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망한 바다위에서 지금 저와 제 가족들의 몸을 지탱해주고
있는 것은 베니어 판자 한 조각. 땅에 발을 붙여본 지
얼마나 되었는지 모릅니다.
아내는 수분 부족으로 누렇게 뜨고 거칠어진 얼굴로 판자조각에
몸을 붙들어매고 옆에서 자고 있습니다. 잔다기보다 탈진해서
눈도 못뜬 채 햇볕을 맞으며 숨을 몰아쉬고 있다고 해야 맞을
것 입니다. 저는 앰네스티에서 나누어준 종이와 펜으로 누가
읽어줄지 모르는 이 유서를 쓰고 있습니다. 이 글을 다 쓰고나면
빗물을 받아먹는 병에 넣어 바다로 던질 생각입니다.
원래는 국제사회에 탄원하는 글을 쓰라고 나누어준 종이와 펜이었지만
저는 이미 희망을 잃고 있습니다. 탄원서는 쓰고 쓰고 또 썼습니다.
손가락이 부르트도록 써댔습니다. 그러나 나라 잃은 사람의 탄원서따위,
누가 읽어 봅니까?
도대체 언제부터,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되었을까요?
10년전만 해도 땅위에서 움직이지 않는 집에 편안히 누워 잠들 수 있었던
우리가...
2000년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IMF에서 대출해 준 금액을 다 갚았고, 거친 국제무역의 풍랑을 어찌저찌
헤쳐나온 것 같았습니다...
신문에서 방송에서 제2의 도약을 외쳐댔습니다...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때가 기억나십니까? 세계은행에서 대출받은 외화를
다 갚았을 때 아나운서가 ' 제2의 광복'이라면 감격
스럽게 외쳐대던 그때가? 그때많도 걱정거리가 하나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문제는 전혀 예기치 않은 곳에서
터져나왔습니다. 1999년 전국민을 가입시킨 국민연금이
2004년에 고갈되었습니다. 8조원에 이르는 부채가 생겨났고
곳곳에서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이 제기되었습니다.
국민연금만 고갈된 것이 아니였습니다.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복지연금,...연금이란 연금이 연쇄 부도를 내는 것 같았습니다.
정치인들의 비리가 연일 터져나왔습니다. 민심이 흉흉해지고
물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었지요. 하지만 우리 소시민들은
지금같은 사태가 닥쳐올 것이라고 는 예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쿠데타가 발발하는 정도일 줄 알았지요.
지금 누가 쿠데타소리를 하면 저는 웃을 수밖에 없습니다.
쿠데타? 그게 무슨 상관이랍니까? 지금 우리는 이렇게 바다위에서
죽어가고 있는데? 부도는 났지만 이윤을 꽤 낼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 닥치는 운명, 일찌기 대한민국이라 불리며 세상에 존재했던
한 나라에도 그 운명이 고스란히 닥쳐왔습니다.
제일 처음에는 미국이, 그 다음에는 지리적 인접성을 주장하며
일본과 중국이, 제국주의화의 위험을 경계한다며 유럽 쪽에서도
재정 구조가 튼실한 세계각국에서 우리나라를 합병하자고 제의
했습니다. 처음 그 사실이 보도되었을 때는 신문이라는 신문마다
들고 일어났습니다. 제2의 망국이니, 식민지 백성의 설움이 재연될
수는 없다느니 하는 소리가 사설마다 넘쳐흘렀지요. 그러나 돈이
좋긴 좋았습니다. 외국 자본들의 공세가 지속되자 신문에서 쓰는
용어들이 바뀌더군요. '제2의 망국'은 '자본주위 체제의 운영원리에
따른 국가간 합병'으로 '식민지 백성의 설움'은 '개인이 민족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살려 세계를 향해 도약할 수 있는 기회'
로 말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설마설마했습니다.
