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통
-윤관영
배추 잎이 오그라들면서
끝이 썩어 들어가는 것을 꿀통이라 한다
그러니까, 제가 저를 파먹는 놈이다
이 꿀통에는 꼴통의 냄새가 난다
집요한 나르시스의 냄새가 난다
칼로 허리를 치면
제 살 파먹은 흔적이 나이테 같다
뿌리부터 썩는 꿀통은 자살 광신도 같다
건드리면 부서져 내린다
진딧물 먹은 놈이 실상 실한 거지만
그런 것은 버려진다
한 땅 한 하늘 한 바람인데
같은 비료 같은 농약에 한 주인일 텐데
이런 꿀통들이 왜 있을까
뿌리째 뽑아서 들이켜고 싶은 꼴통들
꿀은 스스로 간을 맞춘
소금이 필요 없는 존재
이 꿀통에는 시인의 냄새가 난다
저 죽는지 알면서도 끝내 못 놓는
그 하나, 썩어
간이 되는 그……
몸통으로 칼 받는 그……
-시집『어쩌다, 내가 예쁜』(황금알)에서
"배추 잎이 오그라들면서/ 끝이 썩어 들어가는 것을 꿀통이라 한다", 꿀통! "그러니까, 제가 저를 파먹는 놈이다", 제가 저를 파먹는 놈! 그래서 "집요한 나르시스 냄새"와 "꼴통의 냄새가 난다". 잎이 펼쳐져야 하는데 오그라든다면, 펼쳐지는 것보다 더 중한 무엇이 있어 끝이 썩어가면서까지 오그라드는 것일 터, 그래서 "꿀통"이라 불릴 만하다. 스스로를 파먹으면서 집중해야 하는 무엇, 스스로 죽음에 이르면서 집중해야 하는 무엇, "저 죽는지 알면서도 끝내 못 놓는/ 그 하나"! 결국 그것을 제 생명으로 살아버리는 것으로 자기를 완성하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배추는 아니었지만 자기 삶을 다 산 배추다. 그래서 그 삶을 그렇게 끌고 간 그 무엇에 대해 느끼고 싶다. 그 해답의 실마리를 "꿀은 스스로 간을 맞춘/ 소금이 필요 없는 존재"에서 찾는다. 한마디로 자족적이다. 그것이 무엇이었든 스스로 간을 맞추며 빠져드는 것이다. 썩어 가면서 다른 필요를 못 느끼게 스스로 간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꿀통에는 시인의 냄새가 난다/ 저 죽는지 알면서도 끝내 못 놓는/ 그 하나, 썩어/ 간이 되는 그……" 존재방식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제 몸의 "그 하나"를 향해 자기를 자기 생명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꿀통이고 꼴통이다. 그래서 어쩌면 그 꿀통은 나르시스의 냄새라기보다는 '자기-되기'의 형상일지 모른다. "한 땅 한 하늘 한 바람인데/ 같은 비료 같은 농약에 한 주인일 텐데/ 이런 꿀통들이 왜 있을까". -'자기-되기'가 아니라면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래서 중요한 것은, 끝끝내 자기를 살아낸다는 것이다. 비록 꼴통이었지만.
-글/오철수
첫댓글 오랜만에 좋은 시를 읽었습니다. 꼴통처럼 사니 꿀통이라는 시가 보인 것일 겝니다. 관영이나 저나. 이곳에도 이런 꿀통들이 많이 계신 줄 압니다. "스스로 간을 맞춘/ 소금이 필요 없는 존재". 그들의 아모르파티를 바랍니다. 그들의 시를 바라며 그냥 살았던 것 같습니다. 요즘은 더 그렇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게요~~~ 눈물나는 시네요~~^^
자기-되기..꿀통 같은 존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