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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2장1-1] 편지의 수신자/교회와 사역자(누룩 분별)
[성경 말씀](계2:1상)
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생명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름을 받은 나는 주님의 사랑을 입어 거룩하게 된 성도들과 각처에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주님을 사랑하시는 여러분들에게 더욱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함께 나눌 말씀은 편지의 수신자에 대해서입니다.
1 에베소 교회의
여기에서 ‘에베소’란 아시아에 있는 도시 이름이고 ‘교회’란 세상에서 나와 예수님 안에서 거룩해진 무리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에베소 교회’란 에베소 지역에 복음전파로 인하여 세상에서 나와 예수님 안에서 거룩해진 무리들을 말합니다.
교회/거룩한 성도들을 교회라고 하였음
[고전1:2]
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여기에서 ‘고린도’란 교회가 있는 지역 명을 말하고 ‘하나님의 교회’란 교회의 소유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말합니다. 곧 이 말은 고린도 교회를 설명한 것으로서 교회의 이름을 지역 명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이 말은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를 다시 설명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란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 진 성도들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이 말은 편지의 수신자를 성도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로 나누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이름/지역 이름을 교회 이름으로 사용하였음
[계 1:4]
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여기에서는 일곱 교회가 아시아에 있는 교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엡 1:1]
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여기에서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이란 에베소 교회를 설명하여 말한 것입니다.
[계 1:11]
11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여기에서는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의 이름을 알 수 있습니다. 일곱 교회의 이름은 그 지역 이름을 교회 이름으로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란 에베소 지역에 있는 성도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나타나 있는 교회 이름은 우리 맘대로 지어서 쓰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이름을 따르는 것이 성경적이라는 말씀입니다.
세상과 교회와의 관계/진노에서 구원된 무리
[엡 2:1-5]
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이 말은 구원 받기 전 우리의 상태에 대해서 말해 주고 있습니다.
[롬 5:12]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이 말은 죄가 세상에 어떻게 들어 왔는가에 대한 설명입니다.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들어 왔다는 말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 말은 우리가 사망에 처하게 된 이유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이 말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사망에 처한 이유에 대한 설명입니다. 첫 사람 아담이 죄인이 되었으므로 그의 모든 자손들도 죄 아래서 태어나게 되었고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세상에 속한 모두가 하나님의 진노 아래 머물러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3장 10절을 보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말은 우리가 구원 받기 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설명입니다. 죄와 허물 가운데서 살았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 풍속을 좇고
이 말은 우리가 구원 받기 전에 좇았던 삶에 대한 설명입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이 말은 세상 풍속을 좇는 자들 속에 역사하는 영에 대한 설명입니다.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이 말은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다시 설명하여 말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공중 권세 잡은 자란 용을 말하는데 이는 곧 사단입니다.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이 말은 우리가 구원을 받기 전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에 역사하는 영 가운데서 살 때에 어떻게 지냈는가에 대한 설명입니다.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이 말은 우리가 욕심을 따라 지낼 때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했는지에 대한 설명입니다.
4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이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동기가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입니다. 구원의 동기는 불쌍히 여기심과 사랑 때문입니다.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이 말은 죽었던 우리를 어떻게 살리셨는가에 대한 설명입니다. 아담 한 사람의 죄로 인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그 죄로 인하여 사망이 왔으며 세상은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머물러 있었는데 세상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인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심으로 자신의 손과 발에 못을 찍어 죄를 대신 지고 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인하여 그와 함께 우리를 살리셨다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이 말은 우리가 받은 구원이 우리의 행위 때문이 아니라 은혜로 된 것 즉 거저 주시는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러므로 자랑할 만한 것이 우리에게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교회의 분파/그리스도의 몸이 찢겨진 것임
분쟁을 바로잡기 위한 권면
[고전1:10-15]
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이 말은 고린도 교회에 일어난 분쟁을 바로잡기 위한 바울 형제의 권면입니다. 그 방법은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말과 마음과 뜻은 모두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분쟁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모두 자신들의 입장을 버리고 우리가 중심 삼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고린도 교회에 발생된 문제점/분파
11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서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이 말은 고린도 교회에 분쟁이 있다는 소식을 바울이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입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당시에 가정교회가 많았습니다. 글로에의 집 편이란 고린도 교회의 분쟁 소식을 바울에게 전달해 준 자로서 가정교회일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사람 중심으로 분파되었음
12 이는 다름 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이 말은 누구를 중심으로 분파가 일어났는지에 대한 설명입니다. 사람을 중심 삼아 분파가 일어났다는 말입니다.