정말 바보같은 국민들이었지요. 대한민국이 정식적으로 미국에 합병된
것은 2006년 10월 3일이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시청 앞에서 벌어졌던
그때의 퍼레이드를 기억합니다. 미국 대통령이 영어로 축사를 읊었고,
한국 대통령이 영어로 답사를 했습니다. 미국국기가 올라가고 대한민국
국기는 미국의 한 주의 주기로서 옆에 걸려 있었습니다.
성조기여 영원하라'가 울려퍼졌습니다...
두 정치인은 서로를 바라보며 환한 얼굴로 활짝 웃었습니다.
무척이나 화려한 퍼레이드였지만, 그것을 구경하는 국민들의
마음은 참담했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마음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불행히도 그 불안은 들어맞았습니다.그해 안에 KOREA주의 구조
조정안이 발표되었습니다. 영어를 못하고 돈도 없고 기술이나
능력도 없는 자는 더 이상 KOREA주의 주민이 될 수 없더군요.
한술 더 떠 그들은 '이런 무능한 국민들이 생존할 수 있었던
비능률적 사회구조 때문에 대다수의 선량한 KOREA주민들이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고 호통을 쳐댔습니다. 우리가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국가가 받아들이지 않는 국민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결국 우리는 베니어 합판과 스티로폴에 몸을
잡아매고 바다를 떠도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바다는 ??고 넓습니다. 쫓겨난 국민들이 아무리 많아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작은 영토, 두어평이 채 될까말까하는 나무판자들이 바다 한가운데서
만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우연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은 헬리콥터에 매달여 우리에게 음식물들을 건네주는
국제기구 회원들 뿐입니다. 그나마 이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배설물과 시체들이 바다를 오염시킨다고 국제 환경 단체들에서
들고 일어났으니까요. 어쩌면 우리는 처리되어야 할 인간 쓰레기로 분류되어,
무인도에 끌려가 사살당하고 땅을 꽃피우는 거름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죽기 전에 땅에 한번이라도 발을 디뎌볼 수만 있다면, 그래도 좋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러나 그것만큼이나 간절한 욕망은, 낯모르는 사람을 만나 우리말을 써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말을 아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았던 것, 그토록 당연하게
여겼던 것이 사실은 되찾을 수 없는 보물 같은 시간이었을 줄이야. 내곁에서 우리말을 아는 유일한 사람인 아내는 내가 말을 건네면 쓰디쓴 웃음을 짓고 고개를 설레설레 젓기만 합니다. 말을 하는 것 따위로 힘을 빼고는 것은 사치라는 뜻이겠지요.
어쩌면 아내는 이미 우리 말을 잊어버린것은 아닐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라고 생각했던 우리말은 이제 세계어디를 가나 보트 피플간의 은어 정도로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슬럼가의 똘마니들은 어설픈 동경심에 업버도 맞지 않는 '한쿡어'를 써보고, 교양있는 사람들은 우리말을 들으면 눈쌀을 찌푸린다고, 국제기구 회원이 식량을 건네주며 얼핏 말했습니다. 바다 위에서도 소문은 도는 법입니다.
바다위에 떠도는 유리병은 정말로 약한 존재입니다. 배가 일으키는 물살에 휘말려 터질 수도 있고, 바위에 부딪칠 수도 있습니다.그 안에 들어있는 종이가 해안까지 무사히 가리라는 것은 만분의 일도 기대할 수 없는 행운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저는, 오백원짜리 북권에 한번 당첨되어 본 적이 없었던 저는 그 행운을 간절히 바랍니다. 파도가 이 유리병을 해변까지 무사히 실어가리를, 그것을 줍는 당신이 한국어를 아는 사람이기를, 구조조정때 퇴출된 '무능국민'하나가 저 망망대해에서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약간의 측은한 마음을 품어줄 정도로 인정많은 사람이기를, 거기에 약간의 인정을 더 발휘해서 한때 '한국'이라 불리는 나라가 존재했다는 사실 또한 기억해줄 사람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