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 “오직예수님만 보이더라” 말씀을 들었습니다, 위대한 모세도 엘리야도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제자들 눈에는 오직 예수님만 본 것입니다.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예수님보다 앞 세울수 없는 것은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의 창시자(히2:10)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멘입니까?....그렇다면 우리는 오직 예수님이 전부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오직 예수님만 자랑하고 예수님만 의지하고 예수님만 따라가야 합니다.
연세대학교 철학교수였던 김형석 교수 105세인데 지금도 강연을 다니시는데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자기는 자라면서 사람들에게 “너는 어머니 꼭 닮았다”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단 한번도 “ 예수 닮았군요”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답니다. 그래서 마음속에 늘 고민했다고 합니다.
며칠전 아내와 함께 운동을 하는데 저는 보폭이 좁아 걷다보면 어느새 아내는 저만큼 가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아내 뒷모습을 쳐다보니 왜 그렇게 장모님 걸어가는 모습 그대로 닮았습니까? 그런데 저도 아내한테 당신 꼭 예수님처럼 행동하니 예수님 닮았네 그렇게 말할 적은 없습니다.
우리들은 살아오면서 한번이라도 예수님을 닮았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저도 목사로서 예수를 닮아야 하는데 예수를 닮았다고 하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으니 때론 신앙생활을 잘못하고 있는가 슬프게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오직 예수님 사셨던 대로 따라가면 조금이라도 예수님 닮은 삶을 살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예수님 어떤 모습으로 삶에서 살아가셨을까요? 본문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합니다. 예수님 따라하기 첫 번째는 하나님나라 천국 복음 전파입니다.
17절...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이때부터란 예수님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때를 말합니다. 4장1-11절까지는 우리예수님 천국복음 사역이 시작되기 전 광야에서 마귀 시험을 오직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영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오직 우리 예수님은 말씀으로 사셨고 말씀이 전부셨고 오직 말씀을 전파 하는 것이 예수님의 사명이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하나님 나라 복음전파 시작이 누구와 연결되고 있습니까? 12절 시작을 보면.....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라고 했습니다.
세례요한은 누구입니까?..... 메시야 예수님의 사역을 예비한 선지자입니다. 그는 철저히 자신을 들어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도 그 분의 신발끈조차 풀기도 감당치 못한다고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멀리서 다가오신 예수님을 금방 알아 보고 말하기를 세상 죄를 지고 가실 어린양이라고 예수님을 소개하였습니다.(요1:29) 그런데 세례요한이 잡혀 감옥에 있는 겁니다. 안타깝게도 세례요한은 감옥에서 목베임을 당하여 순교하게 됩니다.
세례요한이 이처럼 순교한 시기에 맞춰 예수님 복음전파 사역이 시작됐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아쉬움을 갖는 것은 이처럼 겸손한 세례요한과 예수님이 함께 하나님 나라를 사역하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지 않으셨습니다. 죽은 자는 죽어야 하고 사는 자는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 앞에서 안타까움을 가질 수 있지만 세례요한의 사역은 여기까지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사역을 얼마나 정확히 알고 실천했느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주님안에서 살고 죽는 것은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무엇을 위해 내가 살았느냐 무엇을 위해 내가 죽었느냐가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 물음이요 결단입니다.
다음 12절 하반절 13절을 보겠습니다. ~~~~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 천국전파 출발점 전초기지를 말하고 있는데 우리 예수님 갈릴리에 머무시다가 가버나움으로 이사하셨다고 했습니다. 가버나움은 갈릴리 서북쪽에 있는 해변 마을로 납달리 지역에 속하였고 스불론과도 멀지 않습니다. 가버나움은 세관이 있는 곳입니다. 상업지역으로 사방으로 길이 열린 곳으로 해상 로마로 통하는 항구가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갈릴리와 가버나움은 유대에서 변방으로 취급받아 이방인들과 같이 소외 받고 있었는데 인접한 스불론과 납달리 지역이 어떤 곳인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15-16절을 다시 읽습니다.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이사야9:1-2)
신33장을 보면 모세가 죽기 전 이스라엘백성이 정착하게 될 미래의 약속의 땅을 분배받을 땅에 대해 12지파별로 유언을 했습니다. 특히 스불론 지파에게는.... '열국 백성을 불러 산에 이르게 하고, 거기서 의로운 제사를 드릴 것이며 바다의 풍부한 것, 모래에 감추인 보배를 흡수하리로다'라고 유언했습니다.(신 33:18~19)
납달리지파에게도 유언하기를 “ 은혜가 풍성하고 여호와의 복이 가득한 납달리여 서쪽과 남쪽을 차지할지니라 했습니다. (신33:23)
이처럼 모세의 유언설교 대로 스불론과 납달리는 해변의 풍부한 것을 받아 여호와의 복을 받은 은혜가 풍성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에는 그 땅이‘그늘진 죽음의 땅’멸시 받는 땅이 된것입니다.
이런 흑암이 깊은 스볼론과 납달리에 우리 예수님 하나님나라 천국 전파를 위해 가정 먼저 가버나움에 가신 것을 예수님 오시기 전 700년전에 이사야가 9:1절에 전한 말씀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복음을 전할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 식민지로 강압적인 통치와 경제적 착취로 이스라엘은 흑암속에 멸시 받은 피페한 땅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스불론과 납달리, 이방의 갈릴리가 그늘진 죽음의 땅으로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엣날 지도자 모세가 유언했을 때 부르던 해변의 풍요로운과 하나님의 은혜의 복은 없고 오직 죽음의 그늘만이 남아 있는 땅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그곳에 천국복음을 전파하신 이유가 있었습니다.
