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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Scene 22. The Remains /남겨진 자들/ -3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자신들의 눈
앞에서 무언가 번쩍였다는 것은 모두가 알아차리고 있었다. 그 결과는
곧 그들의 눈 앞에 나타났다.
삐걱
커다란 탁자가 기이한 소리를 내기 시작하더니 조금씩 불안하게 흔들
거렸다. 아이리스가 앉았던 탁자의 바로 앞 부분에서 커다란 균열이
입을 쩍 벌리더니, 제 스스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탁자는 종내 묵직
한 소리를 내며 주저앉고 말았다.
쿵.
탁자위에 있던 모든 것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굴러 떨어졌다. 방금전
까지 그들 앞에 있던 버티고 있던 탁자는 흉측하게 두쪽이 나서 무너
져 있었고 날카로운 연검이 아이리스의 손에서 서슬 푸른 빛을 뿌리고
있었다.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어 버렸지만,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침묵이 방안을 지배했고 그 한 가운데 아이리스가 서 있었다.
"엘버는 내가 되찾겠다. 그대들에게 바라는 것 따윈 없으니까. 그대들
은 군사들을 이끌고 엘버로 집결하라. 만일……"
아이리스는 잠시 말을 끊었다. 자신을 향한 의혹과 혼란의 시선들. 그
팽팽한 긴장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분명히 그녀였다.
"만일 그것조차 겁이 난다면, 도망가라. 나를 군주로 인정하지 못하겠
다면, 오지 않아도 좋아. 하지만 내가 엘버를 탈환하는 날, 나는 제국
보다 먼저 그들과 싸울 것이다."
그녀의 눈동자가 강렬한 빛을 발하며 마치 최종선고와도 같은 그녀의
목소리가 사람들의 귓가에 퍼져나갔다.
"나의 곁에 서거나, 아니면 나의 적이 되라."
휘릭.
아이리스의 연검이 품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아이리스는 휙 몸
을 돌려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잠깐!"
아이리스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녀는 고개만 조금 돌려 자신을 불러세
운 목소리의 주인공, 댄포드를 쳐다보았다. 댄포드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마치 빈정거리는 듯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엘버를, 혼자 무너뜨리겠다는 겁니까?"
아이리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눈동자에 일렁이는 불꽃
이 그녀의 대답을 대신하고 있었다. 댄포드는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당신은 스스로를 우리들의 군주(君主)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제 군주
가 과연 스스로 말한 바를 이루어 낼 수 있는 사람인지 분명히 확인해
두고 싶습니다."
아이리스의 눈썹이 꿈틀하며 그녀의 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원하는게 뭔가? 댄포드경."
댄포드는 아이리스의 눈빛을 똑바로 마주보았다. 무릎을 꿇지도, 고개
를 숙이지도 않은 채 댄포드는 아이리스에게 말했다. 그의 얼굴에서는
이미 미소가 사라져 있었다.
"당신의 엘버 공략, 저의 이 눈으로 확인하게 해 주십시오."
아이리스는 자신을 도전적으로 마주 쏘아보고 있는 댄포드를 바라보았
다. 마치 그녀의 화를 돋구려는 듯한 빈정거리는 말투로 시작되었지
만, 그의 두 눈은 방금 그의 말이 진심임을 분명히 드러내 보여주고
있었다.
아이리스는 고개를 돌려 댄포드를 외면하며 후드를 덮어썼다. 대답없
는 그녀의 행동에 댄포드는 약간 당황했다. 그의 제안은 거부당한 것
일까?
"목숨을 걸 수 있다면 상관 없겠지."
짤막한 말을 남긴채, 아이리스는 방 밖으로 걸어나갔다. 그러나 댄포
드는 그 자리에 못박힌 듯 꼼짝할 수 없었다. 마지막 순간에 그녀가
보여준 모습이, 그녀의 무심한 행동과 건조한 말투에도 불구하고 어쩐
지 너무나 쓸쓸해 보였기 때문이다.
잠시 주춤하던 댄포드는 정신을 차린 듯 급히 아이리스의 뒤를 따라
자리를 떴다. 남은 것은 무참하게 갈라져 무너져 내린 탁자와, 그 주
위에 얼빠진 듯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사람들뿐이었다. 그러나 늙은 노
튼 후작의 얼굴에는 미소가 걸리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군주(君主)
와, 그리고 조국의 미래를 확인한 늙은 충신의 자랑스러운 미소였다.
* * *
퍼석 퍼석
표면이 살짝 얼어있었던 눈이 부서지는 소리가 단조롭게 울려나왔다.
