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치나 이기지 못하리라(렘1:4-19)
갈등
1. 하나님은 창조 후에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쓰실 사람을 선택하여 예비하십니다. 그 사람을 훈련하고 연단하여 만들어 쓰세요.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만 하면 됩니다. 이것은 성경 시대만 아니라 지금도 동일해요.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서 한 선지자를 부르셨어요. 5절,“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어떻게 선택하시고 사용하시는지 여기에 다 나타납니다.
먼저 하나님은 예레미야가 어머니 모태에 짓기 전에-어머니가 그를 임신하기 전에 너를 알았다고 말씀했습니다. 안다는 히브리어는 두 가지 의미가 있어요.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아신다고 할 때는 선택을 의미하고,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안다고 할 때는 순종을 의미해요.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아셨다고 했으니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모태 이전에서부터 선택하셨다는 의미에요. 사도 바울도 선택론을 말할 때 창세 전에(엡1:4), 또는 어머니의 태로부터(갈1:15) 두 가지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2.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쓰시기 위해서 이렇게 선택하셨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어머니가 낳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성별은 구별-거룩하게 하셨다는 의미에요. 거룩은 하나님과 관계 속에서만 사용되는 말입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구별되었기에 이런 표현을 사용했어요.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선택하시고 성별하시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 왕국(요시아 왕 때부터 여호야김-여호야긴-시드기야 왕, 유다 왕국 멸망 때까지)만 아니라, 당시 세계-열방의 예언자로 부름받았습니다.
예레미야가 이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감당하기 어려웠어요. 예레미야는 하나님께,“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아지 못하나이다 하니.”(6절) 예레미야는 자신이 아직 하나님의 선지자로 그것도 이스라엘만 아니라 열방의 예언자로 일할 수 있는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답했어요. 나는 아이라는 말은 미성년자라는 말이 아니고 아직 젊다-부족하다는 말입니다. 처음부터 하나님께 쓰임 받을 준비된 사람은 없습니다. 아브라함도 그랬고, 모세도 그랬었고요. 예레미야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당황했습니다.
3. 하나님께서는 부르신 사람을 만들어 쓰십니다. 예레미야를 만들어가셨어요. 7절,“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어다.”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예언자는 자기 말을 하는 자가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만 하면 된다고 하셨어요. 예레미야는 이제부터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곳에 가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만 전하면 되었습니다. 선지자처럼 쉬운 일이 없습니다. 자기 말을 하려고 하니까, 목회자나 예언자가 어려운 것입니다.
내 힘과 지혜로 일을 하려고 하니까 힘들어요. 하나님께서 하라는 일을, 하나님께서 친히 하시도록 하면 쉬워요. 이렇게 말하고 일할 수 있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두려워하는 예레미야에게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라(8절), 그들이 너를 칠지라도 너를 이기지 못할 것이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19절) 예레미야는 1절,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들 중 힐기야의 아들이었습니다. 아나돗은 솔로몬 왕 때 쫓겨난 아비아달 제사장의 후예들이 살던 곳입니다. 솔로몬 이후 제사장 가문은 사독의 후예들이 독차지했어요.(사두개인들) 하나님은 예루살렘에 선지자들이 많았는데, 그들이 아니라 아나돗에 묻혀 살던-재야의 예레미야를 불러 사용하셨을까요?
갈등 심화
4. 오늘 본문에서 반복되는 말씀이 보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한 번만 해도 될 말을 여덟 번이나 반복했어요. 각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한 때가 달랐음을 의미해요. 이런 이유가 있었더라도, 이렇게 반복하는 것은 강조를 의미해요. 예레미야가 하나님과 자주 소통하며 말씀을 들었음을 나타냅니다. 9절에는,“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고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가 이스라엘에게 전할 메시지가 심상치 않다는 암시도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주실 예언(말씀)이 심각하여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었습니다. 예레미야가 전할 메시지는 10절,“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예레미야가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선포할 메시지는 여러 나라 여러 왕국에게 해당되었어요. 역사의 전환기가 다가왔음을 알 수 있어요. 어떤 나라들은 파멸되고 넘어지고, 어떤 나라는 건설하고 심을 때가 곧 올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여러 나라-여러 왕국 중에, 한 나라-남 유다 왕국의 멸망을 예언했습니다.
