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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이셨지만 그분의 역할(사역)은 변천되어 왔다, 그리고 사역은 마쳐질 것이요 그분은 원래의 위치, 말씀이신 하나님으로 돌아가실 것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다른 칭호들, 임마누엘이라든지, 메시야(그리스도)라던지 인자라던지 이스라엘의 왕이라던지 하는 칭호들은 초역사적인 것이 아니라 성경에 제시된 역사 안에서 일어난 사건들이고 모두가 인간들과 하나님께서 관련되어 있는 칭호란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그분의 사역을 말씀해 주는 것이기도 하고 지위를 말해주기도 합니다. 대부분 매우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창조사역에 동참하셨고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카나안 전쟁을 이끄시기도 했으며(군대대장), 이스라엘 역사의 모든 중요한 국면들에 "주의 천사"라는 이름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이 주의 천사는 너무 유명해서 느부캇넷살 같은 이방 군주조차도 알아보았을 정도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풀무불 속에서 멀쩡한 채로 거닐던 때 그와 함께 있는 이를 보고 왕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가 말했습니다. 이것을 변개된 현대 성서들에는 "신들의 아들"이라고 변개시켜 놓음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원 전(BC) 이방 왕들에게까지 알려질 정도로 유명한 분은 아니었다는 자기들의 사사로운 믿음을 강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신은 유명한 분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조차도 그분이 바로 예언된 그 메시야, 느부캇넷살 왕조차도 알 정도의 예언된 "여인의 씨"(메시야)인 줄은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쨋든 변개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또한 하나님이시라는 신성의 증거들도 많이 훼손시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방 왕이 어떻게 메시야를 알까, 그렇게 말한 것이지만 느부캇넷살은 현대 신학자들보다도 지각이 뛰어난 인물이었던지 첫눈에 알아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현현"(나타나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때로는 사람의 모양으로 구약에도 나타나셨는데 그때는 물론 천사의 형태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주의 천사, 야곱에게 나타나신 그 주의 천사, 여호수아에게 나타났던 주의 군대대장 천사, 삼손의 부모에 나타난 천사, 많은 천사들이 나오는데 이 천사들 앞에는 "주의 천사"라는 특정 수식어가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상 구약에서 특별히 이름이 거명되어 있는 천사, 가브리엘, 미카엘을 제외하고 그냥 천사라고 나올 시에는 그 천사는 대부분 문맥상 "주의 천사"에 해당합니다. 다시 말해 대리자로서 천사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그것은 주의 현현(천사)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느부캇넷살이 목격한 풀무불속의 천사도 그래서 "신들의 아들"이 아니며 "하나님의 아들"인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 있는 줄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하나님은 아들이 계시다, 그 사실이 고대 세계에 너무나 잘 알려진 진리이기에 종교들의 기원지에서 다스린 그 왕은 보자마자 알아본 것입니다. 신화들은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 말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중근동 신화들의 하나님의 아들은 범죄한 천사들의 이야기와 뒤섞여 있어서 정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신화들은 일종의 마귀적인 계략과 지혜를 담고 있어서 적의 편에서 볼때의 하나님에 대한 묘사들도 있습니다. 그러한 신화들에서 원래 창조주인 하나님은 힘이 없고 실권을 놓쳐버렸고 뒷자리에 물러앉은 상징적 존재이고 그 신을 따르는 자들은 무지막지하고 사악한 자들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헬라 신화들에서는 좋은 역할은 모두 마귀의 주구들이 맡고, 나쁜 역할들과 사악한 신들은 하나님과 성도들에게 붙여 놓았습니다.
