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
요한 보스코 성인의 말이다.
그는 1815년 이탈리아의 토리노 근교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양을 치며 가난하게 살았지만,
어머니의 엄격한 신앙 교육을 받으며 자라 사제가 되었다.
특히 젊은이들을 사랑하였던 그는 청소년 교육에 심혈을
기울여 오다가 1859년 가난한 젊은이들에게 기술을 가르치고
그리스도교 생활을 익히게 하려고 살레시오 수도회를 설립하였다.
1872년에는 살레시오 수녀회도 세웠다.
‘고아들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큼 19세기의 훌륭한 교육자로
꼽히는 그는 1888년에 선종하였고, 1934년에 시성되었다.
제1독서
<인구 조사를 하여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이 양들이야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 사무엘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24,2.9-17
그 무렵 다윗 2 임금은 자기가 데리고 있는
군대의 장수 요압에게 말하였다.
“단에서 브에르 세바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두루 다니며 인구를 조사하시오.
내가 백성의 수를 알고자 하오.”
9 요압이 조사한 백성의 수를 임금에게 보고하였는데,
이스라엘에서 칼을 다룰 수 있는 장정이 팔십만 명,
유다에서 오십만 명이었다.
10 다윗은 이렇게 인구 조사를 한 다음,
양심에 가책을 느껴 주님께 말씀드렸다.
“제가 이런 짓으로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주님, 이제 당신 종의 죄악을 없애 주십시오.
제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을 저질렀습니다.”
11 이튿날 아침 다윗이 일어났을 때,
주님의 말씀이 다윗의 환시가인 가드 예언자에게 내렸다.
12 “다윗에게 가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면서 일러라.
‘내가 너에게 세 가지를 내놓을 터이니,
그 가운데에서 하나를 골라라.
그러면 내가 너에게 그대로 해 주겠다.’”
13 가드가 다윗에게 가서 이렇게 알렸다.
“임금님 나라에 일곱 해 동안 기근이 드는 것이 좋습니까?
아니면, 임금님을 뒤쫓는 적들을 피하여
석 달 동안 도망 다니시는 것이 좋습니까?
아니면, 임금님 나라에 사흘 동안 흑사병이 퍼지는 것이 좋습니까?
저를 보내신 분께 무엇이라고 회답해야 할지
지금 잘 생각하여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14 그러자 다윗이 가드에게 말하였다.
“괴롭기 그지없구려. 그러나 주님의 자비는 크시니,
사람 손에 당하는 것보다 주님 손에 당하는 것이 낫겠소.”
15 그리하여 주님께서 그날 아침부터
정해진 날까지 이스라엘에 흑사병을 내리시니,
단에서 브에르 세바까지 백성 가운데에서 칠만 명이 죽었다.
16 천사가 예루살렘을 파멸시키려고 그쪽으로 손을 뻗치자,
주님께서 재앙을 내리신 것을 후회하시고
백성을 파멸시키는 천사에게 이르셨다.
“이제 됐다. 손을 거두어라.”
그때에 주님의 천사는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 있었다.
17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다윗이 주님께 아뢰었다.
“제가 바로 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못된 짓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양들이야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그러니 제발 당신 손으로 저와 제 아버지의 집안을 쳐 주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2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3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5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6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르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이 일어나다니!”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으며 놀라워합니다.
그러나 이 놀라움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은 나자렛 사람들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왜 그분을 믿지 못하였을까요?
예수님에게서 나오는 하느님의 힘을 보면서도
왜 못마땅하게 여겼을까요? 그들 눈에 예수님께서는
그저 ‘목수의 아들’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그분의 가족들에 대하여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이,
그분을 메시아로 그리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든 것입니다.
누군가에 대하여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이
어쩌면 그 사람에 대하여 가장 모르고 있는 순간일 수 있습니다.
잘 알고 있다는 것이 선입견이 되어서, 그 사람에 대하여
더 알려고 하는 마음을 없애 버리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런 일들은 부모와 자녀, 부부와 같이
아주 가까운 사이에서 자주 일어납니다.
여러분의 모든 관계에서 ‘들음’이 중단되지 않게 하십시오.
듣는 것이 멈춘 관계는 상대방에 대한 앎 또한 멈춘 관계입니다.
하느님과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듣는 것이 멈춘 신앙생활은 그분에 대한 앎이 멈춘 신앙생활입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처럼 그분을 믿지 못하는
신앙생활을 되풀이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분명히 우리와 함께 계시지만(임마누엘),
함께 계셔도 그분께서 누구이신지 전혀
알지 못하는, 아니 오히려 그분을
알려고 하지 않는 불행한 신앙인이 되어 버립니다.
만일 신앙의 기쁨이 사라지고 있다면, 여러분의 믿음이
듣는 것을 멈춘 것은 아닌지 한번 되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모든 관계의 회복은 진실하게 듣는 데서 시작됩니다.
(김재덕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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