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해설] 음지의 꽃 / 나희덕 음지의 꽃 나희덕 우리는 썩어 가는 참나무 떼, 벌목의 슬픔으로 서 있는 이 땅 패역의 골짜기에서 서로에게 기댄 채 겨울을 난다 함께 썩어 갈수록 바람은 더 높은 곳에서 우리를 흔들고 이윽고 잠자던 홀씨들 일어나 우리 몸에 뚫렸던 상처마다 버섯이 피어난다 황홀한 음지의 꽃이여 우리는 서서히 썩어 가지만 너는 소나기처럼 후드득 피어나 그 고통을 순간에 멈추게 하는구나 오, 버섯이여 산비탈에 구르는 낙엽으로도 골짜기를 떠도는 바람으로도 덮을 길 없는 우리의 몸을 뿌리 없는 너의 독기로 채우는구나
시집 『뿌리에게』 1991 ...................................................................................................................................
'음지의 꽃'이라는 시. 대학교 2학년 때 썼는데, 학생들이 경찰에 잡혀가고 군대에 끌려가는 상황을 '벌목의 땅'으로 표현했다. 나무들이 베어지고, 토막 나고, 잎도 꽃도 피울 수 없는 죽음의 시절이었다. 나무토막에 구멍을 뚫어 포자를 심으면 죽은 나무의 자양분을 먹고 피어오르는 버섯이 '음지의 꽃'처럼 보였다. 버섯이 민중의 봉기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1980년대의 전형적인 민중시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의도에서 수능 문제로 출제된 것은 아닌 듯하다. 시대에 따라 상징에 대한 해석은 달라질 수 있다. _연합뉴스 기자와의 인터뷰(2023.02.14)에서
나희덕(시인) |
첫댓글 오, 버섯이여
산비탈에 구르는 낙엽으로도
골짜기를 떠도는 바람으로도
덮을 길 없는 우리의 몸을
뿌리 없는 너의 독기로 채우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