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석의 축구스타 클래식
뛰어난 수비수가 많이 배출되는 독일 대표팀에서 10년 이상이나 주전 멤버로 활약했고, 세 차례의 월드컵과 유럽 선수권에 출장한 선수가 위르겐 콜러다.
서독 청소년 대표팀(당시 감독: 베르티 포그츠)출신인 콜러는 SV베르더호프 맨하임 소속 때 능력을 인정 받아 86년 19세의 나이로 서독 대표팀에 선발됐고, 87년에 대표 선수들이 여러 명 포진한 FC쾰른(당시 리트바르스키, 헤슬러, 일그너, 슈타이너 등이 소속되어 있었음.)에 입단했다. 콜러는 FC쾰른에서 실력을 발휘한 후 89년에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하면서 지명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콜러의 뛰어난 수비력과 명성이 세계 무대에 알려지기 시작한 건 EURO88 때이다.
그 대회 준결승전이 서독VS네덜란드戰이었는데 그 게임에서 콜러가 네덜란드의 스트라이커 마르코 반 바스텐을 전담 마크했다. 두 선수는 경기 내내 사투를 벌였다. 결과는 네덜란드의 2대1 역전승. 네덜란드의 두 번째 골을 터뜨린 선수는 반 바스텐이었다. '콜러와 반 바스텐의 전쟁' 제 1막은 반 바스텐의 승리로 끝이 났다. 두 선수의 전쟁은(대표팀 경기 및 SERIE-A)이 때부터 시작이 된 것이다.
콜러와 반 바스텐의 전쟁 제 2막은 90년 이태리 월드컵 16강전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콜러는 부상으로 인해 조별 예선에는 출전하지 못하고 네덜란드와의 16강전부터 출전을 했는데 베켄바워 감독이 조별 예선 때 콜러를 아낀 이유는 아마도 네덜란드戰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된다. 이 날 콜러는 예상대로 반 바스텐을 그림자 처럼 따라다녔다.
반 바스텐은 EURO88 이후 기량이 급성장하면서 브라질의 카레카와 더불어 당시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인정을 받고 있었다. 그런 반 바스텐을 이 날 콜러가 완벽하게 묶으면서 팀이 2대1로 승리하는데 결정적 수훈을 세움과 동시에 2년 전 빚을 깨끗이 되갚았다.
뿐만 아니라 콜러는 8강전인 체코戰에서 대회 득점왕을 노리고 있던 체코의 간판 스트라이커 스쿠라비를 철저하게 봉쇄했다. 스쿠라비는 조별 예선 대 미국戰에서 두 골을 터뜨렸고,16강전인 대 코스타리카戰에서 헤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대회 득점 랭킹 선두를 달리고 있던 실력파 스트라이커였는데 '철의 스토퍼' 콜러 앞에서는 무력했다.
콜러는 준결승전인 잉글랜드戰에서 리네커 그리고 결승전에서는 더블 스토퍼인 부흐발트와 호흡을 맞춰 아르헨의 디에고 마라도나를 유효적절하게 마크하면서 월드컵 우승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결승전에서 마라도나를 전담 마크한 선수는 부흐발트.)
대회가 끝난 뒤 마라도나는 ‘콜러는 세계 최고의 스토퍼다!’라고 극찬했고, 각국의 축구 전문가들도 마라도나의 의견에 동조했다. 90년 이태리 월드컵을 계기로 위르겐 콜러는 '세계 최고의 스토퍼' 및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 킬러'자리에 등극했다.
