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hMz7d54OEjs?si=ER1KlO0cBuFV-BQs
Prokofiev Violin Concerto #1 in Dmajor- Ricardo Odnoposoff -Violinist
Heinrich Hollreiser conducting the Radio Zurich Orchestra
프로코피에프 바이올린 협주곡 1번 라장조 작품 19
프로코피에프는 바이올린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바이올린 협주곡을 2곡이나 작곡했고 이 앨범을 통해서 들을 수 있는 이 두 작품이 모두 발군의 작품으로 오늘 날 많이 연주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프로코피에프의 작곡활동은 크게 3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제 1기는 1904년 상트 페테르부르크 음악원 입학에서 1917년 러시아 혁명까지이고 제2기는 1918년부터 1933년까지의 망명시절, 제3기는 귀국 이후 1953년 모스크바에서 사망할 때까지의 약 20년간이다. 프로코피에프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제1번이 1917년, 제2번이 1935년 즉, 제1번이 20대의 혈기왕성한 청년 시대 작품인 데 반해, 제2번은 40대 중반 무렵의 작품이며 두 작품 사이에 프로코피에프는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 유럽에서 약 20년 가까운 생활을 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역시 20년 차이가 나는 두 개의 바이올린 협주곡에서도 뚜렷한 양식의 대조를 볼 수 있음은 물론이다.
프로코피에프 바이올린 협주곡 1번 D장조
프로코피에프는 피아노에 있어서 신기에 가까운 솜씨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바이올린은 한번도 정식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런 그가 남긴 두 개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모두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두 개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바이올린의 현란한 기교들은 오늘날에도 사람들을 감탄하게 만든다.
프로코피에프는 겨울에 어울린다.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 D장조는 알렉산드르 블로끄의 시를 떠올리게 한다.
“…그대의 돛배를 가져와 멀리 떨어진 북극을 항해하라. 얼음으로 된 벽들 속에서-그리고 조용히 잊어라, 그곳에서, 사랑하고 파멸하고 싸웠던 일들… 정열로 가득 찼던 옛 고향땅을 잊어라. 그리고 지쳐버린 영혼을 더딘 추위의 떨림에 길들게 하라. 그곳으로부터 빛이 들이 닥칠 때, 여기서 영혼은 아무 것도 필요치 않도록.”
프로코피에프는 1891년에 태어난 러시아 작곡가이다. 그가 젊었던 시대는 러시아 후기 낭만파의 분위기로 가득 차 있었다. 물론 이같은 분위기에 그도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젊은 프로코피에프는 곧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았고, 거기에 충분한 힘과 개성을 갖추었다고 판단한 그는 즉각 러시아 낭만파의 전통에 날카로운 반기를 들었다.
그는 ‘무서운 아이’였다. 그것이 어떤 형태의 것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어렸을 때부터 인습에 반항하는 반항아적인 면모를 보였다고 한다.
그가 아직 학생이었을 때 페테르부르크에서는 러시아 전위 음악인들이 모여 ‘현대 음악의 밤’이라는 이름으로 역시 전위를 원하는 청중들을 위한 콘서트를 열고 있었다.
프로코피에프는 이같은 현대 예술 운동에 기꺼이 참가했다. 그리고 그의 초기의 작품들은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독특한 색채를 지니게 되었다.
정신이 번쩍 날 만큼의 날카로움, 악기의 타악기적인 쓰임. 사람을 압도하는 기교, 그리고 짜릿한 화성 표현 등 그의 작품은 당시 큰 파문을 일으킬 만했다.
20대의 프로코피에프를 두고 사람들은 그의 혁신적인 재능에 감탄하며, 스트라빈스키와 함께 앞으로 신선한 놀라움을 줄 것이라고 예감했다.
프로코피에프는 피아노에 있어서 신기에 가까운 솜씨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바이올린은 한번도 정식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런 그가 남긴 두 개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모두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두 개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바이올린의 현란한 기교들은 오늘날에도 사람들을 감탄하게 만든다.
https://youtu.be/oMGqAJ5Iy-g?si=pKhlBqEih6pHQXF3
itzhak perlman/prokofiev violin concerto no. 1
네 개의 기본선을 주축으로 한 균형적인 작품
바이올린 협주곡 제 1번 D장조는 그가 20대 청년이었을 때 쓴 곡으로 ‘무서운 아이’라 불리던 젊은 작곡가답게 진보적이고 현대적인 경향이 뚜렷이 나타나 있다. 그러나 당시 ‘그로테스크’하다고 평가되었던 이 작품은 오늘날 더 이상 그로테스크하지 않다. 오히려 신선하고 서정적이며 매력이 넘치는 훌륭한 작품이다.