하여튼 구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안 계셨던 것이 아니라 "활발히 활동중"이셨고 그분은 육신적 인간의 몸을 입지 않으신 상태에서 때로는 "주의 천사"로 인간들에게 계시를 주시고, 때로는 영적 세계를 다스리시는 실제적 사역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초림하셨을 때 그분께서 "왕으로서" 선포되시기 전에는 특별히 선지자로서의 사역이 본모습이었다 할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마지막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면서 왕으로 선포되셨습니다. 그 전에 그분께서는 침례인 요한의 사역을 이어서 선지자로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물론 그분의 사역 3년 반 전체가 선지자로서 하신 것인데, 기적들이 바로 선지자로서의 표적입니다. 유대 백성들은 예수님이 왕이시거나 그들의 구세주(메시야)이신 것을 받아들이기 전에 최소한 그분이 선지자이심을 믿어야 했습니다. 그분이 선지자이심을 믿은 백성들 중에서 메시야이심을 믿는 소수의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사실은 백성들도 예수님께서 왕이신 것을 믿었고 제자들도 믿었습니다. 그러나 순서에 따르면 왕은 먼저 고난을 겪고 십자가를 진 후에 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것도 초라한 서민의 행색이었습니다. 그것은 순서를 보여주는 것이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결단코 왕이 되실 의향이 없기 때문에 "나는 상징적으로만 왕이니라" 하시려고 "서민 코스프레"를 하신 게 아니란 얘깁니다. 먼저 선지자로서 고난을 당하셔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호산나 다윗의 아들 왕이여 할 때 그것은 당연히 받아들이시지만 현재 왕으로서 통치는 안 받아들이시고 고난으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벌써 사람들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인식이 비뚤어지기 시작합니다. 사실 그 때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정말 왕이 되실 거라고 믿고 실컷 환호하고 축하하며 했는데 그분께서 행색도 누추 남루하고 왕으로 다스릴 기색도 없기 때문에 그때 환영하던 사람들 다수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잡히셨을 때 오히려 억하심정으로, 속았다는 심정으로 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도 인식은 발전한 것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의 왕으로서" 만족하시는 것이지 누추한 땅의 보좌 같은 것은 헤롯이나 카이사에게 넘겨주셔도 지장없다고 여기신다, 그리 말합니다. 예수님은 하늘만 다스리는 분이요, 땅은 그분과 무관하다, 그렇게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창조주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밝히고 있습니다. 창세기는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우리가" 창조한다고 하셨지, 성부 하나님 혼자 라던가 성령만이 그렇게 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분명히 세상 창조 사역과 인류 창조에 직접 참여하신 "당사자"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땅을 합법적으로 다스리고 소유할 법적 권리"를 가지셨습니다. 그래서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으로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면서 실제로 왕이 되신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대적자들을 무찌르고 왕이 되실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지상왕국"과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바로 마귀의 주장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귀가 바로 그런 주장의 진원지라는 것입니다. 마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조주이실지라도 이땅은 자기 것으로 계속 삼기를 원합니다. 마귀가 처음부터 원했고 지금도 원하며 멸망할 때까지 붙들고 있을 신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땅에서 왕으로 통치하시는 것을 못하게 한다는 그것입니다. 마귀는 땅 중에서도 특별히 팔레스타인 땅을 중요시합니다. 이 땅은 "하나님이신 왕"이 다스릴 땅으로 예정된 땅이기에 아브라함 때부터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해서 팔레스타인땅을 어떻게 해서든 예수 그리스도와 상관없게 만들려고 수단을 다한 것입니다. 그 땅에 가장 가증한 죄인들을 심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그리고 거기서 퍼져나간 풍습과 또한 거인들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 때 이미 대홍수 이전의 거인이 다시 퍼졌습니다. 마귀의 세력은 팔레스타인 땅에 한 통일왕국을 세우지 않고 이상하게 그리스 같은 도시국가로 만들었습니다. 수십개의 도시 국가들이 출애굽 이스라엘이 왔을 때 그땅에 퍼져 있었습니다. 마귀가 일하는 방식은 하나님의 계획과 항상 대칭되어서 따라갑니다. 마귀는 빈틈을 노리는 데 있어서 전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을 이끌어 내서 약속의 땅에 안착시키고 메시야가 오게 만든다면 마귀는 그땅에 악의 씨를 심되 촘촘히 심어서 실수로라도 몇개 남겨지게 해서 그 아브라함 자손을 부패시키려고 한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힘써 진멸했지만 워낙 족속들이 종류가 많고 산지에 있는 자들도 있고 해서 다 멸망시키지 못하고 남겨두었습니다. 그런 자들은 나중에 모두 이스라엘을 치는 가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자들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을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바로 이 가시들입니다. 사실은 그 고대 카나안 원주민의 후손이 아닌데 후손이라고 짐짓 주장하는 무리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자기들 뿌리에 대해 거짓말하는 대로 인정해 준다 치더라도 그들은 이스라엘을 찌르는 마귀의 가시들인 것은 자기들 말로 입증됩니다.
