇입니까? 진정한 그리스도의 향기는 그 맡는 사람에 따라서, 천국 영생의 냄새와 지옥, 심판과 영벌의 냄새로 다르게 느껴지게 됩니다. 청국장도 그 냄새를 맡는 사람에 따라서 어떤 사람에게는 고향의 아련한 추억의 향기요, 구수하고 맛있는 냄새지만, 그 맛을 모르는 사람이나 외국인들에게는, 코를 틀어막고 고개를 돌리며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고약한 악취를 풍기는 그런 음식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믿지 않으면 지옥간다’라는 복음을 전할 때 그 말을 듣고 기분 나빠하고 욕하는 사람을 만나더라고 당황하거나 기분나빠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그 누가 맡아도 다 향기로운 향기가 아닙니다. 16절에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성도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드러낼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첫째는 성도들은 그리스도안에서 항상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4절에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이기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의 영적 싸움은 크게 세가지입니다. 사단과의 싸움, 세상과의 싸움, 나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특별히 정욕과 탐심으로 가득차 있는 나 자신과 싸워이겨야 합니다. 죄악과 싸워이기고 성령을 좇아 행하는 곳에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향기가 넘쳐나게 됩니다. 여러분이 날마다 십자가에 못박아 승리해야 할 정욕과 탐심과 세상의 유혹은 무엇입니까? 둘째로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려면 그리스도 안에서 고난과 역경과 핍박을 이겨야 합니다. 고난과 역경과 핍박에 실망하고 넘어지는 곳에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없습니다. 오히려 악취만 풍길 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고난과 시련과 핍박과 싸워 이기는 그 곳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넘치게 됩니다. 스데반집사는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하는 자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 피를 흘리며 고통받는 상황 속에서도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7:60)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도 십자가상에서 자신들을 못박고 조롱하는 자들의 죄를 용서해주셨습니다. 세 번째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담아야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시면 그리스도인들만이 낼 수 있는 향기를 발하게 됩니다. 사도바울이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낸 이유는 바로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매일 매일, 순간 순간 산다면 나의 향기가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향기를 내실 것입니다. 똑같은 그릇이라도 그 안에 썩은 음식이 담겨 있으면 악취가 나고,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좋은 냄새가 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 안에 무엇이 담겨져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려면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있어야 합니다. 늘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묵상하며 그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고, 늘 주님과 동행하려고, 늘 주님 기쁘시는 일을 선택하려고 하면 반드시 우리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게 될 줄 믿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세상에, 죄에, 세상 정욕에, 세상 욕망에 빠져있으면 그리스도의 향기를 낼 수 없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그리스도를 나의 주, 하나님으로 모시고 사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는 삶을 살도록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렇지 못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부터 우리의 기도제목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는 자가 되기로 기도하십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과 위로와 기쁨과 소망을 나눠주는 자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또한 내 안에 세상의 정욕과 탐심과 같이 악취나는 것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제거함으로 아름다운 신앙인격의 냄새가 나는 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나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