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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8일(사순절 세 번째 주일, 서울신학대학교 기념주일)
마태복음 18:12~20
교회의 전략적 중보기도 사역
하늘사랑교회 주일오전예배 설교문
김규태 목사
여러분, 주님께서 교회에 주신 가장 귀한 사역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잃어버린 양을 찾는 사역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함께 읽은 마태복음 18장의 구조는 이렇습니다. 예수님은 12절부터 14절에서 “잃은 양을 찾으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15절부터 17절에서 “죄를 범한 형제를 회복시키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18절에는, “교회의 매고 푸는 권세”에 관해 말씀하셨고, 이어서 19절부터 20절까지는 교회의 합심기도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12절부터 14절에서 어떤 사역을 하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셨습니까? 우리 한 음성으로 12절부터 14절까지를 읽겠습니다.
12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13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이 말씀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잃은 양의 비유입니다. 여기서 길을 잃은 양 한 마리는 하나님을 알지 못해 인생의 길을 잃어버린 영혼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잃어버린 한 영혼을 가서 찾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방황하는 영혼을 찾아가 전도하라는 거지요. 그래서 교회에 주신 첫 번째 사명은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주님께 인도하는 전도의 사명입니다.
그다음 15절부터 17절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죄를 범한 형제를 회복하라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우리 한 음성으로 15절부터 17절을 읽겠습니다.
15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여기서 ‘형제’라는 말은 ‘잃은 양’하고는 다릅니다. ‘잃은 양’은 말 그대로 교회 밖에 있는 전도대상자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형제’는 교회 안에 있는 성도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던 형제가 그만 죄를 범해 그 사실이 드러나게 되면, 교회는 세 번의 신중한 과정을 거쳐 그 사람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혼자서 죄를 범한 형제를 찾아가 권면하고, 만일 듣지 않으면 두 번째 단계로, 한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서 죄를 범한 형제를 권면해야 합니다. 만일 그래도 죄를 범한 형제가 듣지 않는다면, 가장 엄중한 세 번째 단계를 행해야 합니다. 이는 교회에 이 사실을 알리고, 교회의 차원에서 죄를 범한 형제를 권면하는 일입니다.
만약 죄를 범한 형제가 교회의 권면도 듣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런 경우라면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겨야 합니다. 그 이유는 교회가 죄를 범한 형제에게 충분히 회개할 기회를 주었고, 교회의 거룩 성도 유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말씀의 초점은 ‘권징’이 아닙니다. 그동안 교회는 죄를 범한 형제를 돌이키기 위해 세 번의 권면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만일 죄를 범한 형제가 죄에서 돌이키지 않는다면 이 말씀을 근거로 해서 그 형제를 징계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초점은 권징이 아니라 ‘회복’에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교회 내에서 죄를 범한 형제가 교회의 권면도 듣지 않는다면 교회 밖의 이방인과 세리처럼 여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에게는 다시 12절과 14절의 원리가 적용됩니다.
예수님은 교회 밖의 잃어버린 영혼을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셨나요? “찾아서 주님께 인도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죄를 범한 형제가 교회의 권면을 듣지 않을 때는 다시 이방인과 세리처럼 잃어버린 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교회가 주님께 이끌어야 할 전도대상자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 밖의 잃은 양’은 전도하여 주님께 이끌어야 하고, ‘교회 안의 죄를 범한 형제’는 권면하여 회복시키는 것이 이 말씀의 초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잃은 양을 찾고, 죄를 범한 형제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교회에 어떤 권세를 주셨을까요? 18절에 그 답이 나옵니다. 우리 한 음성으로 18절을 찾아 읽겠습니다.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예수님은 매고 푸는 권세를 교회에 주셨습니다. 우리는 보통 하늘에서 먼저 매여야 땅에서도 매이고, 하늘에서 먼저 풀어야 땅에서도 풀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반대로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너희”는 지상에 있는 ‘교회’를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교회에 주신 매고 푸는 권세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킬까요? 우리 한 음성으로 19절과 20절을 읽겠습니다.
