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대로입니다. 증답경제에는 물론 해당 지역의 농업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물산을 선물을 주고받음을 통해 해결해주는 실질적인 기능이 있죠. 그런데 그 실질적인 기능 외에 사회적 기능이나 의미가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에서 설명하는 '선물'의 의미와 기능에 부합되는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난 중간고사 시험지에 첨언 삼아서 증답경제에 호혜성의 원리와 부합하는 면이 있다고 갈겨놓고 나왔거든요(...)...;;;;
자세하게 이야기하자면 이렇습니다. 비서구사회의 축제는 서로 선물하는 행동이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북미 인디언의 포틀라치, 뉴기니의 돼지축제 같은 경우가 그렇습니다. 마르셀모스는 이들이 축제에서 보여주는 증여행위에 깃든 사고방식이나 철학을 '호혜성의 원리'를 통해서 설명했는데 대충(제가 인류학 전공자가 아니라서;;;) 이런 이야기입니다. 선물을 주고받는 당사자는 선물에 대하여 삼중(주고, 받고, 답례하고)의 의무를 갖습니다. 이 의무를 이행하는 것른 단순한 물건의 교환이 아니라 양쪽이 시간을 특별하게 사용하거나 명예를 획득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거죠. 선물을 주고 받음으로서 서로 경제적/실질적 이득을 나누는 것과 함께 사회적 지위 등도 확인되고, 그를 통해서 구성원 상호간에 자신들이 서로 호혜적인 관계라는 걸 확인하게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선물은 부의 사회적 재분배이면서 주고 받는 이들 간의 사회적 관계를 재확인하는 수단이기도 합니다.(이를테면 뉴기니의 돼지축제는 그 해의 호스트가 자기와 가까운 사람일수록 돼지고기를 더 많이 주거든요. 사회적 친소관계가 확인되는 겁니다.)
시험 답안을 갈겨 쓰면서 급 떠올라서 답안에 추가하기는 했는데 증답경제를 호혜성의 원리로 이해하는 게 무리 없는 생각일까요? 뭐...틀렸대도 점수가 깎일 거 같지는 않지만 궁금해서 한 번 카페에 여쭤봅니다 ㅎㅎ
일반적으로 '호혜적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증여론'에서 설명하는 호혜성이 같지 않기 때문에 인류학적 개념에서 호혜성의 원리에 대해 설명을 해두었습니다. 이 개념에 일치한다고 볼 수 있을지 토론을 해주셨으면 하는 거고요. 자세한 설명을 좀 참고해주실 수 없을까요? 요약하자면 1. 선물을 주고, 받고, 답례하는 삼중의무 2. 선물의 '흐름'으로 형성되는 재화나 가치의 재분배 3. 사회적 친소관계 재확인(+이를 통한 사회적 지위 강화) 가 핵심이구요 첨언하자면 기본적으로 포틀라치나 돼지축제, 뉴질랜드의 '하우' 같은 것들은 모두 매우 소비적인 축제입니다.
조선후기 충청도 서천현에서 살았던 조병덕의 수많은 편지들을 보면 좀 다른 양상도 보입니다. 조병덕은 대략 순조-고종시기를 살던 지방유학자였습니다. 원래는 서울 노론의 명문가였으나 지방으로 내려왔고, 고종 초에 영의정을 지내며 정계의 거물로 활약하던 조두순을 '아저씨'로 칭했던 양주 조씨 명문가의 후손이었지요...^^;
조병덕의 서간문 중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본인의 인척이나 제자들에게 각종 명목으로 선물과 금전을 제공할 것을 요구했고 또 받았다는 겁니다. 예컨대 조병덕의 조카가 문중에서는 좀 풀렸는지 지방고을의 부사를 지냈는데, 조병덕은 그에게 자신의 지인에게 선물할 고급부채나 간지나는 관용 고급책력(달력)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냅니다. 조선시대에는 요즘처럼 돈만주면 좋은 물건을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 즉 '관'에서 생산하고 분배하는 물품이 고급 아이템이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조카가 봉이었는지 자제의 혼인비용 등 각종 금전적인 지원도 요구하는데, 사실 조병덕은 돈이 없어서 빚으로 인생을 살다 간 사람인데 받은만큼 '답례'할 껀덕지가 없었지요...-_-; 이런 예로 보아 반드시 답례라는 것이 따르지 않는 경우도 꽤 있었다는 겁니다.