지호가 발을 디디는 곳마다 가녀린 파열음을 내며 눈길 가운데 점점이
자국이 새겨졌다. 꽤 쌓여 있었던 듯, 눈은 지호의 발목을 덮어 벌써
종아리까지 온통 눈투성이였지만, 지호는 의식하지 못했다.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하얀 눈과 그 위에 마치 보석을 뿌린 듯 반짝이는 모습
뿐이었다.
후우, 후우.
자신의 숨소리가 지호의 귓가를 울리고 지나갔다. 한점의 더러움도 허
용하지 않을 듯한 순백의 세상. 그러나 지호의 마음에 가득한 것은 혼
란과 끊임없는 의문들뿐이었다.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바랜 것일까?
어떻게 보면 너무 많은 것을 바란 것일 수도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
이 얻고자 하는 그런 것들과는 전혀 다른 것을 지호는 원했으니까. 그
러나 그 흔한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
이 다른 사람들의 희생과 눈물, 심지어 피를 요구하는가를 생각한다
면, 지호가 원했던 것은 너무나 작은 것일 수도 있었다.
나는 그저, 나의 길을 걷고 싶었을 뿐인데……
길게 내 뱉은 자신의 숨결이 하얀 영혼처럼 하늘로 피어올랐다. 언제
나 지호가 원한 것은 단 하나, 자신이 선택한 자신의 길을 걷고 싶다
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이 정말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도 자신할 수 없었다.
나의 길이란게 대체 뭐였지?
지호의 눈 앞에 결코 잊을 수 없는 모습이 환상처럼 떠올랐다. 불타는
자신의 고향 마을을 바라보며 서 있던 카르나스, 그리고 렌의 뺨에서
빛나는 눈물.
그래, 바로 그때부터였지.
자신의 앞에 나타난 카르나스는 이때껏 지호가 보았던 그 누구와도 달
랐다. 그의 모습은, 그리고 그의 눈동자는 불꽃처럼 빛나고 있었다.
강철의 의지. 지호는 그의 눈동자와 말에서 그런 것을 느꼈다. 자신이
갖고 있지 못한 것, 심지어는 상상해 본 적도 없는 것. 언제나 도망자
였고, 비겁자였던 자신에게서는 결코 발견할 수 없었던 그것.
자신의 삶이 온통 거짓으로 느껴졌던 그때, 자신을 둘러싼 것들이 온
통 가식이라고 느껴졌던 그때부터, 지호는 자신만의 길을 갈망해 왔
다. 자신의 삶이 거짓이 아니라고, 번지르르한 껍질뿐이 아닌 무엇이
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신만의 삶의 길.
"큭큭."
자신도 모르게 자조적인 웃음이 새어나왔다.
나의 길? 동료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조차 내게 등을 돌렸어. 스승님들
의 기대마저 저버리며 살리려 했던 그 사람마저 끝내 죽음의 길로 떠
나 보내고, 이렇게 도망치듯 떠나온 내가?
지호의 생각은 점차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지호의 마음
한 구석에서 울리는 그렇지 않다는 가녀린 목소리는 자학이라는 쾌감
의 유혹에 덧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런 주제에 나의 길이라고?
[당신이 원하는 것은 카르나스야!]
지호는 이를 악물었다. 자신을 향해 소리치던 아이리스의 목소리가 귓
가에 생생하게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아이리스의 말이 맞을지도 몰라. 난, 그저 그런 사람들처럼 되
고 싶었을 뿐인지도…… 아니면……
지호의 발 밑에서 퍼석하는 소리가 나며 눈이 부서졌다.
렌…… 그저 그녀를 원한 것뿐이었는지도 모르지.
입가에 떠올랐던 미소는 어느새 굳어있었다. 지호는 목에서 쓴물이 올
라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처음부터 알았다면…… 좋았을텐데.
째앵
웃.
갑작스레 그의 시야를 파고드는 강렬한 빛에 지호의 생각을 끊어져 버
렸다. 지호는 손을 들어 눈을 가리며 강렬한 빛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
해 눈을 가늘게 떴다.
"아아……"
지호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눈 앞에 순백의 평원이 펼쳐져 있
었다. 마치 병풍처럼 주위를 둘러싼 산들 사이로 새하얀 눈의 낙원이
고요하고 장엄하게 펼쳐져 있었다.
