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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룩스 3국을 가다
(비즈니스석에 앉아보니) 오해 마시기 바란다. 비즈니스석은 처음이다. 베네룩스 3국을 여행하게 된 건 전적으로 딸 덕분이다. 자유여행의 기획과 시나리오, 그리고 연출까지 모든 걸 맡았다. 그렇다고 아내와 내 능력이 부족하다는 건 아니다. 젊은 실력을 믿어 보는 거다. 효과가 나타난다.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비행기 안이다. 중국, 몽골이나 러시아 상공을 지날까. 암스테르담까지 13시간이 걸린다. 비즈니스석을 예약했다고 했을 때 실망하였다. 하지만 이점이 상당히 많다. 다양한 기내식과 편의시설, 호텔 수준(?)의 독방, 의자의 침대 화로 잠도 자고 독서까지 하니 지루할 틈이 없다. 하지만 앞으로 걱정이다. 맛을 알아버린 내가 다시 일반석으로 돌아가는 일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기장에게 물어보다) 해외여행 땐 창가에 앉기를 좋아한다. 아래로 펼쳐지는 다양한 모습이 보고 싶어서이다. 궁금한 것도 많고, 물어보는 것이 많다고 아내가 지청구하지만 굳은 버릇을 어쩌겠는가. 매사는 궁금증과 호기심에서 풀리는 게 아닐까. 비행기 고도는 보통 10Km, 900에서 1천Km 속도를 낸다. 구름이 깔리면 육지가 거의 보이지 않는데 여기는 훤히 내려다보인다. 그러나 무엇인지 실체 식별은 어렵다. 육지에 눈이 내린 것처럼 하얗다. 스튜어디스에게 물었더니 대답이 궁색한가 보다. 잠시 후 돌아온 승무원이 이런 답을 내놓는다. 기장님께 물어보니 키르키즈스탄의 사막이라고. 아마도 햇빛에 반사된 풍경이 그러했을 거라 짐작해 본다.
(브뤼셀 EU 연합에서) 지금까지 벨기에에 관한 상식은 별로 없었다.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와 함께 베네룩스 3국이란 것쯤. 와서 보니 무척 세련된 도시라는 느낌이 든다. 유럽의 중심에 위치하여 정치, 문화, 언어적으로 매우 다채로운 매력을 가진 국가로 꼽힌다. 대표적인 특색은 다음과 같다. 3개 공식 언어: 북부 플랑드르 지역에서는 네덜란드어(플라망어), 남부 발로니 지역에서는 프랑스어, 동부 일부 지역에서는 독일어를 사용한다. 유럽연합(EU) 및 NATO 본부: 수도 브뤼셀은 EU 심장부이자 NATO 본부가 있어 '유럽의 정치적 수도'로 불린다. 일찍 예약해둔 유럽연합 의회 내부를 둘러보았다. 방문객이 상당히 많다. 보안검색대 통과 등 절차가 상당히 까다롭다. Democracy in Action이라는 구호가 건물 두 곳에 크게 나붙어 있다.
(양산, 모자, 마스크가 안 보인다) 내가 본 것이니 어디까지나 단편적일 수 있다. 벨기에 브뤼셀 시내를 돌아보면서 가진 인상이다. 기온이 15도에서 25도를 넘나들지만 덥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습도가 높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와 다른 모습들이 눈에 뜨인다. 모자나 파라솔, 선글라스, 마스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평소 모자나 파라솔을 잘 쓰지 않는 것은 현지의 기후 특성과 문화적 배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자주 변하는 일기 예보와 강풍, 귀한 햇빛을 즐기는 문화, 실용성을 중시하는 생활습관 등에 기인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가 준비해간 양산과 선글라스, 모자, 마스크 쓰기가 망설여졌다.