개인적으로 증답경제를 논하면서 먼저 [도덕경제]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그 틀 안에서 증답경제를 논해야 한다고 봐요...ㅎㅎ;;
@Mouloud전근대사회에서는 일단 생산력이나 생활수준이 근대이후에 비해서 낮기 때문에 만약의 극한상황에 대비해서 서로 상호부조하고, 이를 위해서 재화를 취합하여 '재분배'하는 식의 경제형태가 발달하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도덕경제]는 이런 개념입니다. 때문에 특정인의 영리를 추구하기보다는 모두가 함께 안정되게 잘사는 것을 추구했다고 볼 수 있어요. 조선시대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도덕경제의 산물은 바로 [계(契)]입니다. 오늘날에도 존재하는 거죠. 도덕경제는 기본적으로 사회구성원간의 신뢰를 바탕으로하기 때문에(계에서 계주의 역할을 생각해보쇼~) 자연스럽게 도덕적인 권위수립과 사회통합이 잘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Mouloud때문에 도덕경제의 측면에서 많은 것을 가진 조병덕의 부사를 지낸 조카는 가난한 조병덕을 부조할 '도덕적인 의무'가 부여되는 겁니다. 조선시대의 관료들은 본인의 인척이나 문중에까지 신경을 써야하는 위치였다는 것이죠...-_-;
이러한 도덕경제는 해당사회의 안정과 지속의 측면에서 장점이 있고, 이것이 가장 잘 작동했던 사회중의 대표적인 예로 조선시대가 거론됩니다. 그러나 이런 도덕경제에서는 부에 대한 혐오나 남잘되는 꼴을 못보는 '평균주의', 당장 등따숩고 배부르면된다는 생계형 경제 및 오늘만 잘 넘기자는 '안일주의' 등이 만연하는 부작용이 있어요. 전술했지만 위기상황을 대비하는 성격이 강한 도덕경제의 특성상
첫댓글 침팬지에서도 관찰할수 있는게 호혜성인데^^; 좀 너무 포괄적이지 않을까요
일반적으로 '호혜적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증여론'에서 설명하는 호혜성이 같지 않기 때문에 인류학적 개념에서 호혜성의 원리에 대해 설명을 해두었습니다. 이 개념에 일치한다고 볼 수 있을지 토론을 해주셨으면 하는 거고요. 자세한 설명을 좀 참고해주실 수 없을까요? 요약하자면
1. 선물을 주고, 받고, 답례하는 삼중의무
2. 선물의 '흐름'으로 형성되는 재화나 가치의 재분배
3. 사회적 친소관계 재확인(+이를 통한 사회적 지위 강화)
가 핵심이구요
첨언하자면 기본적으로 포틀라치나 돼지축제, 뉴질랜드의 '하우' 같은 것들은 모두 매우 소비적인 축제입니다.
포틀래치 같은 경우는 아예 자신의 재산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정도가 아니라 때려부수는 수준까지 갈때도있으니까요(....)
하여튼 일개 공돌이가 쉽게 대답할만한 주제는 아닌듯 합니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겠습니다.
