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2월 15일 (토)
마리아의 향유
오늘의 말씀 : 요한복음 12:1-11 찬송가: 211장(구 346장)
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9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 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보기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
10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11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중심 단어
예수, 마리아, 향유, 장례
주제별 목록 작성
마리아의 헌신
3절: 지극히 비싼 향유를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부었다/ 머리털로 그분의 발을 닦았다
7절: 예수의 장례할 날을 예비하였다
도움말
1. 나드(3절): 히말라야산 다년생 식물 ‘나르드’(감송향)의 뿌리에서 채취한 고급 향료다.
2. 삼백 데나리온(5절): 데나리온은 로마 은전으로, 1데나리온은 성인 남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가치다(마 20:13). 따라서 300데나리온은 1년 치 품삯에 해당한다.
말씀묵상
예수님의 장례를 예비한 마리아
예수님은 죽었던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후에 그가 사는 베다니를 다시 방문하셨습니다(1절). 베다니 마을에서는 예수님을 위한 기쁨과 감사의 잔치가 열렸습니다(2절). 마리아는 예수님께 나아와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았습니다(3절). 그 향유는 노동자의 1년 품삯에 해당하는 300데나리온이나 하는 지극히 비싼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그 향유가 든 옥합을 깨뜨려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은 것은 마리아의 헌신과 겸손의 표현이었습니다. 돈궤를 맡고 그 돈을 훔쳐 가던 가룟 유다는 마리아에게 돈을 낭비한다며 불만을 표시했지만(5-6절), 예수님은 그를 가만 두라고 하시며 마리아의 행위가 당신의 장례를 예비하는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7절).
진실을 은폐하는 자들
예수님께서 죽었던 나사로를 다시 살려 주신 사건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시라는 진리에 대한 부인할 수 없는 증거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나사로 때문에 예수님을 믿게 됐습니다. 그러나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것을 보면서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많은 유대인이 예수님을 믿게 되자 이제는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했습니다(10-11절). 자신들의 이해 관계 때문에 부활의 증인인 나사로를 죽임으로 진실을 은폐하려고 한 것입니다. 이는 당시 종교의 부패가 어느 정도인지를 단적으로 보여 줍니다. 그들은 하나님도, 종교도, 민족성도 없는 타락한 지도자 집단이었습니다.
도움질문
본문 관찰
1. 본문에서 마리아의 헌신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십시오(주제별 목록 작성 참조).
2.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은 마리아를 꾸중한 제자는 누구입니까? 그 까닭은 무엇입니까(4-6절)?
3. 본문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깊은 묵상
1. 여러분이 예수님을 위해 부어드리고자 하는 향유는 무엇입니까?
2. 여러분이 드리려고 하는 향유는 세상적인 가치와 함께 여러분의 온전한 마음이 담겨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3. 오늘 여러분에게 주시는 특별한 말씀(깨달은 점, 느낀 점, 적용점 등)은 무엇입니까?
제공:프리셉트
<오늘의 묵상>
‘유월절 엿새 전’이란 시점은 유월절 어린양이 되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기 엿새 전이란 말과 같다. 예수님이 베다니에 있는 나사로 집에 머물고 계실 때 예수님을 위하여 잔치를 베푼다.
그 자리에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나사로도 예수님과 함께 앉아 있었다.
그런데 이때 마르다가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는다. 마리아의 행동은 너무 모순된 행동이었다. 예수님을 위해 잔치를 베푼 자리에서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마리아와 마르다는 이런 믿음을 가지게 되었을까?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어떻게 부활의 신앙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일까? 예수님이 나사로의 집에 머물 때 두 자매는 예수님과 친밀한 교제를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자신의 눈으로 직접 죽었던 오라비가 무덤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리라!’는 말씀을 믿게 되었을 것이다.
이 믿음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신앙이 아니라 말씀이 실제가 된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300데나리온이나 되는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부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죽음을 이긴 부활의 신앙이다. 하지만 가롯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장례보다 돈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예수님이 이 소리를 듣고 얼마나 서운하고 섭섭했을까?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마르다는 예수님을 위해 버릴 줄 알았다.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서 자신의 소중한 향유를 아낌 없이 부어드렸다.
주님께서 나에게 ‘너는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따르고 있는 나의 제자냐?’ ‘너는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를 따르고 있느냐?’라고 물으신다면 나는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인가?
또다시 궁금해졌다. 어떻게 마리아는 이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발을 닦아 드릴 수 있는 사랑이 있었을까?
성령께서 이 장면을 떠 올리게 하신다.
‘눅10: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마리아는 예수님 발 아래 앉아 말씀을 듣는 것을 무척이나 사모한 여인이었다. 그 예수님을 사모하는 마음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예수님 ‘발’에 부어드린 것이다.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의 발은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의 발로 변화될 것이다.
‘눅24: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사랑의 주님. 날마다 이렇게 주님과 말씀으로 교제케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저도 마리아와 같이 예수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날마다 부어 주시는 그 사랑으로 영혼을 사랑하게 하옵시고 그 영혼들이 마리아처럼 예수님께 말씀 듣는 것을 사모하는 영혼들이 되게 하옵소서.
그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알고 경험하므로 모든 것을 내어 드리고 주님을 따르는 참 된 제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