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먹은대로 쓸 일도 없는 스타렉스를 캠핑카로 개조해보려는 계획의 첫단계는 차를 공장에 가져다 놓는 일입니다. 다른 가족들과 달리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하다보니 차를 가져다놓고 성산까지 돌아오는 길이 너무 막막합니다. 공장은 제주시에 있다보니 제주시에서 성산읍까지 대중교통으로 돌아오는 길은 제주-김포보다 더 멉니다.
자꾸 미루느니 오늘 끝내자싶어 먼저 아이들부터 주간보호센터에 내려주려는데... 태균이가 센터를 들어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머리자르자는 시늉부터 병원가자는 표현까지... 아는 게 별로 없어 두 가지 표현으로 밖에 핑계를 못대지만, 들어가기가 싫은가 봅니다. 보조교사 둘이 내려와서 가자고 해도 작별인사 손짓만 할 뿐입니다. 안가도 된다하니 그럼 안가겠다고 해서, 준이만 보내고 돌아나와 한참을 달리는데 이게 아닌가 싶은지 다시 가겠다고 합니다.
아이가 원치 않는다고 보내지 않는다 했다, 다시 보낸다했다 담당교사가 보기에 참 못나고 답답한 엄마처럼 느껴졌을 수 있습니다. 제가 담당교사 입장이라도 엄마가 저러면 안되는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속으로 엄마가 아들에 대해 착각이 심하군... 이런 생각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태균이가 이만큼 버텨주는 힘은 그들이 생각하는 그런 평범한 데에 있지않고, 이미 두 번이나 센터다니면서 출현한 잠재된 경기파장의 문제들이 행동문제로까지 연결되니, 폭넓게 살지는 못해도 한번 뻗쳐오르는 경기파장의 악영향을 최소화해주는 것은 아직도 많이 필요합니다. 어린 아이들과는 확연히 다른, 나이든 발달장애 성년들이 성장해가는 법은 또다른 측면이 있음을 늘 주의해야 합니다.
분명 엄마의 인지수준은 못될지라도 태균이는 묘하게 우뇌적 함량이 제법으로 보일 때가 많습니다. 우뇌적 함량이란 직관, 사물이나 상황 속 이면을 감지하는 능력, 예지력, 상황판단력 등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전화통화할 때 말투에 실린 감정상태를 정확히 읽으며,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않거나 이래서는 안되겠다싶은 분위기 등은 정확히 짚어냅니다.
아마 여기서 태균이의 딜레마가 크게 발동되리라고 생각됩니다. 엄마와 있을 때가 그나마 편하지않은 상황이 최소로 움직인다는 것을 알고있고 엄마와 함께하는 모든 활동들은 자신이 겉돌 이유가 하등 없기에 이미 주간보호센터에서 제공하는 활동들을 즐기기에는 태균이 머리가 이미 너무 굵어진 듯 합니다.
지난 주말 1박2일 상담왔던 부모가 저를 보며 깜짝 놀랍니다. 나이를 생각해볼 때 외모하며 표정이 너무 젊어보이고 편안해보인다고 놀랍니다. 힘든 아들을 30년이상 키우면서 엄청 힘든 일을 많이 겪었을텐데도 어찌 그리 편안할 수 있느냐? 비결이 있느냐?
젊어보이는 비결은 숙소 식탁 위 노란등이 얼굴에 비치고 있었으니 조명발이 아닐까 속으로 웃음이 났지만, 편안해 보인다는 말의 정체는 바로 태균이와 살아가면서 저 스스로 태균이를 장애인 취급한 적이 한번도 없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리라 생각합니다.
태균이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어려움은 일반성장을 했어도 만나야하는 인생굴곡들이고 단지 어려움을 만나면 한탄만 하거나 좌절하는 대신 이걸 어떻게 해결해갈까 고민을 하고 대처해 나간 듯하고... 대처하다보니 일반적 상식에서는 해결불가하기에 특수지식에 대한 열린 눈과 귀를 가동한 결과였다고 봅니다.
이런 과정 전반 속에서 태균이가 장애를 가졌다라는 단정을 해본 적도, 그래서 나는 슬프다라는 감정적 판단도 해본 적이 별로 없는 듯 합니다. 태균이도 충분히 이런 엄마태도를 느끼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성장해 왔기에, 언어표현은 못해도 감은 뛰어난 머리가 되었을 겁니다. '감'은 있어도 그걸 표현할 수 없기에 때로 자신에게 일어나는 '감'이라는 것을 행동으로 표현한 게 어제라고 생각됩니다. 그걸 누가 이해해 줄 수 있을까요? 일반인들 눈에는 이상한 모자로 충분히 보일 수 있습니다.