조선후기 충청도 서천현에서 살았던 조병덕의 수많은 편지들을 보면 좀 다른 양상도 보입니다. 조병덕은 대략 순조-고종시기를 살던 지방유학자였습니다. 원래는 서울 노론의 명문가였으나 지방으로 내려왔고, 고종 초에 영의정을 지내며 정계의 거물로 활약하던 조두순을 '아저씨'로 칭했던 양주 조씨 명문가의 후손이었지요...^^;
조병덕의 서간문 중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본인의 인척이나 제자들에게 각종 명목으로 선물과 금전을 제공할 것을 요구했고 또 받았다는 겁니다. 예컨대 조병덕의 조카가 문중에서는 좀 풀렸는지 지방고을의 부사를 지냈는데, 조병덕은 그에게 자신의 지인에게 선물할 고급부채나 간지나는 관용 고급책력(달력)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냅니다. 조선시대에는 요즘처럼 돈만주면 좋은 물건을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 즉 '관'에서 생산하고 분배하는 물품이 고급 아이템이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조카가 봉이었는지 자제의 혼인비용 등 각종 금전적인 지원도 요구하는데, 사실 조병덕은 돈이 없어서 빚으로 인생을 살다 간 사람인데 받은만큼 '답례'할 껀덕지가 없었지요...-_-; 이런 예로 보아 반드시 답례라는 것이 따르지 않는 경우도 꽤 있었다는 겁니다.
개인적으로 증답경제를 논하면서 먼저 [도덕경제]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그 틀 안에서 증답경제를 논해야 한다고 봐요...ㅎㅎ;;
@★海東天子☆ ㅋㅋㅋㅋ으악...빈대데스네..... 저같으면 그런 짓은 굉장히 민망할 거 같은데 말이죠..... 도덕경제라는 개념은 처음 들어보는데 어떤 개념인지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Mouloud 전근대사회에서는 일단 생산력이나 생활수준이 근대이후에 비해서 낮기 때문에 만약의 극한상황에 대비해서 서로 상호부조하고, 이를 위해서 재화를 취합하여 '재분배'하는 식의 경제형태가 발달하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도덕경제]는 이런 개념입니다. 때문에 특정인의 영리를 추구하기보다는 모두가 함께 안정되게 잘사는 것을 추구했다고 볼 수 있어요. 조선시대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도덕경제의 산물은 바로 [계(契)]입니다. 오늘날에도 존재하는 거죠. 도덕경제는 기본적으로 사회구성원간의 신뢰를 바탕으로하기 때문에(계에서 계주의 역할을 생각해보쇼~) 자연스럽게 도덕적인 권위수립과 사회통합이 잘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Mouloud 때문에 도덕경제의 측면에서 많은 것을 가진 조병덕의 부사를 지낸 조카는 가난한 조병덕을 부조할 '도덕적인 의무'가 부여되는 겁니다. 조선시대의 관료들은 본인의 인척이나 문중에까지 신경을 써야하는 위치였다는 것이죠...-_-;
이러한 도덕경제는 해당사회의 안정과 지속의 측면에서 장점이 있고, 이것이 가장 잘 작동했던 사회중의 대표적인 예로 조선시대가 거론됩니다. 그러나 이런 도덕경제에서는 부에 대한 혐오나 남잘되는 꼴을 못보는 '평균주의', 당장 등따숩고 배부르면된다는 생계형 경제 및 오늘만 잘 넘기자는 '안일주의' 등이 만연하는 부작용이 있어요. 전술했지만 위기상황을 대비하는 성격이 강한 도덕경제의 특성상
@Mouloud 19세기 조선후기의 위기상황이 오자 더욱 강화되었던 도덕경제는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더욱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국가붕괴의 한축을 담당하게 됩니다...-_-; 현재에도 그런 영향력이 남아있다는 것도 참고하시고요...ㅋ
@★海東天子☆ 결혼 축의금이나 상을 당했을시의 부조금도 그런 맥락이라 봐야하나요?ㅎ
@★海東天子☆ 블로그에 공부한(새롭게 알게 된) 기록으로 좀 정리하여 옮겨가겠습니다. 여러 모로 새로운 지식과 답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