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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즉시 실험을 중단하시죠.
기계가 과부하 걸렸습니다.
수치 오류가 아닙니다.
박사님 이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데이터입니다.
독일 베를린 세계 최고 권위의 재료 공학 연구소 프라우노퍼의 지하 제 3 실험실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21세기 최첨단 레이저 스캐너가
정체 불명의 금속 물체를 분석하던 중
원인 불명의 오류를 일으키며 작동을 멈췄기 때문입니다.
모니터에는 붉은색 경고등만이 섬뜩하게 깜박이고 있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엔지니어들이 머리를 감싸주며 경악한 그 물건
다이아몬드보다 정교하고 현대의 나노 반도체 공정으로도 흉내낼 수 없다는 판정을 받은
이 물체는 놀랍게도 2400년 전 한반도의 흙 속에서 발굴된 청동 거울이었습니다.
지금 전 세계 고고학계는 패닉 상태입니다.
동양의 작은 반도 국가의 고대 로마보다 앞선 하이테크 문명이 존재했다라는 가설이
가설을 넘어 충격적인 현실로 증명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만 톤의 거석을 장난감처럼 다루었던
중력 제어 기술
0.3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신의 주조 기술
이것은 우리가 알던 역사가 아닙니다. 교과서를 찢어버려야 할 만큼
거대하고 두려운 진실입니다.
도대체 2500년 전 그 땅에는 어떤 초고대 문명이 숨쉬고 있었던 것일까요?
오늘 저는 제 평생의 학문적 명예를 걸고 그동안 서구 학계가 애써 외면하고 은폐하려 했던
동방의 한 제국에 대한 비밀 보고서를 공개하려 합니다.
이 영상을 끝까지 보신다면 당신이 알고 있던 세계사는 송두리째 무너질 것입니다.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있으신 분들만보세요
잃어버린 제국의 문이 지금 열립니다.
그때만 해도 저는 몰랐습니다.
제가 비웃으며 찾아온 이 땅이
제 오만함을 산산조각 낼 거인들의 땅이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2014년 10월에 어느 날
저는 독일 베를린 태겔 공항의 라운지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샴페인 잔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제 이름은 토마스베르너
베를린 국립재료연구소 BAM의 수석 연구원이자
고고학적 유물의 진위를 판별하는 팩트의 칼날로 통하는 남자입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당시 제 마음속에 가득 차 있었던 감정은 동양의 미지 문명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라 지독한 경멸과 비웃음이었습니다.
출국 전날 밤
제 대학 동기이자
학계의 오랜 라이벌인
한스 밀러 교수가 전화를 걸어왔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는 특유의 신경질적이고 비꼬는 말투로 저를 자극했습니다.
이봐 토마스 자네
정말 그 동양의 판타지를 검증하러 가는 건가?
0.3mm라니
하 그건 분명 후대에 만들어진 정교한 위조품이거나 우연의 산물일세.
로마인들도 못한 걸 그 변방의 부족들이 했다고.
자네가 거기 가서 그건 가짜입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그 나라 사람들은 자네를 잡아먹으려 들걸세.
자네 그 고고한 명성이 진흙탕에 구르게 될까 봐 친구로서 걱정되는군.
저는 샴페인을 들이키며
윌러의 말을 곱씹었습니다.
그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습니다.
한국의 국립문화재연구소로부터 받은 이메일 내용은 삼류 판타지 소설 같았습니다.
기원전 25세기에 현대 나노 공학 수준의 세공 기술이 존재했다.
중장비 없이 100톤에 가까운 거석을 다루는 토목 기술이 있었다.
저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유럽의 로마나 그리스 이집트 문명조차 도달하지 못했던 기술을
아시아에 그것도 중국의 변방이라 여겨졌던 작은 반도 국가가 보유했었다니
이것은 분명 민족주의에 취한 학자들의 허황된 망상일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저는 그들의 거짓말을 과학적으로 낱낱이 밝혀내 다시는 윌러 같은 녀석들이 비웃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오만한 사명감을 안고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하늘은 마치 제 오만함을 꾸짖기라도 하듯 억수 같은 비를 퍼붓고 있었습니다.
잿빛 하늘에서는 천둥이 쳤고
습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들어왔습니다.
마중 나온 한국인 연구원 김 박사는 저의 굳은 표정을 읽었는지
별다른 환영 인사도 없이
저를 검은색 SUV에 태웠습니다.
호텔로 가는 겁니까?
제가 퉁명스럽게 묻자
김박사는 핸들을 꽉 쥐며 짧게 답했습니다.
바이오 교수님
박물관의 유리 진열장 안에 있는 죽은 유물은
교수님의 의심을 거두기에 부족할 겁니다.
우리는 진짜 현장으로 갑니다.
차는 빗물을 튀기며 도심을 벗어나 북쪽으로 더 북쪽으로 향했습니다.
회색빛 건물들이 사라지고
짙은 안개에 쌓인 숲과 거친 들판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강화도의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르는 동안 차체는 덜컹거렸고
빗줄기는 더욱 거세져 앞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습니다.
비좁은 차 안 눅눅한 가죽 시트 냄새
그리고 말 없는 가이드
모든 것이 최악이었습니다.
마침내 차가 멈춰선 곳은
바퀴가 반쯤 잠길 정도로 진흙탕이 된 산비탈이었습니다.
내리시죠.
교수님이 직접 눈으로 확인하셔야 할 것이 저 위에 있습니다.
김박사의 말에 저는 마지못해.
우산을 펴들고 차에서 내렸습니다.
질퍽이는 진흙이
이탈리아제 구두를 더럽혔고
차가운 빗방울이 코트 자락을 적셨습니다.
도대체 뭘 보여주겠다는 거야?
투덜거리며 미끄러운 언덕을 올랐을 때 안개가 거치며 거대한 실루엣 하나가 제 시야를 가로막았습니다.
그 순간 저는 저도 모르게
쥐고 있던 우산을 놓칠 뻔했습니다.
