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코 앞에 산이 있어도 산을 자주 오르지 못한다. 가끔 산 밑까지 산책을 다녀오곤 했다. 500여미터 정도 되는 산이지만, 시간을 내지 않으면 산 허리도 오르지 못한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도 아니다. 왕복 세 시간 정도면 넉넉하다. 끝없이 산을 오르는 사람은 마을 사람이라기 보다는 멀리서 등산복 차림을 하고 달려오듯 산을 오른다. 등잔밑이 어두운 것처럼 정작 산 밑에 사는 사람은 그 산의 고마움을 모르는 셈이다. 오랫만에 시간이 나, 산을 오르는데, 아침 흐렸던 날씨가 산을 오를 때쯤엔 화창하게 개인다. 평일인데도 등산객들이 많다. 거의 대부분 육십 전후의 나이다. 동창, 친구, 산악회 사람들, 직장 동료 등 가지각색으로 삼삼오오 짝을 지은 사람들이다. 앞선 사람은 부부다. 그들은 평소 밀린 대화를 산을 오르며 하고 있다.
[월남전에 갔는데 총을 겨누고 쏘질 못했다는 거야.]
밑도 끝도 없이 들려오는 부인의 이야기에 남편은 보조를 맞춘다. 그저 이야기는 들렸다 사라진다. 산에서 듣는 이야기는 그런 식이다.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다가왔다 사라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여운처럼 산길에 남아 있다. 비탈길을 오르는데 사격소리가 들려온다. 마이크를 잡은 사람의 말이 계곡을 타고 울려오는데 우리 말이 아니라 영어다. 혀를 가볍게 놀리면서 말장난을 하는 것 같은 그 말투가 끝나자 마자 벼락같은 총소리가 빗발치듯 쏟아진다. 마치 등산을 하는 사람들을 향해 총을 쏘는 것처럼 총소리가 너무 가깝다. 비탈은 가파르다. 나무로 만든 계단 옆으론 나무 뿌리가 드러난 채 벼랑에 나무들이 서 있다. 그 나무 뿌리가 비탈진 경사면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계단처럼 다가온다. 숨이 가쁘다. 연푸른 잎새들이 번져오는 나무들 사이로 햇살이 흐른다. 사월의 하순, 날씨가 서서히 더워지고 있다. 가끔 숨이 가빠 바위에 앉아 쉬면서 가지고 온 책을 읽는다.
오랫만에 산을 올라서 그런지 다리에 힘이 풀리고 후들거린다. 산 비탈을 오르고 난 뒤 앞선 사람들이 앉아 쉬는 능선을 따라 걸어간다. 비탈진 길에 비하면 산을 타는 맛이 나는 길이다. 정상으로 가는 길, 강아지들도 옷을 입고 산을 오른다. 산 정상에 올랐을 때 드러나는 첩첩 산과 사이사이의 도시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맑은 날이긴 하지만 시계는 그리 좋지 않았다. 뿌연 안개 너머로 보이는 도시를 바라보면서 능선을 따라 내려오는데, 쉴만한 너른 공터에 신선처럼 앉아 막걸리를 파는 사내가 보인다. 그는 똑 같이 등산복을 입고 산에서 제사를 지내는 사람처럼 작은 테이블 위에 막걸리 세 병을 세워놓은 채,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목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언제든 사람이 다가오면 벌떡 일어설 자세다. 서울에 처음 올라올 때 나를 유혹한 사람이 한 말이 떠오른다.
[서울에 가 막걸리 장사만 해도 먹고 살아. 대학생이 매일마다 막걸리를 지고 산에 올라 막걸리 다 팔고 가면, 그것이 얼마라드라. 그렇게 주말마다 나와서 막걸리를 파는 것만으로 학비를 댈 수 있대.]
산 위에서 바라보는 도시와 산 주위의 풍경 너머로 지난 이 년 동안 내가 살아왔던 동네를 내려다 본다. 세상은 산 위에서 바라보면 훨씬 더 작아진다. 연푸른 나뭇잎 사이로 내려다 보이는 세상, 산을 오를 때와는 달리, 산을 내려올 때 총소리가 더 가까워진다. 가까운 곳에 어디 미군 사격장이 있는 모양이다. 한쪽에서는 즐거운 등산에 다른 한 쪽에서는 사격이라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가지 세상이 같은 계곡에서 만난다. 총소리는 계곡을 울리고 오랜 여운을 남긴 채 사라진다. 내려오는 길, 다리가 훨씬 더 다리가 후들거린다. 이미 그 길을 따라 내려갔을 수많은 사람들이 붙잡고 내려갔을 나무들엔 사람들의 손길이 닿아 만들어진 반질반질한 흔적이 남아 있다. 이미 산에서 내려와 고기를 굽고 또 술 한 잔씩을 기울이는 사람들 사이로 물길을 따라 걸어내려온다. 사월 초파일을 앞두고 산사에는 연등이 끝없이 내걸려 있다.
