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색은 풍요로움과 쓸쓸함과 그리고 청아함과 고요함이다. 바람이 지나가면 지난 청춘을 생각한다. 참새떼가 지나가면 가을바람은 고요하다. 만남과 헤어짐은 지나고 나서 알 수 있는 것. 사랑도 지나나서 그 위치를 알 수 있다. 우리는 현재를 살고 있지만 그 당시의 진실을 발견할 수 없다. 언제나 후회투성이다. 그러나 가을 색은 과거를 담지 않는다. 현재를 담고 있어 그 흔들림이 쓸쓸하다. 풀벌레 노래에 내 노래를 보탤 수 있다. 내가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고요한 갈대밭이다. 참새떼가 지나가도 흔들리지 않다가 내 눈빛을 보면 흔들리는 갈대밭에서 나의 침묵도 흔들린다. 가을 태양 빛은 시시각각 변한다. 노을 진 가을 색을 만들 때 노란 은행잎이 선명하다. 비슷한 색깔이 부딪힐 땐 오히려 가을 색은 분명해진다. 노란 들판에 노란 들국화가 분명하게 핀다. 비슷한 색깔로 수렴해질 땐 가을색은 쓸쓸하다. 침묵으로 흔들림이여 내 눈물은 온몸으로 감싸고 있다. 장독대 봉선화는 지고 없다. 그러나 들판에 물봉선화는 붉게 핀다. 들판에 노랗게 익어가는 데 무엇이 서러워서 지금까지 붉게 피었는가. 사랑의 인연은 아직도 풀리지 않았는가. 사랑은 모르게 왔다 모르게 사라지는 것. 이것이 필연일 수 있다. 붉게 핀 물봉선화에 시간이 너무 짧다. 여러 해 살아도 알 수 없다. 내일이면 무슨 꽃이 필까 하고 말하는 그런 사람은 보지 못했다. 붉게 핀 봉선화처럼 오늘만 살아도 좋겠다. 초록 붉은 꽃으로 물들이고 싶어서 아직 청춘의 가슴으로 남아있다. 물봉선아는 물가를 좋아한다. 물봉선화와 고마리는 잔뿌리가 많아 물을 맑게 정화한다. 물봉숭아의 초록 잎과 붉은 꽃은 염색으로 쓰인다. 초록 저고리와 붉은 치마가 잘 어울릴 것 같다. 가을 찬바람이 붉은 열정을 시들리지는 못하리라. 오랜 기다림에 피는 꽃은 질 때도 아름답게 진다. 그 많은 세월에 나의 침묵은 가을빛에 너의 얼굴을 마주 앉아 아름다운 언어로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안다. 너의 붉은 얼굴이 무엇을 말하는지. 삶은 싸우지 않아도 그 자체가 슬픈 눈으로 투쟁하고 있다. 모든 연민에 내 안에 있어 절대 잠들지 않는다. 가을빛, 가을 색, 가을 냄새는 하나의 몸이다. 풀빛 가슴을 열고 붉은 꽃잎이 터지고 그 기다림도 아름다운 꽃이다. 하루를 살더라도 서로의 마주침이 흔들렸다 하더라도 절대 돌아서지 않는다. 그 길로 곧장 가서 갈 때 밭이 되겠다. 붉은 열정이 갈대꽃처럼 조용히 침묵하는 가을 색이 되겠다. 가을은 조용히 침묵하라 한다. 가장 아름다운 언어는 침묵한다. 침묵 속에 가장 뜨거운 열정이 있다. 찬바람에도 꽃잎은 부드러운 가슴이 가지고 있다. 그 연한 가슴에 가장 뜨거운 눈물이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