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19절과 20절에 보면, 우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중에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가 땅에서 매고 푸는 것은 ‘기도 사역’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기도라기보다는 두세 사람의 합심 기도를 가리킵니다. 곧 개인의 기도 사역이 아니라 교회 적 합심 기도 사역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교회에 ‘합심 기도’라고 하는 강력한 무기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개인적 기도도 능력이 있지만, 특별히 잃어버린 영혼을 전도하고 죄를 범한 형제을 회복하는 사역에는 개인 기도보다는 교회 적 합심 기도가 더 강력한 능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것을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좋은 예가 사도행전 12장에 나옵니다. 헤롯 왕은 교회를 핍박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고, 베드로를 옥에 가두었습니다. 헤롯 왕은 군사 네 명씩 한 조를 이루어, 네 개의 조가 24시간 베드로를 감시하게 하였습니다. 이제 유월절 절기가 끝나는 대로 베드로도 야고보처럼 칼로 순교를 당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위기상황에 교회의 강력한 합심 기도가 베드로를 석방시켰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행 12:5)
교회는 베드로의 석방을 위해 합심하여 간절히 기도하였고, 그 결과 홀연히 나타난 주의 사자가 잠자고 있던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서 깨워 그를 감옥 밖으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베드로가 자신이 꿈을 꾸는 줄로 알았다가 천사가 떠난 후에야 정신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의 일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행 12:12)
교회의 합심 기도가 능력이 있습니다. 옥에 갇힌 베드로를 석방시키신 하나님은 교회가 합심하여 기도할 때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교회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합심하여 기도할 때,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도 교회를 위하여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이와 비슷한 말씀이 마태복음 16장 18~19절에 다시 한번 소개되어 있습니다.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주신 천국 열쇠는 결국 교회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고 풀면 하늘에서도 매고 풀릴 것이라는 교회 적 기도 응답에 관한 약속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 우리는 지금까지 교회 적 합심 기도가 능력이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매고, 푸는 교회 적 합심 기도가 잃은 양을 찾고, 죄를 범한 형제를 회복시키는 사역에 어떻게 적용이 될까요?
우리는 교회의 매고 푸는 권세에 대해서 살펴보기 전에, 먼저 ‘예수님의 양면적 전도전략’에 대해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영혼을 구원하고, 죄에 빠진 형제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양면적인 전략을 사용하십니다(이강천, 「전략적 중보기도」, 푸른초장, 97~98쪽).
하나는 나가는 전략입니다. 잃은 양을 찾아 나서고, 죄를 범한 형제를 찾아가 권면하는 것은 모두 나가는 전략입니다. 그러나 나가는 전략만 있으면 열매가 맺히지 않습니다. 모이는 전략도 필요합니다. 이것은 영혼 구원과 죄를 범한 형제의 회복을 위해 교회가 모여서 기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마치 출애굽기 17장에,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전투할 때 전략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전투할 때 어떻게 싸웠습니까? 모세는 젊은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여 백성들을 데리고 전투의 최전선에 나가 싸우도록 명령하였습니다. 이것은 나가는 전략입니다. 그러나 이 싸움의 승패는 거기에서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싸움의 승패는 산꼭대기에 올라가 전쟁의 승리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던 모세와 아론과 훌의 합심 기도에 달려있었습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파하니라”(출 17:11~13)
전도와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나가는 전략만 사용해서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사역은 영적 사역이기 때문에 모이는 전략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는 우리가 합심하여 기도하는 일입니다. 전도만 한다고 교회가 부흥되는 것이 아니고, 믿다가 낙심한 자를 심방하는 일만으로 교회가 회복되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교회는 전통적으로 전도와 심방을 강조해 왔고 또 열심을 내왔습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모세와 아론과 훌처럼, 후방에서 합심 기도로 지원하는 영적 지원군이 꼭 필요합니다. 전도와 심방 외에 영혼 구원을 위한 전략적 중보기도가 꼭 필요합니다. 기도의 지원군 없이 전도 대만 나가면 쉽게 지치고, 승리할 수 없습니다.
제가 예전에 어느 교회의 전도 대 사역을 맡아 섬길 때 있었던 일입니다. 그 교회에서 가장 나이가 많이 드신 권사님들께서 전도모임에 오셔서 우리는 나이가 많으니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오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이 드신 권사님들께 전도 대원들이 전도하는 동안에 전도현장의 영적 승리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여러분, 전도하는 2시간 동안 기도실에 모여 기도하는 일이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런데도 나이 드신 권사님들은 평상시에 기도를 많이 하던 분들이셨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전도시간에 기도로 전도 대원들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전도를 마친 후, 승리의 보고를 들으시고 함께 기뻐하며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한 전도자는 평상시 보다 일찍 전도를 마치고 교회에 돌아왔는데, 기도실에서 눈물로 기도하시는 권사님들의 기도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분은 전도보고회 시간에 다음과 같은 간증을 나누었습니다.