그것은 압도적인 공포였습니다.
높이 2.6m
덮개돌의 길이만 7m가 넘는
마치 태초의 거인이
하늘에서 던져 놓은 듯한
거대한 바위덩어리가 폭우 속에서
검은 위용을 뽐내며 서 있었습니다.
사진으로 보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그 거대함은 단순한 크기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저를 짓누르는 듯한 엄청난 질량의 압박감이었습니다.
저는 홀린 듯이 그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강화도 고인돌
교과서에서 나 봤던 그 돌덩이가
제 눈앞에서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재료 공학자의 본능이 되살아났습니다.
저는 주머니에서 레이저 거리 측정기와 고강도 루페 확대 경을 꺼내
덮개돌의 하단부를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이 돌의 무게가 대략 50톤에서 80톤 사이겠군요.
제 목소리는 빗소리에 묻혀 떨리고 있었습니다.
50톤입니다.
50톤
현대의 대형 트레일러도 견디기 힘든 무게입니다.
그런데 이 엄청난 무게가 고작 두 개의 고인돌 위에 얹혀 있었습니다.
이건 미친 짓이었습니다.
아니 불가능한 구조였습니다.
만약 지반이 조금이라도 약하다면
혹은 고인돌의 수평이 일도라도 어긋난다면
중력 가속도에 의해
이 구조물은 순식간에 붕괴되어야 마땅했습니다.
하지만 이 돌은 수천 년의 비바람과 지진 그리고 지금 쏟아지는 이 폭우 속에서도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저는 진흙바닥에 무릎을 꿇는 것도 잊은 채 고인돌의 윗동을 파헤치듯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저는 제 학문적 상식을 산산조각 내는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이건 단순한 구덩이가 아니야. 판축기법이잖아. 그렇습니다. 그들은 맨땅에 돌을 박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50톤의 하중을 분산시키기 위해 땅을 깊이 파고 흙과 자갈 그리고 점토를 층층이 다져 넣은 뒤 불에 구워 단단하게 만드는 고도의 기초 공사를 선행했던 것입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고인돌과 덮개돌이 맞다는 접합부였습니다. 거친 자연석을 그대로 얹은 줄 알았지만 루페로 들여다본 그 틈새에는 인위적으로 깎아 만든 마찰홈이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그 틈을 메우기 위해 쓰레기도를 정교하게 박아넣어 무게 중심을 완벽하게 제어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현대토목공학에서나 볼 법한 하중 분산 설계였습니다. 아 저도 모르게 탄식이 터져 나왔습니다. 빗물이 안경을 타고 흘러내려 시야를 가렸지만. 저는 닦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크레인도 유압잭도 컴퓨터 시뮬레이션도 없던 기원전 10세기 이전에 도대체 누가 이런 미친 짓을 감행했단 말입니까? 50톤의 바위를 채석장에서 떼어내는 것부터가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입니다. 그것을 산비탈로 끌어올리기 위해 최소 500명 이상의 장점들이 동시에 밧줄을 당겨야 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호흡을 맞추고 식량을 조달하고 군림대의 마찰 개수까지 계산해내는 현장 지휘관이 없었다면 이 둘은 산 중턱에서 굴러떨어져 수많은 사람을 깔아뭉겨버렸을 것입니다. 즉 이 돌 하나가 증명하는 것은 단순한 힘이 아니라 수천 명의 인력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강력한 국가 시스템과 행정력이었습니다. 이것은 원시 부족의 무덤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제국의 기념비였습니다. 저는 속으로 윌러에게 소리쳤습니다. 이봐 윌러. 내가 틀렸어. 그리고 내가 틀렸어. 이건 판타지가 아니야. 내가 로마의 대리석 조각상에 감탄하고 있을 때 이들은 거친 자연석을 이용해 중력을 거스르고 있었어. 우리가 무지했던 거야. 비줄기는 점점 더 굵어졌지만 저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비에 젖은 제 코트는 무거웠지만 제 머릿속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동안 서양 중심의 사고 방식으로 재단해 왔던 문명의 기준이 얼마나 협소했는지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저를 내려다보며 이제야 내 진가를 알아보겠느냐라고
꼬집는 듯한 그 거대한 침묵 앞에서
저는 처음으로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때 뒤에서 우산을 받쳐들고 있던
김 박사가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교수님 놀라시기엔 아직 이릅니다.
이 고인돌은 그저 껍데기일 뿐이니까요.
이 거대한 돌이 비바람을 맞으며 수천 년간 지키고 싶어 했던 진짜 보물
교수님이 그토록 부정하셨던 그 0.3mm의 기적을 보러 가시죠.
이제부터가 진짜 싸움이 될 겁니다.
김 박사의 눈빛은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저는 젖은 안경을 벗어 주머니에 넣으며
눈앞에 우뚝 솟은 고인돌을 다시 한 번 올려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인정해야만 했습니다.
이 여행은 단순히 거짓을 밝혀내는 검증의 시간이 아니라
제가 평생 믿어왔던 세계관이 붕괴되고
재 구축되는 고통스러운 순례가 될 것임을 말입니다.
차가운 빗물 속에서도 제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폭우가 쏟아지던 강화도의 산비탈을 뒤로하고
우리는 서울 용산에 위치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차 안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았습니다.
빗물에 젖은 제 코트에서 나는 눅눅한 냄새와
히터가 돌아가며 내는 건조한 소음만이 공간을 채웠습니다.
김박사는 더 이상 저를 설득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입가의 묘한 미소를 머금은 채
앞만 보고 운전할 뿐이었습니다.
그 침묵이 저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방금 목격한 50톤의 거석이
제 뇌리에 박혀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쿵쿵거리며 경고음을 울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토마스
내가 알고 있던 고대사는 틀렸을지도 몰라?
준비해.
더 큰 것이 오고 있어.
박물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어 어둠이 깔린 뒤였습니다.