(창의 하나가 세계적 명소로) 놀라운 일이다. 이토록 작은 동상이 세계적 명물이 되다니? 브뤼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오줌싸개 동상을 찾는다. 1619년 제롬 뒤케노스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꼬마 쥘리앙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린다. 브뤼셀 시민의 사랑은 물론 전 세계서 온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로 유명하다. 이런 유명세에 힘입어 멀지 않은 곳에 작은 오줌싸개 소녀상이 세워지고, 또 길거리서 다리 들고 오줌 누는 개 동상도 세워졌다. 아이디어도 그렇지만 세계적 관광명소로 키운 브뤼셀의 노력이 더욱 돋보인다. 이런 소품들에 더해 초콜릿, 하플, 다양한 건축물 등이 어우러져 평일인데도 시내 중심지는 관광 인파로 크게 붐비고 있었다.
(모든 건축물이 예술이다) 브뤼셀서 놀란 게 두 가지다. 일부 지역을 돌아본 소감임을 전제한다. 먼저 돋보이는 게 건축 양식이다. 거리 곳곳이 잘 정비된 가운데 우뚝 솟은 건축물 모두 예술적인 색채를 짙게 풍긴다. 벨기에 브뤼셀은 중세 고딕 양식부터 바르크, 19세기 절충주의, 그리고 20세기 초 혁신적인 아르누보(Art Nouveau)와 현대 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건축 양식이 공존하는 도시다. 그리고 철도 문화가 크게 뿌리내린 느낌이다. 베네룩스 3국은 국경 없이 철로로 쉽게 연결된다. 지상에는 사람들이 별로여도 지하철과 지하 상권은 크게 활성화되어 보였다. 어디를 가나 지하 공간에는 철도를 중심으로 인파가 붐벼 인상적이었다.
(성당에서 만난 우크라이나 부부) 벨기에 겐트 지역을 둘러본다. 관광객들로 붐빈다. 13세기 옷감 무역이 번성했던 지방이다. 따라서 중세 건물들이 많다. 800년 전 지은 그라벤스틴 성 주변으로 12세기부터 보존된 우람한 성당과 교회 건물들이 있다. 성당을 둘러보고 나오다 방명록 앞에 선 두 젊은이에 눈길이 간다. 열린 페이지에 한글이 보인다. 왜 골똘히 보고 있을까. 글이라도 남길 작정인가? 지나칠 수가 없다. 영어면 다 통한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부부란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 궁금하여도 많이 물어볼 수 없었다. 방명록 쓰기를 권유했더니 나에게 양보하면서 한글 이름을 읽어보라고 한다. 전쟁 중인 나라가 여행 가능한지? 여러 생각이 겹쳐지는 순간이었다.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벽화, 장난 아니다) 벨기에, 네덜란드 철로 주변에 장난 같은 그림을 보고 놀랐다. 수년 전 미국 LA 여행 때 본 호작질 같은 스프레이 낙서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맥시컨들이 국경을 넘어와 저지른 소행으로 미국 측의 불만이 높았다. 그러면 이곳 철로 주변 건물이나 시설물에 그려진 온갖 그림들은 무엇인가? 궁금해 찾아보았다. 벨기에, 네덜란드의 거리(특히 수도 브뤼셀 등) 건물 벽에 그려진 유명한 그림들은 결코 장난이나 낙서가 아닌, 정부와 시청, 그리고 예술가들이 협력하여 만든 공식 공공 미술 프로젝트라고 한다. 이처럼 브뤼셀, 암스테르담의 거리 벽면 곳곳은 마치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만화책 박물관처럼 클래식 만화 주인공들로 가득 차 있다. 유명 화가를 많이 배출한 도시다운 발상이라고나 할까?
