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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옥이와 창주영감이 한달반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내내 부지럼을 피운 덕에 오두골의 남산은 잡목과 잡초가 무성하던 데로부터 천여 그루의 사과나무가 심어진 일정한 규모를 갖춘 신형의 사과 밭으로 탈바꿈하였다. 가끔 와서 일손을 거든 덕에 주로류도 300그루의 묘목을 가져다 분옥이네 사과 밭 너머에 자그마한 과수원을 만들어 놓았다. 암펌같던 여편네를 어떻게 구슬려 놨는지 아님 돈벌이 유혹에 모든걸 관용할 수가 있었던지 주로류여편네도 가끔 분옥이네 일손을 거들어주기까지 하였다. 한편 새해에 면적을 늘이는데 필요한 사과묘목을 키우기 위하여 창주영감은 언녕 전부터 채집해둔 알구배씨를 텃밭에 뿌리였다. 이제 새해에는 전지해버린 사과나무 가지를 알구배 묘목에 접하면 돈 한 푼 안 팔구서라도 묘목해결을 자체로 할 수 있을 뿐더러 촌민들한테 묘목을 제공할 수 있고 또 대면적에 사과를 재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곡식이 소리 치며 자란다는 7월이 되자 남산의 사과밭도 제법 푸르름을 띠였다. 분옥이는 신농촌향에서 제공해준 자료와 창주영감의 경험에 비춰 제때에 살충제를 쳐주고 농가비료를 묘목에다 주었다. 애기 키우는 애 엄마가 하루에도 수십번씩 애기 얼굴 맞대도 싫증을 못 느끼는 것처럼 분옥이와 창주영감은 사과 밭에 붙어있다 싶이 하였다. 물론 주로류도 잰내비처럼 분옥이네 하는대로 잘 따라 하였다. 한 미터도 되나마나 하던 과수원사과나무는 제법 가지치고 키도 몇 뽐 잘되게 자라났다. 사과 밭에 얼마나 정성을 넣었는지 잡풀 하나 자라나지 않았다.
두 번째 해에도 봄이면 인근의 천일목장에서 나는 소 똥을 대량으로 실어다가 사과나무에 주는 한편 살충제와 살균제를 제때에 쳐주었다. 제법 과수원 형태가 엿보이자 동네에서는 그제야 돈가리가 눈에 안겨 들었던지 너도 나도 모묙을 달라고 난리였다. 어떤 집들에선 공공연히 첫해에 함께 시작 못했던 것이 은근히 후회된다고까지 하였다.
세번째 해 봄이 되자 묘포장에서 나는 묘목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오두골은 남산으로부터 시작하여 사면팔방이 다 과수원으로 탈바꿈하였는데 그 면적은 280헥타르나 되였다. 한편 오두골의 사과협회도 고고성을 울리고 분옥이를 회장으로 창주영감을 고문으로 주로류를 부회장으로 선거했다. 조직기구까지 형성되니 오두골의 사과협회에서는 가끔 현장기술보급회의도 조직하군 하였는데 때로는 분옥이네 사과밭에서 때로는 주로류네 밭에서 때로는 갓 묘목을 심은 집에서 열리기도 하였다. 분옥이와 창주영감은 오두골의 계절에 따른 사과재배기술을 프린트하여 집집이 나눠주기까지 하였다.
세번째 해 가을에 가서 온 오두골에서 맛보기엔 충분 할 만큼 한 사과를 수확했다. 해당부문의 검증에 의하면 오두골에서 나는 사과는 셀렌함량이 다른 사과의 한배 가까이 높고 또 당분도 많단다. 연태나 대련사과에 비해 껍질이 조금 더 두껍긴 하지만 북방에선 이는 허물로 되는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래도록 보관해두어도 쉽사리 썩지 않기에 이듬해 오뉴월까지도 생생한대로 보관해둘 수 있는 우점으로 되었다.
오두골에 경사가 났다! 비록 처음으로 분옥이네와 주로류네 사과 밭에서 사과를 수확했지만 온 마을에선 자신들 일마냥 기뻐하였다. 어찌보면 자신의 일이기도 하였던것이다. 이제 온 오두골이 사과향기로 차 넘치고 사과로 치부의 길이 활짝 트이게 생겼으니 말이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더니 분옥이와 창주영감이 오두골을 고셀렌 한부사과기지로 탈바꿈시킨 사적이 훈춘TV와 라디오 그리고 훈춘시 지방신문인 “두만강신문”에 대서특필로 보도되더니 이어 주, 성 각 언론매체들에서도 기자들이 줄줄 찾아 들었다. 하여 분옥이는 대 바람에 “스타”로 부상되었다.
