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오피니언
[횡설수설/이정은] ‘원조 한미동맹’… 광복군-OSS 합동 독수리작전
이정은 논설위원
입력 2023-08-16 00:09업데이트 2023-08-16 09:00
1941년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을 계기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국은 군사·첩보작전에 주로 새 이름을 붙였다. 한국광복군과 손잡고 일본이 장악 중이던 한반도에 은밀히 침투하려던 ‘독수리 작전(The Eagle Project)’이 그중 하나였다. 미 중앙정보국(CIA)의 전신인 전략사무국(OSS) 요원으로 이 작전에 참여했던 로버트 마이어스의 증언에 따르면 “독수리는 가장 매력적인 이름”이었고 “(작전이) 한미 두 나라의 신화로 남기를 바라는 측면”도 있었다.
▷OSS는 당시 ‘불사조 작전’, ‘냅코(NAPKO) 작전’ 등 재외 한국인과 함께 여러 경로로 한반도에 진입하는 계획을 세웠다. 이 중 1945년 독수리 작전에 참여한 한국광복군이 OSS 교관들로부터 받은 훈련은 강도가 셌다. 중국 시안의 한 사원을 기지 삼아 오전 6시부터 사격술과 폭파술, 무선통신술, 지도 해독, 야전술에 영어 교육까지 이어졌다. 독수리 작전의 미국 측 책임자였던 클라이드 사전트 대위는 한국 청년들이 보여준 훈련 성과에 고무돼 워싱턴 OSS 본부의 작전들을 그대로 복사해 진행할 태세였다고 한다.
▷독수리 작전의 훈련 과정과 내용을 기록한 사전트 대위의 회고록이 최근 공개됐다. 참가자들의 증언이나 흑백 기록사진 외에 책임자가 직접 쓴 회고 내용이 국내에 알려지는 것은 처음이다. 사전트 대위는 “평등, 존중, 협동의 분위기 속에 뛰어난 정신을 지닌 하나의 군단이 힘을 얻었다”고 썼다. 그가 앞서 본부에 보고한 문건에서 광복군에 대해 “내가 지금까지 봤던 가장 지적인 군사집단으로, 미국 청년 장교들과 알맞게 비교될 것 같다”고 한 것과 다르지 않은 평가다.
▷사전트 대위와 당시 광복군 제2지대장을 맡고 있던 이범석 장군 등 양국 지휘부가 함께 찍은 사진에는 영어로 ‘첫 번째 한미동맹(FIRST KOREAN AND AMERICAN ALLIANCE)을 기념하며’, 한국말로는 ‘두 나라의 힘 있는 합작이 실현되는 날’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옅은 미소 속에 비장한 결기가 어려 있는 듯한 표정은 양쪽 지휘부가 다르지 않다. 작전이 실행 직전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와 일본의 항복으로 무산되지 않았더라면 함께 피 흘리며 싸웠을 전우들이었다.
▷최초의 한미 연합작전 성격을 띤 독수리 작전은 오늘날 한미동맹의 초석을 마련한 원류로 볼 수 있다. 양국이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기 이전에 이미 일제에 맞서 손을 맞잡았던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제국주의, 6·25전쟁 후에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과 공산주의 확산을 함께 막아낸 혈맹이다. 한미동맹 70주년에 맞이한 올해 광복절은 선조들의 독립정신과 함께 동맹의 가치도 되새기게 해줬다는 점에서 더 뜻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