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화성원행
1795년(정조19년)은 조선 왕실에 큰 의미가 있는 해였다. 이 해에 정조가 왕위에 즉위한 지 20년이 되었고, 모친 혜경궁이 회갑이 되는 해였고 돌아가신 사도세자도 만 60 회갑이 되는 해였기 때문이다.
효성이 지극한 정조가 그의 어머니를 위하여 준비한 회갑연은 실로 조선왕실 역사상 최고의 잔치였다고 할 수 있었다.
정조가 혜경궁을 모시고 화성을 다녀오는 행사는 1794년 연말부터 시작되었다. 12월에 행사를 주관하게 될 정리소를 장용영에 설치했고, 이곳에서 근무할 고위 관리를 임명했다. 또한 왕실 내탕금을 아껴서 사전에 마련해 두었던 행사경비 10만냥을 선혜청에서 정리소로 이관시켰고, 화성행궁에서의 잔치 절차를 정하기 위해 숙종 이후 궁중 잔치를 기록한 ‘진찬의궤’의 기록을 검토하게 했다.
드디어 1795년 새해가 되자, 정조는 정순왕후와 사도세자, 혜경궁에게 존호를 올렸는데, 사도세자에게는 특별하게 8자 존호를 올렸다. 이는 국왕에게 올리는 존호와 같았는데, 정조는 사도세자를 국왕의 지위에 복권시킴으로써 비극적으로 돌아가신 부친의 한을 풀어드리고자 하였다. 1795년 2월에는 행사 연습에 들어갔다. 행렬이 지나가는 한강에 배다리(주교)를 놓는 공사가 11일 동안 진행되었고, 정조는 창덕궁의 후원에서 혜경궁을 모시고 가마 타는 연습을 했다. 가마는 이번 행사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윤2월초에는 한강에 설치된 배다리를 건너는 연습을 했다.
본 행사는 1795년 윤2월 9일부터 7박 8일의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윤2월 9일에 정조는 혜경궁을 모시고 창덕궁을 출발하여 한강가의 용양봉저정에서 점심을 먹고 시흥현 행궁에서 잠을 잤으며, 이튿날에는 사근평 행궁에서 점심을 먹고 드디어 수원 화성행궁에 도착하여 잠을 잤다. 평상시 국왕이 화성을 방문할 때에는 하루면 충분한 거리였지만, 이번엔 노인인 혜경궁을 모셨기 때문에 이동 속도를 늦추어 2일 만에 도착했다.
이 때 국왕의 행차는 총 길이가 4km에 이르는 성대한 행렬이었는데, 행차가 이동하는 길가에는 많은 백성들이 구경을 나왔다. 실록에서는 이들을 관광 민인, 즉 관광하는 백성들이라고 기록했다.
윤2월 11일부터 화성에서의 행사가 시작되었다. 이날 정조는 화성 향교를 방문하여 공자의 신위에 절을 했고, 유생들을 만나 경서를 주면서 학문에 힘쓸 것을 권했다. 행궁에 돌아온 정조는 문과, 무과 시험을 치러 합격자를 발표했는데, 문과 시험장은 우화관이었고, 무과 시험장은 낙남헌이었다. 이중에서 무과 시험은 이미 한 달 전에 1차 시험을 치렀고, 이 날은 최종시험만을 치렀다.
12일에 정조는 혜경궁을 모시고 현륭원을 참배했다. 수원 화성으로 이장한 후 남편의 무덤을 처음으로 방문한 혜경궁은 비통한 울음을 터트렸고, 모친을 모시고 온 정조는 한없는 회한에 잠겼다.
오후에 정조는 화성 서장대에서 주야간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오후에 시작한 군사훈련은 이튿날 새벽까지 계속되었는데, 수시로 정조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노론 측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강력한 위력 시범이었다.
13일에는 행궁 봉수당에서 이번 행사의 절정을 이루는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잔치가 열렸다. 정조는 봉수당 건물에 ‘장수를 기원한다’는 의미의 봉수당(奉壽堂)이름을 짓고 친필 현판까지 걸어 축하했다. 모친의 회갑연을 성대히 준비하기 위해 행궁의 규모도 300칸에서 576칸으로 대폭 늘렸다.
회갑잔치에는 모친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특별히 종친들과 혜경궁의 친정 식구들이 내려왔다. 그 중 압권은 모친의 유일한 여형제인 이복일의 처를 이십 년 만에 처음으로 회갑을 맞은 모친을 극적으로 만나게 한 것이다. 그녀는 남편이 죄를 지어 유배를 갔다가 1782년에 문효세자 탄생 시에 정조가 특별사면을 해 주는 바람에 이번 회갑연에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정조가 어떻게 하면 모친을 기쁘게 할 방법이 있을까를 백방으로 고심한 끝에 찾아낸 묘수중의 묘수였다. 20년 만에 그리워하던 동생을 만난 혜경궁의 반갑고 애틋한 심정을 들어보자.
“주상(정조)이 아우(이복일의 처, 혜경궁의 여동생)집안을 역적 죄에서 벗겨주시며 아끼시니, 그 시아비 마음에 역모의 뜻은 없음을 통촉하심이라. 주상께서 이모네를 각별히 불쌍히 여기심이 외삼촌들보다 넘으시니, 이는 어미가 아우 못 잊어하는 뜻을 받아 극진히 헤아림이라. 성은이 그지없어 금년 봄에는 특별히 법을 굽혀 화성 거동에 나와 아우를 만나게 하시니, 임금의 뜻이 천고에 뛰어나시니라.