스볼론과 납답리 이방의 갈릴리가 죽임이 깃들린 땅이지만 흑암에 앉은 백성이 무엇을 보았다고 했습니까? 큰 빛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무엇이 비추어 졌다고 했습니까? 빛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절망의 자리 죽음의 자리가 희망이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큰 빛 곧 빛이 비추어졌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 창세기 1:1 첫머리 시작은..... 태초의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 빛이 있으라 명하셨습니다. 그래서 빛이 있었습니다. (창1:3) 이 빛은 생명을 창조하는 빛입니다. 이 생명의 빛이 있은 후에 해달별들이 그리고 우주가 있었고 그리고 생명체가 존재하였습니다. 어떤 생명체든 이 빛을 받지 않으면 생명체란 존재 할 수 없습니다.
이 빛을 요한복음 1장4-5절에서는 무엇이라고 사도요한은 말씀하고 있습니까? ....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예수님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사람들에게는 빛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요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예수님안에 있는 생명의 빛이 흑암과 그늘에 앉은 백성에게 빛을 비추는 것이요, 사망의 땅에 앉은 자들에게 생명의 빛을 비추어 주는 것입니다.
핍박자 사울이 바울로 영적인 변화가 있었던 것은 다메섹도상에서 사울에게 비추어진 것은 예수님 부활의 빛이었습니다. 부활의 빛이 정오에 사울에게 비출 때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주여! 누구이시옵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니라(행9:4-5) 사울은 그 즉시 엎드려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앞을 보지못합니다. 사울은 그순간 부활의 주님 새 생명의 빛을 체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핍박자 사울이 자기가 큰 자인 것처럼 행세했는데 주님이 비추어주신 큰빛 생명의 빛을 받아 작은 자 바울이 된 것입니다....이방인의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늘진 죽음의 땅’을 회피하지만 예수님은 바로 그런 곳에서 복음전파의 사명을 펼치기에 스불론과 납납리 이방의 갈릴리가 영혼이 살아나는 생명의 빛이 비추어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12제자 베드로와 안드레 요한이 어디서 주님을 만났습니까? 갈릴리 해변에서 예수님을 만나 사람 낚는 어부가 된 것입니다.
우리예수님은 생명의 큰 빛으로 오셨기에 준비하신 대로 이제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17절......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17절 말씀에 핵심 ”전파하여“ 다른 말로는 선포하다 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 복음을 선포하는 일입니다.
설교란 가상의 사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그대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설교는 자신의 뜻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요3:34.... 하나님의 보내신이는 하나님의 말씀이오니라고 했고 요8:38....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전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누구를 만날 때 영혼의 접촉점이 이루어집니다. 접촉점이 이루어지면 좀 더 발전하여 친밀함이 더 해 집니다. 그러면 밥도 같이 먹고 속 깊은 이야기도 나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가 나누는 말이 교감이 이루어집니다. 그다음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 말씀으로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감의 말씀이 한 영혼을 살리게 될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사람들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의 설교는 간단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회개란 죄에서 돌이키고 예수 이름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흑암에서 큰 빛으로 나오는 것이 회개입니다.
매주 주일마다 참회의 기도 회개의 기도를 하지만 나의 삶의 변화가 없다면 회개에 대해 깊은 고민이 있어야 합니다. 회개란 성격의 변화요.... 생각의 변화요..... 잘못된 길을 다시 돌아가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회개의 현장이 스볼론과 납달리의 자리라고 한다면 오늘 여기 예배의 현장이 회개의 자리요 이 땅 내가 발을 밟고 있는 이곳이 회개의 자리입니다.
한가지 더 생각 할 수 있는 것은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자에게는 천국이 더 가까이 왔음을 영적으로 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한 영혼이라도 천국에 함께 갈수 있도록 영혼 구원을 외치게 사람입니다. 왜요 하나님나라가 그만큼 소중하고 귀하고 가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떤 주부가 전도를 받았습니다. 은혜를 체험하고 열심을 다하여 말씀을 암송합니다. 싱크대 앞에 성경구절을 붙여 놓고 설거지를 하면서 성경 구절을 암송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이 말씀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아니 지금 내가 하는 설거지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잖아?' 심방 다니고, 찬송만 해야 영광이 되는 줄 알았는데 먹고 마시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했다면 영광이 된다니!!~~~~
그래서 꽃 믿음 같은 순수한 성도는 너무 기뻤습니다..... 집에서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밥하는 모든 허드렛일도 하나님께서 영광으로 받으신다고 생각하니 힘이 났습니다. 방바닥을 닦으면서도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찬송을 부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방을 닦았습니다. 남편이 달라진 아내의 모습 때문에 교회에 관심을 보이더니 드디어 등록 교인이 되었다는 간증이 있습니다.
일생을 살면서 우리가 예수님을 만났던 그때부터 주님 부르신 그날까지 하나님나라 천국전파는 방학이 없습니다.
우리 예수님 하나님나라 천국전파로 공생애를 출발하시고 그렇게 일생을 하나님나라 천국전파로 일생을 마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처럼 흑암의 그늘진 곳, 죽음의 그늘이 있는 곳에 죽어가는 영혼들을 위해 오직 예수님 생명의 빛이 비추어져 마른 뻐들이 다시 살아나기를 소망하며 오직 천국 복음을 전하는 자로 예수님따라 살아 가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