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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한국 교육의 경로를 묻다
윤석열 정권이 임기를 시작한 지 곧 1년을 맞이한다. 이명박 정권에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맡았던 이주호가 10년 만에 다시 교육부 장관으로 나서면서 일단 윤석열 정권의 교육 정책이 꼴을 갖춰 가는 듯하다. 한데 ‘AI 교육 도입’, ‘우수 고교 육성’, ‘학교 자율화와 경쟁’ 따위로 요약되는 일련의 정책은 이명박 정권 시기에 내걸었던 정책을 빼닮았다. 대학에 관한 책임을 지자체로 떠넘기는 등의고등교육 정책도 존속의 위기를 맞이한 대학에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여기에 민주시민교육이나 학생인권조례를 지우고 축소시키려 드는 등 국민의힘 및 극우·보수 세력이 국회와 지자체에서 보이고 있는 행태까지 더하면, 퇴행과 반동, 위기에 대한 외면과 책임 전가로 구성된 윤석열 정권의 교육 정책이 대략적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오늘의 교육》은 윤석열 정권의 후진성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과연 충분한가 묻고자 한다. 윤석열은 ‘문재인 지우기’에 열심인 듯하지만 실은 윤석열과 문재인은 서로 대척점에 있지 않다. 해석하기에 따라선, 윤석열 정권의 행보는 한국의 교육과 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는 어떤 원리들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전면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언급하는 ‘3대 개혁’은 원인 진단도 해법도 오류투성이지만, 그 배경에 있는 누적된 갈등과 모순은 현실이다. 그렇기에 특정 정권만의 일을 넘어 수십 년 동안 누적되어 온 한국 교육의 오류와 난점을 직시해야만 한다. 윤석열 정권이 비판받아야 할 점은 그 괴이함이 아니라, 이러한 문제들을 방치하거나 더욱 악화시키는 식으로, 정확히는 상층 계급에 편의적인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그 진부함일 것이다.
《오늘의 교육》 이번 호는 이런 고민 속에 사회와 운동의 정세를 살피는 특별 좌담에서부터 시작한다. 교육, 노동, 젠더, 인권, 기후 문제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들이 모여 펼친 좌담은 우리의 현주소와 과제에 관한 운동 주체들의 인식과 고민을 전해 준다.
‘한국 교육의 경로를 묻다’라는 특집 주제는 윤석열 정권의 교육 정책의 문제를 짚으면서도, 교육 문제에 역사적 성찰이 필요하며, 앞으로 어떻게 문제를 풀어 가야 할지 새로운 방향 제시 역시 필요하다는 복합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김동춘의 〈시험능력주의 심화의 길〉은 윤석열 정권의 입시 제도와 고교 서열화 정책 등에 초점을 맞춰 그것이 왜 문제를 악화시킬 것인지 정리한다. 박미자는 이주호 장관의 간판 정책인 ‘AI 디지털 교육’이 어째서 ‘미래 교육’의 대안이 될 수 없는지를 조목조목 짚는다. 임순광은 윤석열 정권의 대학 구조 조정 정책이 전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하며, 대안으로 공공성의 가치와 과제들을 제안한다. 손지은의 〈애초에 성소수자를 인정하는 교육과정은 없었다〉는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일어난 ‘2022 개정 국가 교육과정’에서의 후퇴를 학생인권조례 폐지 시도 등과 연관 지어 읽어 낸다. 조영선은 각지에서 벌어지는 학생인권 후퇴 시도나 갈등이 그 이전의 학생인권이 학교 현장에 제대로 된 원칙으로 자리 잡지 못했던 데서 비롯되었다는 문제의식을 제시한다.
연초, 《오늘의 교육》은 편집 기조를 논의하며 우리 시대가 ‘절멸’과 ‘반동’의 위기 앞에 서 있다고 규정하고, 이를 넘어서기 위한 더 근본적이면서도 정치적인 교육 실천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오늘의 교육》의 이야기가 그 첫걸음으로, 우리가 처한 상황과 과거로부터 미래로의 경로를 탐색하는 시도가 되기를 바란다.
