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은퇴를 앞둔 중앙부처 고위공무원 대상으로 인생 2모작 주제로 특강을 끝낸 뒤 질문을 받았다. 고향이 경주라는 한 나이 지긋한 50대 후반의 남성은 은퇴 후 준비가 안 돼 무척 고민스럽다며 해결방법에 대해서 물었다. 퇴직 후 일자리와 자산관리가 현재 베이비부머들에게 당장 시급한 당면과제다. 과거 살아오면서 꿈꿨던 평범한 삶마저도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그래서 미래는 누구나 두렵다. 공직자로서 바쁘게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살아왔는데 미래가 불확실하다며 한숨을 연거푸 내쉰다. 어디 공무원들만 그럴까. 밥벌이하는 모든 직업계층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꾸준한 안정적인 소득과 편안한 집, 그리고 건강을 위해 여태껏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생 100세 시대 남은 후반전을 맞아 불안하기만 하다. 이날 특강제목 <인생2막, 평생현역으로 일하고 투자하라>처럼 아직도 현역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연예인, 체육인들의 사례를 통해 퇴직 후 남은 40년 동안 자신감을 가져보고자 한다.
# 제일 먼저 소개할 사람은 ‘딴따라’ 송해다. 데뷔 60년, 올해 나이 90세(호적이 1년 늦게 신고됨)다. 정확히 말하면 1927년생이다. 최장수 방송 프로그램인 KBS <전국 노래자랑>을 지난 1988년부터 마이크를 잡은 지 무려 30년 가까이 이끌고 있는 국민MC다. 주말마다 방송에 등장하는 그를 보면서 한국 현대사를 직접 눈으로 보고 있음을 착각하게 만든다.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한 달에 5-6개의 녹화를 거뜬히 소화해 낼만큼의 강철체력이 또 감탄이다. 전국 각지를 순회하며 방송하면서 그때마다 어김없이 시골 목욕탕에 들러 벌거벗은 채로 서민들과 만나고 소주잔을 기울이는 인간냄새가 풀풀 나는 그런 할아버지다. ‘국민 할배’ 그가 밝힌 건강관리법은 평범하다.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고 열심히 하다보면 건강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라고 한다. 현역인 그는 지금도 나이를 잊은 채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해 산다. 그저 바람이 있다면 평생현역으로 방송역사상 기네스 기록을 경신했다는 소식이 들렸으면 좋겠다. 또 매주 일요일 정오에 ‘00시민, 00군민 여러분! 안녕하세요’라며 딩동댕 실로폰소리와 함께 인사하는 힘찬 목소리를 들었으면 좋겠다.
#다음 등장인물은 데뷔 50년 1939년생 짠순이 탈랜트 전원주씨다. 만 76세다. 여배우라면 예뻐야 하는데 얼굴이 안되니까 제일 밑바닥 역할을 하느라 사람대접 못 받았다고 케이블TV 프로그램에서 가슴 아픈 경험담을 털어놨다. 잘나가는 남자배우가 예쁜 여배우들만 데리고 밥 먹으러 나가는 탓에 혼자서 도시락을 먹어야 하는 등 숱한 차별을 받은 그녀였다. 가정부만 수십 년 하니까 정말 자존심이 상하고 낳아준 어머니 원망을 많이 하는 등 울기도 엄청 울었다고 했다. 오랜 무명생활을 긍정적이고 호탕한 성격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다. 지금은 적금도 많이 들어서 하루에 내가 쓸 만큼 다 쓰고 죽을 때까지 써도 남는다고 말해 후배들에게 부러움까지 샀다. 수십 년 동안 해온 가정부 역할 전문배우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이 드니까 건강하고 여력이 있을 때까지 활동하고 싶다. 지금 내가 쉬면 안 되고 나중에 기력이 없을 때 쉬어도 충분하니까 지금은 열심히 뛰어야 한다”며 노장의 의욕을 불태운다. 역시 못난이 그녀는 프로다.
#마지막으로, 결코 버리면 안 될 한 남자가 있다. 쓸모없는 사람은 없지만 다만 이를 알아보지 못하는 리더만 있다고 강조하는 1942년생 김성근 감독이다. 만으로 73세다. 한화이글스 야구를 마약야구로 만든 장본인이다. 외면 받았던 매번 꼴찌 팀을 중독성 있는 야구로 변신시켰다. 그래서 관객들은 미친 듯이 환호했고 그동안 목말라했던 그의 리더십에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는 말한다. “나는 야구를 절대로 노동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야구는 노동이 아니라 일이다. 노동은 시간만 채우지만 야구는 일로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 김 감독은 항상 생각하면서 움직였을 뿐만 아니라 게임내용을 완성시키기 위해 노력했음을 우린 인정한다. 세상에서 야구를 가장 사랑하는 그는 오늘도 그라운드에 올라가 손자뻘인 투수들에게 지친 어깨를 토닥거리며 격려한 뒤 고개를 지긋이 떨군 채 내려온다. 야구를 제일 깊이 그리고 많이 생각하는 영원한 현역이다. <김성근=야구>라는 공식이 그를 설명해 주는 것처럼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었다. 평생 동안 야구만을 해온 정년퇴직이 없는 그런 남자다. 후배들이 보기엔 왠지 부러움의 선배이었고 질투할만한 파트너이자 직장상사였다.
#오래 걸린다는 것은 세상의 기준이다. 비록 거북이처럼 느리지만 결코 포기하지만 않으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가진 것이 제아무리 많더라도 평소에 준비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가진 것이 훨씬 부족하다면 매우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거기에 승리를 위한 비결이 숨어 있다. 인생 2막을 앞두고 반드시 통과해야 관문이 있다면 그 길은 훈련(준비+경험)이라는 코스다. 인생의 대선배인 송해는 후배들을 혼낸다. “돈의 가치를 먼저 알고 그 후에 돈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이다. “무조건 돈만 많은 것이 돈의 가치가 아니고 한 푼이라도 어디에 쓸 것이냐를 생각해야 한다”면서 덧붙인다. “무슨 일을 시도하더라도 성급하게 가지 말고 당장 결론을 내지 말라”고 강조한다. 오히려 경험을 많이 못한 채로 실패의 순간이 오면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고 걱정한다. 특히 “다소 어려움이 있더라도 천직으로 알고 오랫동안 일하다보면 정답은 꼭 온다”는 따끔한 조언은 우리 후배들이 꼭 새겨들어야 한다. 이쯤 되면 며칠 전 강의에서 퇴직 후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며 질문 던진 공무원이 이 희망칼럼을 읽고 한여름 소나기처럼 단비를 맞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
첫댓글 옳으신 말이지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일거리를 찾는다면 머! 그리 없겠습니까.
편하게 소일하며 조금 나은 대우를 받으려고 하니 마땅한 자리가 없지요.
공직에서 또는 마지막 직장에서 받던 대우를 받으려고 하니 있을리 있겠어요.
모든 것을 내려 놓으면 보이는 법이지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