우리는 일반 관람객이 이용하는 정문이 아닌 관계자들만 출입하는 지하 화물전용 입구를 통해 들어갔습니다.
육중한 이중 철문이 굉음을 내며 열리고
차가운 공기가 폐부 깊숙이 들어왔습니다.
수장고로 향하는 긴 복도는 마치 병원 수술실처럼 서늘하고 멸균된 냄새가 났습니다.
김 박사는 보안카드를 세 번이나 찍고 마지막으로 홍채 인식까지 거친 뒤에야
가장 깊숙한 방
특수 지정 문화재 보존실의 문을 열었습니다.
박사님 안경을 닦으시죠.
그리고 이 면장갑을 끼십시오.
지금부터 보실 것은
21세기 인류가 가진 최첨단 기술로도 복제 불가능한 판정을 받은
문자 그대로의 오파츠입니다.
김 박사가 건넨 흰 장갑을 끼는 제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방 중앙 완벽하게 조도와 습도가 조절된 특수 진열장 안에
검붉은 녹이 쓴 유물 두 점이 놓여 있었습니다.
첫 번째로 제 눈길을 끈 것은 독특한 곡선을 가진 검이었습니다.
바로 비파형 동검이었습니다.
저는 유럽과 중국의 수많은 청동검을 보아왔지만
이런 형태는 난생 처음이었습니다.
중국의 동검이 직선적이고 투박하다면
이 검은 마치 악기 비파처럼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하단부가 블룩하게 튀어나와 있었습니다.
저는 루페를 눈에 갖다 대고 검의 날을 살폈습니다.
그리고 즉시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했습니다.
잠깐 이건 주조 방식이 다릅니다.
보통 고대 청동검은 손잡이와 칼날을 한 번에 찍어내는 일체형이 상식입니다.
그게 내구성을 확보하기 쉽고 공정이 단순하니까요.
그런데 이 검은 조립식이군요.
정확히 보셨습니다.
김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칼날과 손잡이를 따로 만들어 결합하는 방식이죠.
박사님 재료 공학자로서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시겠죠?
저는 마른 침을 삼켰습니다.
머릿속에서 톱니바퀴가 빠르게 돌아갔습니다.
칼날과 손잡이를 분리해서 만든다.
이것은 단순히 멋을 부리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모듈화였습니다.
전쟁터에서 칼날이 부러지면 날만 갈아끼우고
손잡이가 망가지면 손잡이만 교체할 수 있는 시스템
이것은 현대 군수 산업에서나 볼 수 있는 부품 호환성과 표준화의 개념이
기원전 10세기 이전에 이미 적용되었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칼날 중앙의 척추처럼 솟아있는 등날은
찌르는 힘을 극대화하면서도
칼이 휘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완벽한 역학적 구조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대장장이가 아니었습니다.
엔지니어였습니다.
제가 중얼거렸습니다.
하지만 진짜 충격은
그 옆에 놓인 작은 원형 물건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저를 한국으로 불러들인 문제의 유물
다뉴세문경
잔 줄 무늬 거울이었습니다.
지름 21cm의 작은 청동 원반 겉보기에는 그저 빗살 무늬가 새겨진 평범한 장신구 같았습니다.
저는 속으로 비웃음을 흘렸습니다.
고작 이깟 거울 하나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했나?
하지만 김 박사는 아무 말 없이 대형 모니터와 연결된 고해상도 전자 현미경의 전원을 켰습니다.
화면에 거울의 표면이 100배로 확대되어 나타나는 순간
맙소사?
저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습니다.
의자가 바닥에 끌리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지만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모니터 속 세상은 미친 관계의 집합체였습니다.
그 좁은 원판 안에 육안으로는 보이지도 않던 미세한 선들이 거대한 우주처럼 펼쳐져 있었습니다.
선 하나의 굵기는 머리카락 굵기의 1/3 수준인
0.3mm 선과 선 사이의 간격 또한 0.3mm로 일정했습니다.
그 얇은 선들이 무려 1만 3000개나 빼곡하게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동심원을 그리며 얽혀 있었습니다.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선의 깊이였습니다.
0.06mm 종이 한 장 두께보다 얇은 깊이로 일정하게 파여 있었습니다.
이게 이게 말이 됩니까?
컴퓨터도 없던 시절에
확대경도 없던 시절에
저는 떨리는 손으로 모니터를 가리켰습니다.
박사님 이건 사람이 손으로 그린 게 아닙니다.
콤파스를 썼다고 칩시다.
하지만 13000번을 돌리는 동안
중심축이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고요.
진흙 거푸집에 이 얇은 선을 새기다가 한 번이라도 손이 미끄러지면 전체를 망치는데
수정도 불가능한 공정을 성공시켰다고요.
이건 이건 확률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 순간 저는 현미경 모니터 속에
그 기하학적인 선들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현기증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제 눈앞에 믿을 수 없는 환영이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시공간이 뒤틀리며
저는 2400년 전 고조선의 어느 뜨거운 대장간 한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숨이 막힐 듯한 열기
숱이 타오르는 냄새
그 한가운데에 이름 모를 장인 한 명이 앉아 있습니다.
그는 상의를 탈의한 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습니다.
그의 온몸은 땀으로 번들거리지만
그는 땀을 닦을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의 손에는 머리카락보다 얇은 침이 들려 있습니다.
그는 지금 진흙으로 빚은 거푸집 위에 선을 긋고 있습니다.
그의 눈빛은 인간의 것이 아닙니다.
광기서린 집착
아니 신과 접신한 듯한
무아지경의 상태입니다.
그는 호흡을 멈춥니다.
심장이 뛰는 미세한 진동조차 손끝에 오차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생명을 깎아 거푸집에 불어넣고 있습니다.
한줄 또 한 줄
13000번의 빗질
한 번이라도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극한의 수행
옆에서 제자가 물을 건내려 하지만
그는 눈짓으로 거절합니다.
이 작업이 끝날 때까지
그는 먹지도 마시지도 자지도 않을 기세입니다.
