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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이 가까워졌다. 한글의 우수성을 기념하는 날이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한글로 어떤 말을 하고 살아가는지 돌아보는 날이기도 하다. 문자는 훌륭한데 그 문자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말이 거칠다면 과연 언어의 품격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최근 대통령이 ‘좌아하게’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아마 ‘우아하게’를 빗대어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우아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고상하고 기품 있으며 아름답다’이다. ‘좌아하게’와 ‘우아하게’를 맞대면 ‘좌우’가 나타난다. 대통령이 말실수로 그런 용어를 사용했을까. 공인의 언어는 개인의 사적인 말과는 조금 다르다. 많은 국민이 듣고, 기록으로 남으며, 때로는 국가의 이미지와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인의 말에는 책임이 따른다. 특히 대통령의 언어는 국민에게 전달되는 가장 상징적인 공적 언어 가운데 하나다. 단어 하나가 잘못되었다고 나라의 품격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지만, 말 한마디를 대하는 태도에서 그 사람의 자세를 엿볼 수는 있다. 실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수를 대하는 태도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아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아함은 비싼 옷을 입거나 좋은 음식을 먹는 데 있지 않다. 높은 자리에 앉았다고 우아한 것도 아니다. 어려운 말을 많이 알고 영어와 한자를 섞어 말한다고 해서 말의 품격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우아한 사람은 쉬운 말을 정확하게 하고,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말하면서도 상대방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는다.
우아함에는 절제가 있다.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쏟아내지 않고, 화가 난다고 해서 상대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골라 하지 않는다. 자신이 옳다고 믿더라도 상대가 틀렸다고 함부로 몰아붙이지 않는다. 힘이 있을수록 목소리를 낮추고,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다른 사람의 말을 오래 듣는다. 어쩌면 우아함이란 결국 자신을 조금 낮추는 데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말은 그 사람의 마음을 밖으로 내보내는 창문과 같다. 평소에는 감추어져 있던 생각과 성품이 말 한마디에서 드러날 때가 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말을 보면 사람을 안다’고 했다. 사람을 판단하는 데 말이 전부는 아니지만, 말은 분명 그 사람을 보여주는 중요한 흔적이다.
특히 정치인의 말은 더욱 그렇다. 정치에는 서로 다른 생각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치에서 상대방을 비판하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문제는 어떻게 비판하느냐에 있다. 정책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사람을 모욕해서는 안 된다. 잘못을 지적할 수는 있지만 조롱해서는 안 된다. 반대편에 서 있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적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거친 말은 순간적으로 시원할 수 있다. 박수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거친 말이 쌓이면 사회도 거칠어진다. 정치인의 말이 거칠어지면 국민의 말도 거칠어지고, 서로를 향한 혐오와 불신도 깊어진다. 반대로 공적인 사람들이 말을 절제하고 상대를 존중하면 사회의 언어도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우아함은 결국 타인을 대하는 태도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도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것, 나보다 약한 사람 앞에서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 것, 내가 가진 권한을 자랑하기보다 책임을 먼저 생각하는 것, 그리고 잘못했을 때 변명하기보다 인정할 줄 아는 것. 그런 태도 속에서 사람의 품격이 만들어진다.
우리는 흔히 성공한 사람을 부러워한다. 돈이 많은 사람,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 이름이 알려진 사람을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기억에 남는 것은 그 사람이 무엇을 가졌느냐보다 어떻게 사람을 대했느냐인 경우가 많다. 좋은 말 한마디를 건넸던 사람, 어려운 순간에 손을 내밀었던 사람, 화가 난 순간에도 끝까지 예의를 지켰던 사람이 오래 기억된다.
그래서 우아함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필요한 덕목인지도 모른다. 젊을 때는 힘과 속도로 앞서갈 수 있지만, 나이가 들수록 사람이 남겨야 할 것은 결국 말과 태도이기 때문이다. 많이 가진 사람보다 품격 있는 사람이 존경받고, 많이 말하는 사람보다 필요한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오래 기억된다.
한글날을 앞두고 우리의 언어를 생각해 본다. 우리는 세계가 자랑하는 문자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문자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 문자를 사용하는 우리의 말이 거칠고 천박하다면 한글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살려내기 어렵다.
이제는 한글의 우수성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한글로 쓰고 말하는 우리의 언어에도 품격을 더해야 한다. 대통령의 말부터 정치인의 말, 언론의 말, 그리고 우리가 가족과 이웃에게 건네는 일상의 말까지 조금 더 정확하고, 조금 더 따뜻하고, 조금 더 절제되었으면 좋겠다.
우아함은 특별한 사람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 내가 누군가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에서 시작된다. 화가 났을 때 한 번 참는 것,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것, 미안하다는 말을 미루지 않는 것,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우아함이다.
한글날이 다가온다. 좋은 문자는 좋은 말을 만날 때 비로소 빛난다. 우리의 말이 조금 더 아름다워졌으면 좋겠다. 말이 아름다워지면 사람도 아름다워지고, 사람의 말이 아름다워지면 우리 사회도 조금은 우아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