89-91년까지 바이에른 뮌헨에서 활약한 콜러는 91년에 유벤투스로 이적했다. 콜러가 유벤투스에 입단하면서 반 바스텐(당시 AC밀란)과의 전쟁이 재개됐다. 그 무렵 유벤투스VS.AC밀란戰은 곧 콜러와 반 바스텐의 대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두 선수의 대결을 유럽 축구계에서도 '전쟁'으로 받아들였다. 이 전쟁에서 우위를 점한 것은 위르겐 콜러였다. 뿐만 아니라 '검은 튤립' 루드 굴리트도 콜러에게 늘 고전을 면치못했다. 이상하게도 반 바스텐과 굴리트는 콜러 앞에서 만큼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콜러는 유벤투스 시절 UEFA컵(92-93시즌), SERIE-A(94-95시즌), 챔피언스 리그(96-97시즌)등의 빅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콜러는 스토퍼라는 험한 포지션임에도 불구하고 경기 중 좀처럼 옐로우/레드 카드를 받지 않는 수비수로도 유명했다. 콜러는 상대방 공격수에게 악랄한 반칙을 하지 않았다. 엄밀히 말해서 겉으로 드러나는 반칙을 안했을 뿐이다.(이 점을 한국의 중앙 수비수 특히 스토퍼들이 반드시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90년대 초~중반 AC밀란 소속으로서 콜러와 멋진 경기를 펼쳤던 사비체비치 말에 의하면 '콜러는 항상 발로 차고 또 때린다!'고 한다. 즉 콜러는 반칙을 하더라도 눈에 보이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콜러는 매우 영리한 수비수였다.
콜러는 스토퍼로서 그다지 빠른 스피드를 갖고 있진 않았으나 탁월한 신체적 조건(186cm)을 이용한 몸싸움 및 태클 그리고 헤딩에 대단히 강했다. 그는 표정 하나 흩트려 뜨리지 않고
묵묵히 상대 스트라이커를 괴롭히는 '선천적인' 스토퍼였다.(수년 전 차범근 감독은 어느 시합 해설에서 위르겐 콜러를 '징글징글한 수비수'라고 표현했다.)
94년 미국 월드컵에서 황선홍이 콜러와 맞대결한 적이 있다. 그 게임에서 (0대3으로 지고 있던 상황)
황선홍이 후반전 추격 골을 터뜨렸는데 전반전에는 콜러의 철저한 마크에 막혀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다. 사실 94년 미국 월드컵 때 전문가들은 대회 넘버원 스트라이커인 브라질의 호마리오와 대회 넘버원 스토퍼인 위르겐 콜러의 맞대결을 학수고대했다. 그러나 당시 독일 대표팀은 40도 가까운 폭염을 견뎌내지 못하고 결국 8강전에서 불가리아에게 패하면서 동시에 '콜러VS호마리오의 전쟁'도 무산되고 말았다.
콜러는 95년 모국으로 돌아와 보르시아 도르트문트에 입단해 96-97시즌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은퇴를 앞둔 01-02시즌에는 팀을 UEFA컵 결승전까지 진출시켰다. 그러나 현역 최후의 시합인 페예노르트戰에서 퇴장을 당하면서 훌륭한 케리어에 조금 아쉬움을 남겼다.
현역 시절 콜러의 플레이는 언제나 고독하고 평범했다.
콜러는 화려한 드리블도, 깔끔한 킬러 패스도 또한 강력한 슛팅력도 없다. 그러나 그에게 걸리는 스트라이커들은 단단한 각오가 필요했다.
위르겐 콜러는 역대 독일 대표 선수 가운데 A매치 출장 기록(105시합)3위에 올라있다.
(1위 마테우스 150시합, 2위 클린스만 108시합, 4위 베켄바워 103시합)
위르겐 콜러(Jürgen Kohler )
국적: 독일
나이: 1966년생
포지션: 스토퍼
신장: 186cm
소속팀: TB영 람프샤임(77/83)-SV베르더호프 맨하임(83/87)-
FC쾰른(87/89)-바이에른 뮌헨(89/91)-유벤투스(91/95)-
보르시아 도르트문트(95/02)
독일 대표팀 데뷔: 1986년
A매치 기록: 105시합/2골
월드컵 출전: 90, 94, 98년 대회
주요 타이틀
90년 이태리 월드컵 우승
92-93시즌 UEFA컵 우승(유벤투스)
94-95시즌 SERIE-A 우승(유벤투스)
EURO96 우승
96-97시즌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도르트문트)
97년 토요타컵 우승(도르트문트)
출처 : 엠파스토탈사커 김유석의 스타클래식, 내셔널풋볼팀스닷컴
첫댓글 얀콜런줄알고 들왔는데
혹시 지난시즌 뒤스부르크 감독 아닌가요? 안정환 선수가 있었던 팀에서...
네. 맞아요. 그리고 지금 아마 경질되었을 겁니다.^^
이런 대단한 선수를 몰랐내요 글 잘읽었습닏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