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자 때였습니다. ‘기도’는 어떻게 하는 것이냐고 목사님께 물었습니다. 초심자의 질문에 목사님은 웃으셨습니다. 그러고는 ‘치성致誠’을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께서 부처님에게 열심히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빌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게 기도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치성과 기독교의 기도가 다른 점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된 말씀으로 우리에게 건네주시는 진리는 내 밖에서 내 안으로 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나를 정확하게 보게 합니다. 그래서 그 말씀으로 나를 설명하고, 그 말씀에 반응하고 나를 자각하게 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나의 이야기로 재해석할 수 있게 되고, 구속의 역사를 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로 이해할 수 있게 되면서 비로소 올바로 기도할 수 있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신자가 자기 밖에 있는 예수와 역사와 지식으로만 이해하고 기도하니 거기에 생명이 없다고 했습니다. 아직도 나는 생명 없는 기도 하며 이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