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앞에서 다시 한번 경건하라” 정약수 교수님의 강의에서 깊은 감흥을 받았다. 이른 새벽 눈을 뜨면 깨끗이 몸을 단장하고 손을 모아 부처님께 예를 올린다. 오늘도 새날을 맞게 해주신 내 어머니 그리고 늦은 나이에도 공부할 수 있도록 꿈과 희망을 안겨 주신 故 조병화 박사님 정채봉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쥐죽은 듯 고요한 새벽 4시 온 천지가 어둠 속에 새날을 잉태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두 번 남편과 함께 새벽 산을 다녔다. 어둠을 헤치고 산봉우리에 올라서면 활화산 같은 불덩이가 깊은 바다 속에서 황금알처럼 솟아오른다. 처음엔 짙은 해무 속에서 붉은 다이아몬드처럼 오르다가 생명들에게 눈을 뜨라고 무언의 괴성을 울리며 천지에 불을 밝혀주신다.
눈 부신 햇살을 받은 생명들이 눈을 뜨며 아침 준비에 여념이 없다. 새들은 각기 낯을 씻고 목청을 조율하며 합주를 하기 위해 분주하다. 해가 중천으로 오르면 끝없이 펼쳐지는 첩첩 산들의 기운이 온몸으로 스며든다. 높고 낮은 어머니 젖무덤 같은 불그레한 봉우리가 하늘의 정기를 받으면 구름은 산과 바위를 휘감으며 포옹을 하고 있다.
연살색 실크 속에서 비룡은 하늘을 승천하기 위해 산을 쓰다듬고 애무하며 생명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다.
어머니의 하체를 벌여놓은 것 같은 산 능선 아래 조가비같이 납작 엎드린 오밀조밀한 마을은 깊은 계곡의 젖줄을 받아 텃밭으로 일구어 평화롭게 사는 모습이다.
능선을 따라 실핏줄 같은 길을 이어 방게 같은 차들이 줄지어 가는 모습이 살아있는 생명들의 전율로 다가온다. 그 속에서도 응급차의 경적 울림이 뇌 세포들에게 진리의 삶을 일깨워주고 있다.
인생의 희노애락喜怒哀樂과 생노병사生老病死의 순리를 몸으로 느끼며 잠깐 쉬었다 가는 정류장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人間은 자신만을 위하고 神은 모든 생명을 위한다.”라는 말을 의미하는 시간이다.
수필은 나의 몸이며 삶이다. 오랫동안 숨통을 조여 오던 삶의 응어리가 분수처럼 터져 나올 때 세포들을 조율하며 조금씩 틔워가는 연습을 하고 있다.
잠을 자다가 눈을 뜨면 신들린 무당처럼 벌떡 일어나 정신을 가다듬으며 뇌 안의 기억장치를 하나하나 펼쳐 본다. 오래된 비밀 창고에 빛바랜 필름을 다독이며 조심스럽게 살아온 시간들과 미래를 펼쳐갈 희망의 꿈을 차근차근 넘겨 가며 노래를 읊어본다.
남들은 정년을 하는 나이에 황무지에서 엉겅퀴를 뽑아내며 언젠가는 옥토를 만들 것이라는 꿈을 가져 보기도 했다. 내가 앉은 자리에 한 알의 씨앗을 심어 문학의 텃밭을 만들어 가고 있다.
눈앞에 펼쳐지는 지나온 인생 현장이 나의 글밭이었다. 초등학교 겨우 졸업한 애송이가 오랜 일기와 편지를 쓰며 틈틈이 책을 읽고, 사십 대 초반 검정고시로 주경야독 공부해온 삼십 년의 인생사가 나의 글밭이었다.
낮에는 장사를 하고 밤이면 어둠 속으로 책가방을 메고 초등학생처럼 행복한 학교로 달려가던 꿈같은 시간이 나의 글밭이었다.
건강치 못한 가장과 양가 부모님을 비롯한 아들 넷과 조카까지 남자만 여덟 명에 약 이십여 명의 수레를 끌며 일인 오역의 가혹한 삶에서도 더 힘든 사람들을 보며 희망을 가졌다.
새벽 노파가 부모 없는 손자를 거두기 위해 폐지를 줍는 모습을 보며 용기를 얻는다.
