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까지는 가방을 등에 메고 있었는데(퍽 불편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나그네'가 되어야 할 상황이었다.
그래서 가방을 자전거 짐칸에 묶고, 모자도 쓰고... 그렇게 자세를 갖춘 뒤 정식으로(?) 출발을 했다.
(일단 나온 것에 만족)
일단 출발은 했지만 걱정이었다.
오늘 어디까지 가게 될까? '충주' 쪽으로 가긴 하지만, 여기서 100Km도 더 될 텐데... 거까지 간다는 건 말도 안 되고...... 그렇다면 중간 어디 가서 하룻밤을 자야 하지? 벌써부터 잠 자리가 걱정이었다. 게다가 날도 우중충하다 보니, 즐겁지만은 않았다.
내가 이번에 가는 길은 '남한강 자전거 종단길'로,
일반 도로를 타는 게 아니라서 예전에 비해 많이 안전하고 또 주로 강변을 달리다 보니 경치도 좋은 편이었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강변길은 아니었기에 중간에 마을을 지나기도 했는데,
그러다 보니 국도나 지방도를 지날 때도 있었고,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야 할 때도 적지 않았다.
더구나 내 자전거는 기어가 잘 듣지도 않기 때문에,
일단 오르막만 만나면 무조건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야 하는 점은 이전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일이었다.
날은 서서히 개어갔다.
그것만은 어느 모로 보나 긍정적인 현상이었다.
그만큼 더워져서 힘에 부쳐가긴 했지만......
그리고 이젠 날이 확연히 개,
덥기까지 했다.
그래서 두건도 쓰고 토시까지 끼고는, 뙤약볕 아래를 페달을 밟아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배가 고파(아침도 거른 상태여서) 어딘가 가서 요기를 해야만 했는데,
'여주보' 주변의 한 정자에 가서 잠시 쉬기로 했다.
그런데 입맛이 없었다.
배는 고픈데도 꿀맛 같아야 할 음식은 까끌까끌하고 입안에서 겉놀기만 했다.
한 밤중에 일어나 그대로 날을 샌 뒤에 출발해서 그런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마음이 급해 다시 길을 재촉했다.
남한강 '여주보'를 지나,
'여주' 도심 둔치를 지나면서는,
이런 곳에 저렇게 높은 아파트(?)가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만을 했다.(아래)
그리고 이내 도심을 벗어났는데, 그제야 아까 벌에게 쏘였던 곳의 통증이 좀 가라앉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런데,
어?
내 눈에 띈 건, 어느새 노랗게 익어가는 논의 모습이었다.
여기까지 오는 사이에도 논풍경을 조금 접하긴 했지만 이렇게 노랗지는 않았는데, 여기는 무슨 일인지 노랗다 못해 아예 그 옆은 추수마저 끝난 상태였던 것이다.
그런데 뭐가 그리 바빠 벌써 추수까지 끝냈다지? 아직 가을이 채 오기도 전 같은데, 가을걷이도 끝났다니...... 하는 뭔가 아쉬움과 허무함 같은 것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 '강천보'를 지나게 되었는데, 그 '보'가 한 눈에 봐도 '난림공사' 같았다.
'4대강 사업'을 하면서 그 많은 돈을 썼으면, 기왕에 보를 건설하는 김에 뭔가 제대로 만들거나 작품으로 후세에도 남겨주면 좋았을 텐데,
유치하다 못해 차라리 없느니만 못해 보이는 조형물인지 교량 설치물인지가 정말 어설프고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그 얼마 가지 않아서, 황금들판이 펼쳐지는 것이었다.
아까 잠시 노란 들판을 지나면서 감탄을 했는데, 여기 보니 이젠 완연한 가을이네! 아직도 이렇게 더운데...... 하고도 있었지만, 정말 들판은 가을이었다.
그러면서 갑자기 내 마음도 풍요로워지고 있었다.
야, 이번에 나오길 참 잘했구나! 이런 걸 보기 위해 나온 거나 마찬가진데, 만약 추석이 지난 뒤에 나왔다면(그럴 생각도 없지 않았는데) 이런 들판을 못 볼 수도 있었겠구나! 하고 설레기까지 했다.
나는 그 주변의 들판에서 상당히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아무도 없는 들판을 혼자 이리저리 달리면서 사진도 찍고 괜히 뭔가 냄새를 맡아보기도 하면서......
그저 그런 색감과 함께 하는 것마저도 행복했다.
이제, 내가 출발하면서 벌에 쏘였던 것 같은 건, 아무 일도 아닌 게 돼버린 기분이었다.
첫댓글 멋져요
사진으로 보기에는 그럴 지도 모르지요...
선생님 조심히 다녀오세요~
예, 조심히 다녀왔는데요,
(그렇(위험하)다고 아예 떠나지 않을 수는 없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