이윽고 끓는 쇳물이 준비됩니다.
이것은 가장 위험한 순간입니다.
구리와 주석의 합금 주석 함량이 높을수록 빛은 잘 반사하지만
금속은 유리처럼 깨지기 쉬워집니다.
쇳물이 식는 속도
거푸집의 온도
붓는 각도
이 모든 변수가 완벽하게 맞아 떨어져야만
쇳물은 0.3mm의 미세한 틈새로 파고들 수 있습니다.
치이익
하얀 증기와 함께 쇳물이 주입됩니다.
장인은 기도를 올리듯 눈을 감습니다.
이것은 과학이자 신과의 도박입니다.
잠시 후 거푸집이 깨지고 은백색의 빛이 쏟아져 나옵니다.
성공입니다.
기포 하나 없는 완벽한 표면
장인은 그제야 참았던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쓰러집니다.
팍 악
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등줄기는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습니다.
제가 보고 있는 이 차가운 금속 원반은
2400년 전 그 이름 모를 장인이 목숨을 걸고 남긴 영혼의 결정체였습니다.
김 박사는 멍하니 서 있는 저에게 다가와 차분하게 설명했습니다.
30년 전 한국 최고의 주물장인들과 공학자들이 모여 이 거울을 현대 기술로 복원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결과가 어땠을 것 같습니까?
전멸이었습니다.
실패 또 실패
그의 설명은 제 공학적 자존심을 난도질했습니다.
현대인들은 확대 도면을 그려놓고 기계로 축소 조각하는 방식을 썼지만
0.3mm 간격의 선을 거푸집에 옮기는 과정에서 선이 뭉개지거나 무너져 내렸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주조였습니다.
쇳물을 붓는 과정에서
그 미세한 틈으로 쇳물이 끝까지 흘러들어가지 않아
기포가 생기고 무늬가 흐릿해졌습니다.
결국 현대 과학자들은 인정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2400년 전 그들의 기술을 따라갈 수 없다.
저는 멍하니 거울을 바라보았습니다.
우리는 고대인들을 동굴에서 짐승을 사냥하고 돌도끼나 휘두르는 미개인으로 규정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 거울을 만든 장인은
저보다 뛰어난 재료 공학자였고
저보다 정교한 손을 가진 외과 의사였으며
저보다 완벽을 추구한 예술가였습니다.
눈앞에 이 작은 금속 원반이 거대한 괴물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거울은 저에게 묻고 있었습니다.
너희가 자랑하는 문명이 과연 우리보다 위대한가?
너희는 전기도 없는 곳에서
오직 두 눈과 두 손만으로
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가?
저는 장갑 낀 손으로 얼굴을 감싸주었습니다.
패배였습니다.
완벽한 패배
독일 최고의 재료 공학자라는 타이틀이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박사님
제 목소리는 갈라져 나왔습니다.
이 정도 기술력이 있었다면
이건 단순히 몇몇 천재 장인의 솜씨가 아닙니다.
광산을 찾아내고 재련하고
디자인하고 생산을 관리하는 거대한 산업
시스템
즉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가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제가 틀렸습니다.
이 땅에는 로마보다 정교하고
이집트보다 신비로운 제국이 있었습니다.
조선
김박사는 아무 말 없이 제 어깨에 손을 올렸습니다.
그의 눈빛은 이제야 진실을 마주했군요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교수님 이제 충격을 좀 진정시키시죠.
이 거울을 만든 사람들이 지배했던 땅
그 영토의 크기를 확인한다면
아마 오늘 밤잠은 다 주무신 걸 겁니다.
지도를 보러 가시죠.
박물관 수장고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저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0.3mm의 선들이
제 머릿속을 맴돌며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이 괴물 같은 기술을 가진 자들은 어디까지 뻗어나갔던 것일까요?
한반도라는 작은 그릇에 담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그들의 흔적을 쫓아
저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김 박사를 따라 나섰습니다.
박물관을 나와 호텔로 돌아온 시각은
새벽 3시가 훌쩍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지만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깨어 있었습니다.
창밖에는 서울의 밤 비가 그치고
도시의 불빛이 아른거렸지만
제 귀에는 2400년 전에 거친 바람소리와 말발굽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룸서비스로 시킨 식은 커피를 단숨에 들이키고
김 박사가 건네준 두툼한 자료집과 지도를 책상 위에 넓게 펼쳤습니다.
김박사가 헤어지기 전 남긴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박사님 오파츠라는 말을 아시죠?
오늘 보신 그 거울과 검은 단순한 유물이 아닙니다.
그 시대를 초월해 버린 기술이자 그 기술을 가능케 했던 거대 시스템의 증거입니다.
저는 떨리는 손으로 가방에서 붉은색 플러스 팬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오늘 박물관에서 확인했던 비파형 동검과 고인돌이 출토된 지역들을 지도 위에 하나하나 점으로 찍어 연결해 보았습니다.
그들이 가진 0.3mm의 기술력이 이토록 엄청났다면 그들의 영향력이 미쳤던 땅의 크기 또한 결코 작지 않았을 것이라는 가설을 검증해야만 했습니다.
사각사각 팬쪽이 종이 위를 달리는 소리만이 정막한 방안을 채웠습니다.
한반도 남쪽 끝 해남에서 시작된 붉은 점들은
전라도와
경상도를 지나
충청도와
경기도를 거쳐 북쪽
평양으로 거침없이 뻗어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압록강을 건너는 순간 제 손의 움직임은 빨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설마. 여기까지? 붉은 선은 현재의 국경선인 압록강과
두만강을 비웃기라도 하듯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요동반도를 거대한 뱀처럼 휘감아 돌더니 광활한
만주 벌판 깊숙한 곳까지 뻗어나갔습니다. 러시아의
연해주 일부 지역까지 붉은 점들이 찍히기 시작했을 때 저는 팬을 떨어뜨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말도 안 돼. 이건 서유럽 전체보다 더 거대하잖아.