세차게 불어오던 차가운 바람도 그곳에는 없었다. 다만 눈 앞에 보이
는 것은 푸른 하늘과 눈 덮인 세상뿐이었다. 그 순간 지호는 자신이
목적했던 곳이 바로 이곳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걸음을 먼춘 지호는 자신의 가슴께를 더듬어 줄에 걸린 반지 하나를
꺼냈다. 새로운 주인을 찾아 유혹하는 것일까? 햇살 아래 드러난 검은
색의 반지는 정교한 세공을 뽐내듯 반짝이고 있었다. 지호는 반지를
꽉 움켜쥐었다. 지호의 체온으로 덥혀진 그것은 딱딱했지만 은은하게
열을 발산하고 있었다.
사람은 이미 싸늘하게 식었는데, 이 따위 반지는 아직도 따뜻하다니…
…
본가에서 보았던 렌의 모습이 생각났다. 옆에서 가주가 무어라고 말을
해 주었지만, 지호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차갑게 식
어버린 렌에게 박혀 있었다. 지호의 떨리는 손가락이 렌의 얼굴에 닿
는 순간, 지호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그녀의 온기가 이미 사라져 버렸을 것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죽음은 그녀에게서 부드러움마저 앗아가 버렸다. 지호의 손가
락 끝에 닿은 그녀는 차갑고 단단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지호는 아프
도록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을 남겨놓은 채 그녀는 떠나가
버린 것이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세계로.
"후욱."
자신의 입에서 나온 뜨거운 숨이 새하얀 김이 되어 눈 앞을 흐렸다.
이 고요한 세계 가운데 들리는 것은 오직 자신의 숨소리뿐이었다. 지
호는 눈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마치 그린 듯 새파란 하늘에는
한줄기 구름조차 보이지 않았다. 온 세계에 오직 자신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호의 머릿속을 떠돌던 모든 것들이 의미를 잃고 점차 사라져 갔다.
자신이 왜 이곳에 왔는지조차 더 이상 생각나지 않았다. 지호는 다시
한번 길게 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입에서 내뿜어진 하얀 김이 하늘을
향해 오르는 영혼처럼 길게 피어올랐다. 그리고 지호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 순백의 세계를 향해.
뽀드득, 뽀드득.
발 밑에서 들리는 소리가 변했다. 더 이상 파열음을 내며 부서져 나가
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지호의 발은 어느새 발목을 넘어 정
강이까지 눈에 파묻히고 있었지만 지호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젠장. 뭐가 그렇게 급한거야? 도무지 따라잡을 수가 없잖아!"
"글쎄?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서두르는 것 같아 보이진 않았는데……
빠르긴 정말 빠르군. 삼일동안 겨우 그의 등 몇번 본 것이 다야."
그레이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뒤로하고, 케이는 괜한 나무를 발로 차며
짜증을 내고 있었다.
타악
"이봐, 케이. 어떡할거야?"
"뭘!"
뾰족한 그녀의 반응에 그레이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지금 그
가 하려는 말은 그저 웃음으로 넘겨버릴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길에서 벗어난지도 벌써 삼일째야. 지금이라면 아직 돌아갈 수도 있
지만 만일 오늘이 지나도록 계속 이 상태라면……"
그레이는 말끝을 흐렸다. 이대로 계속 그 정체불명의 사내를 쫓아간다
는 것은 무모했다. 그는 분명히 동행을 거부하고 있는 데다가, 그가
가는 이 길이 반드시 엘프시그어로 향한다는 확신조차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 사내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계속 그를 뒤쫓는 것 조차 불
가능한 것이 현실이었다.
그는 새벽이 채 밝아오기 전부터 움직이기 시작해서 밤늦게까지 걸음
을 멈추지 않았다. 당연히 그에게 보조를 맞출 수 밖에 없는 케이와
그레이에게는 엄청난 강행군이었다. 그의 뒤를 따르던 지난 삼일동안
별다른 사고가 없었다는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지금도 조그맣게 보이던 그의 뒷모습을 놓쳐 버리고는 여기서 이렇게
쉬고 있는 중이 아니었던가? 그레이의 말대로 이제는 한계인 것이다.
그러나 그레이는 케이에게서 기대한 반응을 얻지 못했다.
"가자!"
케이는 내려놓아던 짐을 들러메고는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야, 야! 얼마나 쉬었다고 벌써……"
그러나 케이는 그의 말에는 대꾸도 없이 바쁘게 발걸음을 옮겼다.
"쳇."
그레이는 별 수 없이 차가운 바위에서 엉덩이를 떼고 케이를 따라 걷
기 시작했다. 어차피 그에게는 결정권도, 케이의 고집을 꺾을 자신도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저 손을 놓고 있을 수 만은 없는 일이었
다.
