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양시 역사와 유물유적. 관광
동쪽은 과천시·의왕시, 서쪽은 광명시·시흥시·안산시, 남쪽은 화성시·군포시, 북쪽은 서울특별시와 접하고 있다. 동126°52′∼126°59′, 북위 37°21′∼37°26′에 위치한다. 면적은 58.46㎢이고, 인구는 59만 7789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2개 구, 31개 행정동(7개 법정동)이 있다. 시청은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부림동에 있다.자연환경 광주산맥의 말단부에 위치하여 북쪽과 서남쪽에는 400m의 산지가 솟아 있고 안양천이 흐르는 중앙부에 낮은 하곡 평야지대가 발달해 있으나, 대체로 준평원의 잔구지역이다. 북쪽에 삼성산(三聖山, 456m)·관악산(冠岳山, 629m), 서남쪽에 수리산(修理山, 475m)·수암봉(秀巖峰, 395m)이 화성시와 안산시 등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학의천(鶴儀川)·삼성천(三聖川)·삼막천(三莫川)이 시의 동쪽에서 서남류하여 안산천에 합류하고, 수암천(秀巖川)·청암천(靑巖川)이 시의 서쪽에서 동북류하여 안양천에 합류한다. 안양천은 동남∼서북류하면서 주변에 넓은 하천평야를 형성시키면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간다. 이들 하천은 주변의 농지에 관개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그리고 하천 유역은 사질양토로 비옥하다. 지질은 화강암과 화강편마암으로 이루어졌다. 연평균 기온은 11.4℃, 1월 평균기온 -5℃, 8월 평균기온 25.5℃이며, 연 강수량은 1400㎜ 내외이다. 기후는 한서의 차가 심한 대륙성 기후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역사
군자산성지(君子山城址) 일대에 토기조각들이 산재해 있고, 무문토기의 후기에 속하는 흑도질토기(黑陶質土器) 조각이 출토되었다. 인근 시흥시 정왕동에서도 즐문토기 조각들이 출토되었으며, 안산시 성곡동 해봉산과 목내동의 토성지 등에서 유물·유적들이 발견되어 이곳에 이미 신석기시대에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믿어진다. 특히 가까운 광명시 소하동에 고인돌이 있으며, 수리산과 백운산에서의 산신제 유습은 이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삼한시대에 이 지역은 마한 땅이었다고 하나 그 중 어느 나라에 속했는지 확실하지 않다. 삼국이 서로 한강 유역을 차지하려 할 때 이곳은 원래 백제에 속했으나, 고구려 장수왕이 남정(南征)하여 고구려에 속하게 되면서 율목군(栗木郡 또는 冬斯肸)이라 하였다. 삼국이 통일되고 난 뒤에는 율목군도 신라의 영토가 되었으며, 757년(경덕왕 16)에 율진군(栗津郡 또는 果津·栗琳)으로 변경되면서 곡양(穀壤)·공암(孔巖)·소성(邵城) 등을 영현으로 두었다. 안양이라는 명칭은, 고려 태조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삼성산 안양사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된다. 940년(태조 23)에 구역 명칭을 바꿀 때 율진군을 과주(果州)로 고쳤으며, 성종 때는 별호로서 부림(富林 또는 富安)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1018년(현종 9) 행정 개혁에 따른 개편으로 양광도의 광주목(廣州牧)에 속했고 뒤에 감무가 임명되었다. 1102년(숙종 7)부터 과주의 용산처(龍山處: 지금의 서울특별시 용산구 일대)가 도읍지가 될 수 있는가의 여부를 살피게 한 뒤, 1284년(충렬왕 10) 이곳만을 떼어 부원현(富原縣)으로 승격시켜 과주에서 분리시켰다. 그 뒤 과주는 1390년(공양왕 2) 경기좌도에 예속되었다. 1398년(태조 7)에 과천향교(지금의 시흥향교)가 동북리에 창건되었으나, 풍수지리설에서 부적합한 터라 하여 1690년(숙종 16)에 서이리(지금의 과천시 중앙동)로 이전하였다.
과주는 1402년(태종 2)에 경기좌우도에 예속되었으며, 1413년 8도제 실시에 따라 경기도에 속하게 되면서 과천현으로 변경되고 현감이 임명되었다. 1414년에는 금천현(衿川縣)과 과천현을 합쳐 일시 금과현(衿果縣)이라 했고, 1456년(세조 2)에는 금천현을 과천현에 합했다가 복구시켰다. 1895년 지방관제 개정 때 23부 제도에 따라 과천군이 되어 인천부에 속했으나 1896년 4등군으로서 경기도 과천군이 되었다. 1912년 이곳의 호구는 867호 3,484명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금천군·과천군·안산군이 통합되어 시흥군이 되었다. 이때 과천군 상서면(上西面)과 하서면(下西面)을 합하면서 ‘서’자 둘이 합한 면이라 하여 서이면(西二面)이라고 하였는데, 이곳이 지금의 안양시 지역이다. 1941년에는 시흥군 서이면이 안양면으로 개칭되었다. 근대 인물로는 을사조약을 반대하여 초대통감이던 이토[伊藤博文]가 안양역을 지나갈 때 돌을 던져 일본경찰에 잡혀 고문으로 불구가 된 원태우(元泰祐 또는 泰根·昌壽)가 있다. 또 3·1만세운동으로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복역한 이영래(李永來)와 한흥리(韓興履) 등이 있다. 1949년 8월 안양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50년 6·25전쟁으로 많은 시설들이 파괴되었고, 애국청년들은 대한청년단을 조직, 당시 지방 공산당에 대항하여 마을을 지켰다. 1963년 동면 신안양리와 서면 박달리가 안양읍에 편입되었고, 1973년에는 안양시로 승격되면서 시흥군에서 분리되었다. 1987년 1월 광명시 소하동 일부를 석수2동으로 편입했으며, 1989년 5월에는 만안·동안 2개 출장소가 설치되었다가 1992년 10월 1일 각각 구로 승격되었다. 1994년 12월 만안구 안양동 일부와 동안구 호계동 일부가 군포시로, 동안구 평촌동 일부가 의왕시로 편입되고, 군포시 산본동 일부가 만안구 안양동으로 각각 편입되는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졌다. 이 시는 예로부터 복잡한 행정구역의 개편을 겪어왔지만, 서울과 이어져 있는 지역적인 특성으로 모든 면에서 급격한 발전을 이루고 있다.
