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라남도 신안군 임자면 재원도는 넓이 3.3km²에 30여 가구만 사는 조그만 섬이다. 1971년생인 지은이가 어렸을 때는 지금보다 좀 많은 70여 가구가 살았다. 목포와 연결되는 여객선은 하루 한 번 들어왔지만 변변한 선착장도 없어 그 배가 섬 멀찍이 닻을 내리면 높이 50cm에 길이 5m의 ‘종선’이라는 조그만 배가 사람을 싣고 섬과 여객선 사이를 오갔다.
이른바 문명이라는 것과 조금 떨어진 곳이다. 지은이는 그 조그만 곳, 종선이 섬과 육지를 잇는 타임머신이었다고 회상할 정도로 뒤처진 곳의 삶을 행복했다고 기억한다.
물론 가난했다. 할머니를 포함해 여덟 식구가 아버지의 영세한 고기잡이로 살아야 했으니. 당연히 보리쌀이 주식이고 동물성 단백질이라곤 1년에 한 번 잡는 돼지뿐이다. 그나마 배불리 먹은 적도 없다.
그러나 어린 지은이는 가난이란 걸 알 턱이 없다. 가난의 실체를 몰랐기도 했고 고민은 언제나 아버지나 어머니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70년대의 섬 생활을 지은이는 비땅(부지깽이)으로 아궁이 속 땔나무를 이리저리 들춰가며 밥을 지으시던 어머니의 부엌으로, 마당 한구석에 묻어 놓은 술항아리 속 밀주로 기억해낸다.
30대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뭔가 공통의 기억이 떠오를 것이다. 어디에 살았건 상관없다. 촛불 밑에 엎드려 숙제를 하고 나면 코밑에 그을음이 거뭇거뭇하던 지은이나, 때만 되면 찾아오는 정전에 초를 찾느라 분주했던 서울 변두리의 독자나, 어머니의 손에 감긴 ‘이태리타월’의 공포는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그러나 ‘서울 촌놈’들이 정말 못 당하는 지은이의 유년 쾌락은 바로 주전부리다. ‘자야’나 ‘라면땅’ 정도의 싸구려 과자에 마음을 뺏겼을 도회지 아이들에 비하면 지은이가 늘어놓는 자연의 주전부리는 성찬에 가깝다.
봄의 쟁피(춘란), 보리똥나무 열매, 앵두에 여름의 소라, 참대 낚시로 잡은 운저리(풀망둑). 가을의 고구마, 칡에 겨울의 동백꽃까지. 지은이는 그래서 “초콜릿처럼 달지도, 콜라처럼 톡 쏘지도 않았지만 그 시절이 지금보다 훨씬 행복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지은이가 ‘지나간 것은 모두 아름답다’는 식으로 유년의 기억을 찬미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를 ‘얼치기 환경주의자’라고 말하는 지은이는 자신의 아이 지수를 위한 지구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지금의 물질적 풍요와 맞바꾼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들이었는지를 말하고 싶다고 했다.
“자연과 하나 되어, 나 스스로도 하나의 자연이 되어 더불어 살았던” 유년 시절에서 멀어진 우리는 “하나를 얻으면 하나 이상의 걱정이 따라 들어온다는 사실”을 잊고서 “너무 많은 욕심을 부리며 사는 것은 아닐까” 지은이는 걱정한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재원도를 떠나 목포에서 유학한 지은이는 유도선수의 꿈을 허리부상으로 접은 뒤 지금은 전남 영광에서 어버이날이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동네 독거노인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오지랖 넓은 집배원으로 천천히 살아가고 있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동아일보에 실린 서평입니다.
[책을 고르고 나서]가슴 저미는 그리움 속으로 초대합니다
|
전남 신안의 재원도라는 섬에서 태어나 도시로 유학을 떠나 집배원이라는 직업을 가진 한 생활인이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되어 기억하는 고향과 어머니와 가족,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한 편의 수필처럼 펼쳐집니다. 살인적인 교통체증도 마다하고 명절이면 고향으로 달려가는 우리들에게 새삼 고향과 가족의 정을 새기게 해 주는 책입니다. 갈수록 세상은 진보한다고 하는데 사는 것은 갈수록 힘들어지는 때, 한 걸음 느리게 나와 주변을 여유 있게 돌아보게 합니다.
