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이사가르 북벽등반 상영
조명이 밝아지자 춤꾼들은 로프를 튕기며 여기저기로 날라 다닌다. 가운데 하얀 옷을 입은 천사 같은 8등신의 미녀가 직벽 위에서 나비처럼 하늘거리며 내려온다. 푸치니의 나비부인이다. 아니 황진이의 우아하면서도 요염한 자태다.
북을 두드리는 소리가 조금씩 커지고 춤사위는 절정에 이른다. 천사가 먼저 땅으로 내려오고 한참 뒤 벽에서 날뛰던 남자 두 명이 지친 듯, 아니면 욕구를 다 채운 뒤의 허망함을 느낀 듯 서서히 로프 아래로 내려온다.
꿈틀거리는 근육을 자랑하는 두 남자가 여자를 둘러싸고 다시 한 번 서로 몸싸움을 벌인다. 그건 순수한 동물들의 생식 본능을 위한 몸싸움이다. 그러다 두 숫놈이 암놈을 들어 올린다. 두 다리를 180도로 완벽하게 열어 준 여자가 몸을 꼬며 고개를 숙인다. 다시 조명은 어둠에 사라져버리고 관중들의 박수 소리가 트렌토 두오모 대 성당 앞 광장을 뒤흔든다.
다시 적막과 고요가 찾아오고, 어디선가 아주 작게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속닥이는 소리가 들린다. 작은 북과 여러 타악기의 소리가 들리며 인공 암장 뒤에서 아프리카의 건장한 원주민들, 두 명의 반나체 남자와 보기만 해도 힘이 넘쳐, 남자 서넛은 집어 던질 것 같은 글래머 여자 두 명이 엉덩이춤을 추며 등장한다.
움직임의 뒤틀림은 마치 구렁이 두 마리가 빠르게 꽈리를 트는 듯하다. 관중석까지 그들이 흘리는 땀방울이 튄다. 삼바보다 더 열정적으로 엉덩이를 흔들고 웬만한 여자 얼굴만 한 가슴을 마구 흔들며 관객을 숨죽이게 한다.
원주민들이 마구 흔들어대는 칼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오는 동시,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춤은 절정에 이른다. 용의 입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오듯 불길은 하늘 높이 솟아오르고 어두운 밤하늘을 뒤흔든다.
다시 요란한 음악과 함께 건장한 젊은이 8명이 인공 암벽 뒤에서 덤블링을 하며 등장한다. 브라질에서 온 시범단이다. 최근 유럽에서 유행하는 춤과 무술을 믹스한 새로운 스포츠 시범단으로 요란한 율동과 이소룡을 무색하게 할 정도의 각종 무술을 선보인다. 그건 한 편의 잘 만들어진 영화와 같다. 잠시의 쉴 틈도 주지 않을 정도의 긴박감과 흥미가 느껴진다. 보기만 해도 손에서 땀이 나는 종합 예술 영화다.
감동으로 재탄생하는 산악영화
지난 해 우리 등반사에 기리 남을 등반으로, 아직까지 우리 산악인의 뇌리에 흥분과 기쁨으로 살아있는 탈레이사가르 등반은 제1회 아시아 황금 피켈상 후보에 올랐고, 금년 프랑스 그레노블에서 있었던 제16회 황금 피켈상 1차 후보에도 오른 등반이다. 한국 등반대에서는 처음으로 황금 피켈상을 제정한 프랑스 몽따뉴 잡지가 선정한 2006년을 빛낸 65개의 등반에도 선정되었다.
2007년 6월. 제55회 트렌토 산악영화제 출품작 중 스위스 등반대의 탈레이사가르 북벽 등반 영화는 거벽 산악 영화의 절정이라고 가히 말할 수 있다.
우리의 젊은이 3명이 정상을 100미터도 남기지 않고 오르던 중 낙하해 세 송이의 꽃이 되어 버린 지 수년, 그리고 몇 차례 한국대의 도전을 물리쳤던 그 탈레이사가르를 변형 루트지만 블랙 타워를 직등해서 오른 감동이 아직도 우리의 가슴에 남아있는데, 더 어려운 북벽의 필라 루트로 오른 스위스대의 기록 영화는 히말라야 거벽 등반 영화의 절정을 보여준다. 등반 역사와 고산 거벽 등반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인간들 그리고 자료를 남기기 위해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바로 감동 그 자체다.
그들은 등반이 끝나고 곧바로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 등반 역사를 수집하고 다른 나라 등반대의 기록을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하고서야 완벽한 영화를 만들었고 처음으로 제55회 트렌토 산악영화제에 출품했다. 쏟아지는 눈 샤워와 엄청난 고도감의 벽에서 그들이 보여준 용기와 등반 기술도 기술이지만 악천후 속에서도 영화를 촬영하는 그들의 여유가 부러움을 넘어 질투심마저 생기게 한다. 그들의 영화를 보다보면 우리는 어느덧 탈레이사가르에서 고전하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비루스. 전염병인 비루스는 산악인들의 온 몸에 퍼져있다. 한번 퍼진 전염병은 온 혈액에, 근육에, 뼈와 뇌를 미치게 만든다. 「비루스」란 영화는 암벽 등반에서 정신 질환을 일으켜 각종 암벽은 물론 건물, 심지어 기차가 지나가는 높은 다리 밑의 철각 천정에까지 매달려 등반을 해야만 살 수 있는 등반 동물들을 보여준다.
