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무명’의병(義兵)!
김도현
강호의 고수들이 명필을 논한 뒤끝이라 주저됩니다만
좀 유치한 얘기 하나 하겠습니다. 우리 고향 경북 안동 서후면 금계동에
나라돈을 들인 규모를 갖춘 임진란극복역사공원이 조성되는 중,
제가 ‘이름 아니 남긴 의병영웅을 기리는 비’를 세우자고 제안하였습니다.
저더러 비문을 쓰라 해서 하나 만들었더니 돌 크기에 맞게 줄이라 해서 몇 줄로 줄여보았습니다.
그 담은 글씨를 어떻게 하느냐가 논란되었는데 제가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이 동네의 초등학생 글씨로 합시다.” 당연히 반대 의견이 봇물이고
또 이 지역은 글씨나 글에 대해서는 모두가 한마디씩 하는 데입니다. 제가 한마디 했지요.
잘 쓴, 좋은 글씨보다는 더 잘 쓴, 더 좋은 글씨가 있답니다.
논란 끝에 제안을 받아 드리기로 하여 제가 서후초등학교를 찾아가니,
1 2 3 4 5 6학년 합해서 24명이라네요. 모두 한 글자씩 썼으면 좋겠는데 싶었지만,
선생님은 한 학년학생이 한 줄씩 맡아 써서 보내왔습니다.
다음으로 글씨에 조선고유색인 5방색을 넣자고 했지요.
외세 침략을 받고 정부가 부르기 전에 일어난 군대가 의병인데,
일본 중국에 없고 조선에만 있었다고 합니다. 의병장은 훌륭하지만 뒤에 나라에서 공훈도 기리고
벼슬도 하고 지금도 후손들이 받들지만, 수많은 민중 의병은 까맣게 잊혀져,
더러는 지금도 그 영령들께서는 편치 못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이순신 수군 구성을 보면 船大工 石工 弓匠 箭匠 冶匠 등 많은 직인이 있었다고
『난중일기』에 나오고, 군선의 노를 젓는 格軍(水夫)를 말하면,
1595년 3월 조선수군 전체에서 射手(弓手砲手)는1228명, 梢水軍(船頭격군)은 5881명으로
사수의 4.5배에 상당하여 해전승패의 열쇄가 여기에 있었다(北島万次,『임진왜란연구의 재조명』2019.58쪽)”.
이순신의 위대함을 뒷받침했던 이 위대한 영웅들을 누가 알기나 할까요!
제가 지금도 늘 맘에 걸리는 것은, 당시 갑자기 모은 의병을 포함한 군대 군율을 잡기 위해
즉석현장에서 희생된 분들이, 의병장이나 장군이 연보나 행장을 보면 나오는데,
이분들과 그 후손의 영령은 여지껏 헤매지 않을까 해요.
아뭇튼 이 글씨를 좋게 봐 주십사고 말씀드립니다.
아 ‘무명’의병에 저는 강력 이의제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이름을 모르거나 그분들이 이름을 안 남겼지, 왜 이름이 없나, 돌쇠든 간난이든
다 그 어머니 할아버지 남편 아네가 불러주던 귀하고 정답고 그리운 이름이 있지.
<디지털 사상계 대표/문화공보부 차관, 강서구청장 역임/서울사대부고~
서울대 문리대 정치외교학부(정치)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