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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추장을 넣으면 어떤 요리도 한국 요리로 변하는 것처럼, 아주 조금만 뿌려도 세계 정통 요리로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소스다. 왼쪽부터 피시 소스, 폰즈 소스, 굴소스, 삼발 소스, 발사믹 비네거, 살사 소스. |
이처럼 나라마다 그 나라의 맛을 낼 수 있는 대표적인 소스들이 있다. 물론 어떻게, 어떤 식으로, 얼마만큼의 양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만들어낼 수 있는 요리들은 너무나 다양하지만, 아무리 조금 사용해도 그네들의 맛이 살짝 고개를 내밀게 되는 것이다.
가장 흔하게 접하고 많이 판매되는 중국의 대표적인 소스인 굴소스를 들여다보자. 검은색의 걸쭉한 질감을 가진, 굴을 소금에 발효시켜 만드는 굴소스는 현재 ‘이금기 제품’이 전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하고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다. 이 중국 소스를 대표하는 굴소스는 어떤 요리에든 한 스푼만 넣어도 충분히 맛을 낼 수 있을 정도로 진하고 강한 맛이 특징이다. 주로 중국의 볶음 요리에 많이 쓰이며, 간장보다 훨씬 깊은 맛을 내준다.
중국 요리를 먹을 때 느끼는 감칠맛의 많은 부분이 이 굴소스에서 나올 정도로 중국 요리에서 굴소스가 빠질 수 없다. 채소나 고기, 해물 요리를 할 때 굴소스를 한 스푼 넣어서 볶아주면 갑자기 맛이 확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너무나 간단하게 맛을 내어주다 보니 이 굴소스에 한번 맛을 들이게 되면 사용량이 자꾸 늘어가기 쉽다. 맛내기 쉬운 만큼 단점도 있는데 다량이 함유된 화학조미료 MSG로 인해 아이들이나 아토피가 있는 사람들은 피하는 편이 좋다. 또 맛이 굉장히 진하기 때문에 1인분에 한 스푼 이상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더불어 중국 요리는 불의 요리라고 한다. 그만큼 센 불에서 단시간에 볶아내는 것이 좋다. 재료의 수분이 나와 질척거리지 않도록 단시간에 볶은 요리에 굴소스를 넣으면 제맛이 나는 중국 요리가 된다. 볶음 요리 외에도 소스를 만들 때, 국물 요리의 맛을 낼 때 등 굴소스를 잘 넣으면 집에서 중국 요리를 하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럼 이제 중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가보자. 일본은 재료 고유의 맛을 해치지 않는 담백한 요리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새콤달콤한 맛의 폰즈 소스가 많이 사용된다. 샤브샤브를 먹을 때 나오는 새콤달콤한 간장 소스가 바로 폰즈 소스다. 폰즈 소스는 간장을 기본으로 신맛과 단맛을 절묘하게 매치한 것으로 찍어먹는 디핑 소스로 많이 사용된다. 우리의 초간장과 비슷하면서도 훨씬 가볍고 다양하다.
일본에서는 폰즈 소스를 만들 때 각 지방의 특산품인 초귤이나 유자 등을 사용해서 신맛을 낸다. 간단하게 간장, 레몬즙, 설탕을 이용해서도 새콤달콤한 폰즈 소스를 만들 수 있다. 폰즈 소스는 샤브샤브 소스 외에 각종 샐러드 소스로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오일이 들어가 있지 않아 가볍고 산뜻한 맛이 일품이다. 최근 많이 출시되고 있는 즉석으로 먹는 두부나 연두부에 곁들여 먹으면 새콤한 맛이 두부의 담백함과 아주 잘 어울리고, 고기를 찍어먹으면 고기의 느끼함도 잡아주고 입맛도 끌어올려준다.
삼발소스는 인도네시아의 고추장
삼발 소스는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소스다. 매콤달콤새콤한 맛으로 흔히 인도네시아 고추장으로 불릴 정도로 많은 요리에 두루 사용된다. 우리가 고추장을 사랑하듯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삼발 소스를 사랑한다. 삼발 소스는 특유의 매콤한 맛 때문에 한국 사람들의 입맛에도 잘 맞는다. 각종 요리에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볶음밥을 먹을 때 삼발 소스를 곁들여 함께 비벼 먹어보자. 간단하게 이국적인 맛을 느낄 수 있다. 또 느끼한 감자튀김이 있다면 역시 케첩 대신 삼발 소스를 찍어 먹어보기를 권한다. 튀김의 느끼함을 잡아줄 뿐 아니라 독특한 맛이 입맛을 당겨줄 것이다. 이외에도 삼발 소스를 이용하는 방법은 수없이 많다. 찍어먹고 볶아먹고 뿌려먹고…, 어디든 이용할 수 있다.
피시 소스라고도 불리는 늑맘은 베트남과 타이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양념이자 소스다. 한국의 멸치액젓과 같이 생선을 발효시켜 만든 어장으로, 동남아에서는 거의 모든 요리에 사용될 정도로 일반적인 소스다. 최근에는 타이 요리를 비롯한 동남아 요리가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피시 소스 역시 많이 대중화됐다. 그래서 동남아 요리뿐 아니라 다른 음식에도 감칠맛을 내는 데 사용한다. 특히 한국의 멸치액젓과 맛이 거의 비슷해서 한국 요리에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왜 동남아 요리가 아닌 일반적인 요리에도 피시 소스를 사용하면 감칠맛이 나는 걸까? 일본 만화 <대사각하의 요리사>를 보면, 정통 프랑스 요리사인 코우가 베트남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알게 된 늑맘을 프랑스 요리에 적절히 사용해서 맛을 내는 것이 많이 나온다. 만화답게 피시 소스를 살짝 첨가해서 만든 요리들을 맛본 사람들은 호들갑을 떨며 감탄하는데, 바로 서양 요리에서 맛볼 수 없는 감칠맛을 피시 소스가 주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피시 소스의 주요한 맛 성분인 글루타민산이다.