죽을 때까지 일기를 써 온 철학교수의 책 ‘아미엘의 일기’(B1면)도 마찬가지입니다. 궁핍하고 고독했지만, 자기수양의 도구로 수십 년 동안 거의 매일 일기라는 형태로 자신의 내면과 맞닥뜨렸던 저자의 생각이 100여년이라는 시간과 스위스 제네바라는 공간을 뛰어넘어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정서적 일체감이 든다든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세상은 광속으로 변하고 모든 것은 달라진다고 하지만, 두 발로 걷는 인간의 감정이나 생각은 변치 않는 것인가 봅니다. 혹 실패를 경험하셨다면, 체념을 배우는 것이 인생이라는 저자의 말에서 힘을 얻으시길 빕니다. 책의 향기팀 book@donga.com
연합뉴스에도 나오네요..
<내 어머니의 등은 누가 닦아 드렸을까> | ||||||||||||||||||||||||||||||||||
[연합뉴스 2004-09-17 09:07] | ||||||||||||||||||||||||||||||||||
이 섬은 '내 어머니의 등은 누가 닦아 드렸을까'(월간말刊)의 배경이 되는 공간 이기도 하다. 책은 전남 영광군 홍농우체국 집배원으로 일하면서 생태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함성주씨가 고향인 재원도와 가족, 고향마을 사람들에 대한 추억을 풀어놓은 수필집 이다. 저자는 대학을 졸업한 뒤 대기업에 들어간다. 그러나 빠듯한 도시생활에 적응 하지 못하고 뛰쳐나와 건설회사 경리, 영업사원 등을 전전하다 시골의 집배원이 되었다. 누군가에게 사소한 도움이라고 줄 수 있는 이 일을 하늘이 준 천직으로 생각하 는 저자는 자기 손으로 집 짓고, 농사 짓고, 나무 심으며, 지구에게 해를 끼치지 않 고 살다가 흔적없이 조용하게 삶을 마감하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에 대한 남다른 기억력을 갖고 있는 저자는 책에서 가슴 따뜻한 묘사 로 잊혀진 고향의 풍경을 스케치하고 있다. 섬마을 부엌에서 밥을 짓던 어머니를 회상하고, 태양담배 입에 물고 문 바르던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집에서 술을 담가 먹던 방법과 술에 얽힌 가족의 사연을 소개 한다. 깡통 복숭아와 손톱깎이, 병마개, 목함성냥 등 이제는 사라져버린 것들에 깃 든 추억담을 풀어놓는다. 소, 염소, 개, 돼지, 닭 등 또 하나의 가족이었던 가축과 함께 보냈던 시절을 되돌아보고, 추석과 설 등 일년에 두 번 목욕하던 이야기도 들 려준다. 메주 쑤기, 간장 담그기, 된장 만들기 등의 시골풍경도 그려 보여준다. 280쪽. 9천원. shg@yna.co.kr (끝) <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
첫댓글 대박의 기미가 였보이네요^^* 오두막에서야 꽃섬님의 팔딱이는 멸치같이 살아있는, 곰삭은 된장같은 이야기들을 직접 들을 수 있으니 저는 사서보지는 않을랍니다 ㅎㅎㅎ
소개된 글만 읽어 보아도 그 옛날의 내 모습이 보이는 듯하고 그때 그 시절이 그립군요 그 책을 만나 보고 싶군요 다시 한번 크게 축하 드립니다
ㅎㅎ 참말로 yes24에 소개됐구만~ 암튼 축하축하~ 낯익은 이 세간에 이름 오르내리는 것도 신기하구만여~ '잘 쓴 글' 보다 '좋은 글'이 늘 목마른 사람, 부디 건필하시길 바람서... 박 터지믄...흠...^^
첫번째 책 표지, 서점에서 보았네요. 책은 보지 않았는데... 저 책의 저자이신가요? 다음에 들리는 길엔 반드시 읽어볼께요.
네, 글쓴사람 맞구요, 읽어보세요, 꽃지는저녁..님.. 읽어보시는 것도 그냥 읽어보지마시고, 되도록이면 '사서'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