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형제 자매님들께
주안에서 하나된 형제가 여러분의 어려움을 뒤늦게 알고 멀리서나마 평안과 위로를 빕니다. 그리고 그곳을 떠나온 지 오랜만에 이렇게라도 소식을 주고 받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우리는 살다 보면 별의별 일을 다 겪게 되지요. 저는 여러분이 이번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서로를 더욱 사랑하고 현실이 암울할수록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던 아브라함처럼 주님께 더욱 의지하는 아름다운 주의 자녀들로 성장하게 될 것을 굳게 믿고 또 그렇게 기도합니다.
A&M한인교회는 제게 신앙의 고향입니다. 어느정도냐 하면 이것도 우상화되면 안 되는데 하고 생각할 정도이지요.
신앙생활을 시작하여 세례도 받았지요. 국내에 돌아와서는 제가 성경교육도 무척 잘 받았으며 구역에서의 나눔도 매우 성경적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지내면서 당시 그만큼 순수하고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을 찾아보기란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시 신앙의 선배들의 보살핌을 항상 잊지 않고 있답니다. 여러분들도 교회를 잘 가꾸어가서 먼 훗날 여러분의 후배들이 저와 같은 고마운 마음을 여러분께 가질 수 있는 귀한 선배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며칠 전 한국의 숭의교회 게시판에서 A&M교회의 소식을 접하고 처음에는 무척 놀랐습니다. 옛날 그곳에서 함께하던 형제 자매들을 한국에서 만난 지가 꽤 오래 되었기에 제가 그간 그곳의 사정에 어두웠었지요.
작년 쯤 어렴풋이 어떤 아는 이로부터 지나는 말로 교회에 문제가 좀 생겼다는 정도로 들은 적이 있는데 게시판 접속이 안되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그냥 넘겼었지요. 여기서의 삶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정황들이 곧바로 떠오르더군요.
소개된 홈페이지 주소로 들어와 교회소개에서 교회발자취를 보고, 그리고 교회소개에서 과거와 근래의 광고들을 살펴보며 일부 몰지각한 목회자의 만행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똑같아 하나님의 진노를 사도 크게 사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남의 일처럼만 들리던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바로 이 교회의 현실로 다가왔네요.
아직도 저는 잘 믿기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때에 김목사님이 후배들을 보살피실 여건이 되고 유집사님과 김장로님 같은 분들이 계시니 마음만은 참으로 든든합니다.
목사님! 목사님께 제 살아온 이야기를 말씀드린 적이 있던가요? 좀 드라마틱하긴 했지요. 처자의 교통사고로 그곳에 도착시기가 몇 달 지연된 것만 아시는 줄 알았는데. 기억해주시니 고맙습니다.
제가 어느 게시판에서 목사님보다 제 연배가 위라고 썼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제가 두어살 아래인 것 같군요. 제가 집앞을 지나칠라면 이박사 잠깐 들어와 하며 말을 낮추신 것 같았습니다. 저는 항상 경어를 썼고요. Sorry for that!
지금 생각하니 당시 방문연구자로 박상언집사 가정이 또 있었는데 이분은 저보다 조금 먼저 와 계셨던 것 같습니다. 게시판에 꼬리글로 질문을 해놓고 기다리다가 그 면이 넘어가기 전에 답글을 달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밤을 도와 급히 쓰느라 오랜 기억을 잘 되살리지 못한 부분들이 있었네요.
질문을 하면 답이 금방 올라오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래서 답을 안 해주는 줄 알고 그렇게 썼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시차때문이었나 봅니다.
유길선 집사님! 답장 메일 잘 받았습니다. 함께 보내주신 사진에서 보니 서계시는 자세는 세월이 지나도 여전하네요. 가히 명폼입니다. 저와 마주칠 때에도 늘 그런 자세였으며 빙그레 웃고는 말숫이 적은 편이었지요.
당시 헨젤에 사셨지요? 제 처에게 아직 사진을 보여주지는 못했는데 부인 집사님을 기억하는 것 같습니다.
김무현 장로님! 게시판을 통해서 장로님이 학생들에게 든든한 정신적 지주 역할을 많이 감당하시고 계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말씀에도 조예가 깊으시고요. 깊이 감사드립니다.
제게는 김성수 목사님 하면 옛날 호리호리하고 서민적인 냄새 그리고 예배시에 농축되고 영적으로 깊이 기도하시던 모습들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사모님은 잘 위해주셔야 되겠지요? 아니할 말로 낭군이 전공을 바꾸어 신학공부하는 바람에 고생을 남보다 더 오래 하셨으니까요. 사모님! 이정도면 제게 점수를 후히 주시겠지요?
어제 김기선 교수와 오랜만에 통화했습니다. 방학 중에 몇몇은 한번들 만나게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세월이 많이도 지났으니 저와 함께했던 분들도 저희 가정의 얼굴들이 가물가물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기억을 되살리기 쉬운 사진 몇장을 별도의 메일로 보내드립니다.
방금 숭사리까페에는 운영자 중의 한 분(새벽무릎님)이 제글 밑에 교회 홈페이지 중 "교회소개-교회발자취"를 올려주셨군요.(그곳 주소 : http://cafe.daum.net/soongsari )
모쪼록 교회가 조속히 본래의 모습을 되찾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자! 모두들 힘 내시고요.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을 믿으며...
샬롬.
사진1은 제 가족인데 95년 가을에 찍은 제 처의 여권사진입니다. 아이들은 지금 모두 대학생들입니다. 제가 좀 늦었지요. 제처는 유선희, 큰놈(이종현)은 재수해서 현재 대학 3학년이고, 작은 애(이미라)는 대학 1학년입니다. 요즘은 4식구가 함께 식사하는 경우도 적답니다.
사진2와 사진3은 86년 성탄 전야에 구역별 장기자랑 모습으로 기억합니다. 사진2로 시작해서 도중에 돌아섰다가 선그라스를 쓰고 사진3으로 다시 돌아서니 한바탕 웃음꽃이 피었지요. 교회에서 선그라스는 예외적인 일이었으니까요.
사진3에서 왼쪽으로부터, 장덕명집사(최한석 집사와 함께 저를 공항에서부터 인도했지요), 저, 조선집사(장집사의 처), 진겸이와 그 어머니(김기선 집사의 부인)입니다.
사진2에서 오른쪽에 김기선집사(구역장), 제처(유선희)와 이종현입니다.
그리고 제 증영사진은 5-6년 전에 찍은 것입니다. 교회에서 가까운 분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저를 아직 40 대 후반으로 봅니다. 그래서 한동안 반말을 하다가 우연히 제 나이를 알게 되면 아이구 형님! 하는 해프닝도 생긴답니다.
6/24/2003
이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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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희 사진이 이곳에 올려지다니 참으로 뜻밖입니다. 느보산님의 세심하신 배려에 크게 감사드립니다. 사진1은 95년이 아니라 85년에 촬영한 것입니다. 그나저나 이 사진들 여행복이 참 많네요. 미국에서 한국으로, 다시 미국으로 또 한국으로... 가족사진은 더 장거리 여행을 했군요. 샬롬.
정겹고 단란한 가족사진이 눈길을 끕니다. 대단한 미모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옛날 사진이었다고 하니 미인이셨군요. 더욱 주님의 은총이 가족위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할렐루야!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