유물·유적
불교문화재로는 만안구 석수동의 안양 중초사지 당간지주(安養 中初寺址 幢竿支柱, 보물 제4호)·안양 중초사지 삼층석탑(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64호)가 있고, 또한 삼막사(三幕寺) 내에는 삼막사 대웅전·삼막사 마애삼존불(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4호)·삼막사 동종·삼막사 삼층석탑(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2호)·삼막사 사적비(三幕寺 事蹟碑,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5호)·삼막사 명부전(三幕寺 冥府殿,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60호) 등이 있다. 이 밖에 안양 석수동 마애종(安養 石水洞 磨崖鐘,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2호)과 망월암(望月庵) 경내의 석수동 석탑(石水洞 石塔)이 있고, 신축된 안양사 경내에 안양사 귀부(安養寺 龜趺,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3호)·안양사 부도재(安養寺 浮屠材)가 있다. 또 안양동의 안양역 내에는 석탑, 용화사(龍華寺) 내에는 용화사 석불입상이 있다. 분묘로는 만안구 석수동에 안양 석수동 석실분(경기도 기념물 제126호)이 있다. 요지로는 안양 비산동 도요지(경기도 기념물 제124호) 등이 있다. 만안교(萬安橋,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8호)는 대표적인 홍예석교(虹霓石橋)이다. 민속자료로는 주술적 민간신앙의 대상인, 자연석으로 된 삼막사 남녀근석(三幕寺 男女根石, 경기도 민속문화재 제3호)이 있다. 동안구 비산동에는 1419년(세종 1) 대마도(對馬島) 정벌 때 삼군도통사(三軍都統使)로 활약한 유정현(柳廷顯)의 묘가 있으며, 개인 소장의 유영수양관연명지도(留營首陽館延命地圖,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49호)·건륭59년5월3일 군호재가문서(乾隆五十九年五月三日 軍號裁可文書,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50호)가 있다. 이외에도 신촌동에 이황 필적-퇴도선생필법 및 퇴도선생유첩(보물 제548호)이 있다. 관아 건축물로는 구 서이면사무소(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00호) 등이 있다. 무형문화재로는 옻칠공예 생칠장(제17호), 북메우기(제30호) 등이 있다.
안양시관광
광주산맥의 말단부에 위치한 안양은 시의 동북부에 관악산·삼성산 등의 관광명소와 서남부의 수리산·수암봉 등의 산지가 구릉성 사지를 이루면서 도시 발달에 좋은 입지 조건이 되었다. 수리산을 위주로 한 자연 관광자원과 문화적 관광자원이 곳곳에 분포되어 있다. 관악산·안양유원지·안양사·염불암·수리산·삼막사·얀양 중초사지 당간지주와 삼층석탑 등은 잘 알려진 관광명소이다. 고려 태조가 삼성산 기슭에 이 고을 사람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고을이란 글자 ‘안양(安養)’에서 지명이 안양으로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서울의 팽창으로 오염되고 과거에 유명했던 포도밭은 없어졌지만, 이 고장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관광명소는 자랑할 만하다. 석수동에 있는 중초사지의 당간지주는 드물게 명문이 새겨져 있고, 그 뒷산 바위면에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마애종이 아름다운 자태를 선명히 드러내보이고 있다. 원효대사가 수도했다는 삼성산의 삼막사가 있으며 그 주변에 보기 드문 남근석·여근석이 있어 이곳이 민간신앙의 한 터전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수리산삼림욕장은 수도권 관광객들의 휴식 공간으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안양동 병목 안 입구에서부터 안양8동 상록마을까지 약 8㎞의 산책로를 따라가면 넓은 삼림욕장이 나오는데, 이곳은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곳에는 만남의 광장, 한마음놀이터 등 4개의 광장과 7개소의 약수터, 명상의 숲, 덩굴터널 숲, 개나리 숲, 아카시아 숲, 쉬어가는 숲 등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어 휴식객들에게 인기 좋은 곳이다. 또한 안양유원지는 안양역에서 북동쪽으로 2㎞, 관악전철역에서 동남쪽으로 1.5㎞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어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미 30년 전부터 관악산과 삼성산의 깊은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을 이용해서 만든 풀장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그리고 안양유원지에 이르는 길 양측에 봄이면 딸기밭, 가을에는 포도원들이 휴게실을 가설해놓고 관광객을 맞이하는 풍경은 이 지역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경기지(京畿誌)』
『경기읍지(京畿邑誌)』
『안양시통계연보』(안양시,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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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연감』(경인일보사, 1997)
『문화재 안내문안집』Ⅰ·Ⅱ(경기도,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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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 안양통계연보』(안양시, 1997)
『안양시 지명유래집』(이승언, 새안양회, 1996)
『지명유래집』(경기도, 1987)
『한국행정제도사』(정시채, 법문사, 1986)
『경기도지』(경기도지편찬위원회, 1955·1956·1957)
안양시(http://www.anyang.go.kr)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1980년의 안양시가지
2021-12-02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