5. 오늘 본문에서 예언의 시작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네가 보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어요. 예레미야는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봅니다고 대답했어요.(11절) 그 다음 비전을 볼 때까지 시차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다시 하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네가 무엇을 보느냐? 예레미야는 끊는 가마가 있는데 그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다고 했습니다. 예레미야가 본 두 가지 비전은 같은 맥락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살구나무 샤케드는 지킨다는 말과 발음이 같습니다. 살구나무 비전은 12절,“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함이라.”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환상을 통해서 주신 말씀을 반드시 이루시겠다는 말씀이에요. 하나님께서 하실 일은 끊는 가마가 북에서 남쪽으로 기울어졌는데 그 의미는 “재앙이 북방-바벨론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주민들-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부어질 것이다.”(14절) 하나님께서는 다윗 이후로 이어진 유다 왕국을 이제는 미루지 않고 바벨론을 통해서 멸망시키겠다는 예언이었어요. 하나님은 북 이스라엘 왕국이 앗수르에게 멸망하게 심판하시고도 150년을 남 유다 왕국을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좀 더 오래 참지 않으시고, 이제는 심판을 작정하시고 예레미야를 통해서 말씀하셨을까요?
실마리
6.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각 시대마다 필요에 따라 사람을 불러서 사용하셨어요.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출신이 아니고, 베냐민 지파의 땅 가운데 아나돗의 제사장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다윗과 솔로몬 때 활동했던 아비아달 제사장의 후예입니다. 아비아달이 다윗 왕과는 잘 지냈는데, 솔로몬이 즉위할 때 그만 아도니야 편에 서고 말았어요. 그는 솔로몬에게 죽음은 면했지만, 아나돗으로 유배되고 말았어요. 왕정 정치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아나돗은 재야의 땅이 되었어요. 권력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저 조용히 숨죽이고 살아가는 이들이었습니다.
오늘 말씀과 같이 중대한 예언을 하게 하는데 하나님은 예루살렘 출신, 사독 제사장의 후예들 가운데 부르시지 않았어요. 예루살렘에는 다른 똑똑한 종교인들도 많았는데 그들 중 누구도 부르시지 않았어요. 오직 재야 출신의 예레미야를 부르셨습니다. 예레미야도 자기 같은 사람을 부르심에 당혹하였습니다. 그가 쉽게 순종하지 못하고 하나님과 대화를 여러 날 걸쳐서 여러 번 이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그가 깨닫고 순종하도록 기다려주셨습니다. 모세와 같이요. 기드온과 같이요.
7. 하나님께서도 예레미야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해주시고 천천히 설명하시며 기다려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있는 인물들을 마다하고 예레미야를 불러서 사용하신 것은 그들 가운데는 쓸만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은 사람을 보실 줄 아세요. 누구보다도 잘 아십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속을 알지 못해요.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어요. 하나님은 시139:1-4에, 사람을 모르는 것이 하나도 없으세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쉬는지 누웠는지, 일어나 길을 가는지, 일을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슨 말을 할지도 아세요. 하나님은 예루살렘에 사는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길 계획이 없으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완전히 신뢰를 잃었어요. 예언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그대로 전하고, 또 본인이 먼저 순종을 해야 합니다.(참 예언자) 예루살렘에는 이런 참 예언자가 없었어요. 거짓 예언자들로 넘쳤어요.(세상살이에 지혜로운 자들, 고난을 피해서 사는 자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그대로 전하지 않고 걸러서 전했어요. 본인도 순종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들과 예레미야의 차이를 정확히 보셨고, 예레미야는 숱한 고난을 당하면서도 참 선지자의 길을 갔어요.