최악의 경우엔……
'목숨을 소중히 하라'는 것이 그들이 배운 첫번째 교훈이자 명령이었
다. 그레이는 앞서가는 케이의 등을 보며 얼굴을 굳혔다.
"헉, 헉."
걷기가 힘들었다. 발은 마치 무거운 족쇄처럼 지호를 잡아 끌고 있었
고, 순백의 평원은 자신을 거부하고 있는 듯 걸어도, 걸어도 그 가운
데 자신을 받아들여주려 하지 않았다.
거친 숨소리만 심장 박동처럼 주기적으로 울려왔다. 그 숨소리가 마치
자신을 재촉하는 듯 느껴져서, 지호는 정강이까지 올라온 눈을 헤치면
서 앞으로 나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크윽"
퍽
마음만 급하게 나간 지호를, 무거운 발이 따라주지 않았다. 차가운 눈
이 지호의 얼굴을 때리며 시야를 가렸다. 지호는 하얀 눈밭에 넘어지
고 말았다. 그러나 지호는 마치 경기하는 선수라도 되는 듯, 벌떡 일
어났다. 바닥을 짚은 손에 감각이 없었지만 지호는 상관하지 않았다.
왜지? 왜 이런 일이 있어야만 했던거야? 대체 왜? 누구 때문에?
누구 때문인가? 이곳까지 오면서 지호가 몇번이고 스스로에게 되뇌었
던 질문이었다. 처음에는 카르나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막아
선 아이리스 때문이라고, 그녀를 데려간 금발의 지크힐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본가에서 일의 전말을 듣게 되었을 때는 일레인이 죽이고 싶도록 미웠
다. 그녀 때문에 모든 비극이 시작된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언제나 다다르게 되는 질문의 최종적인 결론은 한결 같았
다.
나 때문이야. 나 때문에……
자신이 그녀를 데려오지 않았다면, 자신이 그녀에게 집착하지 않았다
면, 그리고 자신이 그녀를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면 아무런 일이 없
었을 것이다. 자신이 제국에 돌아오지 않았다면, 그녀가 그렇게 죽어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렌의 죽음에 대한 분노와 원망을 쏟아내다 보
면, 결국 마지막 차례로 돌아오는 대상은 항상 자기 자신이었다.
내가 죽였어.
자신이 그녀에게 검을 들이댄 것은 아니다. 자신이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간 것도 아니다. 그녀를 죽인 것은 카르나스였고, 그녀를 죽음으
로 몰고 간 것은 그녀의 삶을 억압해 왔던 과거의 망령이었다. 그러나
그 누구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해도, 자신이 그녀의 죽음으로부터 자유
로울 수는 없었다.
자신은, 그녀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비록 세상 모
두가 그것을 부인한다고 해도, 지호 자신만은 그것을 부인하지 못했
다.
"큭큭. 그녀의 마지막을 함께 하고 싶었다고?"
웃음이 새어나왔다. 여기까지 오면서 웃음을 흘린 적은 있었지만 울어
본 적은 없었다. 싸늘해진 그녀를 발견했던 그 빗속에서, 자신의 눈물
은 모두 말라버린 것일까?
아니면, 웃음과 울음은 같은 건가……
알 수가 없었다. 말이 되지 않는 것 같기도 했고, 정말 그런 것 같기
도 했다. 지금에 와서는 어느것 하나 이해되지 않는 것 투성이었다.
지호에게 세상은 온통 어그러져 있었다.
렌……
환상처럼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라왔다. 그녀의 얼굴, 그리고 커
다란 검은 눈동자, 반짝이는 그녀의 검고 긴 머리카락. 그녀는 마치
처음 만나던 그때처럼, 단정한 제복을 입고 지호를 보며 서 있었다.
그녀는 지호를 향해 미소지었다. 미소짓는 그녀의 머리카락이 천천히
펄럭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람이 불어왔다.
휘이이잉-
웃
갑작스런 돌풍이 순백의 세계를 휩쓸었다. 하얀 눈가루가 마치 폭발하
듯 날리고, 세상은 온통 백색의 눈가루로 덮여버렸다. 어디가 하늘인
지, 어디가 땅인지 알수 없는 무채색의 세상속에서 지호는 순간 한쪽
발 밑이 허전해지는 느낌을 받으며 균형을 잃었다.
아차!
그러나 지호의 몸은 이미 허공에 떠 있었다. 회색으로 뒤덮이는 시야
속에서, 무언가 자신을 포근하게 안아주는 것 같은 느낌이 지호를 감
싸왔다. 그리고 지호는 정신을 잃었다.
첫댓글 즐독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감!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