유럽인인 저에게
한국은 늘 중국과 일본이라는 강대국 사이의 낀
작은 반도 국가였습니다.
하지만 지도 위에 드러난
이 고대 제국의 영토는
독일 프랑스 영국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광활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부족 연맹체의 영역이 아니었습니다.
명백한 제국의 영토였습니다.
저는 즉시 노트북을 열어 중국 요녕성과 만주 지역의 발굴 보고서를 검색했습니다. 그리고 모니터 화면 가득 떠오른 사진 한 장에 숨을 멈췄습니다.
중국 요동지방의 계주 석풍산 계주 고인돌 해발 수백 m의 험준한 산 정상에 제가 강화도 빗속에서 보았던 것보다
더 거대하고 웅장한 탁자식 고인돌이 우뚝 솟아 있었습니다.
덮개돌의 길이만 8.6m.
무게는 수십 톤 그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가 하늘을 떠받치듯 서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평지에서 50톤의 돌을 옮기는 것도 기적입니다.
하물며 이 무거운 돌을 끌고 가파른 산비탈을 올라 정상까지 운반했다.
이것은 현대의 중장비로도 결코 쉽지 않은 난공사입니다.
최소 수천 명의 인력을 동원하고 그들에게 식량을 조달하며 불만을 통제할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
산 정상의 저런 거대한 랜드마크를 세울 수 있었던 존재는
단순한 현장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수만 수십 만의 백성을 호령하던
절대 권력자 즉 황제였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영토만 넓었던 것이 아닙니다.
문헌 자료를 뒤지던 저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록을 발견했습니다.
기원전 4세기 중국 전국 시대의 강자였던 연나라의 기록인
위략
이었습니다. 조선이 강성해져서 왕을 칭하고 연나라를 공격하려 하니
연나라 역시 장성을 쌓고 방비했다.
저는 책상을 탁하고 내리쳤습니다.
이거였어. 중국이 그토록 자랑하는 만리장성 그 시작이 흉노족 때문만이 아니었어.
바로 이 조선이라는 나라가 두려워서였어.
서구 역사학계에서 만리장성은 흔히 북방 유목민을 막기 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지도를 놓고 보면 연나라가 쌓았던 장성의 동쪽 끝은 정확히 고조선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춘추전국 시대라는 양육 강식의 정글 속에서 감히 중원의 강대국인 연나라를 상대로 선제 공격을 계획할 수 있었던 나라.
그리고 그 위협이 너무나 실질적이라 연나라가 막대한 국력을 소모해가며 거대한 성격을 쌓아 막아야만 했던 나라
고조선은 당시 동북아시아의 군사적 밸런스를 쥐고 흔들던 슈퍼파워였습니다.
그 힘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요?
단순히 싸움을 잘 해서였을까요?
아닙니다.
저는 지도 위에 표시된 붉은 선들이 단순한 국경선이 아니라 거대한 경제 혈관임을 깨달았습니다.
중국의 옛 경제 서적
관자
에는 제나라 황공이 관중에게 묻기를 조선의 뭄피호랑이 표범 가죽을 수입하여 값을 치르자고 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 순간 저는 잠시 눈을 감고
기원전 5 세기 고조선의 항구 도시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습니다.
지루한 역사책의 글자들이 살아 움직이며 제 눈앞에 생생한 풍경을 만들어냈습니다.
짠내 나는 바닷바람과 시끌벅적한 소음이 귓가를 때립니다.
이곳은 지금의 요동반도 혹은 평양 어딘가에 위치한 고조선의 국제 무역항입니다.
항구에는 멀리 제나라 산동 반도와 연나라에서 온 거대한 무역선들이 깃발을 펄럭이며 닻을 내리고 있습니다.
배에서 내린 중국 상인들은 짐꾼들을 재촉하며 비단과 화폐 명도전을 내리고 대신 고조선의 특산품을 싣느라 분주합니다.
시장 골목에서는 다양한 언어가 뒤섞여 마치 고대의 바벨탑을 보는 듯합니다.
이봐. 이번에 들어온 조선산 호랑이 가죽은 어디 있소
우리 제나라 귀족들이 그 가죽을 구하지 못해 안달이란 말이요.
줄을 서시요.
이번 물량은 이미 예약이 끝났소
주막에서는 고조선의 상인들이 중국 상인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흥정을 합니다.
고조선의 상인들은 여유가 넘칩니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은 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당시 최고의 전략 물자였던
모피와 청동의 공급망을 쥐고 있었습니다.
특히 시장 한복판 가장 화려한 전시대에 놓인 물건 앞에서 사람들은 넉을 잃고 서 있습니다.
바로 비파형 동검입니다.
햇빛을 받아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그 우아한 곡선
이 검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오.
우리 조선의 기술이 집약된 예술품이지
이걸 차지 않고서는
어디 가서 대장부 대접받기 힘들 거예요.
중국의 군벌들도
만주의 족장들도
이 검을 구하기 위해 앞다퉈 돈을 지불합니다.
이 검을 찾다는 것은
곧 당대 최고의 선진국입니다.
고조선과 연결되어 있음을 과시하는 최고의 명품이자 신분증이었으니까요.
저는 눈을 떴습니다.
심장이 두근거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고대판 한류 K 웨이브이자 동북아 무역 허브로서의 고조선의 위상이었습니다.
재료 공학자인 저를 더욱 전율케 한 것은
청동 카르텔
의 가능성이었습니다.
청동의 핵심 재료인 주석은 고대 세계에서 매우 희귀한 자원이었습니다.
하지만 고조선의 영토인 한반도 북부와 만주는 광물 자원의 보고입니다.
어제 보았던
다뉴세문경과 비파형 동검
의 완벽한 합금 비율은 고조선이 청동의 원료 채굴부터 재련 가공 유통에 이르는
전 과정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었음을 증명합니다.