글루타민산은 음식에 감칠맛을 주고, 재료 본래의 맛을 더 풍성하게 해주는 마무리 구실을 한다. 요리를 할 때 글루타민산이 함유된 식품을 넣어주면 천연 조미료 구실을 하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MSG는 이 글루타민산을 화학적으로 합성해서 만든 제품이다. 따라서 글루타민산은 천연 조미료인 셈이다. 아쉬운 점은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대다수의 제품들이 피시 소스 원액에 설탕과 MSG 등을 첨가해서 다시 만든 소스로 100% 피시 소스를 구하기가 싶지 않다는 것. 설탕과 조미료에 범벅된 피시 소스보다는 차라리 우리의 멸치액젓을 사용하기를 권한다.
야채 드레싱의 비밀, 발사믹 비네거
집에서 샐러드를 하게 되면 레스토랑에서 먹는 것과는 너무 다른 것을 느꼈을 것이다. 여러 곳에서 나온 샐러드 소스를 이용해보아도 바로 그 맛이 나오지 않는다. 레스토랑에서 먹는 산뜻하면서도 깊은 맛을 내는 드레싱. 특별히 뭔가 많이 들어가 있지도 않은데 야채를 한입 베어무는 순간 입 안에 향긋한 향이 퍼진다. 십중팔구 발사믹 비네거일 것이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요리에 빠질 수 없는 발사믹 비네거는 북이탈리아의 모데나 지방의 특산품이다. 모데나 지방에서 생산되는 트레비아노 그레이프의 즙을 오크, 체리목, 서양 칠엽수, 자두나무 등으로 만든 나무통에 넣어 숙성시키는데 목재의 소재와 숙성 기간에 따라 맛과 풍미가 달라진다. 보통 12년산이나 25년산이 대중적이고 유명하다. 발사믹 비네거는 손도, 시간도, 정성도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다른 식초들과 비교해서 가격이 비싼 편이다.
발사믹 비네거는 식초로 쓰기보다는 소스로 많이 쓰는데 워낙에 향과 맛이 풍부하고 강렬해서 단독으로 사용해도 어디 하나 빠질 것 없이 완벽한 맛을 낸다. 와인식초에 비해서는 단맛이 있어서 단맛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면 좀더 투명한 느낌의 와인식초를 이용하면 좋다. 현재 우리나라에도 다양한 종류의 발사믹 비네거가 들어와 있기 때문에 백화점의 수입식품 코너 등을 이용하면 선택의 폭이 좀더 다양해진다. 발사믹 비네거는 올리브 오일과 천생연분이다. 가장 많이 접하는 것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주는 것처럼 빵을 찍어먹어도 좋고 야채에 발사믹 비네거와 엑스트라버진 올리브 오일을 뿌려서 먹어도 아주 좋다. 발사믹 비네거는, 한 병 정도 갖춰두면 두루두루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베스트 아이템이다.
흔히 옥수수로 만든 칩과 곁들여먹는 살사 소스는 토마토와 양파, 할라피노(멕시코의 매운 고추) 등을 다져서 레몬즙과 다양한 향신료를 이용해서 만드는 매콤한 맛의 소스다. 원래는 멕시코 요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전통 소스인데, 칩과 함께 어우러져 전세계적으로 대중화됐다. 미국에서는 손님을 초대할 때 칩과 살사가 빠지지 않을 정도로 오히려 미국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어떻게 살사는 전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대중적인 소스가 되었을까? 토마토와 양파, 할라피노를 다진 뒤 레몬즙과 허브, 소금, 후추 등만 첨가하면 되는 간단한 조리 과정도 매력적이지만 무엇보다 매콤하면서 새콤한 맛이 계속 입맛을 붙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맵다 맵다 하면서도 계속 손을 멈출 수 없다. 시판되는 살사 소스도 물론 맛있지만 시간이 허락된다면 신선한 재료들을 다져서 직접 살사 소스를 만들어보자. 토마토 1개와 양파 3분의 1개, 매운 고추 1개(할라피노 대신 한국에서는 매운 고추를 이용하면 된다)를 잘게 다져준 다음, 레몬즙 2큰술과 소금, 후추 그리고 고수라고 불리는 실란트 잎을 잘게 다져 넣어주면 살사 소스를 만들 수 있다. 그 신선한 맛과 향에 충분히 매료되고 말 것이다.
외국 여행 때는 전통 마켓에서 쇼핑을
일상에 발이 묶여 해외로 나가지 못한다면, 각 나라의 대표 소스를 이용해 집에서 이국적인 요리들을 한번 해보길 권한다. 일상의 단조로움에 조금은 활력소가 되어줄 것이다. 그럼 일상에서 탈피해 해외에 나가는 사람은? 그 나라의 마켓에 들러서 다양한 소스들을 구경하고 맛보고 사오면 어떨지. 아마도 삶이 더 맛있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