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하는 거 어때요?”라고 묻자, “재밌어요. 이 길이 제 길인가봐요. 숨겨진 재능이 있었나?”라고 답한다.
이충연 씨의 아내 정영신 씨는 “라면 두 개 이상을 끓여본 적이 없는데.... 그래서 일부러 주방장으로 들여보냈다. 안주 주문이 두 개 이상 들어오면 난리가 난다”며 웃는다.
2009년 용산참사로 아버지 이상림 씨를 잃고, 엎친 데 덮쳐 4년의 옥고를 치렀던 이충연 씨. 그가 아버지와 함께 했던 맥주집 ‘레아(Rhea)’를 다시 열고 주방장이 됐다. 이번엔 수제 맥주 전문점이지만, 아버지의 맥주집을 이름 그대로 이어받은 셈이다. 간판의 글씨체도 똑같다.
|
|
|
▲ 부활한 '레아'의 주방장 이충연 씨. 'Rhea'라는 글자 위에 입힌 하트 표시는 함께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그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현진 기자
|
남영동 숙대입구역 근처 작은 골목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주인의 취향이 배인 아늑한 공간이 펼쳐진다. 이미 다녀간 이들이 남긴 아기자기한 화분이며, 싸인 받은 메뉴판이 보이고, 전에는 본 적 없는 맥주병이 가득찬 냉장고가 눈길을 끈다.
아직 정식으로 문을 연 것이 아니라 낮에는 여전히 실내 공사가 진행 중이지만, 저녁에는 두 부부가 다시 마련한 ‘레아’를 응원하기 위해 지인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한달 여 직접 해 온 실내 공사에도 많은 이들이 십시일반 마음과 힘을 보탰다. 용산참사로 알게 된 시민들과 활동가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과 천주교 사제까지 페인트칠과 청소, 인테리어 공사를 도왔다.
|
|
|
▲ 실내 공사는 꼬박 한 달이 걸렸다. 자금이 여의치 않아 직접 나서게 됐지만, 매일 지인들의 도움이 부족함을 채웠다. (사진 제공 = 이충연)
|
그 외에도 ‘레아’를 함께 만드는 이들은 많다. 직접 그린 그림으로 메뉴판을 만들어 준 이도 있고, 예전 레아에서 일했던 주방 실장은 소식을 듣고 요리법을 전수하기 위해 일이 끝나면 레아를 찾는다. 안주 거리는 아는 지인들의 추천이다. 맛있게 먹었던 음식을 알려 주고 레시피까지 적어 보낸다. 연대 활동으로 만났던 이들은 지역 특산품과 제철 식재료를 보내겠다며 아우성이다. 다시 레아를 만든다는 소식을 들은 이들이 당사자보다 신났다.
여의치 않은 중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큰 힘 중 하나는 천주교 사회교정사목위원회의 창업교육과 '기쁨과 희망 은행' 대출이었다고 말했다. 한달 내내 교육을 받고 두 차례의 심사를 거치는 힘든 과정이었지만, 교육 내용도 금전적으로도 큰 힘이 됐다.
“잘 될 것 같아요.”
두 부부만 가게를 운영하는 것은 처음이고 오래 쉬었기 때문에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노력하기 나름이라는 생각과 많은 이들의 응원 덕에 조금씩 자신감이 생긴단다. 처음 시작부터 지금까지 그랬듯, 사람들과 함께 만드는 것이고 하나하나 배우면서 채우면 될 것 이라고 짐짓 여유를 부리기도 한다.
|
|
|
▲ 남영동 숙대입구역 6번 출구를 지나 나타나는 좁다란 골목 끝에 '레아'가 있다. ⓒ정현진 기자 |
레아를 통해서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돈 보다는 사람 냄새를 벌고 싶다”고 말했다. ‘레아’가 다시 시작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또 하나 바라는 것은 “용산을 기억하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이충연 씨는 “우리처럼 쫒겨나는 사람들, 용산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공연도 하고 대안을 만들어가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용산에 철거민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작은 소망이었지만, 당장은 레아에서 그 일을 실현해 볼 요량이다. 그래서 아픈 이들이 레아를 마음 편히 찾아와 위로와 희망을 찾기를 바란다.
문득 곧 용산참사 6주기가 돌아온다는 이야기를 하던 그는, 아버지가 그립다고 했다. 옆에 있다면 누구보다 큰 의지가 되었을 것이라면서.
그는 매년 이맘 때가 되면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는 날들이 많다고 했다. 여전히 잊을 수 없는 기억과 상처가 남아 있고, 진상규명도 정부가 아닌 시민사회가 나서는 상황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아버지가 보고 계실 거라면서, 분명 좋아하실 것이라고 했다.
동료들과 마무리 공사를 하러 나서면서, 이충연 씨는 부지런하고 따뜻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하고 배워 살겠다고 했다. 또 레아를 위해 애써 준 이들 그리고 용산을 함께 기억하는 이들에게 대한 감사 인사도 잊지 않았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첫댓글 다시 시작하는 그곳이 번창하기를 빕니다.
저역시도..번창하시길 빕니다.
Reah... 오픈 소식이 반갑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네요.
이땅에 다시 이런 아픔이 없도록 꿋꿋하게 열심히 다시 살아주세요. 부활한 '레아' 응원합니다.
대림시기 주님의 길을 밝히는 불을 켜는듯~ 힘을내시는 모습들이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