(영어, 아파트, 한국인이 안 보인다) 벨기에와 룩셈부르크, 네덜란드를 둘러보면서 느낀 점이 몇 있다. 물론 나의 단편적인 생각일 수도 있다. 그들은 주로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를 쓰면서 영어는 뒷전으로 밀린 느낌이다. 건물이나 명승지 설명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니 내 같은 사람은 좀 답답하다. 영어를 사용하는 미국, 영국과의 자존심 문제일까? 다음은 고층 아파트가 없다는 점이다. 주택도 3, 4층 정도로 지어 다가구가 사는 것으로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한국인이 보이지 않는다. 교민 수 벨기에 1,100명, 룩셈부르크엔 900명으로 나온다. 그러니 찾기 힘들 수밖에. 관광지 단체 여행객 중에서도 한국 사람은 거의 만나지 못했다.
(룩셈부르크, 대중교통 전면 무료) 룩셈부르크 가면서 아는 게 별로 없어 자료를 뒤져 보았다. 룩셈부르크(Grand Duchy of Luxembourg)는 서유럽에 위치한 내륙국으로, 프랑스·독일·벨기에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세계 유일의 대공국(Grand Duchy)이다. 인구 68만명, 면적은 제주도의 약1.4배. 그러나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력, 대중교통 전면 무료, 요새 도시와 UNESCO 유산, 다문화 및 다언어 사회, 유럽연합(EU)의 주요 거점이란 특성이 돋보인다. 좁은 국토에다 인구가 적지만 활력이 넘쳐 보였다. 2020년 3월부터 전 세계 최초로 국경 내 모든 대중교통(트램, 버스, 2등석 열차)을 주민과 관광객 모두에게 100% 무료 제공하고 있어 여행하기 편했다. 절벽과 계곡이 어우러진 '그륀트(Grund)' 지구와 아돌프 다리가 대표적 관광지로 꼽힌다.
(네덜란드, 운하 천지다) 암스테르담을 둘러보니 곳곳이 운하다. 네덜란드는 국토의 약 25%가 해수면보다 낮은 저지대 국가다. 전국에 걸쳐 거미줄처럼 연결된 약 6,000km 이상의 수로 및 운하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수도 암스테르담에만 100km가 넘는 길이의 165개 운하와 1,500개 이상의 다리가 존재한다. 네덜란드 운하의 핵심 목적은 다음과 같다. 물 배출 및 수위 관리: 바다와 강으로 둘러싸인 저지대 늪지대의 물을 밖으로 빼내어 제방을 쌓고, 간척지(폴더, Polder)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배수로 역할을 한다. 홍수 예방: 빗물과 지하수를 모아 일정 수위를 유지함으로써 도시와 농경지가 물에 잠기는 것을 막아 준다. 네덜란드라면 풍차와 축구 감독 히딩크만 생각했지 이렇게 많은 운하와 배가 떠다니는 줄 몰랐다.
(암스테르담의 홍등가) 점심을 먹기 위해 한식당에 앉아 창밖을 보고 놀랐다. 좁은 도로 맞은편에 거의 나체 여성이 요염하게 앉아있다. 알고 보니 공창이다. 네덜란드는 성매매를 법적으로 허용하고 관리·규제하는 합법적 공창제가 시행되고 있다. 2000년 성매매 금지 법안(Ban on brothels)이 폐지되면서 자발적 성매매는 합법적인 경제 활동으로 분류되어 법으로 관리된다. 홍등가(紅燈街)를 운영하려면 지자체로부터 영업 허가를 받아야 한다. 성매매 종사자는 최소 만 21세 이상, 이용 고객은 만 18세 이상이다. 식당 창문에는 Dont take photo가, 업소 창문에는 Sex Solves Everything. Respect Sex Workers라는 글이 보인다. 암스테르담 중앙역 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공창이 있다는 데 놀랐다.