- 편집부
▶ 《오늘의 교육》 73호는 윤석열 정권의 교육 정책들을 키워드 삼아 한국 교육의 현실과 당면 과제를 살핀다. 기획에선 성소수자 청소년 관련 연구를 소개하고, 널리 알려지지 않은 강원 학생인권조례 제정 노력을 전한다. 대학생운동 인터뷰 기획과 동물권교육을 고민하고 개발해 온 사례를 전하는 연재도 새로 시작되었다. 에세이엔 세월호를 기억하고 나누려 애쓰는 교사, 공모 교장에서 평교사로 돌아온 교사의 이야기 등을 담았다.
차례
10 이윤엽의 오늘 | 이윤엽
11 읽은 이야기 | 이동준
특별 좌담
14 말로만 하는 투쟁, 대응에 급급한 운동을 넘기 위해 | 채효정, 천보선, 정록, 나영, 권영숙
- 한국 사회와 운동, 교육의 현주소와 과제를 논하다
특집 한국 교육의 경로를 묻다
46 시험능력주의 심화의 길 | 김동춘
- 이명박 시즌 2, 윤석열 정부의 교육 정책
54 인공지능이 교육을 바꿀 거라는 착각 | 박미자
- 윤석열 정부의 ‘AI 디지털 기반 교육’과 미래 교육
69 고등교육 개혁, 국가 책임 회피가 아닌 공공성 강화로 | 임순광
- 윤석열 정부의 대학 구조 조정 정책에 맞선 고등교육 공공성 강화
78 애초에 성소수자를 인정하는 교육과정은 없었다 | 손지은
- 삭제의 시대, 성평등과 교육권을 다시 연결하여 말하자
85 학생인권조례 폐지 위기에 대한 한 단상 | 조영선
기획│성소수자가 존재할 수 있는 학교
96 있지만 없는 존재들의 이름에게 | 원추리
104 성소수자 학생이 경험하는 교육 현장과 인권 | 정명화
- 법·제도 분석 및 학교, 교육청, 지원 기관 현장 인터뷰를 바탕으로
115 누구도 뒤에 남겨 두지 않는 무지개 학교는, 어렵지 않다 | 송지은
- 트랜스젠더 학생 지원 해외 사례를 중심으로
기획│열망과 무관심의 사이, 강원 학생인권조례
129 2년이 넘게 달려온 강원 학생인권조례, 그 결말은 | 최보근
- 학생과 교사가 같이한 강원 학생인권조례안의 과정
136 깃발을 올리지 않는 것이 나았다 | 김홍규
- 강원 학생인권조례 시도 과정에 전교조가 남긴 아물지 않는 상처
지상 중계│예비 교사를 위한 ‘직업으로서의 교사’
145 다중세대 일터에서 저항하고 공존하는 힘을 키우기 | 정용주
163 교대생은 예비 교사가 아니다 | 진냥(희진)
- 예비 교사에서 벗어나기
연재
동물이 존중받는 세상을 위한 교육
182 동물단체, 교육에 나서다 | 박아름
대학생운동 인터뷰 – 대학의 위기와 대학 안의 운동
196 대학 언론은 대학 민주주의를 위한 필수 요소 | 강석남
- 대학언론인네트워크 차종관 집행위원장, 심하연 집행위원
기고
221 무엇이 장애 학생을 ‘교권 침해 가해자’로 만드는가 | 조경미
- 공존을 모색하는 교육공동체를 꿈꾸며
에세이
230 다시 교사로 살아가기 | 박지희
- 공모 교장 이후 교사로 돌아오기 위해 필요한 고민
237 가까스로, 교사 | 지문희
- 교사의 자리에서 기억하는 세월호 참사
250 아름다움의 기준은 누가 정한 걸까? | 화사(이충열)
- 인공지능을 활용한 통합 교과 예술 수업 ‘프롬 브론즈’ 프로젝트
리뷰
260 나아가기 위해선 먼저 바라봐야 한다 | 난다
- 《한국 교육의 오늘을 읽다》
269 문해력 교육의 숲에서 길을 잃은 교사들에게 | 미숲
- 《초기 문해력 교육》
282 오늘 읽기 | 이상대
284 세 줄 세 책
286 어린이 책 나들이 | 공현
288 내가 밀고 있는 단체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 치리
책 속에서
나는 교육 부문과 교육운동이 제일 문제적 영역 같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교육이라는 장은 우리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주입하는 중요한 장이다. 학교 역시 지배 헤게모니 구축에서 핵심적인 통치 기구다. 그런데 과거와 같은 군사주의·권위주의가 형식적으로 약화되고, 교육이 시장화·상품화되고 학생·양육자들의 소비자 정체성이 강화되면서 마치 학교가 약화된 것 같은 착각이 생겨났다. 그러면서 사회운동의 시야에서도 교육이 저항의 중심 장소에서 밀려났다. 하지만 교육 기구와 과정에서 군사적 권위주의나 가시적 폭력은 줄어들었는지 모르나, 시장의 권위는 더 절대적인 것이 되었고 보이지 않는 구조화된 폭력은 훨씬 더 강력해졌다.