마치 현대의 산유국들이 석유를 무기로 삼듯
고조선은 고품질의 청동 무기와 도구를 주변국에 공급하거나 통제함으로써 막강한 외교적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칼만 잘 쓰는 야만인이 아니라 계산기를 두드릴 줄 아는 노련한 국제 무역상이자 경영자였습니다.
문화적 통일성 또한 놀랍습니다.
이 광활한 영토 어디에서나 발견되는 미송리형 토기
중국의 것과는 확연히 다른 손잡이가 달린 이 독특한 항아리는
압록강 너머 만주 사람들과 한강 유역의 사람들이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생활 양식을 공유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입니다.
그들은 언어와 문화 그리고 피를 나눈 거대한 운명 공동체였습니다.
새벽 4시 저는 창가에 서서
비 그친 서울의 새벽 풍경을 바라보았습니다.
멀리 한강 다리 위를 달리는 차들의 불빛이 보였습니다.
좁은 국토 자원 하나 없는 이 나라가 어떻게 반도체와 조선업 자동차 산업으로 세계 1위를 다투는 저력을 발휘할 수 있었는지?
이제야 그 수수께끼가 풀리는 기분이었습니다.
너희는 원래 대륙을 경영하던 민족이었구나.
지금 한국인들의 혈관 속에는 2500년 전 만주의 거친 바람을 맞으며 말을 달리고 거대한 바위를 떡 주무르듯 다루며
청동 네트워크
로 동북아. 경제를 지배했던 그 제국의 dna가 여전히 펄펄 끓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갑자기 튀어나온 돌연변이가 아니라 수천 년을 이어온 엔지니어이자 경영자의 피를 물려받은 적통 후계자들이었습니다.
군사 대국이자 경제 대국 그리고 기술 대국이었던 고조선
그들은 무력이 아닌
시스템
으로 동북아시아를 지배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완벽해 보이는 제국에도 아킬레스근은 있었을까요?
아니 오히려 그들은 이 거대한 부와 힘을 유지하기 위해 더 치밀한 내부 통제 시스템을 갖춰야만 했을 것입니다.
내일 제가 확인하게 될
하늘을 읽는 기술
은 바로 그 내부 결속을 위한 지배층의 필사적인 노력이자
백성을 향한 따뜻한 과학이었음을
이때는 미처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김 박사는 충혈된 눈으로 로비에 나타난 저를 데리고
서울 근교의 고대 천문학연구센터로 향했습니다.
차 안에서 그는 제게 의미심장한 말을 건넸습니다.
교수님 어젯밤 확인하신 제국의 거대한 영토와 경제력이 고조선의 하드웨어였다면 오늘 확인하실 것은 그 거부를 움직이게 했던 소프트웨어
즉 그들의 과학과 철학입니다.
진짜 감동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죠.
연구센터에 문을 열고 들어서자 칠판과 성도 별자리 지도가 가득한 방 한가운데에 평안남도에서 발견된 한 고인돌의 덮개돌 표면을 그대로 떠낸 거대한 탁본이 걸려 있었습니다.
교수님 이 구멍들이 무엇으로 보이십니까? 저는 안경을 고쳐쓰고 탁본을 자세히 들여다보았습니다.
거친 바위 표면에 크고 작은 구멍들이 불규칙하게 뚫려 있었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그저 오랜 세월 비바람에 깎인 풍화 흔적이거나 아이들이 돌멩이를 던져 생긴 장난 자국 같았습니다.
글쎄요.
불규칙한 자연 침식 흔적 아닙니까?
제 대답에 김 박사는 말없이 투명한 필름 한 장을 탁본 위에 겹쳐 놓았습니다.
그 순간 제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탄식이 터져 나왔습니다.
맙소사. 바위 위에 그 무질서해 보이던 구멍들은 필름 위에 그려진 현대의 별자리와 소름 끼치도록 정확하게 일치했습니다.
가장 크고 깊게 파인 구멍들은 북두칠성이었고
그 주변으로 30여 개의 별자리가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펼쳐져 있었습니다.
이것은 천문도군요. 단순히 밤하늘이 예뻐서 그린 그림이 아니었습니다.
별의 밝기에 따라 구멍의 크기와 깊이를 다르게 조절한 디테일은 소름이 돋을 정도였습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 이 별자리의 배치는 기원전 2500년경 고조선 영토의 위도에서 관측된 밤하늘을 정확히 묘사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탁본 앞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그러자 제 눈앞에 4500년 전에 차가운 겨울밤이 펼쳐졌습니다.
칼날 같은 만주의 바람이 휘몰아치는 칠흑 같은 밤입니다.
모든 백성이 잠든 시각
고조선의 천문관은 홀로 높은 재단 위에 올라서 있습니다.
그는 두꺼운 가죽옷을 입었지만 살을 에는 추위는 뼛속까지 파고듭니다.
하지만 그는 꼼짝하지 않습니다.
그의 눈은 밤하늘의 별을 쫓고 그의 언손은 정과 망치를 쥐고 있습니다.
챙 챙
차가운 돌을 쪼는 소리가 밤공기를 가릅니다.
손가락의 감각이 없어진 지 오래지만
그는 멈출 수 없습니다.
내가 이 별의 위치를 놓치면
내년 농사를 망친다.
내가 기록을 실수하면 수만 명의 백성이 굶어죽는다.
천문관측은 낭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사투였습니다.
왕의 권위를 세우기 위함이 아니라
씨 뿌릴 시기를 알지 못해 불안해하는 농부들에게 정확한 때를 알려주기 위한 지배층의 무거운 책임감이었습니다.
교수님 고대 사회에서 별자리를 읽는다는 것은 곧 시간을 지배한다는 뜻입니다.
지배층은 이 고급 정보를 독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마을 사람들이 매일 오가며 볼 수 있는 거대한 고인돌 뚜껑돌 위에
이 지식을 새겨 넣어 공유했습니다.
김 박사의 설명에 저는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이것은 거대한 공공시계이자 백성을 널리 이롭게 하려는 고도의 복지 시스템이었습니다.