산을 가까이 두고 참 오랜만에 산을 올랐다. 이전 가족과 함께 산을 오르려고 하다 산 중턱에서 김밥을 먹고 내려왔던 적이 있었다. 새로운 환경으로의 변화를 앞두고 오르는 산이라서 그런지 새삼스럽게 기분이 묘했다. 산을 오르는 힘겨움처럼이나 새로운 환경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길이란 낯설다. 가지고 온 책의 페이지를 닫지 않고 책을 끝없이 읽어나가면서 산길을 따라 터덕터덕 걸어내려온다. 산은 내가 오르지 않아도 그곳에 있었고 그 무수한 사람들이 그 산을 오르고 내려오면서 그들의 삶의 의지를 새롭게 하고 돌아갔을 것이다.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의 쓸쓸한 노년이 만나 건강을 생각하고 술 한 잔에 그들의 회포를 푸는 추억어린 곳이다. 낚시터, 호젓한 가든이 있는 동네를 향해 흐르는 계곡물 소리가 시원하다.
2
중앙대학교에 갔다. 선사님이 말하던 대학이기도 하지만 서라벌의 전통이 깃든 곳이어서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동작 역에서 내려 국립묘지 현충원을 바라보면서 버스를 탔다. 중앙대학교가 종점인 버스였다. 대학병원을 앞에 두고 산비탈을 차지하고 있는 대학은 겉으로 보기와는 달리 그리 크지 않았다. 유난히 눈에 띄는 건 학교 입구 잔디밭에 앉아 한낮부터 병나발을 불고 있는 캠퍼스의 학생들이었다. 책을 들고 강의장으로 향하는 학생들의 발걸음에서 젊음의 활기가 느껴졌다. 담장 바깥으로 보이는 주택가 그곳에 붙어 있는 수많은 하숙자취집 벽보들을 바라보면서 계단을 오르는데, 단기 4293년이라고 쓰여진 4.19 희생자 위령탑하며, 광주민주화 운동기념비가 보였다. 스탠드가 있는 운동장, 그리고 새로짓고 있는 법학관 그리고 인문대까지. 다만 관심을 끄는 건물은 후문으로 연결된 곳에 있는 문화예술관이었는데 그곳엔 역대 영화들의 한 장면을 영화의 내용과 함께 붙여놓은 홍보물이 인상적이었다. 예술대학원이 있는 건물이었다.
[한강이 바라바 보이는 풍경이 시원하드라.]
순천대로 간 문학작품 분석의 박청호교수, 성장소설에 관한 심화반의 송기원, 입담이 좋은 소설가 방현석, 그리고 남원출신의 최인석에 이르기까지 막강한 강사진을 소개하던 선사의 말이 기억났다.
후문을 통해 상도동 쪽으로 내려와 피시방에 들러 자전메일을 쓰고, 버스 정류장에 앉아 책을 읽었다. 햇살이 밝게 책장 위에 내려앉았다. 숭실대와 봉천동 언덕, 서울대로 향하는 버스가 반대편으로 지나가고 노량진 사육신공원과 한강대교를 건너 용산으로 가는 버스가 끝없이 이어지는 곳이었다. 논술에 관한 책 한 권을 마무리 짓고 한강대교를 넘어가는 버스를 탔는데 버스가 꿈쩍을 않았다.
"어디야, 지금 출발했지. 언능 와라. 물 좋은 홍어가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버스는 다리에 진입도 하지 못한 채 굴 속에서 한참을 머모른 뒤 또 다시 다리 위에서 거의 움직이지 못한 채 서 있었다.
"오늘 장애인들이 한강 대교 한 가운데에서 휠체어 시위를 합니다. 한 삼사십 명 정도 될 겁니다. 조금 전에도 한 시간 반 정도 걸렸는데, 지금도 여전히 시위를 하는가 봅니다."
기사의 말을 듣고 나서야 왜 길이 그토록 막히는지 알 수 있었다.
"차가 많이 밀렸드나, 아따, 그 물 좋은 홍어를 멋먹어보다니 아깝다 아까워."
홍어 대신 2,900원짜리 순대국밥을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삼라 마이다스 빌 앞 벤치에 앉아 선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녁이 되자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젊은 여자로부터 머리에 기름을 바른 중년의 남자, 그리고 노년의 할머니까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제 새로 지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끝없이 사람들을 빨아 들이는 거대한 건물의 크기에 압도 당할 정도로 주위에 슈퍼 하나 보이지 않는 허름한 골목에 우뚝 솟은 건물이었다.
