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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행(靑山行)
이기철
손 흔들고 떠나갈 미련은 없다
며칠째 청산(靑山)에 와 발을 푸니
흐리던 산길이 잘 보인다.
상수리 열매를 주우며 인가(人家)를 내려다보고
쓰다 둔 편지 구절과 버린 칫솔을 생각한다.
남방(南方)으로 가다 길을 놓치고
두어 번 허우적거리는 여울물
산 아래는 때까치들이 몰려와
모든 야성(野性)을 버리고 들 가운데 순결해진다.
길을 가다가 자주 뒤를 돌아보게 하는
서른 번 다져두고 서른 번 포기했던 관습(慣習)들.
서쪽 마을을 바라보면 나무들의 잔 숨결처럼
가늘게 흩어지는 저녁연기가
한 가정의 고민(苦悶)의 양식으로 피어오르고
생목(生木) 울타리엔 들거미줄
맨살 비비는 돌들과 함께 누워
실로 이 세상을 앓아 보지 않은 것들과 함께
잠들고 싶다.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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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철 시집"청산행"[민음사]에서
산은 그 겹겹이 집이다 산만한 집이 없다 집이란 아득한 품이다 또한 나만의 공간에 있다 그러한 산의 집에는 수천 수만 세월의 기억과 삶이 놓여져 있다 청산은 우리들 가슴에 그 기억의 힘을 갖게 해 준다 그 청산에 의지하여 한 삶의 생을 살아왔던 사람들, 순결하다못해 청산의 생목과 같이 베어지면 베어지는 아픔 까지도 그대로 껴앉고 세상을 살았던 순수의 빛만 간직한 사람들, 그 청산행은 세상을 얻는 또 다른 통찰의 관문이다 산의 집은 단순한 집이 아니라 선행의 마음을 우러나게 만드는 집이다 그 선한 마음의 집에 들어서는 듯 한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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