프로코피에프는 이 협주곡에 ‘작품 발전에 네 개의 기본선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고전적인 선, 현대적 경향, 토카타와 서정적인 선이다.
그의 말대로 이 바이올린 협주곡엔 이 네 가지로 압축될 수 있는 프로코피에프의 음악의 특징들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그래서 고전적이면서 현대적이고, 논리적이며 엄격한 토카타풍의 화성 진행을 보이고 있는데다가, 서정적인 선율까지 갖춘 지극히 균형잡힌 작품이다.
이 곡은 1917년에 작곡되었지만 그후 6년 동안 발표되지 않았다. 이 작품이 완성된 직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고 ‘러시아는 당분간 음악이 필요없다’고 판단한 프로코피에프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처음엔 몇 달 안에 귀국할 계획이었지만 결국 1933년까지 그는 고국을 떠나 있게 되었다.
그 사이에 이 곡은 1923년 10월 파리의 쿠세비츠키 연주회에서 초연되었는데, 당시 평론가들은 둘로 갈라져 이 곡을 극찬하기도, 악의 있는 평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후 이 작품에 반한 헝가리 출신의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인 요제프 시게티가 이 곡을 세계 각지에서 연주하게 되자 사람들의 반응 또한 달라졌다. 프로코피에프는 시게티를 ‘내 협주곡의 최고의 이해자’라 했고, 이 곡을 매개로 두 사람은 돈독한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지쳐버린 영혼을 더딘 추위의 떨림에 길들게’ 하는 듯한, ‘멀리 북극을 항해하는’ 듯한 프로코피에프의 바이올린 선율로 한 해를 마무리함이 어떨는지. 글 · 박진영(음악평론가, 김포대 교수)
리카르도 오드노포소프(Ricardo Odnoposoff)
리카르도 오드노포소프(Ricardo Odnoposoff)는 1914년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태어나 5살의 나이에 고국에서 첫 데뷔를 했을 정도로 신동으로 인정받았었다. 특히 전설적인 바이올린 교육자인 레오폴드 아우어와 칼 플레쉬에게 사사한 후 1931년 베를린에서 불과 17살의 나이에 에리히 클라이버와 협연하여 극찬을 받기도 하였다. 1932년 그는 비엔나 국제 음악 콩쿠르에 참여하여 1위에 입상하였고, 1937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아자이 콩쿠르에서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와 함께 공동으로 1위를 나누어 가졌다.
콩쿠르 입상이후 그는 독일과 유럽 전역을 순회하면서 리사이틀리스트로서 협연자로서 당대의 거장인 펠릭스 바인가르트너와 발터 퀘흐등과 협연하였다. 20살에 리카르도는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악장으로 임명되어 전쟁기간중 활동하였으며, 이 시기에 녹음활동도 하게 된다. 전후 미국 시민권을 회득하였고, 1952년 핀란드 헬싱키 음악 페스티발 시벨리우스 주간에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하였다. 또한 1960년 파리 음악원 협회 음악 페스티발에 참여하여 칼 뮌싱거의 지휘로 멘델스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였다. 1960년대 후반 라카르도는 슈트가르트 음악원과 빈 음악 아카데미의 바이올린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레이너 구슈마흘(Rainer Kusmaul)과 같은 뛰어난 제자들을 양성하였으며, 1970년부터 세계 여러 바이올린 콩쿠르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특히 1962년 제1회 서울국제음악제에 하프의 명인 자바레타, 바리톤 게하르트 허쉬등과 한국 방문하여 브람스,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여 국내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었다.
글출처: 웹사이트
https://youtu.be/CEibQnbwW0M?si=cqZ553XAstVdROYw
Prokofiev: Violin Concerto No. 1 in D major, Op. 19 - Maxim Vengerov, Mstislav Rostropovich 지휘, LSO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