이렇게 마귀는 예수 그리스도가 왕으로 치리하시는 것을 막으려고 하고, 그것이 마귀가 이 땅에서 진멸되고 끝장나는 수단임을 알기에 막으려고 결사항전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스스로의 힘으로만 이것을 못 막는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결국에 계시록에 기록된 대로 하늘에서도 나머지 세력들을 잃고 땅으로 쫓겨내려오고 또 얼마 안되서 무저갱으로 들어가야 되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마귀는 자기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왕되심에 대한 "사보타지"를 하는 게 아니라 교회라는 이름으로 사보타지를 하게 만듭니다. 바로 교회를 통해서, 놀라운 일이지만 그렇게 하고 있고 수많은 목사들이 교회들이 마귀에 놀아나서 춤추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통치하시는 것을 거부하고 영적으로 해석하며 믿지 않는 "무천년주의"류의 신학입니다. 사실은 무천년주의 하나가 아니라 셋트로 묶여 있는 그런 류의 신학들인데, 혹자는 "대체 신학"이라고도 부릅니다.
대체신학이라는 말은 신약교회가 유대백성을 대체했으므로 예수님은 교회를 통해서 세상을 영적 통치하시는 것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열심히 전하면 세상 왕국이 하나님 왕국으로 바뀌는 것이고 교회는 세상 참여 정치 참여 문화 참여해서 세상을 그리스도께로 이겨오자, 이런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이 주장을 누가 좋아할까요, 마귀가 좋아할까요 하나님께서 좋아하실까요.
이런 무책임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 다 구원받지 못한 마귀의 자식들만 있다고 하면 큰 문제는 안됩니다. 무시해 버려도 되니까, 그런데 거듭난 자녀들이 그런 주장에 현혹되어서 동조하고 하나님께 "아 제발 그렇게 해주십시오, "한국이 그리스도의 왕국"으로 성화되고 그렇게 해주세요" 이런 기도를 합니다. 이방 왕국들은 마귀의 권세에 속한 것으로 하나님께서 허용하셔서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왕국의 권세"는 재림하시는 예수님이 무력으로 마귀에게서 빼앗으시는 것이지 그리스도인을 통해서 "영적으로, 점진적으로" 획득하는 게 아닙니다. 지금 그리스도인이 증거하라고 명 받은 복음은 "왕국을 확장하거나 왕국을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왕국에 속할 자"를 데려오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 왕국은 예수 그리스도께로 넘어오지 않았고 앞으로도, 재림때까지 넘어오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 왕들은 한 깃발 아래 모여서(단합, 연합, UN)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할 것입니다. 그 현실은 이미 목도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관심은 이제 오바마나 푸틴이나 왕들이나 수상들 같은, 얼굴마담과 어릿광대들에게 오래 머물 수 없습니다. 그들은 잠시 대본에 충실하게 연극하다가 진짜 왕이 오시면 권좌를 양보하고 물러나야 할 어리숙한 인간들입니다. 지금 그리스도인이 전하는 복음은 세상을 그리스도께 속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죄인들을 빼 와서 그리스도께 속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왕이 오시기 전에 백성이 먼저 준비되어야 하고 백성 뿐 아니라 관리들, 귀족들, 통치자들이 다 있어야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침례인 요한은 백성들을 먼저 준비시켰습니다. 앞으로도 대환란 때 두 선지자가 와서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더러움을 씻겨내서 오시는 왕을 맞이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예비되어야 하는 존재 중 어떤 자들입니까? 그리스도인이 이스라엘과 같은 백성입니까?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불립니다. 제사장인데 왕으로서의 권세도 가졌다는 뜻입니다. 이 제사장 직분은 로마카톨릭 제사장들(신부들)처럼 가짜 예수 피를 만들어서 사기치는 그런 제사장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 그리고 그 피의 속죄능력을 알려서 많은 사람을 거듭나게 하는 일을 하는 것이 이 제사장 책무입니다.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지상 생애에서 제사장 직무를 일부 감당하셨습니다. "네 죄가 깨끗해졌느니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은 그분이 레위 지파 제사장이 아닌데도 제사장 역할을 하셨던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또 어떤 경우에는 치유받은 문둥병자들에게 "제사장들에게 가서 보이라"고 하셨기에 율법 하의 제사장들에게 양보하셨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초림때 선지자로서, 현재는 하늘에 대제사장으로서 계시며 미래에 왕으로 오신다는 말씀은 실로 진리이지만 그것은 그분의 역할이 강조되는 핵심이 그것이라는 얘기이지 초림 때 그분은 제사장 역할이나 왕으로서의 권위가 없으셨다는 말씀은 아닌 것입니다.