세계 최고의 산 사진작가로 자타가 공인하는 오스트리아 헤인 쟉의 요세미테 등반 영화는 짧지만 말이 필요 없는 영상미,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등반을 위한 노력 그리고 허공에 몸을 던지는 그의 전신을 보여준다. 한 유명한 등반가의 사진을 찍고는 미쳐버린 자신의 등반 춤사위를 위해 그는 무엇을 할까?
현대 흐름에 맞게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로 캐나다에서 출품한 「클라이머」는 새로운 시도의 산악 영화의 장르를 만들었다. 등반가의 선과 악을 흑과 백으로 표현했다.
「초등」이란 영화는 현대 등반 중 여러 형태의 벽에서 행해지는 전위적인 암벽 등반 영화다. 100분 가까이 상영되는 이 영화는 기록적인 면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쉬지 않고 도전하는 위대한 등반가들의 모습을 보여줘 그들에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게 한다. 수십 번 떨어져도 다시 도전하는 인간 등반 벌레들.
다오네 아이스 마스터 경기를 영화화한 이태리 영화는 단순한 기록 영화가 아니다. 월드컵 빙벽 등반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선수들이 어떤 기술로 등반하는가를 보여주지만 짧게 짧게 녹아있는 이태리인들 특유의 미적 고감도과 감성이 돋보인다.
「리네아 엘레강스」는 피츠로이를 등반한 이태리대의 영화로, 멋진 영상미와 대화 없이 깐쏘네로만 구성이 되어 있어 이태리적 낭만이 넘치는 아름다운 영화다.
9일간의 대향연 트렌토 산악영화제
‘미친 사람과 영화’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영화에 미친 사람들이 없으면 영화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무슨 일이든 완성도가 높은 일이 있다면 그 뒤에는 미친 사람들이 분명 있다. 제55회 트렌토 산악영화제에는 영화에, 산에 미친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모이는 축제 한마당이다. 그리고 그 축제를 더욱 미치게 만들기 위한 전야제 행사가 매일 저녁 열린다. 4월 28일 토요일부터 시작된 영화제는 5월 6일 일요일까지 이어졌다.
트렌토 도시 거리 전체에는 영화제 포스터와 각종 안내원들이 배치되어 있다. 첫날 영화제에서는 산악 영화가 아닌 찰리 채플린의 흑백 영화 상영과 볼자노, 트렌토 시립 교향악단 연주로 시작되었다. 축제 행사로 마련된 13미터의 인공 암장에서는 영화제 오픈 기념행사로 어린이들의 등반 대회가 열렸으며, 야간에는 버티컬 댄싱 등 이벤트 행사가 중계 방송되었다.
5월 1일, 공휴일인 이날은 또 다른 세계적인 이벤트가 열렸다. 바로 스피드 클라이밍 월드컵 대회였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폴란드, 헝가리, 체코, 오스트리아, 독일, 이태리와 프랑스 등 총 58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예선전을 거쳐 오른 선수들의 경기는 국제적인 스피드 등반 대회 역사상 처음으로 위성 중계까지 되는 등 새로운 기록을 만들었다. 이러한 새로운 기록들의 탄생은 뒤에서 묵묵히 숨은 채로, 하지만 미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다.
이번 대회는 암·빙벽 속도 등반의 무적함대인 러시아를 베네수엘라에서 온 어여쁜 여자 실비아 로즈마리(Silvia Rosmary)가 한방에 격침시킨 이변이 일어났기에 더욱 기억에 남는 행사다. 천 여 명이 넘는 관중이 모여 등반에 열중한 선수들에게 보내는 격려의 박수와 함성은 위성 중계 방송을 통해 전 세계에 퍼져나갔다. 하지만 그 열기보다 더 뜨거운 열기는 바로 모든 행사 뒤에 숨어서 행사를 준비하는, 영화와 산과 산악영화제에 진짜 미친 사람들이 아닐까!
절로 비바 이탈리아(Viva Italia), 비바 트렌토(Viva Trento)가 외쳐진다.
속으로 작게 외쳐본다
‘비바 미친 사람들!!!’
첫댓글 작년엔 월평동 아트시네마에서 <트렌토산악영화제>했었는데, 올핸 대전지역이 제외되어서 서운하네요. 서울까지 가서 봐얄듯...
대전서보면좋겠네요..쩝...
아쉽습니다...
작년에 정말 재미나게 봤는데 상은님 어찌 안될까요. 대전으로 확 땡기는것!
그러게 말입니다요~
서울에서 보고왔습니다 역시 박진감넘치고, 신선했답니다 대전으로 내년엔꼭 땡기겠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