제 황공하여 몸 둘 바 모르기는 이를 것도 없으나, 나는 반가움은 둘째요, 나랏법이 해이해질까 심히 불안하여 보지 말고자 하더라. 그런데 올해는 내 환갑이라 임금의 효성이 아니 미친 곳이 없어, 생전에 한이나 없게 형제를 만나게 하시니라. 내 이십년을 그리워하다가 아우를 만나보니, 마지막 만날 때 중년이던 언니는 환갑에 이르고, 삼십이 겨우 되었던 아우는 오십이 되었도다. 동생은 온갖 풍상을 배불리 겪어 젊은 얼굴과 아름다운 자질이 다 시들었으니, 반갑고 슬프고 아깝기를 어찌 다 형용하리요. 형제 만나 슬픈 눈물뿐이라. 그동안의 변고며 무수한 일들을 못다 펴고 오륙 일이 얼핏 지나 손을 나눠 작별하니, 생전에 다시는 못 볼 것으로 생각한 적도 있었건만, 이 이별에 새로 놀라니라.
이제 한번 이별하면 다시 보기 어려울 것이라. 돌아와 생각하니 만난 것이 생시가 아니라 꿈인 듯 희미하니라. 내가 이러니 하물며 제 심사는 어떠랴. 동생 또한 얼핏 오십 나이 되어 생일까지 지나니, 저 나던 때 부모님 기뻐하시던 일이며, 부모님 모시고 즐기던 일이며, 어려서 궁궐을 출입하여 사랑을 바치던 일이 이제 한낱 꿈이라. 시골에 칩거하여 다시 해를 볼 기약이 아득하니 불쌍하고 또 불쌍하니라. 이미 주상이 제 시아비가 역모의 뜻이 없음을 알았으니, 해와 달이 다시 비추어 억울함을 펴 반역이라는 말만 없앨 수 있으면, 내 저를 위해 기쁜 것은 말할 것은 물론이고, 저희들 또한 무슨 서운함이 있으리오.
한편 생각하니 제 평소 현숙한 것을 이제야 하늘이 갚으시는가 하니, 설움을 풀고 부부해로하며 아들 며느리 딸 사위와 손자 손녀를 거느려 근심스런 얼굴을 펴고, 임금의 은총을 받아 남이 그 유복함을 찬양할 사람이 될까 하는 바람이 없지 않더라.”(한중록)
14일 오전에는 행궁의 정문인 신풍루에서 백성들에게 쌀을 지급했고, 굶주린 백성들에게는 특별히 죽을 지어 먹였다. 오전에 정조는 낙남헌에서 양로연을 개최했는데, 정조는 행사에 참석한 모든 노인들에게 비단 한필과 비둘기 모양의 손잡이가 달린 명아주 지팡이, 지팡이 끈으로 사용할 노란색 비단을 주었다. 오후에 정조는 경치가 좋은 방화수류정을 둘러보았고, 행궁의 득중정에서 신하들과 활쏘기 시합을 벌였다.
행사가 끝난 후에는 사후처리가 남아있었다. 정조는 먼저 십만냥의 경비에서 남은 것을 ‘을묘정리곡’이라 이름하고 전국의 군현에 배포하여 백성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했다. 혜경궁의 은혜가 전국의 백성들에게 미침을 의미하는 조치였다. 다음으로 정조는 행사에 관한 기록을 철저하게 정리하도록 했다. 국립인쇄소인 주자소에 의궤정을 설치하여 의궤를 편찬하고, 의궤의 인쇄가 끝난 다음에는 혜경궁을 비롯한 102곳에 배포하도록 했다.
이와같이 정조의 화성행차는 왕실 가족만을 위하는 행사로 끝나지 않았다. 혜경궁의 회갑잔치와 함께 노인을 위한 양로연, 젊은 사람을 위한 문무과 시험, 어린 학생을 위한 학문 권장, 일반 백성을 위한 쌀 배급이 있었는데. 이는 모친의 회갑연을 만백성과 함께 하겠다는 정조의 깊은 배려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정조는 이러한 행사들을 모두 기록으로 남겼다. ‘원행을묘정리의궤가 바로 그것이다.
윤2월 15일에 정조는 행사를 모두 마치고 귀로에 올랐다. 행차는 사근평 행궁에서 점심을 먹고 시흥 행궁에서 잠을 잤으며, 이튿날 용양봉저정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에 창덕궁으로 돌아왔다.
첫댓글 효심가득한 정조대왕의 자세한 업적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효심 극진합니다.
어머니 뿐만아니라 외척들도 모두 한자리에 만나
눈물바다가 되었을 듯합니다.
정말 좋은 일 하셨습니다.
그 동네 노인들도 모두들 왕을 칭송하였겠습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한을 다 풀어드렸습니다.
역사에 기록으로 남겨 기리기리 보관도 되고요.
잘 읽었습니다.
수고 마니 하셨습니다.
아직도 정보변경이 안되는군요.
그리 노력하셨는데도요.
다음과 카카오의 합병이후 생긴 문제일 듯합니다.
두 회사사이의 문제들 아직도 해결이 안되었나 봅니다.
어머니를 사랑하는 정조의 효심
외척들도 동네 노인들도
모두 왕을 칭송합니다
헤경궁 홍씨와 사도세자의
한을 풀어드리는 효심
가득한 정조대왕 화성원행을
위하여 준비하는 마음
성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