(안네 프랭크의 집에서) 안네 프랭크(1929-1945)의 실제 은신처이자 역사박물관을 찾았다. 암스테르담 운하 옆에 있는 4층 건물이다. 안네의 일기(The Diary of a Young Girl)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랭크(Anne Frank)가 13세부터 약 2년간 은신처에서 기록한 자전적 일기다. 1942년 6월부터 1944년 8월까지 한 건물 뒤편에 숨겨진 비밀 은신처에서 쓴 것을 안네의 아버지 오토 프랭크(Otto Frank)가 1947년 출간했다. 1944년 밀고로 은신처가 나치에 발견되면서 안네와 가족들은 수용소로 이송되었고, 안네는 1945년 봄 베르겐-벨젠 수용소에서 장티푸스로 사망한다. 안네의 일기는 세계 7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인에게 나치의 잔혹함과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세계적 명작이 되었다.
(네덜란드, 자전거가 주요 교통수단) 네덜란드라고 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는가. 풍차, 지금은 축구 명장 히딩크가 생각날지도 모르겠다. 네덜란드는 운하, 풍차, 자전거, 튤립으로 유명하다. 자전거를 살펴보자. 이토록 많을 줄 전혀 몰랐다. 한국에선 상주가 자전거 고장인데 비교되지 않는다. 베트남의 오토바이가 생각날 정도이다. 인구보다 자전거가 더 많다고 한다. 자전거 주행로가 완벽하게 열려 쾌속 질주다. 잠시 캐리어 끌고 자전거 길에 들어섰다가 달리는 아가씨한테 야단맞았다. 지하 자전거 2층 주차장을 견학(?)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대화하며 달리는 사람도 자주 뜨인다. 시내선 자전거로, 시외로 나서면 열차가 대세로 보였다. 가히 자전거 천국이 아닐 수 없다. (현지인에게 히딩크를 물었더니 잘 기억하고 있으며, 요즘 아내가 아프다고 전한다)
(네덜란드 델프트 공과대학교) 대학 방문은 예상하지 못했다. 나의 취향을 생각하여 딸이 배려한 것이다. 이미 여행 중 일본 동경대학교, 호주 시드니대학교를 방문한 바 있다. 델프트는 1842년에 설립된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공립 공과대학교로 유럽을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건축학, 토목공학, 항공우주공학, 수자원 관리 분야에서 세계 최정상급 연구 및 교육 시설을 갖추고 있다. 유럽 5대 명문 공과대학 연합체인 IDEA League(취리히 연방 공대,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아헨 공대, 밀라노 공대, 델프트 공대)의 핵심 멤버이다. 잔디 지붕 중앙에 41m 높이의 콘이 솟아 있는 혁신적인 디자인의 대학 도서관(Mecanoo 설계)은 학교의 대표적 상징이다. 노벨상 수상자도 세 명이나 나왔다.
(해외여행, 영어 학습의 기회다) 영어 회화가 능통하지 않아도 즐기는 편이다. 요즘도 회화 공부하고 있다. 하지만 외국인을 만나기는 어렵다. 만나더라도 실력이 약하다고 망설이면 기회는 달아난다. 해외여행 때 실전 기회를 노려보지만 쉽지는 않다. 이럴 때마다 가지는 생각은 ‘용기’이다. 이것저것 견주다 보면 한마디 말도 붙이기 어렵다. 경상도 말로 짭짝 거리다 허사로 끝나버린다. 그래서 영어 회화 실력의 첩경은 용기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외국어에 능통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남의 나라 언어인데 좀 서툴면 어떠랴. 나는 이런 생각으로 마구 덤비는 편이다. 무식이 용감하다고도 말하지 않는가. 이번 여행 중에도 겁 없는 도전을 벌였다. 해외여행을 통해 영어 회화 실력이 조금이라도 향상된다면 이 또한 값진 일이 아닌가.