8. 예레미야가 유다 왕들과 백성들에게 전할 메시지는 매우 부담스러운 내용들이었습니다. 그는 유다 왕국이 멸망할 것을 선언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바벨론 제국에 항복을 하라고도 말해야 했습니다. 그의 인생이 평탄하지 않고 험난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가 갈 길이 험한 줄 아시고, 예레미야에게 네 허리를 동이고 그들에게 말하라.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그들 앞에서 두려움을 당하지 않게 하리라. 18절,“보라 내가 오늘 너를 그 온 땅과 유다 왕들과 그 지도자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의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둥, 놋성벽이 되게 하셨은즉.”
재야의 예언자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날 대상들이 여기 즐비하게 나옵니다. 그 온 땅(유다 왕국만 아니라 그 지경을 넘어서 열방으로), 유다 왕들, 그 지도자들, 그 제사장들, 그 땅의 백성들입니다. 예레미야가 이들을 두려워하게 될 것은 그들이 그만큼 타락하고 하나님에게서 떠났기 때문이에요. 예언자나 목회자가 말을 전할 때 듣는 이들이 들어야 동기부여가 생깁니다. 듣지 않으면 피곤해져요. 갈등이 생깁니다. 유대의 왕과 종교인들이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했습니다.(예수님이나 사도 바울처럼요) 이런 당시 상황은 하나님의 인내가 한계에 왔음을 나타내줍니다.
9. 하나님은 오래 참으셨습니다.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하게 하신 다음에도 150년을 유다 왕국에게 기회를 주셨어요. 이제 하나님의 심판은 더 이상 지연되지 않고 거세게 밀려올 것입니다. 이 재앙은 16절,“무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들에게 절하였은즉 내가 나의 심판을 그들에게 선고하여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징계하리라.”하나님은 악한 이스라엘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로 깨닫도록 징계-고난을 당하게 하실 계획이었습니다.
복음 제시
10.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환난을 당하였지만, 그것이 징계라는 것이 복음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징계합니다. 회초리로 때리거나 아이가 깨달을 수 있는 방식을 택해서요. 자식이 잘못하고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하는데, 그대로 두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자식이 망하게 방치하는 것이에요. 징계가 없으면 사생아라고 성경은 말합니다.(히12:8)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약속은 이런 징계 속에서도 변함이 없이 이뤄졌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과 같이 또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처럼 변덕이 없으세요. 하나님은 이미 모세로부터 다윗, 이사야를 통해서 약속하신 메시야-하나님의 독생자를 이때로부터 수백 년이 지나서 유대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방랑하던 우리 인생은 오직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회복이 됩니다. 이스라엘의 회복도 그리스도와 더불어 이뤄질 것입니다. 이스라엘도 우리와 같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변화되어 갈 때 비로소 참 회복이 이뤄질 것입니다. 장차 이뤄질 종말 이야기입니다.
기대
11. 우리가 대하는 세상은 예레미야가 대했던 당시 세계보다 더 낫지 않습니다. 우리가 맞이하는 세상은 그때와 같이 거칠고 험합니다. 예레미야와 같이 회개를 외쳐도, 요즘 사람들 듣지 않으려고 해요. 이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세상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게 하실 것이다. 그들이 우리를 칠지라도 우리를 이기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개입하실 것이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유다 왕들과 백성들 때문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다 내가 말씀을 전할 의미가 있겠나? 상심하다가 마음에 불이 붙으면-하나님이 주시는 마음-다시 일어나 말씀을 전하며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우리 인생은 예레미야와 같이 사는 것입니다. 세상은 변화할 기세가 없더라도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며, 나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세상을 사랑하며 나갈 뿐입니다. 다 같이 일어나서 찬송하며 이를 위해서 기도합니다.(오늘 찬양: 하나님의 크신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