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의 바닷가에서
보초를 서는 강상병은 군기가 잘 들은, 반공 사상이 투철한 군인이다. 초소 접근자에 대해서 간첩으로
간주, 사살이 허용되는 삼엄한 해안 초소에서 여느 때처럼 보초를 서고 있는 그 앞에 두 명의 취객
연인이 나타나 정사를 벌인다. 남자의 푸른 옷을 보고 간첩으로 오인한 강상병은 그를 사살하게 되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민간인이었음이 밝혀진다. 어쨌거나 직무를 충실히 수행했다는 공로(?)로 표창을
받고 휴가를 나오게 되는 강상병. 애인인 선화에게만 간첩이 아닌 민간인을 사살했다는 사실을 토로하는
강상병. 선화는 그런 애인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그를 피한다. 휴가를 끝내고 부대로 돌아와서 자신이
사살한 민간인의 애인인 미영이 미쳐 있음을 발견하게 되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살인마라고 본다는
피해의식에 시달리면서 강상병은 더더욱 되돌이킬 수 없는 광폭한 나락으로 빠져
드는데…
영화를 보기 전에
<나쁜 남자>의 공전의 히트, 그리고 끊이지 않는 쟁점 논쟁과 더불어 바야흐로 한국 최고의 논쟁적, 문제적 감독으로 부상한 김기덕의 여덟 번째 작품. 제 7회 부산 국제 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되면서 그의 문화적 세를 더욱 공고히 한 영화이기도 하다. 장동건의 김기덕 영화 ‘자원’ 선언과 실제 해군에 며칠 간 입대함으로써 그가 분할 강상병 역할로 완벽하게 녹아 들어가기 위한 전초전 격으로도 화제가 되었다.
이색 소재를 낯설고 폭력적인 이미지즘으로 화하는 김기덕이 <해안선>에서 선택한 소재는 해병.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징병제가 청년들의 존재적, 정치적, 성적 정체성을 지배하고 있는 한국만의 특수한 사정에 대해 김기덕 자신만의 비전을 보여줄 수 있는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놓치지 말 것
김기덕에게서 놓치지 말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이중적이다. 극단적 호오가 엇갈리는 그의 영화들에 대해 ‘놓치지 말 것’이 ‘두 번도 재고하기 싫은 것’으로 비쳐질 소지가 50 퍼센지티는 될 테니 말이다. 중도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일단 <해안선>은 기존 김기덕 영화들이 보여준 사도 마조히즘 적 이미지나 상황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다. 이것은 김기덕 감독의 자의에 의한 것으로 보는 이에 따라 ‘성숙도’의 잣대로 여겨질 수도 있다. 가령 미친 여자 미영을 해병들이 성적으로 소비하는 방식 등에서 <나쁜 남자>의 선화의 점진적 타락을 극단적 사실성으로 비추는 그것으로 부터의 탈피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김기덕의 어떤 팬들에겐 아쉬움(?)으로 남을지 모르지만 김기덕을 정치적으로 비판했던 사람들은 예의 거부감없이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지도 모르겠다.
한 편, 김기덕의 극단적인 내러티브에도 불구하고 미학적인 것으로 평가 받았던 회화적인 화면은 여전하다. 청회색 가득 한 해안의 풍광이 아름답다. <친구>에서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인정 받았던 장동건의 분투 역시 인상적이다. 김기덕의 페르소나 중 가장 다채로운 표현을 요하는 역할이라는 난항을 무난히 통과했다는 총평이다.
그래서?
Good : 김기덕을 한국의 가장 독특한 예술 감독의 한 명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징병제의 역사 속에서 일그러진 남성성의 비전을 보고 싶다.
Bad : 김기덕은 극단적 소재주의에 탐닉하는 딜레땅뜨들이 어설프게 환호하는 잘못된 신화일 뿐이다. 해병, 마초, 영웅 컨셉은 어떻게 요리해도 두드러기가 날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