이제 제가 갖게 된 자폐스펙트럼이나 지적장애에 대한 지식과 대처방안은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수준까지 된 듯하지만 제가 발설하지 않는 한 누가 알리오? 태균이가 병원때문에 빠진 월요일 주간보호센터에서 영화관을 간다고 하는데 '소풍'이란 영화를 보러간답니다. 속으로 이런 어려운 영화를?
아이들의 정서에 맞을 것 같고 오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 고른 영화라는데 이걸 이해하고 받아들일 정도의 수준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실제 현장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의 추구점이 일반인의 시각일 때가 대부분입니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 턱이 없으니 담당교사가 가끔 언급하는 우리 아이들의 분석점은 특수적 입장이 아닌 일반인의 시각일 때가 많죠.
이런 장애기관에의 시각 뿐 아니라 프로그램 운영도 특수적 접근이 근본적으로 가능하지가 않는 상황은 비일비재합니다. 제가 과거 중앙일보 에듀라인 다닐 때 가졌던 괴리감, 그것과 비슷합니다. 정책결정에 늘 시간이 과도하게 걸리고, 결정된 정책을 보면 현장에서 꼭 필요한 방향이 아닌 현장감 없는 윗사람들을 두루두루 설득시킨 결과들이라 현실감은 떨어지고...
당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현장에서 구른 전문가들은 탁상공론이 싫으니 이론적 구성체계에 끼어들기를 꺼려하게 됩니다. 그래서 현장전문가들은 능력만 된다면 다들 독립하게 되어있고 이들이 성공하면 세상의 역사를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이런 역사를 바꾸는 작업...은 다시 어떤 형태로든 이론적 뒷받침이 있어야 합니다.
사설이 길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많이 안다고한들 그걸 혼자만의 유희로 삼으면 안되고 이론적 체계성을 갖춘 형태로 보여질 때 설득력을 갖게 된다는 것, 그것이 필요합니다. 태균이의 잠깐의 센터 입소거부때문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은 맞습니다.
어제 제주시에서 차를 맡기고 태균이 법적후견인 지정부터 법률자문을 받을 게 있어 제주지방법원 근처로 이동해야 하는데 택시잡기가 어려우니 4km 걸을 작정으로 걸었습니다. 제주도에 온 후 엄청 달라진 것은 걷기에 대한 자신감! 4km정도의 거리는 별 부담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한 2km를 걸었을까 마침 택시 한 대가 오길래 시간절약상 택시로 이동.
법률자문받는데 70살 가까와보이는 법무사는 왜이리 집중력이 없는지... 했던 이야기 또하고 또하고... 뒷쪽 이야기하면 앞쪽 이야기 까먹고... 그래도 시간내준 게 고마와서 성의를 다해 설명했지만 다시 오고싶지 않습니다. 그렇게 제주시에서 시간을 보내니 벌써 아이들 오는 시간이 가까와지고 하는 수없이 택시타고 집으로 왔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피곤해서 늘어지고 싶은데 녀석들 집에 오더니, 특히 태균이 옷을 벗지 않습니다. 운동가야 된다는 결연한 태도! 다시 준이도 주섬주섬 껴입고는 스스로 운동을 갑니다. 뒤늦게 따라가니 저만치 걸어가고 있는 두 녀석!
파란하늘이 수산한못에 그대로 들어와 있습니다. 이틀간 겨울보다 추운 꽃샘추위에다 혹독하게 불어대는 바람 덕에 대기는 청명하고 청명한 기운이 하늘을 활짝 열리게 했습니다.
너무 고분고분해져서 신기하기까지 한 준이가 새로 탄생한 것같아 고맙고 기특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이제 이 정도로 운동도 스스로 하려하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요! 태균이 고마우이!
첫댓글 고생하셨습니다.
준이가 치료의 효과가 있어 편안해지면 당분간이라도 본가 나들이는 안했음 하는 마음이 드네요.
태균씨는 센터가 만족하지 않는데도 나름 멘탈 잡고 있으니 정말 감사하네요.
발달장애인을 위한 기관에서 일하는 분들의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싶습니다.