이분은 이전에 마치 자기가 전도를 잘해서 전도 열매가 잘 맺힌 줄 알았는데, 권사님들의 눈물의 기도가 있었기에 전도 열매가 맺히게 된 것을 오늘에야 알게 되었다며 교만했던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고 고백했습니다.
또 여름에는 어린이부 여름성경학교나 중고등부 수련회 때, 담당 사역자들이 권사님들을 수련회 현장에 초청하여 학생들을 위해 중보 기도하도록 부탁했습니다. 확실히 합심 기도에는 능력이 있음을 사역의 현장에서 절실하게 느끼게 됩니다.
자, 그렇다면 교회는 합심 기도로 무엇을 묶고 무엇을 풀어야 하겠습니까?
첫째로, 교회는 합심 기도로 마귀를 묶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2장 28~29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29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 어떻게 그 집을 강탈하겠습니까? 우리가 잃어버린 영혼을 전도하고, 죄에 빠진 형제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의 눈을 가리고, 그들을 붙들고 있는 악한 마귀를 결박해야만 합니다. 교회는 먼저 합심 기도로 마귀를 묶어야 합니다.
둘째로, 교회는 합심 기도로 마귀에게 묶인 영혼을 풀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마귀를 멸하실 뿐만 아니라, 마귀에게 한평생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사람을 놓아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히 2:14~15). 예수님의 이름에는 능력이 있고, 권세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이름의 능력과 권세를 의지하여, 영혼을 묶고 있는 마귀를 먼저 묶고, 그에게 묶여 있던 영혼을 풀어 자유하게 해야 합니다.
저는 앞으로 우리 교회가 영적인 전쟁에 능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교회 적 합심 기도를 통해 마귀의 세력을 묶고, 영혼을 풀어 자유하게 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합심 기도로 잃은 양을 찾고, 죄를 범한 형제를 회복시키는 사역을 감당하길 소원합니다.
끝으로, 여러분이 전략적 중보기도 사역을 감당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을 간단히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우리는 영적 전쟁의 한계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 전쟁을 통해 영혼을 구원하는 사역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사역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마귀의 세력을 멸하려는 것을 목표로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주님이 이 세상 마지막 때에 이루실 것입니다. 그저 우리의 초점은 영혼 구원에 있습니다.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마귀와 대적하여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역 초점이 영혼 구원에 맞추어지고, 하나님께 맞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또 우리는 영적 전쟁을 물리적으로 해서도 안 됩니다.
자칫 영적 전쟁을 한답시고 산당이나 사찰을 찾아가 기물을 파손하거나 큰 소리를 내며 기도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영적 사역은 영적으로 하는 것이지 물리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마귀가 문고리에 붙어있고, 장롱에 붙어있어서 그것과 싸우느라고 지난 간밤에 한숨도 못 잤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 환상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고리나 장롱에 붙어있는 마귀를 겁낼 것도 없고, 그것들을 거기서 쫓아내는 것이 사역의 목표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우리의 영적 전쟁의 초점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 어떤 분은 사람의 면전에서 “마귀야 떠나가라!”라고 기도하는 분이 계신데, 그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우리 사역의 초점은 그 영혼을 사랑하고, 그 영혼을 주님의 손에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더 사랑하고, 더 인내하고, 더 섬겨야 합니다.
끝으로, 영적 전쟁은 끝까지 영으로만 싸우는 것이고 혈과 육으로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혈과 육으로 싸운다면 우리는 영적 전쟁을 잘못 치르는 것입니다.
저는 먼저 여러분이 천국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행복한 동행을 하셔야 합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먼저 주님의 평화가 임하고, 주님의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날마다 영적 전쟁을 외치면서 전투적으로 기도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유를 가지고 기도하고, 여러분의 삶이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일은 이제 우리 교회가 합심하여 잃어버린 영혼을 위한 전도와 죄를 범한 형제의 회복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일입니다(이강천, 「전략적 중보기도」, 푸른초장, 112~1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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