- 본문 34쪽, 채효정 외, 〈말로만 하는 투쟁, 대응에 급급한 운동을 넘어서기 위해〉
산업 현장에서 인력 부족은 매우 심각하고, 그것은 청년들이 기술자로서 경력 축적과 사회적 보상에 대한 기대를 가질 수 없는 현실이 만들어 낸 문제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손발 노동은 아프리카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라 말하며 자신의 노동관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런 사고방식을 반영한 듯, 지금 정부는 심각한 산업 인력의 부족을 외국인 노동자로 채우겠다는 발상만 하지, 어떻게 직업계고나 일반고를 졸업한 청년들이 대학 진학이 아닌 다른 삶을 살고도 인간 대접을 받을 수 있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는다.
- 본문 51-52쪽, 김동춘, 〈시험능력주의 심화의 길〉
AI가 교육 분야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과도한 기대이다.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는 과정 없이 AI 디지털 교육 도입을 중심으로 한 개인별 맞춤 교육을 추진하는 것은 비인간적인 서열화와 무한 경쟁을 부추길 위험이 있다. 유·초·중등 학생들은 날마다 성장하고 수시로 변화하는 성장 과정에 있다. AI를 통해 학습 경로를 제공해 주고 반복적으로 문제를 추천해 줄 수 있지만, 인간의 잠재력을 계발하고 예기치 못한 기쁨을 발견하는 ‘맞춤형 결과’를 제공할 수는 없다. 교육에서는 인간들의 협력과 연대를 통해서, 자신과 타인의 삶을 돌보고 잠재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성장하는 기쁨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 본문 58-59쪽, 박미자, 〈인공지능이 교육을 바꿀 거라는 착각〉
먼저 공통분모의 극대화가 필요하다. ‘교육 기회 접근 비용의 감소 또는 해소’가 그것이다. ‘대학 무상화’의 기치를 최대한 많은 이들이 강렬하게 내거는 것이 출발점이다. 즉, 대학 등록금 폐지와 함께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이나 관련 법 개정을 통한 국가의 교육 책무 이행을 법제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도권이 아니라 지역 대학에 예산이 충분히 배정될 수 있도록 하고, 수도권 (정원 내든 정원 외든) 입학 정원도 대폭 축소하며, 재정을 지원하는 만큼 사립 대학 재단들의 권한을 축소하고 공적 성격을 강화하는 방향으로의 전환도 필요하다.
본문 75쪽, 임순광, 〈고등교육 개혁, 국가 책임 회피가 아닌 공공성 강화로〉
실제로 성소수자 청소년들은 학교 교육과정에 성소수자와 관련된 내용이 전혀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성소수자’를 말하지 않는 교육과정의 빈자리를 메꾸는 학교 질서는 어떤 모습일까? 학교를 관통하는 질서는 가부장적 이성애 규범 가족 모델을 기반으로 한다. 이것을 깨고자 하는 개별적인 노력과는 별개로, 학교에서는 여전히 ‘성평등’이 아닌 ‘양성평등’이 주로 쓰이고 여학생과 남학생에게 기대하는 바와 부여하는 역할이 나누어져 있으며 연애와 결혼은 기본적으로 이성 간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전제하는 경향이 매우 짙다.
