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고향친구들 모임인 우정회 친구들과 만나는 날이다. 모임날짜는 오래전에 정해져 있었다
시간이 어중간하여 아침산행은 하지 않고 대신 옥상에 올라 대충 운동을 하고 7;40 집을 나섰다.
날씨도 어중간하다. 춥지도 덥지도 않고 흐리지도 바람이 불지도 않는다. 뻥뚫린 연휴길로 김포공항에 오고
재수가 좋은 날인지 88번 버스가 때를 맞추어 도착한다. 제일 좋은 자리에 앉아 이아폰으로 음악을 듣는다
낮선것 같기도 낮익은 것 같기도 한 풍경들이 비춰지더니 통진중고 정거장을 지나 목적지인 통진성당에 도착한다.
약속시간보다 30분이나 이른 시각이었다.성당에서 바라보는 고향모습은 볼 때마다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부근으로 생각되는 곳에는 고층 아파트가 세워져 있었다. 군사지역에 어떻게 저런
고층빌딩이 들어설 수 있을 까. 성당안으로 많은 사람들이 들어간다. 내가 있는 곳은 분명히 고향땅인데 아는 사람은 없다.
고향에서도 어느새 나는 이방인이 되어 있었다.
약속시간보다 일찍 온 친구들도 있었고 제시간에 맞춰 온 친구도 있었고 약속시간을 잘못 알아 확인전화를 받고
늦게 온 친구들도 있었다. 이숙과 혜숙은 오지 않았다.
옥금자순과 충규성호가 왔다. 성호는 깍두기로 맨마지막에 왔다. 충규차에 모두 오르고 오늘은 충규가 운전을 하기로 하였다.
48번길은 강화가는 사람들로 꽉 막혀 있었다. 지리를 잘 아는 충규는 대로를 빠져나와 소로를 달린다. 세연네도 지나고 정희가 살던 집이라는 곳도 지난다. 고향 친구들이라 벌써 옛날 이야기로 차안이 시끄럽다. 문수산 자락에 있는 김포대학을 지나 금새 강화도에
도착한다. 염화강을 따라 북쪽 해안도로로 올라간다. 길가 한쪽에는 철책선이고 다른 한 쪽에는 코스모스가 듬성듬성 피어있다.
철책선을 따라 올라가면 검문소가 나타나고 충규는 그 때마다 통행증을 보여주며 통과한다. 송해면을 지날때는 가을이 깊어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넓은 벌판은 벼를 거의 다 베고 하얀 비닐로 포장된 볏집단들이 널려있다. 감나무도 보이고 수수밭도 콩밭도 보인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고향의 가을 풍경이다. 올해는 밤이 많이 열렸는데 도토리는 열리지 않았다고 한다.
창후리 이정표를 지나 얼마 후 석모대교를 지난다. 다리는 짧고 볼품도 없다. 다시 길다란 벌판길을 달려 산길로 들어서는데
차들이 꽉 막혀있다. 아무리 길이 막혀도 차안에서는 이야기들로 시끄럽다. 간신간신히 고개를 넘고 고개를 넘어도 차는 막힌다.
한참을 내려오니 보문사가 보인다. 보문사를 지나 휑하니 뚫린길을 달려 어느 작은 포구에 이르고 포구에는 몇개의 음식점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남편들은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아오고 여편네들은 남편들이 잡아 온 고기로 음식을 만들어 파는 식의 음식점들이다.
꽃게탕과 전어회를 주문한다. 성질급한 친구들은 음식을 빨리 가져오라고 성화를 하기도 하고 성질이 까다로운 친구들은 레시피에 대해 시비를 하기도 한다. 맥주와 청하로 건배를 하고 꽃게로 만든 순수 꽃게탕과 전어를 잔뜩 먹고 음식점을 나왔다. 날씨도 좋아져
전형적인 청명한 가을 하늘이다. 바다건너 마니산이 또렷하게 보인다. 다시 차에 올라 어디론가 가더니 온천탕이 개발된 곳에서
멈추었다. 주위에는 새로 지은 기와집 건물들이 들어서 있고 노천탕 같은 곳에서는 사람들이 빽빽히 둘러 앉아 발을 담그고 있었다.
마당 한가운데서는 이름을 모르는 가수들이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신청곡도 받아 노래를 부르고 박수를 부탁하였다.
친구들도 모두 노청탕에 발을 담갔다. 물의 온도는 부분마다 달랐다. 적당히 발을 담가 몸을 덥히고 발담그기를 끝냈다.
무슨 이유때문인지 돈은 받지 않았다. 다시 차를 달려 낮선 벌판 가운데로 오고 이 곳에는 땅에 박혀 있는 파이프로 뜨거운 물이 계속 흘러 넘치고 있었다. 십수년전에 개발된 온천수라 한다. 온천수를 개발한 사람과 동네 주민들과의 이해관계와 온천으로 돈을 벌어
보려는 사람들과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켜 아직도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것이라 한다.
벼가 누런 벌판에도 차가운 겨울 바람이 불어 올 것이다. 다시 왔던 길을 달려 문수산 자락에 있는 충규네 농장으로 오고
남은 음식들을 꺼내 나눠 먹고 화투가 그려진 액자를 충규에게 건네 주었다 액자는 동금네서 만든 것이다. 텃밭에는 배추, 고추, 조, 빨강 팥, 검정 팥, 무우 등등 어릴 때 보던 작물들이 아주 잘 자라고 있었다. 고추니 파니 집에 가져간다고 챙기는 친구도 있었다.
친구들의 이야기는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지고 중학교 시절 한학기 동안 남녀 합반했던 기억들이 맞느니 틀리느니 잘 지내고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하기도 하였다. 다시 충규차로 통진성당까지 오고 바쁜 사람들은 가고 남은 사람들은 커피점에 들러 아쉬움을 달래고 노래를 부르러 가자는 사람도 있었으나 맨정신에 노래는 할 수 없는 일이라 사정하여 거절하고 각자 왔던 길로 집으로 향하였다. 강화도는 공장이 없어 청정지역이다. 공기가 맑아 기온도 김포보다 낮다. 김포에는 눈이 녹아도 강화도에는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쌓여 있다. 김포에서는 볼 수 없는 고향의 옛모습을 강화도에서 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이래 저래 짧은 가을의 하루가 지나갔다. 누런 벌판, 참나무들, 파란 배추포기는 올해는 다시 볼 수 없다.
2017/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