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말, 우리 일행은 대천해수욕장에 잠시 들렀다가 <안면원산 대교>를 건너서 원산도에 들어섰다. 그날 원산도에 간 것은 정말 뜻밖이었다. 연일 35도를 윽박지르던 폭염을 잠시나마 피할 겸 대천해수욕장에 갔는데, 일행 중 한 분이 이왕 간 김에 뉴스에서만 보던 '원산안면대교'를 건너보자고 제안을 해서였다. 원산도는 나에게 뜻깊은 곳이다. 뜻이 깊다기보다는 즐거운 추억이 있다. 20년 전 클래식음악감상 모임인 <수요음악회>에서 2박 3일간 하계수련회를 간 곳으로 제주도 외에 섬은 처음이었다. 그런 때문에 늘 궁금했는데 그날 생각지도 않게 간 것이다.
20년 전, 그 당시는 원산도행 여객선도 흔하지 않을 때였다. 수요음악회 창립자 故 임 선생님께서 고심 끝에 원산도와 가까운 고덕항에서 배를 타기로 하고 당일 대전에서 일찍 출발했지만, 고덕항에 도착하니 정기선이 막 출항한 후였다. 우리는 하는 수 없이 배를 빌려서 수요음악회 회원 40명이 타고 바다를 건넜는데 지금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그날은 푸른 바다가 잔물결조차도 없이 잔잔했기에 무서운 줄도 몰랐다. 우리는 그저 멀리 원산도가 보이자 뱃전에 서서 서로 붙들고 사진 찍으며 까르르 웃고 떠드는데 순간 배가 기우뚱하자 배 주인이 앉으라고 고함치던 소리가 귓전에서 들리는 듯했다. 그런데 안면원산 대교를 차를 타고 지나오니, 마치 그 옛날의 추억은 꿈을 꾼 듯했다. '아, 여기가 원산도구나!'
그러나 나만 혼자 추억을 떠올릴 뿐 같이 간 일행은 아무 동요도 없는지 차를 주차하자마자 저마다 성큼성큼 해변으로 향했다. 나도 일행을 좆아 해변으로 갔다. 해변으로 가면서도 20년 전 숙소가 있던 민박집을 둘러보았지만 간이식당만 있을 뿐 어디에도 민박집은 안보였다. 민박집 앞마당 앞에 모래사장이 있고 그 앞으로 태평양 같던 망망대해가 있었는데 말이다. 이른 아침에는 저 먼 곳에서 썰물이 철썩이면서 민박집을 향해 들어오는 것 같았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곳의 반대편에 우리가 머물렀던 거 같다.
그해 수요음악회 하계 수련회는 원산도에서 2박 3일간 알찬 휴가를 즐겼다. 몸이 좀 불편하던 이 사장(현. 카페 이브릭스 도안점)은 개인 오디오 시스템을 준비해가서 민박집 앞마당에 오디오 시스템을 설치해놓고 야외 클래식 음악감상실을 연상케 했었다. 앞마당 벤치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고 클래식 음악 감상을 했던 시간은 정말 값진 추억이다. 밤에는 故 임 선생님 주도로 촛불 음악회를 했던 추억도 잊을 수가 없다. 밤새워 해변에서 옹기종기 모여앉아 기타 소리에 맞춰 싱어롱을 하던 시간들… 나는 아무래도 송신증(竦身症)이 나서 원산도에 갔던 수요음악회 총무에게 전화를 했다. “박 선생, 나, 지금 원산도에 왔어.” “으응? 어디라고?”“원산도에 왔다고. 수요음악회 하계수련회 갔던 곳 말이야… ”원산도? 아, 원산도에 갔구나.“ ”그런데 너무 많이 변해서 우리가 있었던 민박집은 못 찾겠어.”
박 선생은 내가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우리 그때 정말 재미있었지."라고 한마디 툭 던질 뿐이었다. 박 선생은 그때 같이 갔던 남자 회원과 열애에 빠져 결혼을 했으니 원산도는 나보다 더욱 애틋했을 터,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박 선생이 말했다. 코로나가 좀 잠잠해지면 원산도에 가자고. 전화를 끊고 나서보니 바다는 그 옛날 너무도 맑게 빛나던 초록빛깔도 아니었다. 내가 추억에 잠겨있는 동안 일행은 <원산도해수욕장> 사진을 찍고, 안면도 <운여해수욕장>으로 간다며 시동을 걸었다. 일행들은 노을이 유명한 '솔밭 일몰'을 찾아 노을 사진을 찍으러 간다고 했다. 논두렁 같은 시골길을 한참 가서 운여해수욕장에 도착했다. 공용주차장에 주차하고 운여해수욕장으로 가는데 길가에 간판들이 보였다. 민박집, 펜션, 텐트, 수영복 갈아입는 곳, 샤워장 등 한여름 바닷가에 온 느낌이 들었다. 작은 해변이어서 정겹기 조차했다.
바다는 하루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해변가 야영지에는 의자에서 책을 보든가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껏 텐트에서 자본 적이 없어선지 야영지의 풍경을 보니 정겨워 보였다. 나의 로망을 보는 낭만적이었다. 일행은 반영 스팟으로 유명한 '솔밭 일몰'을 촬영한다며 운여해수욕장 반대편 해변으로 갔고, 나는 홀로 해변에 앉아 저 멀리 수평선 너머로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바다는 붉은 빛깔로 타는듯했다.
나는 그날 온종일 여러 곳을 둘러와서 좀 피곤했지만 한참을 앉아있으니 차츰 기력이 회복되는 듯 했다. 나는 불현듯 어딘지 모르는 곳을 떠돌다가 마침내 집에 돌아온 듯 마음이 편안해졌다. 자연은 참으로 경이롭기만 하다. 내가 즐겨 읽는 시 한 줄이 생각난다.
나는 길가에 버려져 있는 게 아니다. 먼지를 일으키며 바람 따라 떠도는 게 아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당신을 오직 기다릴 뿐이다._중략
ㅡ정호승 시, 지푸라기 중에서
일행은 솔밭 일몰 촬영을 마치고 오더니 '원산안면대교' 야경도 마저 촬영하고 가자면서 다시 캄캄한 밤을 향해 시동을 걸었다. 이크! 나는 준비도 없이 따라갔다가 피곤함으로 초주검이 된 채, 일행이 촬영이 끝나기를 기다려 밤늦게야 안면도를 출발했다. 그러나 뭔지 모르게 뿌듯함이 내면에서 에너지를 축적한 듯 흐뭇했다.
첫댓글 더운날씨에 수고가 많고
왕성한 활동에 부럽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