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정적원 입니다.
오늘 올리고 싶은 글은 어제 KBS 역사추적에 나온 "백제의 대장군 예식" 을 보고 한번 써보고자합니다.
제가 한자를 잘 모르고 어려운말이 많이나와서 잘 기억은 못하지만, 요점 정리 해볼께요.
우리나라 백제의 역사를 보면 670년 백제 의자왕이 수도인 사비가 아닌 웅진성에서 당에 항복해서 백제왕과 태자 측근 수십명이
당나라로 압송되었다고나오죠.
당나라에서 발견된 흑치상지의 묘비명에는 그의 수많은 전공들이 기록되어있죠.
흑치상지는 백제 부흥운동을 하고 백제 60여 성을 회복했지만, 결국 당나라에 투항하여 당나라를 위해 엄청난 전공을 세우고 정 3품이라는 높은 벼슬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전공은 묘비명에 그대로 써있다고 하는 군요.
그리고 여기서 문제가 되는 또한사람인 "예식" 이라는 장군입니다.
중국에서 최근 예식 이라는 사람의 묘가 발굴되었는데, 이사람도 마찬가지로 백제에서 투항한 장군이 정3품의 대장군급 벼슬을
받고 당 황제의 총애를 받았다고 나오지만, 묘비명에 뚜렸한 공적은 기록되어있지않고,
백제가 항복할때 의자왕과 같이 항복하였다 라고만 나와있습니다.
역사서인 신당서를 보면 의자왕은 예씨성을 가진 장군과 함께 항복하였다고 나오고요,
구당서에는 예식은 태자융과 항복하였다
이렇게 나옵니다.
두가지 역사서의 해석이 약간 다르지만 백제가 당에 항복하는 상황을 표현한것입니다.
(예식이란 사람은 백제의 신흥 정치세력으로 웅진성 성주였을것으로 추정한답니다.)
여기서 의문점은 여러가지가 생깁니다.
1. 당시 백제는 불리하긴하였으나, 신라로부터오는 식량 보급로를 끊고 웅진과 근처 주요산성에서 의각지세를 펴며 시간이가면 갈수록 나당연합군이 불리한 전황 이었다고 하더군요.
더군다나 당시에 당군의 공격이 잠잠하던 때라 항복은 더욱 의구심을 받습니다.(한마디로 항복할 이유가없었다는거죠.)
2. 당에서 황제의 총애를 받고 정3품 대장군급까지 올라간 그의 공적은 묘비명에 조차 적혀있지 않다?
묘비명에는 그의 공적이 없습니다. 흑치상지와 비교가 되죠.
3, 예씨 가문은 우리나라역사서에 전혀 등장하지 안는 가문이라더군요. 웅진성주까지 지낸 가문이 역사서에 안나온다는건 무언가 이상합니다.(예씨 가문은 대대로 좌평의 집안이었답니다)
이런 의문점을 가지고 출발한 역사추적은 신당서의 기록과 구당서의 기록을 가지고 유추를 하기 시작합니다.
"신당서 소정방전 - 웅진성에서 그의 장군 예식과 의자왕이 함께 항복하였다."
말그대로 의자왕이 웅진성에서 예식과 함께 항복하였다 입니다.
구당서를 보면 - 그 대장 예식이 의자왕을 대리고 항복하게 하였다.
라고 나옵니다. 좀 이상하죠. 수동형태의 문장에 예식이 왕을 대리고? 항복한것입니다.
여기서 한자로 대리고란 의미의 "장(將) : 대려가자 체포하다 " 라고합니다.
취제진이 중국에서 한자를 늘상 쓰는 사학자를 찾아가 문의해보니 저 한자의 의미는 결박지어 가는 의미라고 합니다.
또 민족 사학자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 에서 백제 항복부분을 보면 대장이 백제왕을 결박해 당에게 항복한다 라고 쓰여있습니다.
예식은 의자왕을 모시는 웅진성주로서 집안 대대로 좌평을 지낸 명문가였지만, 출세의 길에서 왕을 배신하고 당에 자신의 주군을
묶어 한복한 반역자로 보는것이다, 라고 역사추적은 결론을 내립니다.
그리곤 중국으로가서 황제의 총애를 받지만 공적은 없기때문에 묘비명에 기록은 안되어있다. 라고 결론을 내리더군요.
제가 한번보고 기억을 토대삼아 말하는 내용이라 두서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충분히 관심을 가질만한 부분인것 같내요.
아마 방송에서 떠들었으니 이제 이부분에 대한 사학연구가 더욱 활발해져 몇년후면 논문하나정도는 발표될 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http://kbsmedias.tistory.com/499?srchid=BR1http%3A%2F%2Fkbsmedias.tistory.com%2F499
일크하나 걸어놀께요.
읽어주셔서 감사 합니다^^
첫댓글 저도 중간부터 봤습니다. 좀 더 연구가 이뤄져야겠지만 그정도로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보여지더군요.
아... 이거 토요일 밤에 하나 일요일 밤에 하나 맨날 헷갈려서 또 못봤네 보고 싶었던거였는데 ㅜ // 아무튼 흥미롭네요. 그러니깐 의자왕이 항복한게 아니라 장군 예식이 의자왕에게 항복을 권유했다는 것이지요?
권유가아니라, 예식이 의자왕을 묶어 당나라에 항복한거죠... 의자왕의 자의가아닌 타의
아, 원래 말은 의자왕이 항복한게 억지로 했냐는 것이냐고 물은건데 어찌 말을 잘못 말해버렸네요 ㅡ,.ㅡ...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