찬바람을 마주하며 흩어진 쓰레기를 청소하는 사람들, 하루 종일 무거운 택배를 배달하고 책가방을 메고 배움터로 달려가던 내 아들 같은 젊은이도 미래의 꿈나무였다. 밤새 야간 일을 마친 사람들에게 따끈한 국물로 배고픈 사람들에게 요기를 시켜주는 포장마차 아주머니도 인생살이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남편이 죽고 아이 둘을 키우던 내 아우 같은 여인이 어느 날 아이 셋이 있는 남편을 만나 다섯 자식을 키우면서, “언니 나 어떻게 해요” 술주정하는 남편과 못 살겠다며 울먹이던 여인이 있었다. 한여름 시장 지하 불 앞에서 홍시처럼 익은 얼굴로 식당을 운영하며 자식들을 위해 살아가던 사람에게 3년만 참고 살아보라고 손을 꼭 잡아주었다. 수차례 죽음을 감수하고 2십 년이 지난 오늘 자녀들은 성인이 되어 각각 자신의 일을 찾아 잘 살고 있다며 언니 감사해요, 혈육 같은 눈망울에 울컥 무엇이 올라왔다. 장터에서 갖가지 물건을 이고 행상하던 아낙들이나 오늘은 누구 내일은 누구 한푼 두푼 차례로 날을 잡아 구걸하는 사람들도 글의 주 제목이었다.
부모 슬하에서 한참 응석부리며 학교에 다닐 나이에 남의 집 점원으로 시장에 입문하여 약 사십 년간 장터에서 천태만상의 인간사를 몸으로 체험하며 살아왔다. 사시사철 변화하는 인간 시장에서 밤 열차를 타고 무거운 옷 봇짐을 머리에 이고 부산 자유시장에서 서울 남대문 평화시장을 내 집처럼 드나들며 울고 웃던 지난 삶이 나의 문학이다.
길을 가다가 나무 한 그루 돌 하나에도 살아 숨 쉬는 생명을 느낄 수 있고 눈을 뜨면 모두가 대화의 상대가 된다. 느낌으로 보며 몸으로 체험한 내 인생의 행로가 바로 문학이고 글밭이었다.
삼십 년 부처님의 삼천 배 기도 속에 분노를 용서로 전환시켜 죽음에서 나를 일으켜 세웠고 내일의 꿈과 희망을 안겨 주던 것이 나의 수필이었다. 수필 속에 평생을 염원하던 교복 입은 여학생이 되었고 칠 추기 소녀는 제3의 꿈길을 달리고 있다.
한편의 글을 쓸 땐 깊은 산속 옹달샘 같은 짜릿한 물줄기가 용솟음친다. 건강도 정신도 가장은 뜬구름처럼 다닐 때 아들 둘을 낳고 막내(쌍동이)를 낳을 때 하혈로 사경을 헤매던 진통 끝에 옥동자를 탄생하였듯이 한 작품을 잉태하기 위해 혼령을 바친다. 수필은 내 안의 세포들이 희열 속으로 몰아가서 영혼이 살아서 움틀거린다.
글 한자마다 몸의 세포요 삶이요 내 안의 울림이다. 남들이 알 수 없는 나만의 대화요, 숨길을 열어주는 밝은 등불이다.
오래 닫혀있던 비밀의 문을 열어 누에가 실을 뽑듯 한 올 한 올 세공을 거쳐 오기까지 강산이 다섯 번 변해가는 오늘, 먼 산의 울림이 메아리로 들려온다. 병원 창가 도로변엔 매연으로 덮어 쓴 나무들도 새들을 초대하여 아픈 이들에게 쾌유를 빌며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고 있다.
평생 남편의 건강문제로 부부는 오랜 산행을 하고 있었다. 하늘의 정기를 온몸으로 받으며 자연의 위대함을 심취하는 시간이다.
몇천 년 역사 속에 모진 역경도 묵묵히 지켜온 산과 나무는 생명들에게 살아갈 모든 양식을 남겨주고 죽는 그 날까지 육신의 옷을 다 벗어 뿌리를 덮어준다.
노을 진 하늘엔 한파가 지나가고 멍울을 삭혀주던 우주의 소리가 들려온다.
길 잃은 자 아픈자, 어둠에서 길을 몰라 헤매는 자들에게 눈물을 닦아주며 오늘도 그들과 함께 즐거운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