"내가 눈에 종기가 나 술을 못마셔 미안하네."
"괜찮습니다. 제가 봐 둔 곳이 있는데 가서 생맥주나 간단히 하시죠."
삼각지 투다리에 갔다. 매운 날개를 시켜놓고 생맥주 한 잔을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람이 답답한 구석이 있다가도 대화를 나누고 나면 자신이 보였다. 서울 하늘 아래 그래도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저는 이곳에 올 때마다, 돌아가는 삼각지란 노래가 생각납니다. 배호 기념 사업회가 있던 곳이 사무실이고 무슨 특별한 인연이 있어서 저도 삼각지를 돌아가야 정신을 차리는지, 세상이 온통 안개낀 장충단 공원처럼 뿌옇지만 그래도 이렇게 삼각지를 돌아고 나면 마음에 힘이 납니다. 이 허름한 동네에 오면 정말 사람 사는 맛이 납니다. 구례식당도 그렇구요. 골목의 작은 슈퍼며, 또 효창공원까지도요."
선사가 전하는 요즘 최고의 인물은 단연 전영태 교수였다.
"어쩌면 그렇게 박식하고 인접 예술과 문학을 연결지어서 강의를 잘하는지, 참 세상에 이런 분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새삼 감사한 마음 뿐이네."
휴지로 손을 닦아가면서 매운 날개를 뜯고 시원하게 들이키는 생맥주의 맛이라니, 산을 오르고 온 후여서 그런지 술맛이 참 시원했다.
"자네는 어떻게 이런 곳에 있는 술집을 알았나. 아 조금 전에 이쪽으로 오면서 불이 켜진 걸 봤어요."
막다른 길, 서울역에서 용산역으로 향하는 기차길 위로 난 고가도로를 넘어가는 길, 육교 하나를 두고 별천지의 세상이 펼쳐졌다. 밤이면 건물이 흔들릴 정도로 차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공장이 가까워 창문을 열어놓을 수가 없어 방 안에서 탁한 냄새가 나는 허름한 외딴방이지만 그 안에 들어가면 무언가 알 수 없는 문학의 깊이로 빠져드는 기분이 들었다. 방안 가득한 책들 가운데, 멀리 떠나온 객수가 머물고, 또한 문학의 열정이 떠도는 영혼처럼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문득 답답한 일이 있고나면 찾아가는 선사의 외딴방이었다.
"당신 애인이 따로 있었구려."
아내는 내가 문득 찾아가 함께 지내고 오는 선사가 애인이냐면서 묻곤 했지만 그닥 문제 삼지는 않았다. 기계수리공장이며 흡출기를 만드는 공작소, 거기에 고물상이며, 인쇄소들이 늘어선 골목이었다. 충무로에서 쫒겨온 영세한 인쇄소, 출판사들이 있는 골목엔 그저 서울 한 복판에서 살아가는 서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허름한 곳으로 새로 들어선 자이 복합 주상건물 꼭대기의 파랗고 노란 불빛이 멀리서도 선명하게 보였다.
"저에게도 이런 방 하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몰입해 글을 쓸 수 있고 좋은데요."
"그렇지. 여기 이렇게 머물면서 인생에 남을 작품 하나 건져가야 할텐데."
"그럼요. 왜 황해도 은율인가 재령인가에 머물면서 탁류를 썼다고 하는 채만식 선생처럼요."
전기장판 뜨듯한 바닥에 등을 대고 깊은 잠에 빠졌다. 문이라고는 동쪽으로 난 창문 하나인데 그 문마저 공장의 소음과 먼지 때문에 닫아놓는 일이 많아 아침이 왔는데도 아침인 줄을 알 수가 없는 외딴방이었다. 신발을 들고 복도를 걸어가 장판을 깔아놓은 어두운 통로를 지난 뒤에야 나타나는 어둠 속의 방이었다. 아침이 오는 길, 간밤에 마셨던 생맥주의 기운에서 서서히 깨어나면서, 서서히 창 바깥에서 들려오는 망치소리와 사람들의 웅성서림 소리에 잠을 깼다. 낯선 곳에서 잠을 자면서 문득 내가 어디 쯤 가고 있는지 생각해 봤다. 삼각지 로타리를... 홀로 걷는 이 발 길... 새삼, 산 위에서 보았던 그 먼 도시의 희미한 풍경과, 중앙대 후문 예술대학원이 있던 서라벌의 언덕, 그리고 용산 삼각지 주변의 허름한 외딴방을 떠올리면서 나는 그렇게 다시 내 일상속으로 돌아가는 길로 달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