차가운 돌구멍들 속에서 저는 0.3mm 청동 거울보다 더 뜨거운 인권주의를 느꼈습니다.
우리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그들이 살았던 도시의 모습으로 이어졌습니다.
박사님 이토록 발달한 천문학과 청동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과연 짚풀로 엮은 움집에서 추위에 떨며 살았을까요?
박살 냈습니다.
그곳에는 인류 난방 역사의 혁명이라 불리는
구들
즉 초기 형태의 온돌 시스템이 존재했습니다.
당시 로마의 귀족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겨울이면 추위를 피하기 위해 차가운 대리석 바닥 위에서 두꺼운 토가를 겹쳐 입거나
연기 나는 화로 앞에서 불을 쬐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실내에서도 입김이 나오는 생활이었죠. 하지만 동시대의 고조선 사람들은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기원전 10세기에
어느 눈 내리는 아침 고조선의 한 가정집입니다.
바깥은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이지만.
집안으로 들어서면 훈훈한 열기가 감돕니다.
아궁이에서 짚힌 불의 열기가 방바닥 밑에 통로 고래를 지나며 방 전체를 데우는 복사열 난방 덕분입니다.
아이들은 얇은 옷을 입고 따뜻한 아랫목에 배를 깔고 누워 놉니다.
어머니는 미송리형 토기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담아냅니다.
가족들은 신발을 벗고 맨발로 따뜻한 바닥을 디디며 하루의 피로를 녹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선 높은 수준의 주거 문명입니다.
열역학의 원리를 이해하고
건축에 적용한 이 따뜻한 엔지니어링이야말로 고조선이 만주의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고
거대한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습니다.
그 풍요. 풍요로운 삶을 뒷받침한 것은 역시 농업혁명이었습니다.
박물관 진열장에 놓인 호치라는 나무 쟁기. 제가 재료 공학자의 눈으로 각도를 분석해 보니
이것은 단순한 막대기가 아니었습니다.
땅을 깊게 갈아 엎어 흙 속에 공기를 불어넣고 잡초 뿌리를 끊어버리는데 최적화된 각도 지렛대의 원리를 완벽하게 이용한 하이테크 농기구였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농경문 청동기에 새겨진 그림이었습니다.
따비로 밭을 가는 사람 아래로 선명하게 그려진 이랑과 고랑 물 빠짐을 좋게 하고
작물 생산량을 극대화하는
이 농법은 서양에서는 중세 시대에나 보급된 기술입니다.
울산 유적에서 발견된 대규모 논과 수로 시설은 그들이 이미 물길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토목 공학을 갖추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풍부한 잉여 농산물은 인구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켰을 겁니다.
그 넘쳐나는 노동력이 있었기에 수만 개의 고인돌을 세우고
전문적인 장인 집단을 길러내
0.3mm의 청동 거울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죠.
마지막으로 제 눈길을 끈 것은 부서진 수레바퀴 파편이었습니다.
복원된 크기는 지름 1.6 m 성인 남자의 키만한 거대한 바퀴였습니다.
좁은 산길이나 다니던 사람들은 이런 큰 바퀴가 필요 없습니다.
이것은 고조선의 마차 두 대가 교행할 수 있는 잘 닦인 포장 도로가 존재했음을 암시합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거대한 바퀴가 달린 수레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도로를 질주합니다.
수레에는 만주의 모피와 고품질 청동기가 가득 실려 있고
이들은 항구로 이동해 중국과 전 세계로 수출됩니다.
이것은 고대판 아우토반이었습니다.
고인돌의 별자리부터
따뜻한 온돌방
그리고 대륙을 가로지르는 무역로까지
제가 목격한 고조선은 차가운 금속의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하늘을 읽어 때를 알고 땅을 엎어 사람을 품고
길을 닦아 세상과 소통했던 입체적인 문명 국가였습니다.
하지만 이토록 찬란했던 동방의 등불은
왜 역사 책에서 희미해져 버린 것일까요?
왜 우리는 이 위대한 이야기를 학교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했던 것일까요?
저는 이제 마지막으로 이 잃어버린 역사의 퍼즐 조각이 흩어져 있는 비극의 현장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희망을 확인하기 위해 한국에서의 마지막 여정지인 그곳으로 향합니다.
한국에서의 마지막 일정으로 제가 선택한 곳은 박물관의 수장고도 화려한 서울의 도심도 아니었습니다.
김박사는 저를 검은 세단에 태우고 북쪽으로 한 시간을 더 달렸습니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점점 황량해지고 도로 위에는 군용 트럭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습니다.
마침내 우리가 도착한 곳은 파주 임진강
더 이상 갈 수 없는 땅의 끝이었습니다.
차에서 내리자
며칠 내내 한반도를 적시던 비는 거짓말처럼 그치고
서쪽 하늘에서는 붉은 노을이 피를 토하듯 번져나가고 있었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끝없이 이어진 철조망과 그 너머로 흐릿하게 보이는 북녘의 산하였습니다.
저는 망원경을 눈에 대고 그 금지된 땅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칠흑 같은 침묵의 땅
저는 그곳을 바라보며 형원할 수 없는 탄식과 함께 가슴을 짓누르는 안타까움을 내뱉어야만 했습니다.
아 그래서였군요.
제가 어젯밤 그토록 열렬히 그렸던 지도가 끝내 완성될 수 없었던 이유가
호텔 방에서 붉은 펜으로 점을 이어가며 복원하려 애썼던
고조선의 영토
해남 땅 끝에서 시작되어 평양을 지나 압록강 너머 만주 벌판으로 호랑이처럼 뻗어나가던 그 거대한 등줄기가 바로 이곳에서 무참히 허리가 잘린 채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경악했던 0.3mm의 청동 거울 기술
50톤의 바위를 떡 주무르듯 다루던 토목 기술
그리고 밤하늘의 별을 읽어 백성을 먹이던 그 위대한 지혜
이 찬란한 유산의 절반 이상은 저 녹슨 철조망 넘어 갈 수 없는 땅의 차가운 흙 속에 갇혀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문헌에 따르면 평양의 대동강 유역에서는 지금도 비파형 동검이 쏟아져 나오고 황해도 구월산에는 단군과 관련된 거대한 유적들이 잠들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남쪽의 학자들은 그 실체를 만져볼 수 없어 문헌에만 의지해야 하고 북쪽의 유물들은 세계 학계에 제대로 소개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어둠 속에서 잊혀져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한 민족의 비극이 아닙니다.