(헤이그 이준 열사 기념관) 헤이그 이준 열사 기념관을 찾았다. 국회의사당, 외무부 등 중앙관청이 모여있는 비넨호프 지역에 있다. 헤이그 특사 사건으로 유명한 제2차 만국평화회의가 열렸던 장소이기도 하다. 1907년 만국평화회의 때 이상설, 이준, 이위종이 머문 3층 여관이다. 이걸 인수하여 이준 열사 기념관으로 조성한 것이다. 3명은 황제의 특명에 의해 헤이그 평화회의의 대표 자격으로 참석하여 을사늑약의 무효를 세계에 알리려 하였다. 하지만 일본의 방해와 열강의 냉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에 의분을 이기지 못한 이준 열사는 ‘왜 대한제국을 제외시키는가?’란 호소문을 발표하고 이 집에서 순국하셨다. 이곳은 유럽에 있는 유일한 독립운동 유적지로서 1995년 8월 5일 이준 열사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개관하였다.
(요즘 네덜란드 풍차는?) 풍차 마을을 찾았다. 풍차는 풍경용 건축물이 아닌, 바다보다 낮은 땅에서 생존하기 위해 만들어낸 공학적 생존 도구다. 네덜란드(Nederland)라는 국명은 낮은 땅'이라는 뜻을 가진다. 국토의 약 25% 이상이 해수면보다 낮아 홍수 위험이 크고 늪지가 많았다. 둑을 쌓아 바닷물을 막은 뒤 갇혀 있는 물을 배수로와 운하로 퍼내기 위해 풍차를 동력원으로 활용했다. 풍차의 회전력으로 수차를 돌려 물을 퍼냄으로써 늪지대를 비옥한 농경지(폴더, Polder)로 바꿀 수 있었다. 물을 퍼내는 외에도 곡식을 빻는 제분소, 목재를 썰어 배를 건조하는 제목소, 종이나 염료를 만드는 상업용 공장 등으로 폭넓게 쓰였다. 18~19세기에는 전국에 1만 개가 넘는 풍차가 가동되었으나 지금은 1천여 개가 문화유산이자 관광자원으로 남아있다.
(암스테르담 고흐 박물관) 어려운 걸음을 했다. 암스테르담에 있는 빈센트 반 고흐 박물관이다. 고흐(1853-1890)는 네덜란드가 낳은 후기 인상주의의 거장, 그의 삶과 예술을 온전히 담아낸 세계 최고의 미술관이다. 미술관은 유화 약 200여 점, 소묘 400여 점, 그리고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 700여 통 등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대표 소장품으로는 해바라기, 아몬드 꽃, 아를의 침실, 감자 먹는 사람들, 까마귀가 나는 밀밭, 다양한 시기의 자화상 및 편지 원본 등이 있다. 또한, 고흐에게 영향을 준 동시대 화가들(클로드 모네, 폴 고갱, 조르주 쇠라 등)의 작품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며 한국어 번역기로 해설도 들을 수 있다.
(나는 팀원에 충실했다) 아내가 학교 근무 때 한국교총서 주관하는 해외여행에 동참한 적이 있다. 여행 중 싱가포르 수목원에서 어느 여선생이 우리에게 묻는다. “부부 함께 오셨어요?” 무슨 말인지 얼른 이해되지 않아 다시 물었더니 의외의 답이 나온다. 자기들은 부부 여행한 적이 없다고 한다. 여행만 가면 서로 다투기 때문에 각자 노선을 걸은 지 오래란다. 솔직히 여행 중 충돌 없는 사람 있을까. 행선지, 음식 문제 등 의견 차이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게 어느 정도 무디어지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이번 베네룩스 3국 여행에는 아예 서열을 정해 버렸다. 자유여행을 기획 연출한 딸이 팀장, 아내는 부팀장, 나는 팀원이 되기로 했다. 물론 서열에 따라 여행경비 부담도 차이 난다. 다행스러운 것은 여행 중 더위도 비도 마찰도 없었다는 점이다.

첫댓글 성선생님! 모아서 보니 더 재미가 있습니다. 유튜브 여행기와는 또다른 맛이 풍깁니다. 깔끔한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