분파는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는 것임
13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이 말은 교회가 분파된 것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사람 중심으로 분파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나눈 것과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 삼아야 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혔으며
이 말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 삼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
이 말은 세례 준 사람을 중심 삼지 말고 누구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는 가를 중심 삼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세례 준 사람을 중심으로 분파되었음
14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이 말은 고린도 교회에 속한 사람들 중에 바울이 세례 준 사람들에 대한 설명으로서 그 외에는 아무도 세례를 주지 않은 것을 감사한다는 말입니다. 바울 형제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고린도 교회가 자신에게 세례를 준 사람을 중심 삼아 분파를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15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이 말은 바울이 두 사람 외에 세례를 주지 않은 것을 감사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 이유는 아무도 자신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말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의 교회가 여러 교파로 나뉜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이것은 육체의 열매를 맺은 것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며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크게 회개해야 할 일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에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운 자입니다. 그리고 아볼로는 바울이 고린도를 떠난 후 고린도 교회에 와서 머물면서 그들을 가르친 자입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바울 형제는 전직 목회자이고 아볼로 형제는 현직 목회자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 교회는 전직 목회자를 추종하는 세력과 현직 목회자를 추종하는 세력으로 나뉘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고 자처하는 형제들이 있었고 또 게바에게 속한 자라고 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게바란 베드로를 말하는데 그는 유대인들 중에 아주 유명한 형제였기 때문에 그에게 세례를 받은 유대인 형제들이 그 지방으로 이사 온 형제들일 가능성이 큽니다. 당시에 사도들이 순례를 많이 하였지만 바울이 세운 고린도 교회에 베드로 형제가 왔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형제에게 세례를 받은 후 고린도 지역에 이사를 와서 교회에 합류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예수님께서 교회에 주신 직분/누룩 분별
[엡 4:11]
그가
이 말은 교회에 직분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 말은 예수님께서 교회에 주신 직분의 종류를 말합니다. 이 중 ‘사도’란 전권 위임자나 보냄을 받은 자를 말하는 것으로서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복음을 전파하는 자를 말하고 ‘선지자’란 주님의 뜻을 미리 알고 선포하는 자를 말합니다. 그리고 ‘목사’란 이곳에서 목사라고 번역되었지만 원어로는 목자입니다. 목자란 양을 치는 자를 말합니다. 그리고 ‘교사’란 가르치는 자를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목사라는 직분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아마도 목사란 목자와 교사의 두 가지 직분을 하나로 합해 놓은 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도 직분에 대해서는 초대교회 때부터 말썽이 많았습니다. 고린도 전서 9장 1-3절을 보면 ‘내가 자유자가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니 나의 사도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나를 힐문하는 자들에게 발명할 것이 이것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바울을 비판하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 후서 3장 1절을 보면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천거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 너희에게 맡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바울의 사도권을 부인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어떤 이들은 자기가 사도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추천서를 가지고 다니기도 했고 또 어떤 이들은 편지로 추천서를 보내기도 하면서 자신이 사도임을 그 추천서로 증명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사도 직분이 있었다는 것을 성경에서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는데 사도시대 이후 교회는 사도 직분을 없애버리고 대신 속사도 직분을 두었다고 합니다. 속사도란 사도의 제자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에 의하면 속사도는 있어도 사도는 더 이상 없는 듯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는 교회에서 사도나 선지자 직분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은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 전하는 자와 목자와 교사 직분을 주셨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현재 가톨릭은 주교, 대주교, 신부, 추기경 등의 직분을 사용하고 있고 개신교는 전도사나 강도사나 목사라는 직분 등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성경하고 교회가 다른 것입니까? 지금의 전통 교회가 쓰고 있는 직분들이 맞습니까? 그렇다면 성경이 틀린 것입니까? 아니면 성경이 맞습니까? 그렇다면 전통 교회가 틀린 것입니까? 무엇이 맞습니까? 말씀해 보십시오.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말씀을 지키는 것임
[요 14:23-24]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24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사람이 예수님을 사랑하면 예수님의 말씀을 지킨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율법과 선지자는 폐한 것이 아님
또 마태복음 5장 17-19절을 보면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율법은 폐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제물이 되셨음으로 제사법은 폐하였고 영적 예배로 바뀌었으며 다른 법들도 신약시대의 강화된 법으로 바뀌었습니다.