이를 경축하여 오두골에서는 오랜만에 촌 운동대회를 열기로 하였다. 예전엔 가끔 열리던 촌 운동대회는 번마다 촌에서 돼지 한마리를 잡아놓고 남녀노소가 몽땅 참여해서 하루를 즐겁게 보내군 하였었지만 호도거리를 시작한 80년대 부턴 아예 자취를 감춰 버렸었다.
주로류네 부부가 미리 준비한 준비물들을 창주영감네 집에 가져왔다. 훈춘탄광에서 채탄부로 있다가 그것마저 정리실업 당한 후로 남들이 두고 떠난 밭을 도맡고 농사지으러 맨 조선족들만 살고 있는 이 동네에 이사온 후 처음으로 맞는 운동대회는 이 한족부부한테는 실로 명절이상으로 즐거운 일이었다. 하여 그들 부부는 고무풍선 불구는 일, 축구공 사는 등 일을 자신들이 자진해 나서서 해냈다.
80여 호되던 오두골이지만 애들 빼고 오금 잘 못쓰는 노인네들과 여자들을 빼니 축구를 찰만한 남자선수들 얼마 안되었다. 육십 중반인 창주영감과 축구공을 전혀 다루어보지도 못하던 주로류까지 합쳐서 겨우 두 팀을 묶었다. 그 것도 두 팀에 다 여자선수 두명씩 넣어서야 비로서 팀이 구성되었다. 물론 후보선수는 한명도 없다. 창주영감네 팀은 연세가 많은 창주영감이 문지기로 나섰지만 저쪽 팀은 분옥이가 키퍼로 나섰다.
개막식도 따로 없이 오두골의 운동회 첫 항목은 노인과 아이들이 동참을 한 바드민톤 채에 사과를 담고 종점까지 달리기였다. 사과를 떨구지 않겠다고 달리다간 걷고 걷다가 달리는 선수들의 얼굴은 진지하기만 했다. 약삭빠른 애들이 쫑드르르 달리다가도 사과를 땅에 떨어뜨려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사과를 다시 주어 달리다 보면 관중석에선 와그르르 웃음보를 터뜨렸다. 사과를 받쳐들고 천천히 걷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보고 애들은 발을 동동 구르면서 빨리 달리라고 졸라대는 소리가 운동장을 꽉 메운다. 운동대회는 시작부터 들끓었다.
이어 반석향중학교 체육선생님의 호르륵 하는 호각소리와 함께 축구경기가 시작되었다. 저마다 평소에 입던 반소매와 짧은 바지로 운동복을 대신했나 하면 어떤 사람은 자식들이 입던 훈춘2중이란 글자가 새겨진 경기복을 입고 나섰다. 경기복이 어떻든 선수들은 열심히 잘도 뛰었다. 운동장주위에 있는 모든 관객들도 응원의 열화를 벌렸다. 와~와~ 함성소리 속에서 양팀의 한두명씩 섞인 아줌마선수들이 뽈 차는 모습은 가관이었다. 시골에서 땅에만 사과나무에만 매달려서 일하던 아줌마들인지라 헐렁한 운동복속에 브래지어도 안 했는지 아니면 했어도 끈이 다 느슨해진걸로 했는지 텀벙텀벙 뛸 때마다 앞가슴이 출렁출렁하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줌마선수들은 남정들 속에 끼여서 벌칙규정이고 위치고 상관할새 없이 공이 어디로 굴러가면 공을 따라 내처 달린다. 하지만 뛰어가는 속도 보다는 소리가 더 높았다. 창주영감네 옆집의 50초반인 순실아줌마는 아무리 젖무덤을 털썩이면서 죽어라고 달렸지만 황소처럼 힘꼴이 좋은 주로류를 따라잡지 못하게 되니 바쁜 와중에도 지혜가 생겼는지 투박한 손을 쫙 내밀고 주로류의 운동복을 콱 잡아당겼다. 어찌나 세게 잡아당겼는지 운동복바지 고무줄이 툭 끊어지었다 그런 바람에 주로류의 운동복이 홀라당 벗겨지면서 삼각팬티가 드러났다.
