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쓰기에 대한 의심
계명대 철학교수로 총장까지 역임한 이진우 교수가 ‘의심의 철학’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읽기가 쉬운 교양철학 책이었다.
철학은 정답을 추구하는 학문이다. 오늘은 철학을 넘어 과학의 시대이다. 우리는 과학이 지배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탓인지 의심과 질문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과학적’이라는 수식이 달리면 입을 다문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당연하다고 여길 때 그것이 정말 당연한 것인지 의심을 품고 질문을 할 때라야 발전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이교수의 주장이었다.
(비트켄슈타인은 자기 철학에도 의심을 품고 잘못이라는 것을 증명하려 연구한다.)
과학이나 철학이 정답이라고 하면 우리는 의심을 하거나 질문을 하지 않는다. 의심과 질문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의 방식을 고답적으로 되풀이 한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오늘을 사는 현대인은 과학이라는 신의 지배를 받으면서 오히려 더 수동적으로 살고 있다.
그러나 이진우 교수의 말대로 이 세상에 정답이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나의 삶과 나의 사유세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이유로 나는 우리에게 발전을 가져다 준 것은 정답이 아니고 의심과 질문이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아하! 맞다’라며 감탄했다.
책에서 든 사례들을 몇 개만 소개해보자.
가장 먼저 칼 포퍼는 우리가 신으로 받드는 과학을 의심했다. 과학은 신이 아니고 가설(패러다임)이라는 사상누각을 신봉하면서 정답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우선 뉴턴 물리학에 의심을 가진 아인슈탄인이 오늘의 물리학을 열었다. 니체는 신을 의심했고, 프로이트는 심리학을 지배하는 의식세계에 의심을 품고 무의식을 생각해냈다. 베르그송은 2000년 이상이나 서양철학을 지배해온 플라톤의 이데아, 즉 만고불변의 진리에 의심을 품었다. 그는 시간이 들어가지 않는 진리 대신에 시간이 들어가는 인간의 삶을 철학의 중심에 놓았다. 베르그송을 현대 철학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이진우 교수는 이외에도 여러 사례를 들었지만, 나는 마지막으로 비트켄슈타인을 예증으로 가져오겠다. 그는 언어가 세상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의심을 가졌다. 그가 내린 결론은 ‘아니다’ 이다. 바꾸어 말하면 언어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실을 그대로 표현해 낼 수가 없다.
우리가 쓰는 수필의 중심되는 이론이 ‘사실성’이다. 사실을 표현할 수 없는 언어를 매개로 하는 수필에 사실성을 요구한다는 것은 앞, 뒤가 맞지 않는 모순 덩어리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고 ‘사실성’을 금과옥조로 받든다.
나는 일 년 전부터 새로운 수필쓰기 방법을 모색하는 ‘수필 집담회’를 이끌고 있다.(하재열 선생과 한 달에 1회씩 하였다.) 수필에서 사실성을 대치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을 찾아보자는 것이 목표였다. 그리고 새로운 방식으로 수필쓰기를 하자는 것이 의도였다. 그러나 ‘사실성’이라는 논리의 흡입력은 너무 강력하여 좀처럼 부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수필의 사실성 논리를 의심하고 새로운 답을 찾지 않고서는 수필의 발전이란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대구 수필인의 많은 참여를 바라마지 않는다.
(지금은 이 모임도 코로나 이후로 흐지브지 되었습니다.)
첫댓글 온통 환한 날들 되셔요 응원합니다 홧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