마태복음 5장 21-22절을 보면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세의 법을 그리스도의 법으로 바꾸어 주신 것입니다.
또 마태복음 5장 27-28절을 보면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곧 어떤 행동을 취하지 않고 마음으로 음욕을 품어도 간음한 것이 됩니다. 그러니까 신약시대인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법은 훨씬 더 강화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5-7장까지는 이것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원수까지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지 못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강한 자를 말하는 것으로서 이기는 자를 말합니다. 이기는 자만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이기는 자만 새 예루살렘 성 즉 믿는 이들이 생각하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계21:7)
바울 형제를 통하여 말씀하신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이란 믿음으로 의에 이른다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의에 이르는 방법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힘쓰고 애씀으로 변화 받을 수 없고 믿음에 의지하여 예수님 안에 거할 때에 열매를 맺고 변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 안에 사는 방법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주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또 선지자의 직분은 폐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을 근거로 하여 성경에 나타난 인물들을 통하여서도 이것이 사실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먼저 사도 직분을 보면 예수님의 열 두 사도가 있었고(눅6:13) 또 바울 사도가 있었으며(고전9:1,고전15:9) 그 밖의 몇몇 사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로는 유다와 실라와 아가보 등이 있었습니다(행15:32,행21:10) 여기에서 복음 전하는 자로는 스데반이나 빌립 등이 있었습니다. 이 둘은 집사였지만 그들의 일을 통해서 그들이 복음을 전하는 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행6:10,행8:12) 교사 직분은 바울도 자신을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라고 말하고 있고 그 밖에 바나바도 사도 직분을 받기 전에 교사였으며 그 밖에 마나엔, 아볼로 등을 들 수 있습니다(행13:1,딤후1:11)
성경에 사도와 선지자 직분이 기록되어 있다면 교회는 사도와 선지자 직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교회는 스스로 기록된 말씀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 됩니다. 이런 잘못된 가르침들을 누룩이라고 합니다. 누룩으로는 변화 받지 못합니다. 우리 아버지 품으로 돌아가 누룩 없는 떡으로 변화를 받으십시다.
그리고 사자에 대해서도 혹자는 이것을 원어적으로 가까운 해석이라 하여 천사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의 사역자는 편지 수신자입니다. 요한이 천사에게 편지를 보냈겠습니까?
[계 1:1]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 말은 요한 계시록이 누구의 계시인가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이 말은 계시를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셨다는 말입니다.
반드시 속히 될 일을
이 말은 요한 계시록이 예언의 책임을 말해줍니다. 꼭 이루어질 일이라는 말입니다.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이 말은 요한 계시록을 공개해 주신 목적을 말합니다.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이 말은 요한에게 계시가 전달된 경로에 대한 설명입니다.
지시하신 것이라
이 말은 계시를 기록한 이유에 대한 설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