본문 80쪽, 손지은, 〈애초에 성소수자를 인정하는 교육과정은 없었다〉
성추행, 성희롱, 차별적 언행 등 인권 침해들이 쌓이고 곪아 터져 ‘스쿨 미투 운동’이 일어났을 때에도 학교는 스쿨 미투로 인해 교권이 실추, 침해된다는 방식으로 응대했다. 인권 침해가 해소되지 않은 학교 문화에서 학생에게 일어난 피해를 공론화하는 일이 정의의 실현이 아니라 교사를 겁주는 것으로만 느껴진다고 스스로 고백한 셈이다. 결국 스쿨 미투 운동은 학교 밖에서는 떠들썩하게 주목받았지만, 학교 안을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인권이 살아 숨 쉬려면 어느 공간이든 최소한의 언로를 막지 않아야 하고, 신체의 자유가 존중되어야 하며, 수직적인 문화가 없어야 한다. 그러나 몇몇 지역, 몇몇 학교의 소수의 공간에서만 겨우겨우 통용되는 학생인권은 말만 무성할 뿐 여전히 현실로 생동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학교에서 인권 존중을 경험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는 아직도 이런 세상에서 살아야 하냐는 분노를 일으키고, 교사들에게는 공공연한 냉소와 무시의 대상이 되고 있다.
- 본문 91-92쪽, 조영선, 〈학생인권조례 폐지 위기에 대한 한 단상〉
차라리, 깃발을 올리지 않는 것이 나았다. 우리가 새로운 교육 제도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기존 주권 권력과는 다른 방식의 의사 결정, 다른 교육, 다른 세상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생인권과 교권을 나란히 놓는 방식은 다른 교육, 다른 세상을 향하지 못한다.
오히려 전교조는 ‘교권 보호’, ‘교육 활동 보호’, ‘학습권 보장’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으로 학생들을 몰아세우는 잘못에 함께했다. 보수 언론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전교조 보도자료나 전교조의 신문 〈교육희망〉에서도 학생들이 문제투성이인 한국 교육을 망치는 원흉으로 지목되어 ‘마녀사냥’을 당하곤 한다. 교사와 학생이 대결하는 듯이 묘사하며 학생들을 희생양 삼는 그림은 ‘미친’ 교육 시스템을 바꾸지 못한 어른들의 잘못을 감춘다.
- 본문 140-141쪽, 김홍규, 〈깃발을 올리지 않는 것이 나았다〉
일반 학급에 가면 장애 학생은 더 힘든 상황에 놓인다. 특수 학급에선 개별적 수준에 맞는 교육 지원을 받는 것에 비해, 일반 학급에서는 교과 내용에 대한 개별적 교육 지원을 받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고학년으로 진학할수록 교실에 가만히 앉아 있기가 힘들어진다. 수업 시간을 홀로 이겨 내지 못하고 일어서서 소리라도 내면, 그 순간 교육 활동을 침해하는 행위가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수업 시간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학생에게 교사가 “돌아다니지 말고 앉아”라고 말하는 것이 ‘정당한 생활 지도’가 아니란 것이다. 교사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고 해서 곧 교육 활동 침해라고 말할 수는 없다.
- 본문 224-225쪽, 조경미, 〈무엇이 장애 학생을 ‘교권 침해 가해자’로 만드는가〉
공모 교장 제도를 교장의 역할에 대한 확장과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누가 교장이 되는가도 중요하지만, 교장이 다시 교사로 돌아와 그 경험을 잘 살릴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도 함께 있어야 한다. 기존에 해당 학교에 있던 교사가 교장에 지원하는 것은 공정성에 다소 문제가 있을 수 있어 이를 제한하는 것은 납득이 된다. 하지만 교장을 하던 사람이 그 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겠다는 것이 왜 어려울 일인가? 어쨌든 그 학교에 대해 잘 알고 학생들과 주변 환경을 잘 아는 교사나 교장이 학교 교육과정을 안착시키기 위해 더 일하겠다면, 별도 심사를 해서라도 허용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 본문 233-234쪽, 박지희, 〈다시 교사로 살아가기〉
학생들에게 세상 이야기를 들려줘야 한다는 책무감이 컸다. 시야를 밖으로 돌려 학생들이 겪는 고립이 사회 속에서 벌어지는 일임을 실감한다면, 자신의 환경만을 탓하며 더 상처받지 않을 것 같았다.
먼저 목차를 함께 읽으며 해고 노동자, 성소수자, 소 방 공무원,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들에 관해 언급했다. 내 잘못이 아님에도 아플 수 있다고, 우리가 함께 걱정하고 관심을 가져야 안전하게 세상 속에서 살 수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과 10대 성소수자에 관한 부분을 발췌해서 함께 읽었다. 김승섭의 말처럼 ‘재난은 기록되어야’ 하고, 그 속에서 ‘우리는 연결될수록 건강한 존재들’임을 말하고 싶었다.
- 본문 247쪽, 지문희, 〈가까스로,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