이것은 인류 역사의 거대한 손실입니다.
세계사 교과서는
아직 고조선을 제대로 기록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고요?
가장 중요한 증거들이 분단이라는 감옥에 갇혀 서구 학계의 검증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저 휴전선이 거치고 남과 북의 고고학자들이 손을 맞잡고 만주 벌판과 한반도 전체를 아우르는 공동 발굴 조사를 시작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저는 감히 확신합니다.
그날 세계사는 다시 쓰이게 될 것입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로마의 콜로세움과 어깨를 나란히 할 아니 그보다 더 독창적이고 평화를 사랑했던 동방의 등불 같은 제국의 실체가 만천하에 드러날 것입니다.
고조선은 신화라는 낡은 액자에서 걸어 나와 명백한 역사의 재단 위에 화려하게 부활할 것입니다.
독일로 돌아가는 루프트 한자 비행기 안에서 저는 창밖으로 멀어지는 한반도의 야경을 내려다보며 깊은 상념에 잠겼습니다.
38선 이북은 불빛 하나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의 바다였고 그 아래 남쪽은 마치 보석함을 엎어 놓은 듯 찬란하게 빛나는 빛의 바다였습니다. 그 극명한 대비를 바라보던 순간 제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강렬한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저 남쪽의 불빛들은 단순한 전기 조명이 아니다. 사람들은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이 이룩한 경제 성장을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아무런 자원도 없이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도약한 것을 두고 우연이나 지독한 노력의 산물이라고 말하기도 하죠. 하지만 저는 이제 전 세계를 향해 단호하게 외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기적이 아니었다. 그것은 부활이었다. 생각해 보십시오. 손톱만 한 반도체 칩 안에 나노단위의 회로를 그려넣으며 세계 메모리 시장을 재패한 현대 한국 엔지니어들의 그 심기에 가까운 손기술 그것이 과연 갑자기 생겨난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2400년 전 0.3mm 간격으로 13000개의 선을 오차 없이 새겨 넣던 단유세문경장인들의 그 집요한 완벽주의가 수천 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여러분의 유전자 속에 고스란히 발현된 것입니다. 거친 파도를 헤치고 전 세계의 바다를 누비는 한국의 조선업과 사막 한가운데의 거대한 플랜트를 세우는 건설 역군들의 능력 그것은 수십 톤의 바위를 끌어올려 산 정상의 고인돌을 세우고 튼튼한 배를 만들어 중국과 교역했던 고대 토목 기술자들과 무역상들의 기백이 되살아난 것입니다.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BTS와. 블랙핑크 그리고 K 드라마의 독창적인 문화의 힘 그것은 차가운 청동 검조차 아름다운 악기인 비파의 모양으로 빚어내고 돌 위에 별자리를 새기며 예술과 과학을 융합했던 그들의 풍요와 창의성이 21세기에 맞게 폭발한 것입니다. 한국인 여러분 부디 자부심을 가지십시오. 여러분은 갑자기 부자가 된 졸부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원래 대륙을 경영하고 최고의 기술로 세상을 이롭게 했던 제국의 적통 후계자들입니다. 잠시 역사의 질 속에 잊혀지고 억눌려 있었을 뿐 그 위대한 엔지니어의 피와 경영자의 혼은 단 한 번도 끊어지지 않고 여러분의 심장 속에서 펄펄 끓고 있었습니다. 이제 저는 독일 베를린의 제조본 연구실로 돌아갑니다. 제 책상 위에는 아직 완성하지 못한 고조선 지도가 놓여 있겠죠. 붉은 선은 여전히 휴전선에서 멈춰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슬퍼하지 않으려 합니다. 언젠가 반드시 저 끊어진 허리가 이어지고 막힌 혈관이 뚫리는 날이 올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날이 오면 저는 만사를 제쳐두고 가장 먼저 비행기 표를 끊어 다시 이곳을 찾을 것입니다. 그리고 통일된 한국의 국립박물관에서 평양에서 온 비파형 동검과 서울의 단유세문경이 나란히 전시되어 완전한 제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 감격적인 순간을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때야말로 재미완성 지도의 마지막 붉은 점을 찍으며 이긴 연구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겠죠. 그때까지 부디 이 거대한 돌들이 빗속에서 들려준 이야기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지만 자신의 위대함을 기억하고 계승하는 민족에게는 그 어떤 한계도 그 어떤 불가능도 없을 테니까요. 오만했던 서구의 늙은 학자를 겸손하게 무릎 꿇린 위대한 나라 한국 그리고 그 땅을 지켜온 당신들에게 깊은 존경과 경의를 표하며 저의 긴 보고서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오늘의 이야기를 들으니 가슴이 웅장해지지 않으셨습니까? 우리는 오늘 오만했던 서구의 석학이 한반도의 위대한 역사 앞에 무릎을 꿇고 끝내 경의를 표하는 과정을 함께 지켜봤습니다.

첫댓글 최영래
신조선역사를 읽다가 출근 늦어 야단 났습니다
천영필 팀장님!!
숱한 세월속에
조상님들의 놀라운 지혜를 눈뜨게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역시
우리 민족은 하늘이 택하신 영험하고도 세계의 영도자
세계의 주님이 한국을 점지해주신 민족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신이 점지한 민족 신이 선택했던 민족
참 경이롭습니다
아직뒷 부분 못읽었습니다
한권의 책 을 이틀 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