물론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정말로 하늘에 대제사장으로서 "전임"하고 계신데 이 사역은 앞으로 오셔서 세상을 통치하시는 것만큼이나 중차대한 일입니다. 이 시대에 구원을 얻는 사람들은 모두 이 "하늘의 대제사장"의 중보로서 "죄사함"을 얻고 구원의 보장을 받고 은혜를 얻고 온전해 지기 때문입니다. 율법 시대에는 하늘에서 이런 일을 베푸실 대제사장이 없었고 단지 그 예표하는 그림자로서 인간 제사장들만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늘에 그분이 실존하시는 것(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입니다. 그분이 하시는 일은 구속 사역으로부터 손을 완전히 떼고 땅의 제사장들(카톨릭 사제들?, 혹은 제사장을 참칭하는 어떤 종교인들)에게 맡기신 게 아니란 것입니다. 그분은 여전히 친히 인간의 죄들을 자신의 피로 속죄하시는 대제사장으로 계신 것입니다.
이 사실은 "구원의 보장"에 대해서 실패할 수 없는 결정적 단서와 증거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늘의 속죄는 완전하기 때문이고 그리스도의 피는 오염될 수가 없으며, 중보하는 대제사장은 완전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카톨릭 사제들처럼 주문을 외우며 포도주를 피로 바꾸는 마법 따위를 행하지 않고도 수억의 죄를 한순간에 사하실 수 있는 "능력 많은 대제사장"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구원은 받은 사람들조차도 고통속에 빠져서 여전히 "하나님께서 아직 나를 용서를 덜 하셨을지도 몰라"라는 자책 속에 살아갑니다. 내가 죄를 짓는다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심지어 지옥에 갈 것이라는 뒷덜미를 잡는 두려움에 마음 속에 납덩어리를 하나씩 달고 살아갑니다.
성경을 제외한 어떤 증거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이 완전하고 최종적이며 결정적으로 이루어진 구속임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세상은 이런 이야기를 싫어하고 신화라고 하며 허탄한 이야기 취급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동화라고 말하거나 심지어 "싸구려 구원" 같다고 말합니다.
기왕에 싸구려 구원에 대한 말이 나왔기에 덧붙인다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연한 구원의 진리를 전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카톨릭 신자나 교회 다니는 불신자를 만날 때 꼭 듣게 되는 말입니다. 나는 그런 "싸구려 구원"은 받고 싶지 않아요.
나는 그런 "값싼 복음", "싸구려 복음"은 원치 않아요. 그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값없이(freely)라는 용어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쓰셨습니다. 이걸 놓치고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처음 나온 이 말은 아담에게 동산의 모든 실과를 자유로이 먹으라고 하셨을 때 처음 나왔습니다. 이 값없이(freely)의 대상은 "생명과"를 포함하고 있었던 것을 봅니다. 제외되는 대상은 단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 뿐이었습니다. 생명과는 애초부터 freely given 이었습니다. 그리고 영생을 주심에 있어서 freely의 원칙은 구약에서부터 지금까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습니다. 구약시대라고 해서 행위로만 열심히 선을 행한다고 영생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믿음이 있어야 했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신뢰해야 했고 그런 믿음의 사람의 선행이 뒷받침되어서 구약적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freely가 문자 그대로 freely입니다. 왜냐하면 죄에 대한 합법적 제물이 드려졌고 댓가는 지불되었으며 청산되었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시고자 했던 그 생명과가 처음부터 값없이 주시고자 한 목적이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 목적대로 이루신 것입니다.
성경의 마지막인 요한계시록도 freely가 장식하고 있습니다.
대환란 시대의 국면들, 천년왕국의 행위 체계를 통과한 후 영원시대로 넘어간 문턱에서 제시된 말씀은 또다시 창세기의 멋진 메시지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오라, 자유롭게 마시라. 누구든지, 자유롭게가 성경의 결론을 맺는 것임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얼마나 강조하고 또 강조하시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생은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보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유언"(다 이루었노라)으로 성취되었으며 당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집행인으로 앉아 계셔서 이행 과정을 보고 계십니다. 그 보장은 세월에 따라서 녹스는 것이 아니기에 때가 되면 증명되고 보장은 현실이 될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졌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생을 풍성히 주시며 보장하시는 하늘의 대제사장이심을 믿는 믿음이 있는가, 그것이 앞으로의 영원을 결정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또한 값없이 주심의 의미를 놓쳐서는 안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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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멘 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