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리는 두정(頭頂) 또는 도덕골로 불리우며 이상적 정신세계와 만물의 보존 여부를 살피는 곳이다.
정수리는 높게 솟아오른 것이 좋으나 필히 살집이 있어 도톰해야 하며 둥글어야 좋은 상이다. 학계에서 이름난 학자나 종교인(스님)에게 많이 볼 수 있다.( 아무래도 학자, 스님의 경우, 모발이 없어 정수리 모양을 확인 할 수 있는 비중이 높을 수 있다.)
[위 사진은 지금은 세상을 떠나셨지만 한국 불교계의 대표적인 학승이자, 많은 분들의 존경을 받으신 '지관'스님이다.]
유독 정수리만 높이 솟은 사람은 기가 세고 융통성이 부족하다.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에 굽힘이 없어 일생 동안 고생을 많이 한다. 남자는 아내와 자녀와의 관계가 좋지 않고 하는 일도 잘 풀리지 않는다.
정수리는 넓은 편이 좋다. 이마로부터 완만하게 솟아 두정 윗부분이 넓고 둥글면 운세가 강하고, 리더의 역할에도 부족함이 없다. 자연스럽게 아랫사람이 따르고 주변의 존경을 받는 좋은 상이다.
반면 두정에 상처로 인한 흉터나 울퉁불퉁하게 요철이 있으면 흉상이 된다. 정수리 중앙이 움푹 패이듯 꺼진 것도 좋지 못하다. 가족(아내, 자식)과의 인연을 오래 이어가지 못하고 열 심히 일을 한다해도 인정 받기가 어렵다.
두정(頭頂)이 꺼진 상으로는 ‘공자’가 대표적이다. 아버지 슥량흘이 66세에 낳은 아들인 공자는 무녀(巫女)였던 어머니에게서 태어났고, 늙은 아버지는 공자가 3살이 되었을 때 세상을 떠나 사생아와 다름 없는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젊은 시절 온갖 고생을 하며 보내게 되었는데, 그래서인지 공자의 제자 중에는 평민의 비중이 높았다고 한다.
유랑생활로 대표되는 공자의 학문과 정치여정은 실로 고달픔의 연속이었다. 후대에 이르러 학문적, 도덕적 추앙을 받고 있기는 하나 정작 공자의 정치적 인생은 결코 성공적이라 보기 어렵다.
공자와 두정(頭頂)과 관련한 내용은 관상학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숙복(叔)을 이은 고포자(姑 布子)에 의해 전해 내려온다. 주나라의 사람으로서 공자 (孔子)시대 사람이다. (공자 : BC 551 ~ 479 )
공자세가(孔子世家)에 보면 고포자가 공자(孔子)의 관상을 보고 머리 가운데가 오목하게 패이고 머리의 주위는 볼록하게 나왔다 하여 고포자가 오목한 구공(孔)자와 볼록한 언덕 구 (丘)라 이름을 붙어 주었다고 한다. ( 공자의 어머니가 尼丘山에서 기도. 字名 仲尼, 이름을 丘 라고 함 )고포자는 공자에 대한 관상이 다음과 같이 평(評)하였다.
眉有十二釵光(미유십이채광) 有四十九表(유사십구표) 後日必是大聖之格(후일필시대성지격)
즉, 눈썹에 열두 광채가 서려 있고 몸에 마흔 아홉 가지의 위표가 있으니 훗날 반드시 대성인이 될 것이라고 평하였는바, 공자에 대한 예언이 적중하였으니 고포자의 탁월한 능력을 엿볼 수 있다.
[ 관명 관상학 연구원 / 010 3764 43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