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그렇게 많은 과실을 원하심에도 우리에게 과실을 맺으라고 명령하시는 구절이 본문에 한 곳도 나와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과실은 절로 맺는다고 말씀하십니다(4). 그럼에도 가지는 자기 스스로 과실을 맺는 것이 아닙니다. 가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나무에 붙어있는 것입니다. 나무에 붙어있기만 하면 나무는 흙에서부터 영양분과 수분을 끌어올려 가지에게 충분히 공급해 주는 나머지 일을 다 해줍니다. 가지는 그것을 받아먹으면서 주님 안에 거하면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도 스스로 과실을 맺으려고 몸부림칠 필요가 없습니다. 과실은 우리가 몸부림친다고 맺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리 선해지려고 노력으로 나 스스로는 선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께 딱 붙어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되는 것이지만 내가 예수 안에 거하는 데는 특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안에 있지만, 그 관계를 토대로 예수 안에 거하기를 노력하는 자신의 수고가 필요합니다.
예수 안에 거한다는 말은 생명 되신 그리스도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안에 거하지 않는 삶이란 예수님을 마음 문밖에 세워 놓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계3:20).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잘못하면 형이상학적인 관념에 머물기 쉽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을 때 예수님을 내 안에 모시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묵상하면 시냇가에 심긴 나무처럼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 풍성한 사람이 됩니다.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예수님과 깊은 교제를 하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말문이 열립니다. 터진 기도는 제한적이지 않습니다. 남녀가 처음 만나면 어려워서 말 한마디 건네기가 힘이 들지만 만남이 깊어지고 사랑에 빠지게 되면 거리낌이 없고 무슨 말을 해도 즐겁습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기도’는 욕심대로 다 털어놓는 기도가 아닙니다. 말씀을 통해 주님과 교제를 하고 주님의 마음을 읽고 뜨거운 사랑의 관계가 되면 무엇이든지 주님 앞에 부담 없이 아뢰는 기도로 발전합니다. 충만하게 기도하는 자가 풍성하게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에서 가장 많이 재배하던 작물이 포도나무였기에 주님은 자신을 포도나무에, 하나님은 포도나무를 가꾸고 재배하는 농부로, 믿는 우리는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로 비유하셨습니다. 농부가 있기에 한 그루의 묘목은 비로소 포도나무일 수 있고 그 가지는 열매를 맺을 수 있듯, 우리의 구원자 되시고 농부 되시는 하나님이 함께하시기에 우리는 비로소 참된 그리스도의 가지일 수가 있고 열매 맺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재 아무리 윤이 나고 잎이 무성한 가지라도 나무에서 떨어져 나오면 그 순간부터 말라 죽습니다. 잠깐 살다가 흙으로 돌아갈 인간이 영원한 생명이요 진리이신 예수님께 자신을 접붙이지 아니하면 말라 비틀어져 불 속에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2). 가지가 나무에 붙어 나무 안에 거한다는 것은 가지가 나무의 뿌리까지 송두리째 품는 것을 뜻합니다(5). 주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께서 내 안에 들어와 주시는 것을 뜻합니다.
내가 주님 안에 거하여 주님의 모든 것이 되듯이, 주님께서 내 안에 거하심으로 나의 모든 것이 되어 주십니다. 나의 의미가 주님의 의미로, 나의 가치가 주님의 가치로, 나의 가능성이 주님의 가능성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포도나무 가지의 소원은 사과 열매를 결실하는 것도, 딸기를 품는 것도 아닙니다. 참 포도나무 가지라면 그 소원은 농부가 원하는 최상품 포도를 맺는 것입니다. 말씀 안에 거하며 그리스도를 품고 있는 자의 바라는 것이 쾌락이나 욕망의 열매일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마음에 품은 성도라면 진리와 생명의 열매를 맺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는 것이 그의 바람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나의 계획과 방법이나 때가 아니라 가지 된 내가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께 붙어있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의 가지 됨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내 속에 모시는 것이기에, 나의 능력과 한계를 초월하여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그 열매만이 벌레를 먹지도 썩지도 쓴 소태로 변하지도 남을 해치지도 않는 참된 열매, 영원한 열매가 될 것입니다.
해마다 농부는 포도나무가 과실을 많이 맺게 하려고 정성을 쏟는 일이 가지치기입니다(2). 농부는 죽은 가지를 잘라내고, 열매 맺을 가능성이 없는 가지를 추려냅니다. 죽은 가지를 그대로 놓아두면 병균이 꼬여 건강한 나무까지 못쓰게 됩니다. 열매를 맺을 가능성이 없는 가지를 추려내는 것은 다른 가지들이 열매를 맺는데 필요한 자양분까지 도둑질해 가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가 열매를 많이 맺도록 가지를 깨끗하게 하십니다(2,3). 주님은 우리가 십자가에서 피 흘려 구원해주신 소중한 하나님의 자녀들이기에 성령을 통해서 말씀으로 깨끗케 하시며 말씀을 영의 양식으로 삼아 열매 맺는 생명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생명의 원천입니다. 지혜의 보화가 있고 우리의 모든 문제를 풀고도 남음이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엄마를 붙든 아이처럼 예수님을 붙드는 데 최선을 다할 때 삶을 통해 풍성한 과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