ㅡ 와하하하….
구경꾼들은 그게 우습다고 배를 끌어안고 웃어댔다. 어떤 노인들은 웃다 못해서 눈물까지 찔끔 나서 손등으로 쓱쓱 닦아내기까지 하였다. 주로류 마누라도 땅에 퍼더버리고 앉아서 두 손으로 땅을 쳐대면서 시뻘건 혀를 다 드러내놓고 웃어댔다. 운동복이 벗겨진 주로류는 운동복바지를 추슬러 입고 한 손으로 바지를 걸머쥔채로 자신의 골문 쪽으로 공을 몰아갔다.
ㅡ 야, 주로류야. 이리로 살살 보내주라. 내가 받아 쥘 테니.
창주영감은 주로류가 공격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나기 위해서 자신의 골문으로 공을 굴려올 줄 알고 소리쳤다. 주로류는 한팔을 휘두르면서 속도를 전력으로 내여 공을 몰아온다.
ㅡ 야, 써먼!(射门)
주로류는 필사적으로 소리치면서 슛을 날리었다. 창주영감은 어쩔새 없이 몸을 오른쪽으로 쓸어 뜨리면서 공을 받아쥐었다. 하지만 공은 골 문에 슝~하고 날아들었다. 자체꼴이였다.
ㅡ 와~덜갔다. 덜갔다. 我进了一个球!(내가 한꼴 넣었다!)
첫 꼴문이 너무 쉽사리 갈라지자 주로류는 좋아서 두 손을 들고 풍풍 뛰었다. 순간 고무줄이 끊겨진 운동복바지가 스르르 흘러내렸다. 온 운동장은 또다시 폭소가 터졌다.
ㅡ 야 주로류야. 쩌밴디 (이쪽에다) 넣으면 어떻게 하니? 뻔단!(바보)
창주영감은 너무 화가 나서 펄펄 뛴다. 하지만 남들이 몽땅 웃는 마당에 결국엔 인차 따라 웃고 만다. 이때다. 주로류 마누라가 누군가와 손잡고 함께 운동장에 뛰어든다. 창주영감이 찬히 보니 시내에서 다시 안 돌아온다던 자신의 노친이였다. 사실 3년전에 그렇게 싸우고 나간 후로 영숙할머니는 자식들 모여 오는 명절이면 집에 와서 하루 이틀 묵고 갔다. 그때마다 창주영감은 보는 척도 안하고 꾸역꾸역 자기 할 일만 하였다.
영숙할머니는 무밋무밋 하다가 손에 들고 있던 감주 통에서 감주를 공기에 받아서 영감한테 주었다. 창주영감은 삑 돌아서서 땀을 훔치는 척 하면서 먼 남산에다 눈길을 주었다. 영숙할머니가 얼굴이 빨개지자 주로류네 마누라가 약삭빠르게 감주공기를 받아서 창주영감손에 쥐어 주었다. 창주영감은 한참 노친을 째려보다가 결국은 말없이 받아선 꿀꺽꿀꺽 삼켰다. 그리곤 한 공기 더 받아서 주로류한테 주었다.
ㅡ 먹어. 자체 골 내느라 고생했으니 감주라도 먹어야지 허허허… 짜아식. 어쩜 축구벌칙규정 이렇게도 모를 법이라구야. 하긴 탄갱에서 두더지처럼 석탄만 캤으니 어디 축구벌칙규정 알새조차 있었겠나. 에이 이것도 선수라고 넣은게 우둔하지.
창주영감은 다시 안들어 온다고 악을 바락바락 쓰고 나간 노친네가 제 발로 찾아온 게 속으론 은근히 깨 고소해났다. 노친이 나간 후로 다시 들어오란 말 한마디도 안 한 자신이 결국은 승리자로 된 뿌듯한 맘에서 창주영감은 주로류의 머리를 툭 박아주면서 사람 좋게 웃는다…
첫댓글 재밋게 엮은글 즐감하였습니다.또 하회가 없는지?
수고덕분에 잘 보앗습니다 감사합니다
소설 잘 읽고갑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